코로나 19 자가격리의 기록.

2021년 3월 18일 (목)

by 쓴이



어느 때와 다름없이 등교 준비를 하고 출근하는 엄마와 고등학교 3학년 언니와 함께 차 타고 집을 나섰다. 내가 직접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잘 만져진 머리와 화장에 하늘은 조금 흐렸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학교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에어팟을 두 귀에 꽂고 버스 안에서 들을 노래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 다급해 보이는 담임 선생님의 카톡을 받았다.


등교중지?


등교중지라니. 선생님이 절대 학교에 오지 말라며 카톡을 남기셨다. 이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나나, 등교한 친구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마냥 황당하기만 했다. "등교중지라니?" 마음 한 편으로는 ‘조금만 일찍 알려줬으면 집에서 나가지 않았을 텐데.’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담임 선생님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해하시는 모습이 카톡 텍스처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난 ‘등교중지’라는 선생님의 한 말씀에 놀란 친구들로 인해 쉴 새 없이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에 응답하기 바빴다. 그러다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로부터 하나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학교 앞에 선별 진료소가 세워지고 있어. 방역복 입은 사람들도 왔어.”

“우리 어머니가 선별 진료소에서 일하시는데 우리 학교 선생님이 코로나 확진자래.”

학교에서는 단순히 우리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 발생해서 급하게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다고 문자했다. 나는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은 소식을 친구 부모님을 통해 우연히 먼저 듣게 되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출근한 엄마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시기 전에 자가 격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략 20분 후 가까운 보건소에서 오후 1시까지 코로나 19 검사를 받으라는 문자를 받았다. 언니와 함께 엄마 차를 타고 보건소로 향하는 도중 코로나 19 때문에 기숙사에 발이 묶인 친구들을 통해서 확진자가 누군지 대강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난 보건소에 도착했다.


코로나 19 검사


평소 같았으면 학교에서 만났어야 했을 친구들과 선생님을 보건소에서 만났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다정하고 착하신 체육 선생님은 거리 두기 하시면서 검사 순서를 기다리시다가도 겁먹은 친구들을 달래셨고, 유쾌하고 조금 웃기지만 우습진 않은 영어 선생님은 보건소 관계자분의 부탁으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원어민 선생님과 보건소 관계자분의 통역을 맡으셨다. 그 모습이 웃겨서 선별 진료소는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도 웃음이 피었다. 이미 코로나 19 검사를 받은 친구들은 자신의 후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렸다는 둥, 참을만하다는 둥, 극혐이라는 둥... 거리 두기 하며 검사 순서를 기다리면서 후기들을 하나씩 읽어보며 불안감을 키웠다. 키우려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내가 사는 지역은 코로나 19 청정 지역으로 유명했기에 내가 코로나 19 검사를 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고, 다 남일이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나는 폴리스 라인으로 만들어진 줄 안에 서있었다.

내 순서가 다가왔다. 방역복을 입으신 보건소 관계자께서 나에게 펜과 설문조사를 건넸다. 그 자리에서 누가 확진자인지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나에게 확진자인 선생님과 수업을 언제 받았는지 물어보았고, 적으라고 했다. 그 순간, 그곳에서 나는 마치 병균이 된 기분이었다. 누군지 말도 안 해줬으면서 적으라니 조금은 어이없었지만 눈치껏 이야기했다. 조금은 예민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름, 집 주소, 나와 보호 자이 연락처 등등을 종이에 적어내렸고, 몇 가지 사항을 동의하고 나서야 나는 면봉 두 개가 담긴 검사 키트를 들고 다음으로 넘어가 코로나 19 검사를 받았다. 면봉 하나는 어금니와 맞닿는 혀를 문질렀고, 남은 하나는 코 안으로 들어갔다. 코 안으로 들어간 면봉이 목구멍에서 느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깊숙이 들어갔다.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눈물이 나올 수는 있을 것 같다. 검사가 마치고 몇 번 기침해 준 후 엄마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코에서 느꼈던 이물감과 쓴 느낌은 간지러움도 참을만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들었다. 코로나 19를 피해서 영화관에 가지 않은지도 1년이 넘었고, 친구들과 주말에 모여서 놀지도 않았고, 명절에나 보는 사촌 언니 오빠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코로나 19 방역수칙을 지키며 1년이 넘게 지냈는데 학교에서 코로나 19를 걸리면 무척이나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혹여나 내가 확진 판정을 받고 중간고사 시험 볼 때까지 다 낫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도 됐다. 옆에 앉은 고3인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확진 판정을 받은 선생님이 밉기도 했지만 뜻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을까. 확진자 선생님은 우리와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 늘 웃으며 한 명, 한 명 학생들을 보듬어주고 챙겨주셨던 선생님이었던지라 설마 선생님이 징계를 받으시진 않을까 조금은 불쌍하고 걱정됐다. 나중에 완치를 하셔도 학교에 돌아와서 받을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하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하니 보건소에서 나는 코로나 19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수업을 받은 날로부터 14일 동안이었다. '자가격리 안전보호 앱'을 깔았고, 엄마와 함께 자가 격리자와 그의 가족 및 동거인의 생활수칙을 공부했다. 그렇게 나의 코로나 19 밀접 접촉자로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