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9년에 태어났다. 소위 ‘끼인 세대’다. 5060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대의 투쟁 서사에도,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의 새로운 감수성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 우리는 아날로그의 끝자락을 기억하며 디지털 혁명의 최전선에서 실무를 감당했지만, 그 누구도 우리 세대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 우리는 늘 존재했지만, 공론장에서는 언제나 유령이었다. 이 이름 없는 세대의 증언을 통해,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기이한 풍경을 기록하고자 한다.
1. 그들은 투사가 아닌 관람자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언론, 교육 등 모든 권력의 중심에는 자칭 ‘민주화 세대’가 앉아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한 투사로 여기며 영구적인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민주화 1세대가 아닌, 2세대 격인 ‘관람자’였다고 본다. 80년대의 치열했던 투쟁은 극소수의 희생으로 이루어졌고, 다수는 그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민주화라는 거대한 서사에 자신의 청춘을 자아의탁했을 뿐이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호황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코카콜라 물류 배달을 하다가 정직원이 되는 신화가 가능했던 시대, 노력하면 정규직이 되고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시대의 마지막 수혜자였다. 그들은 그렇게 사회의 중요 자리를 선점하며 견고한 기득권층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권력에 저항하는 언더독이라 믿는다.
2. 스윗한 가면 뒤의 설계자들
내가 취업 시장에 뛰어들던 시절, IMF의 한파가 휩쓸고 간 대한민국에서 정규직은 고시 수준으로 희귀해졌다. 윗세대와 같은 스펙과 노력으로는 결코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없었다. 사회적 사다리는 우리 세대 앞에서부터 철거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을 모두 다루는 실무자였지만, 관리자의 자리는 언제나 윗세대의 차지였다. 우리는 올라갈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묵묵히 일했다.
그렇게 현재의 불균형한 사회 구조를 설계하고 책임져야 할 그들은, 이제 와서 젊은 세대에게 한없이 ‘스윗한’ 발언과 정책을 남발한다. 청년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 노동 현장을 겪어보지도 않은 정치 낭인을 영입하고, 여성 친화적이라는 명분으로 역량과 무관한 인사를 단행한다. 미투 운동에서 드러났듯, 과거의 성차별적 구조 속에서 권력을 누렸던 가해자들이 바로 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는 누구보다 젠더 감수성이 뛰어난 척 연기한다.
그들은 현재의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소득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모순의 실질적인 설계자이자 책임자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단 하나의 신화로 모든 책임을 회피한다. 독재자는 물러난 지 오래건만,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적과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를 소비하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오늘의 문제로부터 눈을 돌린다. 그리고 그들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한, 이 구조가 수정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3. 해결책 없는 시대의 기록자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한들, 나에게 해결책은 없다. 그들은 견고하게 뭉쳐있고, 나의 목소리는 흩어질 뿐이다. 현 세대들은 하나로 뭉치는 성향도 아니다. 그저 이 불합리한 현실을 인식하고 분개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나는 기록해야만 한다. 민주화 세대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그들의 위선을, 언더독의 가면 뒤에 숨겨진 기득권의 민낯을, 그리고 그들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간 우리 세대의 고통을 말이다.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불리는 MZ세대 이전에, 부모도 가난했고 우리도 가난했으며, 그 가난을 증명할 서사조차 갖지 못했던 세대가 있었다는 것을.
이것은 꼰대의 넋두리가 아니다. 한 시대의 증언이다. 지금의 기이한 팬덤 정치와 감정 과잉의 사회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향한 질문이다.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우리는 이름 없이 목격한 이 시대의 증언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