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Q’와 사라진 속옷 모델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게 되었나

by Yong

‘미스터Q’와 사라진 속옷 모델: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게 되었나

최근 넷플릭스에서 90년대 후반의 인기 드라마 ‘미스터Q’를 다시 보게 되었다. 속옷 회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사랑 이야기. 그런데 나는 새삼 놀라운 장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공중파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속옷 모델들이 팬티와 브라만 입고 런웨이를 걷거나 화보를 찍는 장면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다. 요즘 홈쇼핑에서조차 사라진 그 풍경 앞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과연 20여 년의 세월 동안 무엇이 변한 것일까.


1. 불편함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검열

‘미스터Q’가 방영되던 시절, 우리는 그 장면들을 ‘패션’이자 ‘산업’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떨까. 아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민원이 빗발칠 것이고, 온라인 커뮤니티는 ‘성적 대상화’라는 비난으로 들끓을 것이다.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는 우려와 함께, 드라마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낙인이 찍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과거보다 더 높은 성 감수성을 갖게 된 것일까. 나는 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정반대다. 지금의 우리는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병적으로 예민한 사회에 살고 있다. 걸그룹의 안무와 의상은 그때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성적 매력을 어필하지만, 그것은 ‘K-POP’이라는 문화 산업의 이름 아래 용인된다. 반면, 드라마 속 속옷 장면은 ‘성 상품화’라는 도덕적 잣대 아래 손쉽게 단죄된다. 이 기묘한 이중잣대 속에서,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깨어있다’고 믿는지 의심하게 된다.


2. 누가 진짜 음란한가


나는 쓸데없는 것들로 자꾸 시비를 거는 그들의 머릿속이 더 궁금하다. 아무런 성적 맥락이 없는 장면에 ‘성적 대상화’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평범한 신체 부위에 ‘선정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그들이야말로, 사실은 모든 것을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음란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표현 그 자체보다, 그것을 음란하게 해석하는 시선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지나친 검열은 음란함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던 음란함마저 상상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다.


우리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불편함을 줄까 봐, 오해를 살까 봐. 그 결과, 우리의 표현은 점점 더 안전하고 무해한 방향으로 자기검열을 거듭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유머와 풍자, 그리고 현실을 담아내는 솔직함을 잃어버렸다.


3. 잃어버린 감각을 찾아서


‘미스터Q’ 속 속옷 모델들은 그저 자신의 일을 하는 전문가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을 불편함 없이 바라볼 수 있었던 과거의 우리와, 그것을 문제 삼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금의 우리. 과연 어느 쪽이 더 건강한 사회일까.


나는 ‘미스터Q’를 보며 잃어버린 시대를 떠올린다. 조금은 촌스럽고 투박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모든 것을 불편해하며 서로를 감시하지는 않았던 시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검열의 잣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일지도 모른다. 속옷을 입은 모델을 보고도, 그것이 그저 속옷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당연한 감각을, 우리는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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