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친환경이라는 신기루’를 소비하고 있다

by Yong

먼저. 이글은 김경훈 작가님의 "흐물흐물한 정의, 종이 빨대에 대하여"의 글을 읽고 힌트를 얻어 작성하게 된 글입니다.


우리는 ‘친환경이라는 신기루’를 소비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친환경’은 우리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도덕적 규범이 되었다. 우리는 플라스틱 빨대 대신 눅눅해지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종이 빨대를 사용하고, 비닐봉지 대신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봉투를 집어 들며 지구를 위한 작은 실천에 동참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나는 이 거대한 친환경의 물결 속에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진정으로 지구를 위한 길일까. 아니면, 우리는 잘 포장된 ‘친환경이라는 신기루’를 소비하고 있을 뿐일까.


1. 착한 소비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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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빨대는 나무를 베어 만든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삼림이 훼손되고, 종이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화학물질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옥수수 전분 제품 또한 마찬가지다. 대규모 경작을 위해 농약과 비료가 사용되고, 이는 식량 자원과의 경쟁을 유발한다. 심지어 이 제품들은 특정 조건에서만 분해될 뿐, 자연 속에서는 플라스틱과 다름없이 수년간 떠돌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한다. 기업들은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교묘한 마케팅으로 우리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우리는 기꺼이 그들의 착한 소비자가 되어준다.


이러한 신기루는 국가 단위의 담론으로 확장된다. “에너지를 아끼고 재활용해서 지구를 지키자.” 이 아름다운 슬로건은 선진국에서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의 생존과 경제 성장이 더 시급한 개발도상국에게 이것은 사치스러운 구호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의 화산과 사막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적인 오염 물질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있는데도, 우리는 오직 인간의 소비 습관만을 문제 삼는다. 결국 ‘지구 지키기’는 일부 국가와 시민들의 도덕적 자기만족으로 그칠 뿐, 지구 전체의 환경에는 미미한 파동만을 남긴다.


2. 기술 대신 절제를 강요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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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류가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오염 물질 배출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플라스틱 없는 삶, 전기 없는 밤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생활 습관의 절제를 강요하며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오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대기 중의 탄소를 포집해 무해한 물질로 바꾸고, 플라스틱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는 기술. 어쩌면 ‘테라포밍’과 같은 거대한 기술적 도약만이 인류에게 유일하게 남은 현실적인 방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친환경 담론은 이러한 기술적 해법보다, 개인의 절제와 희생을 강조하는 데 집중한다. 왜일까. 그 이유는 이 담론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환경 보호’라는 명분은 새로운 규제와 세금을 도입할 완벽한 구실이 되고, ‘탄소 배출권’이라는 제도는 실제 오염을 줄이는 대신, 오염할 권리를 사고파는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냈다. 기업들은 돈으로 ‘친환경’이라는 딱지를 사고, 그 뒤에서 여전히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3. 신기루 너머의 진실


결국 지금 우리가 마주한 ‘친환경’은 순수한 신념이 아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거대한 산업이 되어버렸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종이 빨대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소극적인 소비자로 남아있다.


나는 더 이상 이 신기루를 믿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는 개인의 작은 실천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의 발전과,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정직하고 투명한 시스템 위에서만 싹을 틔울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죄책감을 덜어주는 착한 소비가 아니라, 이 거대한 신기루의 본질을 직시하고, 진짜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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