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4층 버튼은 왜 F로 표기되었을까?

동양 문화에 내재된 해음 현상

승강기 F버튼. (사진 출처 : 헤럴드 경제)


비교적 연식이 오래된 고층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4층 버튼이 F로 표기된 경우를 많이 보게됩니다. 왜 4층 버튼을 굳이 F로 표시했을까요? 그 이유는 숫자 4의 발음이 한자 '죽을 사(死)'와 같기 때문입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세입자들의 사업이 번창해야 월세를 밀리지 않고 받게되며, 또 그래야 건물의 가치가 상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이나 몰락을 연상시키는 숫자 4 대신 F로 바꾸어 놓은 것이죠. 이 경우 각 층마다 녹음된 안내 음성도 4층이 아닌 F층입니다. 일부 누리꾼들은 이를 일제의 잔재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 대만, 싱가폴 같은 여러 한자문화권 국가들도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처럼 글자의 뜻과 모양이 달라도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사용을 꺼리는 관행은 역사 속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특히 왕의 이름에 사용된 글자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피휘라는 관행이 존재했는데요. 왕의 이름을 언급하는 행위 자체가 대역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모두 한자 '세상 세(世)' 를 공유하고 있죠. 절에서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염불하다 본의 아니게 황제의 휘를 부르는 불경죄를 범하게 되는겁니다. 이를 막기 위해 자비의 화신은 관음보살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조치 덕분에 현재도 관세음 대신 관음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태종 이세민(좌측)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도(우측)


또한 고구려 말기에 활약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중국 사서와 『삼국사기』에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당 고조의 이름이 이연(李淵)이므로 피휘를 한 것이죠.


피휘는 건물명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여러 사례가 있는데요. 첫째, 경희궁(慶熙宮)의 명칭 변경입니다. 경희궁은 본래 경덕궁(慶德宮)이었습니다. 명칭이 경희궁으로 바뀐 시점은 1760년(영조 36년)으로, 원종(元宗, 1580~1619)에게 올려진 시호인 경덕(慶德)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참고로 원종은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며, 그에게 올려진 시호는 '원종경덕인헌정목장효대왕(元宗敬德仁憲靖穆章孝大王)'입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사학자들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영조의 정치적 포석으로 해석하곤 하는데, 내막이야 어찌됬든 명분은 피휘였습니다.

현재 경희궁의 모습.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영조가 경희궁(慶熙宮)으로 바꾸었다.


둘째, 경복궁의 흥례문(興禮門)입니다. 조선전기 흥례문의 이름은 본래 홍례문(弘禮門)이었습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흥례문으로 바뀝니다. 청(淸) 황제였던 건륭제(乾隆帝)의 이름이 홍력(弘歷)이기 때문이죠. 당시 조선은 청과 사대관계를 맺고 있었던 만큼 법궁의 문에 '넓을 홍(弘)' 자를 사용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경복궁에서 광화문을 통과하면 등장하는 흥례문. 원래 이름은 홍례문이나 건륭제의 이름을 피휘하느라 개칭되었다.


한편,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해당 글자의 사용이 적극적으로 권장되죠. 박쥐가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박쥐는 한자로 '편복(蝙蝠)'입니다. 여기에 쓰인 복은 다른 한자인 '복 복(福)'과 같은 발음입니다. 이 때문에 박쥐는 복을 상징하는 길상의 의미로 각종 기물이나 건축물을 장식하는 도안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박쥐 문양으로 장식된 청화자 대접(국립중앙박물관 수정 283)과 덕수궁 정관헌의 난간 장식에 활용 박쥐 문양


지금까지 특정 문자가 발음의 유사함을 근거로 본래의 뜻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사례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러한 현상을 '해음(諧音)'이라 합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나 문화를 공부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요소이죠. 특히 미술을 공부할때 해음 현상을 고려하지 않으면 의미 파악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해음 현상을 바탕으로 간단하게나마 우리 문화 제반에 내포된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폐백 때 신부에게 밤과 대추를 던지는 행위.

지금은 전통 방식의 혼례를 거의 하지 않지만 폐백만큼은 현대화된 결혼식에서 잔존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손주를 보고 싶어하는 양가 부모들의 열망이 크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폐백 때 대추와 밤을 던지는 모습(사진 : 뉴욕일보)


그런 점에서 폐백 때 던지는 대추와 밤도 해음과 관련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폐백이 중국에서 전래된만큼 우리식 한자와 더불어 중국어 발음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대추는 한자로 조(棗), 밤은 율자(栗子)입니다. 한자 '대추 조(棗)'는 '이를 조(早)와 우리말 독음이 같고, 중국어 발음도 둘 다 [zǎo]로 같습니다. 밤을 뜻하는 율자(栗子)의 중국어 발음은 [lìzi]로, 아들을 낳는다는 뜻의 '立子[lìzǐ]와 유사합니다. 그러니 밤과 대추를 합하면 빨리 아들을 낳는다는 뜻인 '早立子'가 되죠. 폐백 때 밤과 대추를 함께 던지는 이유는 속히 득남(得男)하여 집안의 대를 이으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둘째, 조선시대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들은 시험이 임박하면 낙지를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낙지가 시험에 떨어짐을 뜻하는 낙제(落第)와 연관되기 때문이라는데요. 실제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전이 저술한 어류백과사전 『자산어보』에는 낙지가 낙제어(絡蹄魚)로 소개되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합니다. 요즘 수험생들이 시험에 미끄러진다는 이유로 미역을 안먹는 것과 비슷하지요.

어머니가 해준 낙지 요리를 보자 낙제를 떠올리는 선비의 모습(생성형 AI 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셋째, 길상을 목적으로 그려진 회화들.

옛 그림은 산수화처럼 감상을 목적으로 그리기도 하였으나, 무병장수나 만사형통 같은 길상(吉祥)을 바라고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길상용 그림 중에는 해음을 활용한 작품이 적지 않게 남아있는데, 이를 알지 못할 경우 작가의 의도는 물론 작품의 내용 파악에 어려움을 겪게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 작품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1)노안도(蘆雁圖)

갈대밭에 기러기들이 앉아있습니다. 아주 평화로운 광경이지요. 자연의 서정적인 모습을 묘사한 풍경화로 생각하기 쉽지만, 평안한 노년을 기원하는 선물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갈대와 기러기를 뜻하는 '갈대 로(蘆)', '기러기 안(雁)' 두 글자의 독음이 '노인 노(老)', '편안할 안(安)'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의 노안도는 근대화가 안중식의 작품이지만, 갈대와 기러기라는 소재는 평안한 노후를 상징하기 때문에 시대와 작가를 초월하여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안중식, <노안도蘆雁圖>, 1900년, 국립중앙박물관(구 9992)


2)정선, <서과투서>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그린 작품입니다. 겸재는 웅장한 산수화 뿐만 아니라 주변의 풀벌레나 동물 등도 잘 그렸습니다. 이 <서과투서>는 겸재의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죠. 일각에서는 이 그림을 사회비판적인 시선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깨진 수박은 나라의 곳간이고, 수박을 파먹는 쥐는 나라의 재정을 축내는 탐관오리라는 것이죠. 하지만 사대부 출신에 당시 유력 당파인 노론의 후원까지 받은 겸재가 그러한 생각을 가졌을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작품의 주연인 수박과 쥐는 고래(古來)로 다산을 상징합니다. 수박은 씨가 많은 과일이며 쥐 역시 한번에 여럿 새끼를 낳는 동물이니까요. 조연으로는 수박 덩굴과 파란색 꽃을 피운 달개비가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해석은 해음(諧音)으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정선, <서과투서>, 비단에 색, 간송미술관 (사진 출처 : 매일신문)


먼저 덩굴은 한자로 만대(蔓帶)입니다. '자손 만대'라는 표현에 사용하는 만대(萬代)와 한자 독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수박 덩굴은 자손이 번성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리고 달개비는 한자로 벽죽초(碧竹草)이며, 중국어 발음은 [Bìzhúcǎo]입니다. 달개비는 중국어 발음도 주목하셔야 하는데, 죽(竹)에 해당하는 [zhú] 발음이 한자 축원(祝願)의 중국어 발음인 [zhùyuàn]와 같습니다. 다시말해 벽죽초의 죽(竹)과 축원의 축(祝) 발음이 같은 것이죠. 그리하여 달개비는 그림으로 그려질 경우 축원을 의미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하면, 수박과 쥐, 덩굴은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며, 달개비는 축원(기원)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자손을 많이 낳아 집안이 흥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3)호작도

마지막으로 한 작품만 더 살펴보고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요즘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호작도입니다. K팝 데몬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 덕분에 유명세를 얻었지요. 현존하는 호작도는 대부분 조선후기의 민화로, 작품의 주인공 격인 호랑이가 못생기고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다양한 민화 호작도.(왼쪽 두 사진은 본인 촬영. 맨 우측 사진 출처는 신동아)


조선시대 호랑이는 군사들조차 사냥하기 어려울만큼 날쌔고 포악한 맹수였습니다. 평소엔 깊은 산에 살지만 먹을 것이 떨어지면 민가로 내려와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을 습격하고, 급기야 사람까지 해치는 공포의 대명사였죠. 그러니 조상들이 얼마나 호랑이를 두려워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구한말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에도 이런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민화 호작도에는 공포의 호랑이가 아주 정겹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들 하나 같이 꼬리를 다리 사이로 집어넣고 있어 공격 의사가 전혀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소나무 위에 앉은 까치에게 조롱을 받는 모양이죠. 조선 화가들이 호랑이를 이렇게 그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에 대하여 호랑이는 못된 탐관오리이고, 소나무에 앉은 까치는 힘없는 민중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조선 후기로 들어서며 양반의 권위가 점점 떨어지고 민중 의식이 성장하면서 힘없는 서민들을 까치에, 못된 양반들을 호랑이에 기탁한 호작도가 널리 퍼졌다는 것입니다. 민화 연구에 정통한 일부 미술사학자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해봅니다. 민화는 기본적으로 집 안팎에 걸거나 붙여서, 혹은 병풍으로 꾸며 감상하는 길상 또는 벽사용 그림입니다. 다산이나 부귀 영화 등을 기원하며 삿된 기운을 내쫓으려는 마음으로 활용된 그림이었죠. 호작도에 사회 비판적 성격이 존재했다면, 집 안보다는 대문이나 담벼락 등에만 붙이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요?


과거 7~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때 걸개 그림이 유행했던 것처럼요. 호작도의 호랑이가 진정으로 양반들을 풍자한 것이라면, 집 내부보다는 바깥에 붙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 방향으로 활용되었으리라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상류층인 왕실과 사대부들은 사회비판적인 호작도의 제작을 금지하거나 단속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황을 입증하는 기록이나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집 안팎에서 벽사와 길상의 목적을 하였으리라 추정하는 연구만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남미연 作, <너희를 심판하리라>, 1989년. (사진 출처 : 남도일보)


민화의 기본적인 성격인 벽사와 길상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앞서와는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중요하게 살필 자료가 하나 있는데, 조선후기 홍석모가 저술한『동국세시기』입니다. 이 책은 조선후기 유행한 세시풍속을 기록하고 있어 민속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자료인데요. 여기서는 정월 초하루의 풍속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바람 벽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을 물리친다. 후한시대 학자인 동훈(董勛)이 쓴『문례』에 "세속에 초하룻날 닭을 그린다" 했고, 앞서『형초세시기』에도 "정월 초하루에 닭을 그려 창호 위에 붙인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지금의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호랑이를 그리는 것은 정월이 인월(寅月), 즉 호랑이 달이기에 그 뜻을 취한듯 하다.


-『동국세시기』원일(元日) -



정월 초하루가 되면 닭이나 호랑이 그림을 붙여서 액막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호랑이를 그린 이유인데요. 정월이 인월(寅月)이라서 호랑이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호랑이를 의미하는 한자는 '호(虎)' 이지만 12지신의 하나로서 '인(寅)'으로도 쓰기 때문에 이런 풍습이 있었던 것이죠. 이 또한 해음 현상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호랑이가 워낙 무서운 동물이기 때문에 겸사겸사 액막이용 동물로 선택되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한편 까치는 한자로 희작(喜爵)이며, 소리대신 한자 '기쁠 희(喜)'에서 뜻을 취합니다. 따라서 까치는 기쁜소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소나무는 한자로 쓰면 '소나무 송(松)'이지만, '솔가지 신(薪)'으로도 씁니다. 공교롭게도 신(薪)은 신년의 신(新)과 발음이 같죠. 그래서 호작도의 소나무는 신년(新年)을 의미합니다.


위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호랑이 = 인월(寅月) → 새해 첫달

까치 = 희작(喜爵) → 기쁜 소식

소나무 = 솔가지 신(薪) → 신년


해음으로 해석해보니 양반층의 위선을 풍자하는 사회비판적 의미보다는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민중들의 소박한 바람이 담긴 그림이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호작도가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때 이 그림은 후자로 해석하는 편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참고자료

1. 심형철, 『그림에도 궁합이 있다』, 도서출판 민규, 2020.

2. 조용진, 『동양화 읽는법(개정판)』, 집문당, 2013.

3.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65243

4. https://kids.donga.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467

5. https://shindonga.donga.com/culture/article/all/13/3804535/1

6. https://www.imaeil.com/page/view/2018072611111616194

7. https://digitalchosun.dizzo.com/site/data/html_dir/2024/04/24/20240424800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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