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견을 깨뜨린 거인, 서장훈

by Yong

나의 편견을 깨뜨린 거인, 서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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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수 시절의 서장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NBA의 화려함에 흠뻑 빠져 있던 내 눈에, 그는 너무 굼뜨고 재미없는 선수였다. 같은 2미터 거인이지만, 코트 위를 날아다니는 흑인 선수들의 폭발적인 움직임에 비하면 그의 포스트 플레이는 어딘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카메라에 잡힌 그는 늘 신경질적이었고, 나는 그를 그저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인 선수라고만 생각했다. 나의 편견은 단단했고, 그가 은퇴할 때까지도 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나의 이 오랜 편견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방송에 진출한 후였다. 어색하게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거인을 보며 처음에는 의아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방송계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의 언변은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비웃듯 논리적이고 명쾌했다. 방송 특유의 과도한 조심스러움으로 애매한 말만 늘어놓던 기존 연예인들과 달리, 그는 정확한 말을 내뱉었다.


방송은 그에게 ‘팩폭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내가 본 그는 팩폭러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의 말에는 현실의 무게가 담겨 있었고, 그 현실감이 방송이라는 ‘가짜’ 세상에서는 폭력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특히 운동선수를 지망하는 청소년과 그 부모들을 상담하는 프로그램에서 그는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달콤한 희망 대신 냉혹한 현실을 짚어주었다. 프로 선수가 될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학업을 포기했을 때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를 그는 외면하지 않았다. 다른 패널들이 “꿈을 꺾는다”며 안절부절못하는 리액션을 보일 때, 나는 방송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서장훈의 ‘불편한 진실’이야말로, 그 아이의 인생을 위한 가장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는 방송에서 말했다. 농구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즐긴 적이 없다고.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허상이며, 자신은 항상 괴로움과 스트레스 속에서 뛰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선수 시절 내내 신경질적으로 보였던 그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것은 신경질이 아니라 ‘절실함’의 표정이었다는 것을. 그는 누구도 깰 수 없는 대기록을 남겼지만, 그 영광의 이면에는 지독한 고통과 싸워온 한 인간의 투쟁이 있었다.


방송에서 그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린다. 부부나 부모 자식의 아픔에 공감하며,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연예인 특유의 과장된 리액션이나 계산된 감정 연기가 그의 눈물에는 없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차갑고 이기적으로 보였던 거인의 가장 따뜻하고 연약한 속내를 보았다.


‘팩폭러’라는 낙인은 어쩌면 공중파 방송이 만들어낸 가장 편리한 프레임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듣기 좋은 말만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 속에서, 서장훈의 진심은 ‘과격한’ 것으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더 이상 그런 연출에 속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공중파를 떠나, 더 솔직하고 적나라한 유튜브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황금 시간대에 건강식품 광고가 나오는 현실이 공중파의 몰락을 증명하고 있다.


서장훈은 나의 오랜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 인물이다. 나는 이제 그의 선수 시절 영상을 다시 찾아보며, 그 굼뜬 움직임 속에서 치열하게 버텨냈을 그의 절실함을 읽는다. 그는 즐기지 않았지만 이겨냈고, 신경질적이었지만 누구보다 따뜻했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너무 쉽게 판단하고 오해했던 수많은 진심들의 거대한 상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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