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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미 Dec 27. 2023

공무원 9년차, 휴직 신청하다.

엄마가 되고 싶어서요. 그 밑에 깔린 수 많은 휴직 이유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심리상담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유튜브를 자주 보다 보니 알고리즘 때문인지 관련 영상이 종종 뜬다.


그중 하나가 우울하다면 절대로 회사를 그만두지 말라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기존의 생활 패턴을 유지해야 덜 우울하다는 취지였다. 병원을 갈 만큼은

아니었지만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9년 차 경찰관, 일은 좋았다.

람들을  도와주는 일은 정말 멋지고 보람찼다.


일하면서 방황하자, 고민을 듣던 남편이

"넌 언제 회사에서 제일 좋아?"라고 물었다.

별 생각을 거치지 않고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내가 한 일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

남편은 생각보다 이타적인 사람이라며 놀렸다.

남편한테는 어린아이처럼 투덜대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나의 의견을 말하고 요구했기 때문에 남편이 의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에 대한 보람보다는 상사, 동료들과 일하면서

마음을 다치는 빈도가 더 많아져

내가 왜 여기에서 일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경찰도 교사나 여타의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누칼협(누가 공무원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이라며 비난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워

이런 고민을 말한 적은 없다.


누가 이런 나의 속마음을 안다면

 "네가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한 거야"이렇게 말할까 봐

무서웠다. 경찰시험 합격부터 9년 차인 지금까지

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이

다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았다.


최대한 감정표현을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숨김이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못할 만큼 폭발하게 된 원인일지 모르겠다. 이런 나의 특성 때문에

누군가는 속을 모르겠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며

남편은 말했다.

" 너도 이제 곧 40살인데 왜 그렇게 회사 가서 쫄아?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니까 너보다 어린애들도

 너 무시한 거야~ 상사도 널 무시한 거고!"


남편의 무시라는 말에  신경이 뾰족하게 곤두섰다.

난 무시받고 싶지 않다. 열심히 일한 만큼 인정받고 싶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유능해 보이는 법과

처세가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상사한테 내가 일한 것을 어필하고 보고를 자주 하면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렇게 하길 중도 포기했다.


저 인간들은 말해봤자 소용없어!라는 판단이 들었다.

눈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 밤새 잠을 못 이루어 안과에 찾아가서 온갖 검사를 했음에도 눈에 이상은 없었고

불면증으로 밤을 새우고 출근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처음 상사에게 난임휴직 의사를 말했을 때 일과 병행

할 수 없겠냐고 한마디 묻더니 지구대 나가서 휴직을 쓰면 안 되겠냐고 했다.

지구대에서 근무했을 때를 생각하면, 늘 인원이 부족해서 힘든 곳이었다. 부서에 휴직자가 없게 하기 위해 지구대로 날 떠밀겠다고?


지구대에서 싫어하지 않겠냐고 한마디 하고는 최대한 부서에 피해 없게 하겠다고 하고 면담을 마무리했다.

인사담당자에게 문의해 보니 휴직하기 위해 지구대로 나가는 것은 규정상 금지이며 난임휴직은 청원휴직으로 진단이 있으면 휴직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성과평가기간을 마치고 가겠다고 했고 남아 있는 기간 동안 최대한 마무리하겠다고 했고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서도 내면에 죄책감이 있었다.


상사가 말한 것처럼  12월 1월 약 두 달간

다음 인사발령 시까지 업무 공백으로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남에게 피해 주는 일


상사 본인도 시험관으로 딸 하나를 얻었으니 너  사정 모르는 것은 아니나 몇 번이나 시험관 했길래 휴직이냐는 뉘앙스로 물었다.  내가 나에게 말했다.

"사실 병행하려면 할 수 있잖아~

깔끔하게 하려면 다음 인사이동 시까지 기다렸다 휴직 쓰면 되잖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수치심,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비난했다.


난 으레 그렇듯이 내가 아니라 타인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잘 생각해 봐~ 팀 하나는 배정해야 할 수 있는 일을

너 한 명한테 무리하게 일을 시켰어. 상사 본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지시해 놓고 담당자로서 그건 안된다고 엄청 말렸는데도 본인 기준으로 성과가

안 나왔다며 책임 전가한 상사였지?

동료들은 어떻고? 너한테 웃으면서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면서 정작 이익의 순간에는 자기들끼리 다 해 먹었잖아. 승진시험 다가와서는 너한테 양해의 말도 없이 상사 부추겨서 본인 업무를 떠넘겼고

그런데도 네가 그 동료들 편의를 봐주기 위해 다음 인사이동까지 기다려줘야 해? 가임기간은 정해져 있는데 네가 뭘 위해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하냐고!!"


그래서 난 개인성과를 바닥으로 깔아주고

(상사가 점수 깔아주고 갈 거니 물었다)

난임휴직을 신청했다. 생각보다 서류도 간단했다.


아이를 낳고 싶은 여성이 있다면 더군다나 공조직에 있다면 이 제도를 활용하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 당신에게 씌우는 피해프레임에 갇히지 말라고 말이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라면서 막상 난임휴직자에게는 조직과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라는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고 싶다.

당신이 병행할 만했음 병행했을 거니까!

그렇게 난 경찰서 1호 난임 휴직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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