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이 사라진 스크린
현실을 다루는 척하면서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파는 것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걸크러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직접 개척하는 강인한 여성 캐릭터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는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걸크러쉬 서사를 보며, 불편한 위화감을 느낀다. 우리가 열광하는 그 모습이, 과연 진정한 강인함일까. 아니면, 잘 포장된 판타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1. 45kg의 여전사, 그리고 사라진 현실
드라마 속 걸크러쉬의 클리셰는 놀라울 만큼 일관적이다. 만취한 남성이 행패를 부리고, 위기의 순간 홀연히 나타난 여주인공이 그의 팔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볍게 제압한다. 그리고는 멋진 대사를 날리며, 저항하는 취객을 업어치기 한판으로 잠재운다. 주변인들은 경탄하고, 시청자들은 통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헛웃음을 참을 수 없다. 운동이라고는 필라테스 정도만 했을 법한, 45kg 남짓의 가녀린 여배우가 거구의 성인 남성을 완력으로 제압한다는 설정. 이것은 현실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아니라, 차라리 중2병적인 망상에 가깝다. 만약 그녀가 초능력자라는 설정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을 그리면서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순간, 몰입은 깨지고 서사는 힘을 잃는다.
배우 이시영처럼, 실제로 권투 선수로서의 이력이 있는 배우의 액션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녀의 다부진 체격과 몸에 밴 움직임은, 그녀의 강인함이 단순한 연기가 아님을 증명한다. 하지만 영화 ‘독전 2’의 한효주처럼, 감량을 통해 만든 일자 복근과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상대를 노려보는 표정만으로 강함을 연기하려 할 때, 그것은 걸크러쉬가 아닌 어설픈 클리셰의 반복일 뿐이다.
2. 주인공을 띄우기 위해 허수아비가 된 남자들
걸크러쉬 서사의 또 다른 문제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주변 남성들을 지나치게 멍청하거나 악하게 설정한다는 점이다. 여자 형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남자 형사들은 대부분 부패했거나 무능하며, 위험 앞에서 몸을 사리는 비겁한 존재로 그려진다. 결국 세상의 모든 정의는 여주인공 혼자서 짊어져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의 강력계 여형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것은 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요구하는 현장의 특성 때문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비현실적인 여성 영웅을 창조하고, 그를 위해 주변 남성 캐릭터들을 무력한 허수아비로 전락시킨다.
진정한 강함은, 유능한 동료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을 발할 때 드러난다. 영화 ‘다크 나이트’가 위대한 이유는, 배트맨이 무결점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조커라는 압도적인 빌런 앞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때로는 멍청해 보일 정도로 무너진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강력한 빌런이 존재할 때, 서사는 비로소 입체적인 생명력을 얻는다. 하지만 우리의 걸크러쉬 드라마들은 주인공을 띄우기 위해 빌런을 너무나 허접하게 그려놓는다.
3.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경계
물론 모든 드라마가 완벽한 리얼리즘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실을 다루는 척하면서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파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다. 해커가 단독 보안 시스템을 ‘타닥타닥’ 몇 번의 키보드질로 뚫어버리고, 전과자가 골목 상권에서 시작해 대기업을 무너뜨리는 ‘이태원 클라쓰’의 서사는, 배우들의 열연이 아니었다면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가 진짜 걸크러쉬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우고, 성장하고, 연대하는 모습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신체 스펙을 무시한 업어치기 한판의 통쾌함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처절한 투쟁.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스크린 속에서 보고 싶은 진짜 ‘강한 여성’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