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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언가 Jul 12. 2022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더 이상 메시지를 받고 싶지 않다면 '차단' 버튼을 눌러주세요.'

영채야,

어제 새벽엔 잠이 안 와서 무얼 하지 막막했는데, 5년 전에 나에게 배운 학생한테 연락이 왔어.

'더 이상 메시지를 받고 싶지 않다면 '차단' 버튼을 눌러주세요.'라고 카톡 경고 문구가 뜰 정도로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연락처엔 이름이 지워진 사이었는데 말이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만난 사이인지 자신의 이름이 뭔지 설명해주더라고. 4개월 정도 짧게 가르친 학생이라서 처음엔 가물가물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바로 생각이 나더라. 곱슬머리에 천진난만했던 19살의 모습이.


영화를 보다가 내 생각이 났대. 영화과 대입 실패를 하고 다른 전공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군 제대 후에 지금은 영업 파트 일을 준비한다고 하는군. 영화 학원을 다녔던 시절 덕에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게 된대. 어떤 영화를 보다가 간절히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졌는데 생각나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5년 만에 그것도 새벽 1시에 연락을 줬더군.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라고 물으면서 말이야.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도 묻는데 나는 여전히 같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해줬고, 학생은 취업 준비를 하는 백수라고 소개를 했어. 영채야, 우리가 가끔 단어를 바꾸고 싶다는 말을 했잖아. 그 단어 안에 사람이 갇혀버린다고. '백수'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학생에게 '인생을 여행하는 자유인'이구나라고 말해줬어. 24살이면 이제 막 여행 티켓을 구매한 시절이지 않을까. 


학생 말로는 5년 전 나는 너무 빡세고 정이 없어 보여서 나를 무서워하기도 했대.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선생님은 영화를 너무 사랑하시고, 자신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고 있는 시절에 자기 모습이 무서웠대. 어쩌면 자기가 무섭다고 생각했던 선생님이 지금은 누구보다 열정 있던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고 하더군.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물어서 

"아직도 영화는 재밌고 슬프다. 아이들 가르치는 건 여전히 재밌지만 어렵다."라고 말했어.

학생이 선생님은 여전하다고 좋아하면서 이렇게 말해줬어.

"저는 비록 영화를 하진 못 했지만 기억과 추억 속에 선생님이 남아있다는 것이 좋아요. 나이 50을 먹어도 선생님은 못 잊어요."


참 묘하다 영채야. 실패 속에서 만난 사람이 자기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었다는 게. 

이 학생 덕분에 어제 기분 좋게 잠들었어. 나는 앞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지켜봐 줘.



"인생을 영화처럼 살아. 그러면 계속 영화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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