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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Mar 14. 2024

박물관에서 보는 불교 미술의 한계

사찰 답사가 필요한 이유

박물관에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된다. 선사시대의 주먹도끼부터 현대의 가전제품까지. 많고 많은 유물 중 상당수는 미술품으로 분류된다. 회화와 서예, 도자기, 금속공예, 목공예, 기와류의 건축 자재, 그리고 불교 미술. 회화와 서예를 제외한 다른 유물들도 어느정도 그렇지만 불교 미술은 엄밀히말해 미술로 분류하기 적절치 않은 대상이다. 미술 작품이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성물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큰 괘불이나 반가사유상 등에 간혹 합장을 하고서 반배를 드리는 분들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같은 불상이라도 전시장에 있으면 한 점의 유물이지만, 사찰에 있으면 예배의 대상이 된다.


2016년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진행된 반가사유상 특별전시를 앞두고 예불하는 스님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이런 사실을 망각한채 전시장의 불교 미술품을 관람한다. 따라서 성물이 아닌 작품으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무조건 박물관에서 합장하고 절하라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마시길). 그러다보니 유물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예를들면 조선 불화는 고려 불화에 비해 채색이 짙고 문양이 섬세하지 못하므로 격이 떨어진다고 단정짓거나, 조선의 불상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억불의 분위기 또는 글 공부하는 선비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해석하는 식이다.


이렇게 상체를 앞으로 숙인 불상의 조형은 조선 후기에 흔하다. 이를 두고 조각승의 역량이 떨어진다느니, 책읽는 선비의 모습이니 하는 등 별별 해석이 많다.


먼저, 조선 불화는 대부분 사찰의 전각에 거는 탱화(걸개그림)이다. 이러한 전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예배를 한다. 간혹 높은 스님을 모셔놓고 법회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공간에 걸리는 불화라면, 모두에게 잘보이도록 짙은 채색으로 칠해야 눈에 잘 띄지 않겠는가? 문양을 어느정도 그리긴 해야겠지만 아주 섬세하게 그릴 필요는 없다. 그렇게 그렸다간 아무도 못본다. 반대로 고려 불화는 왕실과 귀족의 원찰, 혹은 저택 등에 걸려있던 고급 불화로 추정된다. 이런 곳은 지체높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함부로 못 드나든다. 소수만 드나들 수 있는 격조 높은 공간이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매우 섬세하게 정성을 다해서 그렸다고 봐야한다. 크기도 조선 불화에 비하면 대체로 작은 편이다.

KBS 고려거란전쟁 6회의 한장면. 법당 안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절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찰의 풍경이다.


불상 역시 조선에서 점점 고개를 숙이게 되는데, 우선 글 공부하는 선비라는 해석은 정말 아니다. 불교와 선비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억불숭유 때문이라는 해석도 문제인데, "우리 불교가 이렇게 억압받고 있어요~ 참 딱하죠?"라는 의미로 불상을 만든다면 사람들이 공감을 해줄지언정 신앙심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마치 자신의 남편이 고개숙인남자라고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니는 격이다.


조선에서 고개숙인 불상이 제작된 이유는 불교가 민중지향적으로 바뀌며 보다 많은 사람들을 전각 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중앙에 있던 불단(佛壇, 불상과 공양물을 올려놓는 탁자)이 점차 뒤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렇게 확보한 공간만큼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결과 신도들불전 내부에서 불상과 눈을 마주치게 다. 불상과 눈을 마주치니 부처님이 보다 친근하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권위가 떨어지문제도 있었다. 아무리 자비로운 부처님이라지만 옆집 아저씨처럼 만만해보여서는 곤란하다. 뭔가 위엄이 느껴져야 절도 하고 소원도 빌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사원에서는 차츰차츰 불단을 높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불단을 높이자 부처님이 중생을 안 쳐다보고 고고하게 앞만 쳐다보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래선 곤란하다. 부처님의 자비가 실종되었다. 조선시대 불상이 고개를 숙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런 시행착오의 결과이다. 후불벽의 탱화 역시 자세히보면 눈꼬리를 올려 그린 경우가 많은데, 높은 곳에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고 그렸기 때문이다. 불상과 같은 맥락이다.


범어사 나한전의 석가삼존상.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으나 실제로 가서 보면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의 평균 신장을 고려하면 눈높이에 맞는 적당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불교미술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박물관을 다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미술사를 공부하고 불교의 교리를 통해 작품 자체를 읽어내는 노력도 필요하겠으나, 해당 미술품이 본래 어디에 봉안되었고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래서 불교미술은 답사가 중요하다. 더구나 우리 불교는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계승해왔다. 시대가 지나며 어쩔 수 없이 바뀐 부분도 있었으나 아직은 전통을 고수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 전통 사찰은 불교미술품 대다수가 문화재이므로 함부로 옮기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봉안 위치 및 건축물과의 관계, 예경의 방법 등을 관찰하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교미술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사찰 답사는 필수이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내부. 대좌의 높이도 상당하지만 아래의 불단 높이도 꽤 높다. 불상의 자체 크기도 꽤 커서 막상 가보면 위엄이 느껴진다. 역시 조선시대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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