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나를 만드는 곳

by 해오기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선 강의 첫날이다. 앞으로의 수업 계획에 대해 안내하며 명함을 돌린다. 명함에 적힌 주소를 확인한 학습자들 중 몇몇이 놀라며 묻는다.

“사무실이 따로 있어요?”

놀라움과 약간의 부러움이 담긴 질문인 걸 알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신나서 응대한다. 업무 공간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이들에게는 멋진 작업실 하나쯤은 있어야 일할 맛이 난다고 할까. 작업실을 갖는 건 로망과 같은 것이다.


공예소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을 운영할 때도, 일주일에 몇 번씩 출강을 나갈 때도 작업실 없이 움직였다. 작업을 의뢰하는 이들을 만날 때는 주로 내가 상대방 쪽으로 움직이거나 카페를 이용했다. 수입은 쥐꼬리만 한데 덜컥 공방을 오픈했다가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 버릴까 봐 눈치만 살폈다. 축하 속에 시작했다가 첫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맞춰 작은 평수로 옮겨 가거나 폐업신고를 하는 동료 강사를 여럿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명의의 건물이 따로 있지 않는 이상, 매월 나가는 월세 부담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콩알만 한 간 때문에 십여 년을 버티다 작은 공간을 하나 마련했다. 당시 사회단체에서 간사 업무도 겸업했었는데 그만둘 핑곗거리를 찾기도 하던 차였다. 드디어 로망과도 같은 공간을 가졌다. 내 이름 세 글자를 상호에 넣었다. 힘찬 시작을 알려야 하는데 코비드 19가 그만 들러붙었다. 10년을 저울질만 하다 마련했는데, 사적인 모임마저 제한하는 시기를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어찌 이리 빨리 흐르는지 벌써 두 번째 계약 만료를 3개월 남겨두고 있다.


최근에 동료 강사들의 공방 두 곳을 연속해서 방문했다. 넓고 깨끗한 공간의 모습에 부러움과 비교가 한 번에 몰려왔다. 로망 같은 공간을 가져 행복해하던 첫 마음은 없어진 지 오래고, 더 넓은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거기에 더해 때마침 나온 매물이 나를 더 불타오르게 했다.


지금 있는 곳보다 더 시가지에 가까운데, 주차도 편하다. 출입문 앞으로는 산책하기 좋은 당진천이 흐른다. 거기다 평수는 넓은데 월세 부담은 지금에 비해 많이 크지 않다는 점이 나를 끌었다. 왠지 그곳으로 가면 일이 더 잘될 것 같다는 무한한 희망에 휩싸였다. 새로운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더 풍성한 나를 만들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직 임장만 둘러보고 가계약조차 하지 않은 상태지만 이미 나는 그곳에 가 있는 상상을 한다. 서울에 사는 공출판사 공가희 대표가 당진에 반해 사무실을 당진 면천에 장만한 것과 같은 마음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있다. 임경선 작가는 에세이 『자유로울 것』에서 글쓰기에 적합한 카페가 갑자기 폐업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후 찾은 카페는 왕복 세 시간 거리에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버스에 몸을 싣는다고 한다. 그만큼 공간이 주는 힘이 크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금 있는 공간도 너무 좋다. 세로로 난 큰 창으로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안부를 물으며 반기는 곳이다. 작업을 하다 잠시 올려다본 창으로 들어오는 메타세쿼이아의 색 변화로 계절이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더 넓은 곳을 찾다 보니 새로운 공간이 내 맘에 들어와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남은 계약기간 동안 부디 그곳이 나를 기다려 주기를 바랄 뿐이다.


봄비가 내리는 날, 창가에 앉아 연록으로 물들어 가는 5월을 상상해 본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담배에 대해 몽상하기보다 작업실을 나와 당진천을 거닌다. 오리 가족이 느린 내 걸음에 동행해 줄 것이다. 운이 좋은 날엔 수달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