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어쩜 이리도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일까. 이 노래의 작사가는 인생을 두 번 살아본 거 아닐까? 하긴, 그 정도의 통찰력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좋아하고 공감했겠지. 나도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 할 만큼 부끄러운 에피소드가 한둘이 아니다.
갓 스무살 대학에 들어갔던 때, 난 부끄럽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조금 무시했다. 서울에서만 살았던 내 머릿속에 지방은 아직도 소 키우고, 밭 가는 곳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몰랐지, 지방에 그렇게 옹골찬 부자들이 많다는 것을. 서울에서 자취하라고 집 구해주고, 생활비 보내주는 것 자체가 엄청 부자란 이야기인데 너무 어리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난 그걸 몰랐다.
한번은 지방에서 온 친구들과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갔던 적이 있다. 대학생이라고 용돈이 드라마틱하게 올라갔던 것도 아닌지라 지갑 사정이 빤했던 난 고르고 고르다 봄 니트 하나를 겨우 샀다. 사고 싶은 건 한가득이었지만 살 수 없었다. 함께 간 그 친구들은 동대문에 처음 온다며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것도 담고 저것도 담았다. 그들을 보며 난 생각했다.
‘뭐야? 왜 이렇게 턱턱 살 수 있어? 지방에서 왔잖아?’
그 날 걔들은 인당 한 30만 원어치는 샀던 듯 하다. 그 당시 스무살인 내게 그건 정말 놀라 나자빠질 액수였다. 난 속으로 너무나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처음 와서 신기하지? 난 자주 와 봐서 살 게 없네.”
이런 막말이나 내뱉었다. 그냥 부러워했으면 그 친구들이 같이 와줘서 고맙다고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줬을 수도 있는데… 배배 꼬였었다.
지금 지방에서 올라왔던 친구들 중 하나는 한강변 신축아파트에 자리를 잡고 아주 잘 살고 있다. 그 때 너희 집은 초가집이냐고 묻지 않은 게 다행이다 정말.
그 후로도 비슷한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나름 혹독하게 20대를 이리 맞고 저리 맞으며 보낸 탓에 난 나 자신에 대한 착각을 완전히 벗어버렸다. 너무너무 완벽하게 자기 객관화가 되어버려서일까. 그 때부터 난 내가 생각해도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우연히 로또 방송을 보게 되면 생각했다.
‘내가 될 리가 없지.’
경품 행사를 봐도 생각했다.
‘내가 될 리가 있나.‘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가 맘에 들면 기쁨과 설렘보다는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날 좋아할리 없지’
그런데 그러니까 오히려 실망보다는 행복이 찾아왔다. 이십대 초중반, 숱하게 날 짓눌렀던 실망의 굴레가 날 기대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해 객관화가 되기 시작하고,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줄다보니 조그마한 성과에도
‘오? 내가?’
이런 생각이 들며 기뻐졌다. 그렇게 난 조그마한 성과들을 찾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예전의 내가 상상했던 엄청난 인생은 아니지만 그저 그런 보통의 일상을 살다 보니 난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쇠똥구리처럼 내게 찾아온 나름의 소소한 만족감들을 열심히 굴리고 또 굴리다 보니 그냥 이렇게 되었다.
난 결혼 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내가 벌어들이던 돈이 아이를 등하원해주는 도우미를 쓰면서 다닐 만큼 유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 득실을 따져 남편과 내린 결론이었다.
집에 눌러앉아 아이를 키우며 경력 단절이 되다 보니, 정말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 되었다. 그래서 웹소설이 뜬다기에 웹소설을 써봤다. 그마저도 아직 자기 객관화가 덜 됐었던지 내가 글을 쓰기만 하면 게시판이 난리나는 줄 알았다. 난 내 글을 올리고 거의 1분 간격으로 게시판 새로고침을 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내 글은 심해 중 심해로 가라앉아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오기가 생겨 잘 나간다는 웹소설들을 읽어봤는데, 영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난 그 작가들처럼 인물 하나하나가 독자의 머릿속에서 살아 숨쉬듯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글을 쓸 수 없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니 저절로 모니터에서 멀어지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결과가 처참했으니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꽁꽁 숨겼다.
그걸 알 턱이 없는 우리 엄마나 시어머니는 가끔 날 보고 말한다.
“멀쩡히 대학까지 나왔는데, 그렇게 집에서 놀고 있을래? 뭐라도 해봐.“
놀고만 있진 않고요…알아요. 나도 무슨 말 하시는지는요. 그런데 뭘 할 지,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이젠 정말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렇다고요. 내 자신에 대한 착각의 필터를 벗어던지고 나니, 내가 진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친구들이나 대학 동기들의 SNS를 보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어쩔 수 없다. SNS는 자기 자랑하라고 만든 곳이니까. 꼬우면 내가 안 들어가고, 안 보면 된다.
브런치에 들어와봤다. 그냥 내 이야기 쓰면 되는 곳이라고 들어서. 아마 나 같이 내 인생의 진로가 뭔지, 내가 뭘 잘 하는지 40대가 돼도 모르는 분들 많지 않을까 해서.
내가 무려 별인 줄 알았다니 꿈이 커도 너무 컸다. 그래도 서른 되기 전에는 내가 별이 아니라 반딧불이인 줄 깨달았으니 큰 성과라고 본다. 일찌감치 내 그릇이 요만한지 깨달았으니, 이렇게 저렇게 앞으로도 요만큼만 채워볼란다.
하지만…그래도 누가 내 글을 좋아해준다면…조금은 더 채워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사실은 실망 안 한 척, 이럴 줄 알았다며 괜찮은 척 해도 마음 속에선 계속 조금 더 채우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