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를 몰던 시절, 나는 도로 위에서 종종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특히 거대한 덩치로 시야를 가로막고, 굉음을 내며 뒤에 바짝 붙어오는 SUV들을 상대할 때면 더욱 그랬다. 그들은 어떻게든 나를 추월하고 싶어 안달이었고, 나의 굼뜬 차는 그들의 조급함을 받아줄 수 없었다. 기어이 나를 앞지르고 나서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내 앞에서 꾸물거릴 때면, 그 무의미한 과시욕에 깊은 피로감을 느끼곤 했다. 그 답답함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지난 4월, 내게 전기차 EV3가 온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2천 킬로미터를 넘게 함께 달리며 나는 완전히 새로운 운전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무력하게 방어만 하던 과거가 아닌, 여유와 자신감으로 내 공간을 지키는 시간이다.
나는 도로에서 유독 카니발이나 팰리세이드 같은 거대한 SUV를 몬 가장들의 조급함을 자주 목격한다. 젊은 시절, K5의 날카로운 칼치기로 도로를 지배했던 그들의 영혼은 결혼 후에도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육중해진 차체와 한 박자 느린 변속 타이밍은 그들의 야성을 억누른다. 그들은 애꿎은 가속 페달만 밟아대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숨기지 못한다.
어제도 어김없이 한 대의 팰리세이드가 내 뒤에서 조급한 신호를 보내왔다. 옆 차선으로 빠져나와 굉음을 내며 나를 제치려는 그의 의도가 백미러 너머로 선명했다. 예전 같았으면 긴장하며 핸들을 꽉 쥐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르다. 나는 경쟁할 마음이 없다. 안전 운전이 최우선이다. 그저 내 앞의 공간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가속 페달에 발끝을 살짝 얹었을 뿐이다.
내 차는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뻗어 나갔다. 내연기관차는 굉음과 함께 RPM을 끌어올리고 변속기가 기어를 바꾸는 그 찰나의 순간, 필연적인 지연을 겪는다. 하지만 나의 전기차는 그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40km에서 110km까지, 즉각적인 힘이 바퀴에 그대로 전달될 뿐이다. 잠시 후 백미러를 보니, 위협적으로 달려들던 팰리세이드는 이미 두세 대 뒤의 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 스스로 포기했을 것이다. 전기차의 조용한 가속 지배력을 아직 많이 학습하지 못한 자의 오판이었다.
물론 나도 모든 차를 상대로 힘을 과시하지는 않는다. 옆 차선에 BMW M 시리즈나 포르쉐처럼 태생부터 달리기로 작정한 맹수들이 나타나면, 나는 얌전히 길을 내어준다. 무리한 가속 경쟁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뿐이다. 시내의 평화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할 때 지켜지는 법이다.
전기차는 나를 난폭한 운전자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불필요한 경쟁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안전하게 나를 지킬 수 있는 현명한 운전자로 만들어 주었다. 오늘도 나는 백미러 뒤로 멀어져 가는 조급한 영혼들을 바라본다. 내 차는 추월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가 스스로 경쟁을 포기하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