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의 시대, ‘아는 척’이라는 착각

by Yong


요약의 시대, ‘아는 척’이라는 착각


우리는 바쁜 시대를 살아간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 한 편을 온전히 감상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요약을 찾는다. 10분짜리 영화 리뷰, 3분짜리 책 소개, 1분짜리 뉴스 숏츠. 압축된 정보는 효율적이지만, 나는 이 ‘요약의 시대’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착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것을 안다고 믿게 되는, ‘아는 척’이라는 위험한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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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넷, 그리고 아는 척의 향연


몇 년 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이 개봉했을 때, 온라인은 그 난해함을 해설하려는 리뷰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러이러한 물리 이론을 알면 이해가 쉽다”며 현학적인 단어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요약을 듣고, 마치 자신도 영화의 모든 비밀을 파헤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름 공학을 전공했지만, 영화의 전제 자체가 인류가 아직 접근조차 힘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리뷰어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물리 이론은 영화의 복잡한 설정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정작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인지 쉽게 설명해봐”라는 질문 앞에서, 그들은 대부분 침묵하거나 말을 흐렸다. 그들은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테넷’을 보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공학적 설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화 속 최종 보스인 악당의 행동 동기였다. 미래의 자원 고갈이 두려워, 그 고통이 오기 전에 현재의 인류를 전부 멸망시키겠다는 그의 계획.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어떤 해결책이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 개인의 판단으로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설정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것은 합리적인 논리가 아닌, 한 개인의 파괴적인 자기애에 가까웠다.


2. 요약이 놓쳐버린 진짜 이야기


흥미롭게도, 수많은 리뷰어들은 이 서사의 핵심적인 빈틈은 건너뛴 채, 어설픈 과학 이론 설명에만 열을 올렸다. 어쩌면 그들 역시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긴 상영 시간 끝에 비로소 이해한 것은 단 하나였다.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시간 역행이 아니라, 주인공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거대한 프로젝트 ‘테넷’의 수장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의 시간은 미래를 향해 흐르지만, 주인공의 서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이 누구인지,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여정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테넷’이 말하고자 했던 진짜 핵심이었다. 하지만 요약된 리뷰 속에서는 이 중요한 서사가 종종 생략되거나, 화려한 물리 이론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3. 경험 없는 지식의 시대


‘테넷’의 사례는 비단 영화 한 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요약이 생활화된 숏폼 문화의 가장 큰 단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직접 경험하는 대신 남이 요약해준 지식을 소비하며,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함정에 빠져있다. 공포썰 유튜브에서 날것의 공포 대신 패턴화된 영웅담을 소비하고, 어려운 영화를 보며 사유하는 대신 잘 정리된 ‘정답’을 암기한다.


이 ‘아는 척’ 문화는 우리의 인지 구조를 서서히 바꾸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깊이 몰입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대신 빠르고 쉽게 정답에 도달하려는 욕망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지식은 얄팍하고 공허하다.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의 생각과 해석을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수많은 요약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기꺼이 두 시간을 투자해 영화 한 편을 본다. 남들이 차려놓은 지식의 만찬 대신, 조금은 서툴고 오래 걸리더라도 나만의 사유를 통해 얻는 한 조각의 깨달음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아는 척’의 시대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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