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아파트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층간 소음에 주의해 줄 것과 함께 실내 흡연은 금지되어 있다는 내용이다. 담배 연기가 불편한 비흡연자들은 조금의 냄새에도 아주 민감하여 불만을 표시한다. 반면에 ‘내 집에서 담배 좀 피운다는 데 왜 안 되는 거야’라며 뻐끔뻐끔 연기를 내뿜는 이들도 있다. 실내 흡연이 가능했던 시절에서 변화하는 사회를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내 기억에 30여 년 전은 흡연자들을 위한 세상이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접대 테이블이 있는 곳이면 각양각색의 재떨이가 기본으로 비치되어 있었다. 휴지에 물을 묻혀 재떨이에 넣어 놓은 모습을 보면서 주인장의 섬세한 모습을 보기도 했다.
요즘에도 실내 흡연이 가능했다면 카페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놓여 있을 것이다. 다양한 재떨이를 수집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버스에서 담배를 피우느라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 놔 서로 싸움이 일어나는 일이 잦을 것이다. 지하철에는 창문이 없으니 유일하게 흡연 금지 구역이 되었으려나.
그 시절엔 아버지도 애연가셨다. 하루에 한 갑씩 껌을 씹듯 담뱃대를 질겅질겅 씹으셨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을 참 많이도 다녔다. 동네 슈퍼는 아이들에게도 담배를 보루째 쉬이 내어 주었다. 가슴에는 담배를 안고 심부름 값으로 같이 산 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신나게 동네 어귀를 달렸다. 애연가가 있는 집엔 선물처럼 담배를 사 가기도 했다. 안부 인사를 하듯 서로가 담배를 권하던 때였다. 그야말로 흡연자들의 호시절이었다.
좋았던 시절도 잠시였다. 사춘기가 된 딸들의 성화에 아버지의 흡연권은 조금씩 힘을 잃어 갔다.
“아버지, 이제 담배 좀 줄이세요.”
“술도 안 마시는데 담배 피우는 것 가지고 뭐라 하지 말아라.”
“그럼 우리랑 있을 때는 담배 피우지 마세요. 정 담배가 당기면 나가서 피세요.”
한파가 몰아치는 주말 저녁이었다. 예능 프로그램 시청을 위해 TV가 있는 안방으로 모였다.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여동생과 나는 레이저를 쏘듯 아버지를 노려봤다. 무언의 압력에 아버지는 결국 안방에서 쫓겨났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쯤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났다. 옆방 쓰레기통에서 연기가 솔솔 피어나고 있었다. 급하게 불을 끄고 연기의 원인을 파악한 결과, 범인은 예상대로 아버지였다. 제대로 끄지 않은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버린 것과 실외가 아닌 자녀의 방에서 몰래 담배를 핀 아버지는 한동안 딸들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요즘 내 주변엔 담배 피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버지도 큰 수술 후 평생 피었던 담배를 끊으셨다. 나는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없다. 피고 싶은 적도 없던 나였는데 40대가 된 지금, 아주 가끔 보게 되는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며 담배에 대해 몽상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연기 한 모금 내뿜으면 고민도 함께 사라질까. 식후 담배 한 모금이 그렇게 달다는데 과연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보다 맛있을까.
이 글을 마무리 짓기 위해 수 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중에 생각한다. 아, 지금이 담배가 필요한 타이밍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