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편의 그녀

by 해오기

“우리 학교 다닐 때 그 선배 기억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묻는다. 이름은 물론이고 사진을 보여줘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선배의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내가 좋아한 선배의 성이 이 씨였는지 허 씨였는지도 헷갈리는데, 잠시 스쳐 지나간 선배를 기억할 리 없다.


만남을 이어가지 않는 사람에 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잊어버리고 산다. 불필요한 정보들로 뇌가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미리 예방하는 차원이다. 결코 기억력이 나빠서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뇌의 기억 저장소를 살짝 비워놓고 사는 게 나의 특기인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대학 시절 어울려 다녔던 H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가진 스펙으로는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과 지방대 출신이라는 따돌림에 몇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고 한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뉴욕에 살면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당찬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방 출신이 연고 하나 없는 서울에 정착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언어가 다른 국가에서, 그것도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살아가기란 얼마나 고달플까. 생활을 직접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오랜 타지 생활로 인해 향수병에 걸린 건지 한국에 다니러 올 때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단다. 우리들의 의사가 어떤지 물어왔다. 특별히 그 녀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으니 거절할 이유도 없겠지만 만나고픈 친구 영역에 나도 끼어 있음에 놀랐다. 20여 년 동안 연락 않던 친구들에게 만남을 요청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떠한지 궁금해지는 하루다.


지금껏, 그녀와는 졸업을 하며 자연스레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취업을 위해 그녀는 서울로 떠나고 난 고향으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같은 전공도 아니었기에, 여러 친구들과 두루두루 어울려 지내는 단순히 그런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내가 친분이 두텁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전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친구가 몇 없는 그녀에게 나는 어느 정도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나의 의견에 그녀가 상처를 받는 바람에 다음날 문자로 절교 선언을 했다고 한다.

물론 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건 전후 사정을 모두 알고 있던 친구의 기억이다. 절교 선언을 받은 나는 “중학생도 아니고 ‘우린 이제부터 절교’라고 보내는 게 웃기지 않냐?”하고 다른 친구에게 문자 내용을 복사해서 보내었단다. 황당하긴 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걸 보면 별일 아닌 듯 지나갔나 보다.


그녀는 엄마가 미용실을 운영한다고 했지만 올림머리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며, 한 번도 변화를 준 적이 없었다. 또 모양이라고는 하나 없는 검은색 옷을 즐겨 입었던 탓에 크게 눈에 띄지 않던 학생이었다. 나처럼 고향을 떠나 대학에 다니는 시골 출신이지만 꼭 서울깍쟁이 같던 외형을 갖고 있었다.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고추장을 잔뜩 넣은 새빨간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만들어 자취방에서 함께 먹던 소박한 모습이 기억 저편에 있다.

연락을 끊게 된 과정은 다 잊어버렸고, 함께 지낸 좋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좋지 않은 기억력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았다. 나에게 절교를 선언한 친구이지만, 그녀가 불러 준다면 바로 뛰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절교의 기억이 전혀 나질 않으니 문제 될 게 없다.


오랜만에 듣게 된 그녀의 소식에 버려두었던 기자정신이 살아나는 건지,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진다. 만남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 놓으면 이번엔 20년이 지난 뒤에도 잊어버리지 않을 거 같다.


삶을 돌아보니 편지 한 통으로 절교를 하고, 문자 한 통으로 절교를 당하는 심심치 않은 청춘을 보낸 것 같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스트레스도 풀고 좋은 기억도 쌓을 수 있는 20대에 절교로 여러 친구를 잃는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이유는, 절망 사이사이에 놓인 행복을 찾기 위해 힘썼기 때문이리라. 절교는 했지만,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에 들떠 즐거워하던 나의 청춘.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신나는 이야기를 찾으며 지내는 긍정적인 성향 덕에 오늘도 걱정이 없다.


미국 저널리스트 캐롤 터킹턴은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라고 말했다. 절교의 기억이 남아 있다면 경험이라 말하겠지만, 좋았던 기억 사이에서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절교는 내 청춘의 좋은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