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리물을 사랑한다. 작가가 던져놓은 단서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맞추며, 탐정보다 먼저 진실에 도달하려 애쓰는 과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최근의 수많은 추리 드라마와 소설을 보며 나는 종종 실망감을 느낀다. 그들은 더 이상 독자와 공정한 게임을 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비겁한 속임수로 독자를 기만하고, 허무한 반전으로 뒤통수를 치는 데 급급하다.
1. 결정적 단서를 숨기는 작가들
훌륭한 추리물은 독자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중요한 단서를 아예 생략해버리지도 않는다. 공정한 추리 게임의 전제는, 탐정과 독자가 최소한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많은 작품들은 이 대원칙을 무시한다. 결말에서 범인을 특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결정적 단서를, 작가는 자신과 탐정만 아는 비밀로 꼭꼭 숨겨둔다.
우리는 이야기 내내 아무런 힌트도 받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탐정의 입을 통해 “사실 그때, 범인은 이런 단서를 남겼었지”라는 설명을 듣게 된다. 그것은 놀라움이 아니라 허탈함이다. 우리는 추리의 과정에 참여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작가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정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것은 작가로서의 자신감 부족이자, 독자에 대한 명백한 기만이다.
2. 고전적이고 허접한 연출의 반복
이러한 기만은 연출에서도 반복된다. 특히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는 ‘병실 문 트릭’은 그 대표적인 예다. 중요한 증인이 병원에 누워있고, 범인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주인공은 그를 지키기 위해 각기 다른 곳에서 병원으로 향한다. 카메라는 두 인물이 마치 같은 병실로 향하는 것처럼 긴박하게 교차 편집된다. 범인과 주인공이 동시에 병실 문을 여는 순간,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다. 범인은 엉뚱한 병실의 문을 열었고, 주인공은 진짜 증인을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런 연출은 너무나 고전적이고 허접하다. 관객의 긴장감은 상황의 필연성이 아닌, 편집의 속임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시 속아 넘어갈지언정, 이내 모든 것이 안전하게 짜인 각본이었음을 깨닫고 허무함을 느낀다. 그것은 진짜 서스펜스가 아니라, 관객을 상대로 한 값싼 눈속임에 불과하다.
3. 공정한 게임을 원한다
나는 추리물 작가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자가 쉽게 눈치채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단서를 숨겨두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이다. 사소한 대사 한마디, 무심코 스쳐 지나간 배경 소품, 등장인물의 반복되는 작은 습관 속에 결정적인 힌트를 숨겨놓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자와 작가 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아름다운 두뇌 게임이다.
하지만 지금의 많은 추리물들은 그 게임을 포기했다. 그들은 독자와 머리 싸움을 하는 대신, 규칙을 어기고 승리를 선언한다. 나는 더 이상 그런 비겁한 게임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작가가 나를 존중하고, 나와 공정한 승부를 겨루기를 원한다. 비록 내가 그 승부에서 패배할지라도, 나는 기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추리물을 사랑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지적인 희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