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문과보다 이과를 우대해야한다는 헛된 구호
‘요약의 시대’가 낳은 가장 기이한 현상은 ‘아는 척’이라는 착각이다. 영화 한 편을 보지 않고도 리뷰 영상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믿는 사람들. 나는 이제 그 착각이 더 교묘하고 위험한 형태로 진화하는 것을 목격한다. 바로 기업과 전문가의 영역을 침범하는, ‘가짜 존중’의 시대다.
1. 키보드 위의 수석 엔지니어들
자동차 유튜브 채널을 보다 보면 흥미로운 광경을 마주한다. 수많은 리뷰어들이 새로 출시된 차를 앞에 두고, 마치 자신이 그 차를 설계한 연구원보다 더 핵심을 꿰뚫고 있는 양 단언한다. “이 버튼의 위치는 잘못되었습니다.”, “엔진 세팅은 이렇게 했어야죠.” 그들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과연 기업의 수많은 엔지니어와 기획자들이 그보다 생각이 짧았을까? 하나의 제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단순한 기술 적용을 넘어, 수많은 이해관계와 현실적인 문제들이 얽혀있다. 원가, 안전 규제, 생산 효율, 마케팅 전략, 그리고 차기 모델과의 관계까지. 리뷰어가 지적하는 ‘단순한 실수’는 사실 수백 번의 회의와 테스트 끝에 내려진 ‘최선의 타협점’일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것이 최대 목표이기 때문에 항상 감시하고 소비자를 위한 비판이 필수인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그 비판은 종종 짧은 식견과 감정적인 선동으로 변질된다.
현장의 복잡한 고민은 무시된 채, 단편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키보드 위의 수석 엔지니어’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2. 구호만 남은 가짜 존중
더 큰 아이러니는, 바로 그들이 “엔지니어를 존중해야 한다”는 즉 "문과가 아닌 이과를 존중하고 중용해야 한다" 라는 정의로운 구호를 누구보다 앞장서 외친다는 점이다. 그 구호는 스스로를 ‘깨어있는 소비자’로 포장하는 멋진 슬로건이 되지만, 그들의 실제 행동은 정반대를 향한다. 전문가들의 결과물을 손쉽게 폄하하고, 수년간의 노력을 한순간에 ‘바보 같은 결정’으로 치부해버린다. 그것은 존중이 아니라, 존중하는 ‘척’일 뿐이다.
정작 엔지니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대다수의 소비자들이다. 그들은 ‘정의’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과시하고, 기업을 비난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즐긴다. 그리고 그 선동이 사실과 달랐다는 것이 밝혀져도, 그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미 대중의 관심은 다른 자극적인 이슈로 옮겨간 뒤이고,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대상을 향해 또 다른 ‘정의로운’ 비판을 날릴 뿐이다.
3. 우리는 무엇을 존중해야 하는가
결국 이 모든 현상은 ‘아는 척’ 문화의 심화된 모습이다. 요약된 지식으로 영화를 안다고 착각하듯,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한 기업의 복잡한 의사결정을 모두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직접 경험하고 부딪혀보지 않은 지식은 오만함을 낳고, 그 오만함은 전문가에 대한 존중을 쉽게 잊게 만든다.
진정한 존중은 그들의 결과물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과정과 고민이 그 결과물 뒤에 숨어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비판할 권리가 있지만, 그 비판이 최소한의 겸손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엔지니어를 존중하라”는 우리의 외침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