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규제의 낯 뜨거운 민낯
나는 종종 게임 속 세상의 자유로움에 감탄한다. 특히 ‘Grand Theft Auto V(GTA5)’는 그 정점에 있다. 은행을 털고, 마약을 배달하며, 도시 전체를 혼돈에 빠뜨리는 범죄 서사는 현실의 도덕률을 가뿐히 뛰어넘는 해방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한국판 GTA5를 플레이하던 나는, 이 해방의 세계 속에서 기묘하고도 위선적인 벽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카지노 출입 금지’다.
1. 선택적 정의, 그리고 어설픈 검열
게임물관리위원회(게등위)의 논리는 이렇다. 살인과 강도, 마약 거래는 폭력적인 ‘표현’의 영역이므로 18세 이용가 등급으로 허용할 수 있지만, 카지노는 ‘사행성’을 조장하므로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중잣대인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GTA5라는 게임 자체를 금지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게임의 본질은 외면한 채, 눈에 띄는 카지노 미니게임 하나를 잘라내는 것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순은 게임을 문화나 산업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규제의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 벌어지는 필연적인 비극이다. 그들에게 게임은 여전히 ‘중독’과 ‘유해물’이라는 낡은 프레임 속에 갇혀있다. 그들은 실제 게임을 해본 적도, 그 안의 서사와 예술성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규제하는 척’ 연기를 할 뿐이다.
2. 황금기의 종말과 하청국으로의 전락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규제가 한국 게임 산업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목격해왔다. 2000년대,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온라인 게임의 황금기를 누렸다. 창의적인 MMORPG와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세계 시장을 호령했다. 하지만 ‘셧다운제’와 같은 억압적인 규제와 “게임의 해악성”을 증명하겠다며 PC방 전원을 내려버리는 공중파 뉴스의 광기가 이어지면서, 우리 게임 산업은 서서히 창의력을 잃고 움츠러들었다.
살아남은 것은 도전적인 작품이 아닌, 저질스러운 과금 유도 시스템으로 무장한 모바일 게임들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게임 개발의 주도권을 일본과 중국에 내어주고, 그들의 게임을 국내에 유통하는 ‘퍼블리싱 하청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산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아 내린 어리석은 결정들이, 한 시대의 황금기를 어떻게 끝장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처참한 사례다.
3. ‘이과 존중’이라는 공허한 슬로건
나는 이 모든 현상을 보며, 우리 사회가 입버릇처럼 외치는 “이과를 대접해야 한다”는 슬로건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말로는 기술과 전문성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비전문가들의 정치적 계산과 보여주기식 도덕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게임 산업뿐만이 아니다. ‘아는 척’하는 전문가들의 선동에 전기차 기술의 본질이 왜곡되고, 기업의 복잡한 현실은 무시된 채 단편적인 비난만이 난무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과연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듣기 좋은 말과 자극적인 비난에만 열광하며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GTA5의 카지노는 여전히 굳게 닫혀있다. 하지만 그 닫힌 문 너머로, 나는 전문성이 무시당하고, 논리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민낯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