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예능 속 나르시시스트

by Yong

연애 예능 속 나르시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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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켜면 처음 보는 남녀가 사랑을 찾는 연애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나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미묘한 심리전을 흥미롭게 지켜보곤 한다. 특히 최근 들어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형이 있다. 바로 '나르시시스트형 출연자'다. 그들은 종종 매력적인 빌런으로 소비되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 속에서 훨씬 더 위험하고 서글픈 인간 군상의 민낯을 본다.


자기애가 아닌 자기혐오, 나르시시스트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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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나르시시스트를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그들은 사실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자존감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 공허함을 감추기 위해 거짓되고 과장된 자신감을 갑옷처럼 두르고, 타인의 인정과 찬사를 통해 위태로운 자아를 겨우 지탱한다.


그들은 단 한마디도 자신이 부족하거나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너져 내린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라면 사과 한마디로 끝날 일을, 그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반복하고 실시간으로 말을 바꾸며 자신을 방어한다. 논리가 엉망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이 순간, 상처받지 않는 '나'를 지켜내는 것이다.


"숭고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스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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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향은 연애 프로그램이라는 무대 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나르시시스트형 출연자는 보통 출연자들 중 가장 외모가 뛰어난 이성에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 숭고하고 절실한 사랑이라고 포장하지만, 사실 그것은 취향에 맞는 상대에 대한 본능적인 끌림에 불과하다.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상대에게 과도하게 몰입하고, 그 사람이 다른 이성과 말만 섞어도 마치 바람이라도 피운 것처럼 몰아붙인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아직 진정한 관계나 감정 교류가 형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그 '숭고함' 따위를 이해할 수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감정만을 밀어붙이는 스토킹에 가깝다.


현실과 방송, 그리고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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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유형을 잘 알아보는 이유는, 교육 현장에서 비슷한 성향의 남자아이들과 교제하다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애 초기에 스킨십을 서두르고, 상대방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며 과도하게 집착한다. 물론 연애 초기에 빠진 아이들에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야"라고 설명해봐야 소용없다. 결국 스스로 겪고 깨닫기 전까지, 주변의 그 어떤 조언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는 법에 대해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상대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 한다면, 단 한마디의 거짓말이나 왜곡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거짓말을 한번 용납하는 순간, 당신은 그들이 짜놓은 혼란스러운 논리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의 오류를 인정할수 없기 때문에 방금 한 말을 뒤집는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샀다고 했다가 그럼 그거 어딨냐고 하면 이미 누구에게 줬다고 말한다. 그런 그 누구에게 확인하면 그런거 받은적이 없다고 한다. 다시 그에게 물어보면 자긴 그런말 한적 없다고 한다. 즉 그들은 거짓말 자체를 한다고 인식을 하지도 못하고 그냥 그 순간순간 상대에게 우위를 점하기 위한 거짓말을 끈임없이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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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착각하는게 "걔 악한 사람은 아니야" 라는 함정에 빠져서 그를 비난하는걸 꺼려하거나 오히려 말리는데 그들이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는게 아니라 그들은 성향상 주변에 해학을 끼치는 악한 행동을 끈임없이 하기 때문에 문제가 큰 것이다. 주변인들 모두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물론 그 이상의 피해를 끼친다.


연애 예능에 이런 빌런격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마 제작진의 의도적인 배치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분노하면서도, 그 갈등이 주는 자극적인 재미에 채널을 고정하기 때문이다. 유튜브 덕분에 최근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널리 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야 과거 자신을 힘들게 했던 누군가가 왜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는지 깨닫고 있다. 정보가 널리 퍼질수록, 나르시시스트들은 현실에서 점점 더 고립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사람 간의 소통이 줄어드는 시대, 그들은 현실에서 고립되는 대신 SNS와 같은 익명의 공간에서 더 활발히 살아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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