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우산

by 자유인


새해의 어느 날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렸다.

오후에 베란다 밖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사람들은 우산을 접은 채 지나가고 있었다.

헬스장으로 운동을 가면서 우산을 가지고 나갈까 잠시 망설이다 다시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두고 나갔다.


오랫동안 운동을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 있다. 근력운동을 하면서는 호흡에만 몰입하고,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는 상상을 즐기는 것이다. 공상을 수시로 즐기는 나로서는 상상력이 떨어지는 현실주의자들이 그것을 망상이라고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고 나의 즐거움을 포기할 마음도 없다.


보통 운동은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시작은 호기심이나 재미로 할 수 있지만 꾸준히 지속하는 것은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나는 호흡과 상상으로 몰입하는 분야를 나누어해서 그런지 즐겁게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 편이다.


운동과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 하얗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에휴, 그냥 손에 우산 하나 들고 나올 걸.

가까운 편의점까지 외투의 모자를 둘러쓰고 뛰어가서 우산을 구경했다.


예쁜 우산들을 뒤로하고 흰색 손잡이가 달린 투명한 비닐우산에 자꾸 눈이 갔다. 예전에 비슷한 걸 써 본 적이 있는데 가벼워서 들기도 편하고 접었을 때 부피도 작지만 무엇보다 우산을 펼쳐도 투명한 비닐을 통과해 하늘이 보인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닐우산을 쓰고서 고개를 들어 우산 속의 하늘을 바라본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모양과 소리도 볼수록 신기하다.


예쁜 우산을 보면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참기 힘들지만, 막상 비가 오는 날 거의 매번 선택하는 것은 하늘을 볼 수 있는 투명한 비닐우산이다.


사람들도 비닐우산 같은 사람들이 있다.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소박한 투명함 속에 하늘빛이 드러나는 사람들.

비가 오는 날에 비닐우산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보면 한 번씩 생각나는 고운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