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공허함
최근 정부가 AI 대전환을 위해 내년 예산을 10조 원 규모로 편성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올해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숫자다. 피지컬 AI, AX(AI Transformation), 전국민 AI 교육, 버티컬 AI 연구센터 설립 등 장밋빛 청사진이 함께 제시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화려한 숫자와 거창한 계획 앞에서 희망보다는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이 정책이 과연 한국의 AI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AI, 특히 챗GPT와 같은 초거대 AI 모델의 탄생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AI 강국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순진한지 알 수 있다. AI의 발전은 단순히 돈을 퍼붓는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수십 년간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 학계와 민간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경쟁과 협업 속에서 탄생한 혁신적인 이론, 그리고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민간 기업의 과감한 자본과 실행력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즉, AI는 ‘돈’이 아니라 ‘생태계’ 에서 자라난다.
정부 주도의 투자는 필연적으로 관료주의의 경직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단기적인 성과 보고에 집착하는 정부의 속성은, 수많은 실패와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AI 연구의 본질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결국 이 막대한 예산은 ‘AI 쓰레기통’이나 ‘AI 전자칠판’ 같은 실용성 낮은 보여주기식 시범 사업이나, 실제 시장 경쟁력 없는 ‘좀비 기업’을 양산하는 보조금으로 흩어질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 보기에 10조 원은 엄청난 액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글로벌 AI 전쟁의 무대에서 이 돈은 ‘간식값’에 불과하다. GPT-4급 모델 하나를 훈련하는 데에만 수천억에서 조 단위의 비용이 들어간다. NVIDIA, Microsoft, Google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연간 수십조 원을 R&D와 인프라에 쏟아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0조 원이라는 예산은 여러 부처와 기관으로 쪼개지고, 각종 용역과 보고서 작성 비용으로 소모되다 보면 결국 어디에 쓰였는지도 모르게 공중분해될 것이 뻔하다.
이미 국내 대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AI 시스템을 개발하고 도입하며 각자의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정부가 돈을 풀어야만 AI가 확산된다는 논리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심지어 세계 최대 IT 기업인 Microsoft조차 자체 AI 개발 대신 OpenAI와의 협력을 택했다.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이미 앞서가는 기술과 협력해 자사 서비스에 빠르게 접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이번 AI 예산 증액은 실질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신호에 가깝다. "우리는 AI에 투자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정부다"라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인 것이다. 정책 효과보다 홍보 효과가 더 큰 이 계획은, 결국 관련 이권을 가진 소수의 단체와 기관의 배를 불리고, 국민이 체감할 만한 성과 없이 기억 속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민간은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AI 시대를 헤쳐나가고 있고, 글로벌 시장은 단독 개발이 아닌 전략적 협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정부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AI 발전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탁상행정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AI 강국을 원한다면, 정부는 직접 투자자 흉내를 내는 대신, 민간이 자유롭게 경쟁하고 혁신할 수 있도록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는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씨앗을 뿌릴 땅을 다지지도 않고 비료만 퍼붓는다고 해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