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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매력에 풍덩

by 자유인

우리는

자주 만나지 않았으나

20년이 넘도록 오랫동안 만났다


부산에서 서울에서 경주에서...

그녀는 이성주의자이고

나는 감성주의자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지와 사랑>에 나오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인데 오랜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놀랍다거나 신기하다거나 재미나다

또는 나중이 너무 궁금하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너무너무 웃긴다는 표현도 가끔 쓰는데

그때는 표정이 정말 천진한 개구쟁이 같다

기질은 성실하고 진중하지만

가볍고 유쾌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공통점은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고통 없는 죽음을 소망한다는 것이다


그녀를 보면

늘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세나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자연스럽고 여유롭고 세련되다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자기 철학이 분명하지만 서로 다름에 유연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유쾌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외부의 원인으로 인한

타격감이 적고 회복력이 좋다

그래서 세상과 세월을 여행하면서

나는 많이 울고 그녀는 많이 웃었다

ㅎㅎ





이번에는 경주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고

64km 직진하면서 속도를 즐길 수 있는

단순하고 재미난 코스가 경주로 가는 길이다


무량사 근처에서 전골요리로 점심식사를 하고

무량사와 인근의 서출지를 산책하였다

그리고

<천년숲>이라는 이쁜 별칭을 가진

산림연구원으로 이동해 산책을 하면서

정치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우리가 깊은 대화가 가능한 이유 중에 하나가

정치적인 신념과 견해가 일치한다는 것도

한몫했음을 느꼈다

썩은 과일은 도중에 알아서 떨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매번 너무 많은 희생을 치른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더니 그녀가 깊이 공감했다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미완의 역사가

후대에 반복해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의 원인이 되었음에도

서로 공감했다

불교 철학에 흥미를 느끼는

무교라는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 이질감 없이 대화가 잘 통하고

어떤 주제로도 재미난 토론이 가능한 것도

큰 즐거움이다






마지막으로 카페 <플레이스 씨>로 이동해서

입구에 걸린 우장춘 박사의 사진을 보며

내가 매우 반가워하고 기뻐하자

그녀가 신기해하였다


우장춘 박사의 후손들이 육종연구와 관련된

부지를 사들여 박사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꾸며서 문화사업으로 연결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웅장한 카페와 모던한 전시회장과

아기자기한 정원과 세련된 글램핑장의

조화와 절제미가 아름다웠다


우장춘 박사는

우리 민족의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큰 헌신을 했지만

가족도 본인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다행히

넷째 사위인 이나모리 가즈오가

일본의 교세라 창업주가 되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사별 후에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었다가

일본항공의 위기상황에서

일본총리가 여러 번을 간곡히 부탁하자

다시 경영에 복귀하여

일본항공을 단기간에 흑자로 전환하고

다시 은퇴하였고 2022년에 별세하였다


K팝 데몬 헌터스로 월드스타가 된

이재의 스토리도 잠시 연결해서 나누었다

할아버지인 신영균 님이 의사 출신의 배우인데

성공하신 이후에

여러 가지 사회사업에 500억을 기부하셨고

그 규모가 지금도 큰돈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큰돈이었는데

그 공덕이 헛되지 않아

손녀인 이재가 큰 성공을 해서 너무 기쁘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후손을 위한 가장 좋은 기도는 나눔이라고 하신

법륜 스님의 가르침도 서로 공감하였다






1층의 전시장에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처음으로 다시 오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

토마스 산체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김종학 작가의 작품 <풍경>의 압도적인 스케일과

환상적인 분위기가 신비로웠다


함경아 작가의 거대한 자수 작품들도

천재적인 색깔 배합과 유니크한 아이디어가

너무 매력 있었지만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조금 아쉬웠다


박제성 작가의 미디어 설치작품인 <몽유>는

강렬하게 밝은 색감과 부드러운 움직임과

느린 속도감에 몽환적인 매력이 있어

한참을 감상하였다


카페에서 음료 한잔을 하고

테라스에서 일몰을 감상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녀와 헤어지고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바로 길을 잃었다

최첨단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장착하고 다니면서

나처럼 길을 잃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경주톨게이트를 찾아

대구와 부산의 갈림길에서 부산방향으로

들어서며 64km 직진 화면을 확인하고

음악의 볼륨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인생을 살면서도

유난히 길을 자주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진심이고

너무 애쓰고 살아서

그랬었던 것 같다


이제는 힘 좀 빼고

대충대충

가볍고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주의 매력에 풍덩 빠진


행복한 하루였다


자연은 지금 매일 가을파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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