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너머의 세계: 두 명의 점주, 두 개의 우주

by Yong

카운터 너머의 세계: 두 점주, 두 개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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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두달이 지나간다. 나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물류 박스와 씨름하며 이 작은 우주의 작동 방식을 배워나가고 있다. 이 자리를 얻기까지 아홉 번의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나이도, 경력도 없던 내게 편의점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일하는 이곳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나의 절실함을 알아봐 준 고마운 공간이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추가 일자리를 알아보며 나섰던 열다섯 번의 새로운 면접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같은 브랜드의 간판을 걸고 있어도, 카운터 너머의 세계는 점주의 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른 우주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1. 속도와 효율의 우주


내가 현재 일하는 곳은 전쟁터에 가깝다. 손님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물류는 반나절도 안 돼 동이 난다. 이곳의 최우선 가치는 ‘속도’와 ‘효율’이다. 매대가 잠시 비는 것은 곧 매출의 손실을 의미하기에, 우리는 쉴 틈 없이 물건을 채우고 손님을 응대한다. 구석의 먼지보다 중요한 것은, 손님이 찾는 인기 맥주가 품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곳의 점주는 그런 나를 묵묵히 지켜보며, 주휴수당까지 챙겨주는 현실적인 파트너다. 내가 다른 자리를 알아본다고 했을 때 그 얼굴에 스쳤던 “이 사람도 설마 여기까지 하고 그만두나?” 하는 표정은, 그 역시 수많은 알바생에게 데어본 상처의 흔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의 절실함을 이해했고, 나의 도전을 막지 않았다.


2. 청결과 질서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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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면접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 그곳의 점주는 ‘청결’과 ‘질서’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듯했다. 깐깐해 보이는 인상과 나긋나긋하지만 은연중에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는, 자신의 확고한 스타일을 따라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피로감처럼 느껴졌다. 그 점주는 내게 말했다. “다른 곳 유경험자들이 자기 스타일 때문에 마찰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 말은 사실상 “내 방식에 온전히 맞출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오랜기간 손님입장이었고 그 경험을 통해서 한가지 아는것이 있다. 알바입장에서는 보이는 디테일한 부분들 즉 편의점 구석구석이 그리고 먼지가 손님들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최대한 짧은 시간안에 내가 찾는 신상품이 있는지, 1+1 행사 상품의 재고가 넉넉한지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점주에게 매장의 청결은 매출보다 중요한 운영 철학일 터였다. 물론 그 부분의 철학에 대해 진심으로 존중한다. 나 역시 나의 본업인 사교육 공간에서의 청결에 대한 철학은 그 점주와 다르지 않다.

학생들이 종종 선생님은 결벽증이냐고 왜 우리 공부방은 먼지 한톨 없냐는 말을 자주 하는 정도니까...

어쩌면 그는 나의 이력보다, 내 귀에 걸린 네 개의 귀걸이와 머리에 두른 두건을 더 유심히 봤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리는 완벽한 매장의 그림 속에, 나는 어울리지 않는 조각이었을 것이다.


3. 결과와 과정, 서로 다른 기준


수많은 점주들을 만나며, 나는 그들의 운영 철학이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는다. 어떤 이는 ‘결과’를 중시한다. 매출이 나오고, 큰 사고만 없다면 과정의 사소한 흠결은 너그럽게 넘어간다. 하지만 어떤 이는 ‘과정’을 중시한다. 결과가 좋아도, 그 과정이 자신의 기준과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낀다.


물론 모든 점주를 하나의 틀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수많은 우주들은 너무나 선명하게 달랐다. 한쪽은 나의 절실함을 이해하고 가능성을 봐주었지만, 다른 대부분은 나의 본업과 스타일에서 불안함을 먼저 읽었다.

주 14시간 알바를 구하면서 본업이 없기를 바라는 모순, 젊고 이미지 좋은 아르바이트생을 선호하면서도 힘든 시간대의 노동은 당연하게 여기는 이중성. 어쩌면 수많은 점주들이 그런 착각 속에서 스스로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수많은 면접에서 떨어졌다. 아쉬움보다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나는 이제 두달이 지나는 초심자다, 나의 스타일을 어필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새벽은 안 해봐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지금은 주말 물류를 책임지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솔직함이, 그들의 우주와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시 나의 전쟁터로 돌아간다. 여전히 물류는 쏟아지고, 손님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일터는 단지 노동의 장소가 아니라, 내가 버티고 배우고 조금씩 나아지는 운동장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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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중시하는 점주의 방식도, 과정을 아끼는 점주의 철학도 언젠가는 내 손에 섞여 나의 일이 될 것이다.

오늘도 매대 하나를 더 채우고, 한 사람의 결제를 더 매끄럽게 돕는다. 큰 박수는 없겠지만, 이 작은 성공들이 쌓여 나를 지탱한다.
언젠가 더 넓은 곳으로 나갈 때까지, 나는 여기서 제 몫을 해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비록 로그아웃 버튼은 없지만,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선택을 한다. 계속한다. 배우고, 맞추고, 나아간다.

그 선택이 내 쪽으로 조금씩 빛을 불러온다는 걸, 나는 매장에서 가장 먼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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