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였다. 가족들과 함께한 캠핑에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 때문에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큰 형부의 코골이도 나무 막대기 같은 공용 베개도 이유가 되지 않았다. 침대가 아닌 바닥이 주는 불편함을 감안하더라도 숙면을 방해하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주머니에 손을 넣어본 후에야 겨우 이유를 알게 됐다. 어제 산책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뿜던 예쁜 도토리 한 알을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었는데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는 걸.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아 도토리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은 나는 숙면에 들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 헤맸다. 욕심내어 숙소까지 데리고 온 도토리는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듯 밤새 시위했다. 자신의 존재를 줄기차게 외치던 도토리는 아침이 밝자마자 결국 자연으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무엇을 가져가든 너그러이 바라만 봐주었다. 동생과 나는 계절이 가득 담긴 것들을 집에 들여다 놓고 싶어 산과 들을 헤집고 다녔다. 진달래는 가지째 꺾어와 화병에 꽂아 뒀고, 예쁜 솔방울들만 골라 와 화분을 장식하고 놀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연일 방송에 비치는 트리의 모습을 보고는 우리 집에도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해 두고 싶었다. 동생과 나는 삽을 어깨에 짊어지고 소나무를 직접 구하러 나섰다. 내 키보다 크지 않은 것, 화분에 심을 수 있는 것, 가지가 가지런히 나 있는 것, 조건에 딱 맞는 소나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산에는 소나무가 널려 있는데 죄다 큰 소나무뿐이었다.
한참을 헤맨 뒤에야 마음에 드는 소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다루기에는 큰 삽이었기에 깨작깨작 흙을 파냈다. 지금껏 아무 부담 없이 모든 걸 가져왔었는데 이때는 산주인이 나타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기 소나무는 그해 겨울 반짝이는 옷을 입고 가장 화려한 연말연시를 보냈다. 아쉽게도 몇 달 만에 솔잎의 색을 바꾸어 땔감 신세가 되기는 했지만.
어느 가을날엔 갈대를 한 아름 꺾어 왔다. 화병에 꽂아 책상에 올려 두고는 솜사탕 같은 풍성함에 감탄하곤 했다.
며칠 후 저녁, 할머니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다급하게 주방으로 향하는 동생의 모습에 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그때 바라본 우리 방의 모습에 잠시 충격을 받아 말을 잇지 못했다. 책상에 올려 둔 갈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높게 솟아오른 불길은 천장으로 옮겨 붙고 있었다. 주방을 오가며 물을 날랐다. 걱정과는 달리 쉽게 불길은 잡았지만, 흥건한 바닥을 치우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날 이후 천장엔 동그란 구멍이 뚫렸다. 동생은 갈대가 타서 없어져 버리는 속도가 궁금해서 불을 붙여봤다고 했다. 부모님께 혼날 게 걱정되어 혼자 꺼 보려 했단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집을 다 태워버릴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그대로 자연에 두었더라면 몇 년이고 더 아름다움을 뽐냈을 것들을 참 많이도 집으로 들여왔다. 잠자기 전 꼭 안고 자는 애착인형처럼 항상 내 곁에 두고 보면 더 예쁠 것이라고 생각한 어린 날이었다.
얼마 전, 집 앞 공원 산책에 나선 날이었다. 잎과 함께 떨어진 상수리나무의 열매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모자를 쓰고 있는 도토리는 자주 볼 수 없어서 갖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집으로 가져간다면 다람쥐의 겨울 양식도 되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게 뻔하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원래 있던 곳에 사뿐히 내려놓는다.
도토리가 유독 예뻐 보이는 이유는 낙엽이 흩날리는 계절의 숲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도토리는 예쁜 통에 담겨 서랍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낙엽 속에 파묻혀 겨울을 보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자기 자리를 지키며 그늘을 내어주는 소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