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에 팥죽을 먹는 까닭은?

뒤늦은 동지 팥죽 이야기

by 늦깎이 미술사학도

이번주 화요일은 동지(冬至)였습니다. 모두들 팥죽 한 그릇씩 드셨나요? 저는 이번주가 동짓날인 줄도 몰랐네요. 나름 전통에 관심 많다고 자부하는 저인데, 동지 같은 큰 명절도 모르고 지나치다니,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동지(冬至)란?


먼저 동지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동지(冬至)는 24절기 중 22번째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은 가장 짧습니다(양력 12월 22~23일 경). 그래서 일년 중 음기(陰氣)가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겨지는데요. 하지만 동지날 이후 낮이 점차 길어진다는 점에 착안하면, 그간 억눌려있던 양기(陽氣)가 점차 회복되는 시점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주나라는 동짓날 생명이 부활한다 여겨 1년의 첫번째 날로 삼았습니다. 당나라의 역법서인 선명력(宣明曆) 역시 동지를 새해 첫날로 삼았죠. 우리나라도 충선왕 원년(1309)까지는 당의 선명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동지가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이후 고려가 원(元)의 수시력(授時曆)을 사용하며 동지는 더이상 새해 첫날이 아니게 되었고, 대신 작은 설(亞歲)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죠.


동짓날 팥죽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귀신을 비롯한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함인데요. 나쁜 기운은 음(陰)이니 이를 막고자 양(陽)의 기운이 강한 팥죽을 먹었던 것이죠. 팥은 붉은 색이기 때문에 강한 양기를 지닌다 여겨졌습니다. (태극에서 양은 붉은색, 오행에서 양의 기운이 극에 달하면 火가 되는 점을 떠올려보세요)


htm_201412229719c010c011.jpg 동지 팥죽. 잡귀를 쫓기 위한 목적에서 먹는다. (사진출처 : 중앙일보)


팥죽은 먹기도 하지만, 그릇에 담아 집안 이곳저곳에 두기도 했습니다. 이는 잡귀를 쫓으려는 벽사의 목적이 담긴 행위이죠. 아예 잡귀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으려 대문에 뿌리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대문에 팥죽을 뿌리는 행위는 궁중과 관아에서도 행해졌는데요. 이와 관련하여 영조가 동짓날 팥죽을 대문에 뿌렸던 내섬시(內贍寺)를 질타하는 내용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또 동짓날의 팥죽은 비록 양기의 회생을 위하는 뜻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문에다 뿌린다는 공공씨(共工氏)의 설(說)도 너무 정도(正道)에 어긋나기 때문에 역시 그만두라고 명하였는데, 이제 듣자니 내섬시(內贍寺)에서 아직도 진배를 한다고 하니, 이 뒤로는 문에 팥죽 뿌리는 일을 제거하여,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으려는 나의 뜻을 보이도록 하라."


영조실록 115권, 영조 46년(1770) 10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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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눈에는 이러한 풍습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정도에 어긋나니 그만두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내섬시가 관행적으로 팥죽을 계속 뿌린다는 보고를 들었고, 이에 다시 명령하여 팥죽 뿌리기를 금하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영조가 팥죽 뿌리기를 금지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개인적인 생각에는 팥죽을 뿌려봤자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까운 팥죽을 뿌려서 없애느니 차라리 먹는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고요.


그런데 영조가 언급한 '공공씨(共工氏)의 설(說)'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는 중국 육조시대의 풍속을 기록한『형초세시기』에 나오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요순시대에 공공씨가 살았는데, 그의 바보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고약한 귀신이 되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짓날만 되면 그가 평소 무서워했던 팥으로 죽을 쑤어 귀신을 쫓았다'




이렇듯 동짓날 팥죽으로 귀신을 쫓는 풍습은 문헌상으로 육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풍속이죠.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동짓날에 팥죽을 쑤지 않습니다. 바로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 경우인데요. 이런 경우 '애동지'로 부릅니다. 참고로 동지가 11월 중순에 들면 '중동지', 11월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합니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지만,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팥죽의 붉은색이 삼신할미를 쫓아내거나, 팥죽의 '죽'이 발음상 죽음과 같아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국립민속박물관이 편찬한『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애동지에 팥죽을 먹지 않는 이유는 동지팥죽의 유래와 관련있다고 합니다. 원래 공공씨의 어린 아들을 쫓기 위해 팥죽을 먹었던만큼, 팥죽이 아이들에게도 부정적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라는거지요. 그래서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떡을 만들어 먹습니다. 올해 동지도 음력 11월 3일에 찾아왔기 때문에 애동지였습니다. 그래서 팥죽 대신 팥떡을 먹는 동지였죠. 저처럼 동지 팥죽을 못먹었다고 서러워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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