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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억눌린 자아를 찾아 나선 한국 여성

'측천무후'에 숨은 진실 (완)

by 소오생

※ 매거진 [중국 여성의 성性과 사랑]의 제1탄은 '측천무후에 숨은 진실'로, 오늘은 그 이야기의 마무리입니다. 여성이 소재인만큼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하였습니다.


지난 스토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01. 측천무후인가, 무측천인가>
<02. 아버지의 여인이 아들의 여인으로>
<03. 세계 유일의 부부 황제 합장릉>
<04. 벌거벗은 여인, 중국의 일급 국가비밀>

<05. 출생과 죽음의 비밀을 수군수군>
<06. 공주의 죽음, 사건의 진상을 밝혀라>
<07. 무덤 속의 경염대회>
<08. 백마 타고 온 초인>

<09. 천당에서 명당으로>
<10. 무측천의 얼굴을 찾아라>
<11. 모란이 피기까지는>
<12. 남자는 낭만, 여자는 음란?>

<13. 먹을 것과 섹스에 길들여진 인간들>



한참 대화가 무르익을 때였다.

렌렌쥐人人居 식당의 종업원이 다가와 정중히 말한다.


뚜이(↘)부치~ 워(↓)먼 야오(↘) 다(↓)양(↗)러~

对不起。我们要打烊了。

죄송합니다~ 영업시간 끝났습니다~






어디까지 말했더라?



호텔로 돌아와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이더 님 방을 찾았다.

다구茶具가 보였다. 가이더 님은 여행 중에도 다구를 챙기시는 모양이다.

따스한 오룡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서안 비즈니스 호텔의 일반실. 조식 포함, 3~4만 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어디까지 얘기했죠? ^^;;


핸드폰에 정리해놓은 노트를 보여드렸다.


와우, 혜인 쌤~ 언제 이렇게 꼼꼼하게 노트하셨어요?


혜린 쌤이 옆에서 들여다보며 감탄한다. 아유, 민망해라... ^^




[ 1 ] 혜린 쌤의 의문점 :


(1) 무측천에 대해서

백성을 위한 훌륭한 정치 & 역사 조작으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은 인정.

그러나 여전히 잔인하고 음란한 면이 엿보인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2) 무측천의 아들 중종 일가

① 중종의 아내인 위황후의 음란함. 중종은 왜 용인했나?

② 모녀가 공모해서 중종을 독살한 사실. 어떻게 이럴 수가...



[ 2 ] 혜인의 의문점 :


( 1 ) 당나라의 '성 개방'

누가 과거에 '성性'을 '폐쇄'했나? 무측천이 '개방'한 것인가? 누구에게?

그런데 후세 명나라와 조선 시대에는 왜 다시 폐쇄적인 사회가 된 것일까?


( 2 ) 후세의 역사학자들이 무측천을 악녀로 평가한 구체적인 이유는?

( 3 ) 여자가 권력을 잡으면 정말로 문화가 개방적이 되는가? 정말로 역사가 보다 빨리 전진하게 되는가?





[ 3 ] 현재까지 가이더 님의 설명

* 질문: 인류는 임신/출산이 섹스의 결과라는 사실을 언제쯤 깨달았을까?


( 1 ) 생명 기원에 대한 수수께끼(mystery)

인지 혁명 시기(7만 년 ~ 3만 년 전)부터.

② '탄생 신화(myth)'로 해석 시도


( 2 ) 모계 사회 : 어머니의 존재만 알고 아버지의 존재는 모르던 시대

인지 혁명 시기(7만 년 ~ 3만 년 전)부터 정착생활 시기(1만 년~ 4천 년 전)까지

② 모계사회 = 양성 평등 사회 ≠ 여성 우위 사회

③ 동아시아의 모계사회가 더 오래 지속되다 (근거: 한자의 姓, 티베트족)


( 3 ) 지배계급의 출현 (청동시대; 4천 년 전~ 2,500년 전)


모계에서 부계 사회로 :

임신/출산이 섹스의 결과 임을 깨닫다 ⇒ 아버지의 존재를 깨닫다


지배계급 내에 또 다른 계급 존재. 같은 계급 내에서는 남성 우위.

* 피지배계급은 남성, 여성이 똑같이 착취의 대상

∴ [ 남성 ≠ 지배계급 ], [ 여성 ≠ 피지배계급 ]


③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

* 우월한 청동기 무기로 다른 씨족/부족 점령

* 먹을 것과 섹스로 통제

∴ 강력한 지배계급 등장 ⇒ 섹스 통제 ⇒ 심각한 인권 탄압


④ 피지배계급은 '자아'가 없었다.

* 피지배계급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






《열녀전》과 칠거지악



열녀전


혜인 쌤이 아주 자~알 정리해주셨네요. 박수~~!! ^^
자, 그럼 그 뒤를 계속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조금 아까...
강력한 지배계층이 형성되지 않았던 시대는 섹스에 대한 통제가 약해질 수 밖에 없었고,
강력한 지배계층이 들어선 시기에는 통제가 강해져서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죠?
섹스 통제가 인권 탄압과 이어진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지 않나요? ^^

아무튼 그러니까 춘추시대에는 어땠다?
강력한 지배계층이 형성되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섹스에 보다 열린 문화였겠죠.

그런데 한漢나라가 되니까 어땠다?
강력한 지배계층이 들어서서 인권을 탄압했으니까 당연히 폐쇄적이 되었답니다.

지배계층 남성은 물론 무수한 처첩을 거느렸죠.
그런데 남자들만 그랬느냐? 지배계층에 속한 여성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남첩을 거느리지는 않았지만...
무수한 남성들과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한 음행을 즐긴 여성들도 상당히 많았답니다.

제일 대표적인 케이스는...
전한前漢 12대 황제인 성제成帝의 황후였던 조비연趙飛燕의 예를 들 수 있죠.
그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알아보기로 하구요~

아무튼 그녀의 음행을 보다 못한 유향劉向(B.C.77?~B.C.6)이라는 황실의 일원이...
《열녀전列女傳》이라는 책을 써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네요.


아, 《열녀전》! 저도 그 이름 들어봤어요.

가이더님, 근데 한자를 잘 못 쓰셨네요.

《열녀전女傳》이 아니라 《열녀전女傳》이잖아요?

(후후, 껀수 하나 잡았다~ ^^)


이야, 아주 날카로운 지적인데요? 쎼셰~ ^^
근데요, 흔히들 《열녀전烈女傳》으로 알고 있는데요,
여기선 《열녀전列女傳》이 맞습니다. 맞고요~ ^,.^


네에? 《열녀전女傳》이 아니라구요? 왜요? ;;;;


왜긴요~ 원래부터 《열녀전列女傳》이 맞으니까 《열녀전列女傳》이죠. ^^
여기서의 '열녀列女'란 '여러 여성'이란 뜻.
'절개가 굳은 여자'란 뜻의 '열녀烈女'와는 다른 단어죠.

후세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열녀전》은 《列녀전》이 아니라 《烈녀전》.
하지만 이 책은 《列女傳》! 오케이? ^^

이 책은 105명이나 되는 여성들의 삶을 기록해 놓았답니다.
'열녀烈女'를 포함한 '현모'와 '악녀惡女' 등, '여러 여성들(列女)'의 삶이었죠.

그중에선 아마 맹자 어머니의 이야기가 제일 유명할 거예요.
아들 맹가孟軻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 아시죠?
우리나라에서는 그래서 맹자 어머니를 굉장히 훌륭한 어머니 상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중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다시~


오머, 쌤~

맹자 엄마가 왜여? 얼마나 훌륭한 분인데... 중국 사람들 이상하네여~

저 궁금하면 잠을 못자는데... 왜 얘기를 꺼내다 마세여?


하하 혜린 쌤이 궁금해도 할 수 없어요.
혜인 쌤이 맨날 얘기 길게 끈다느니, 툭하면 삼천포로 빠진다느니... 구박하잖아요. ㅋㅋㅋ
그니깐 궁금한 사람은 다음 기회가 있을 때까지 계속 궁금하시구요~ ^^;;
지금은 우선 본론으로! 오케이? ^^


호호, 저도 궁금하긴 한데...

이따가 꼭 여쭤볼 테니깐 그 땐 꼭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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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열녀전》의 주제가 무엇이냐?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일부종사一夫從事예요!!!
근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음~ 한 명의 남편만 섬겨야 한다는 뜻이라고 사전에 나오네여~

아~ 저두 남친이랑 결혼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재밌게 살고 싶어여~


전 별루 좋은 얘기 같지 않아요.

물론 혜린 쌤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될 수만 있으면 너무나 좋겠지만...

살다 보면 아닌 경우도 많잖아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뜰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텐데,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강제로 강요하는 건 쫌 아니지 않나요?


하하,
혜인 쌤이 역시 인생 경험이 좀 더 풍부하시군요?

아무튼 '일부종사一夫從事'란 말을 노골적으로 바꿔 말한다면...
여자는 평생 부모가 정해 준 딱 한 명의 남자하고만 섹스를 해야 한다~ 그 뜻이랍니다.
여기서 이른바 '순결' & '정조' & '절개' & '처녀성'에 대한 미신이 생겨난 거죠.

한 번 시집을 가면 설령 남편이 일찍 죽더라도 재혼은 안 된다!
시집을 가기 전에 정혼남이 죽더라도 여자는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처녀 귀신...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다른 남자와는 절대로 섹스를 하면 안 된다!
그게 이 책의 핵심 주장이에요.


아니 왜여?

듣다 보니 정말 너무 심하네여~


왜냐하면... 여성은 남자 집안의 대를 이어주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거였죠.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면... 가문의 혈통에 남의 피가 섞일 수 있다는 이야기.

부계의 혈통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였죠.
동시에 아직 모계사회의 유풍이 남아있었다는 이야기도 되구요.


여기서 중요한 것 두 가지!

① '일부종사'는 지배계급 내의 여성을 대상으로 요구한 것이라는 사실.
피지배계급의 여성에겐 '정조'를 강요하지 않았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피지배계급은 가축과 같은 소유물로 인식했으니까요.
그녀들의 성性은... 지배계급의 소유물로 착취의 대상이었니까, 아예 논외였던 거죠.

② 그럼 지배계급 내의 남성도 평생 딱 한 명의 여자하고만 섹스를 해야 한다는 얘기냐?
그건 또 절대 아니었죠.

그러므로 유향의 '일부종사' 패러다임은
지배계급 내의 여성에게서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을 뺏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그 시도는 그 당시에는 별로 말발이 먹히지 않았어요. ^^
지배계급 내의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완전히 뺏긴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거든요.


쌤, 쌤~

성적 자기결정권이 모예여? 어디서 들어본 말 같기도 하고... ^^;;;


음... 그 얘기를 하려면 또 한참 시간이 걸리니까 지금은 우선 간단하게. 오케이?

타인의 강요나 지배를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그리고 자기 책임 하에, 상대방을 선택하여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답니다.




칠거지악


가이더 님, 그럼 '칠거지악七去之惡'도 《열녀전》에서 나온 말인가요?


오호, 굿굿~ 굿퀘스천!
혜인 쌤 학습 능력이 일취월장에 괄목상대로군요?
깜박 잊고 얘기 안 할 뻔 했네요. ^^

그것 역시 지배계급 내의 여성에게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뺏으려는 시도였죠.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열녀전》보다 조금 더 앞선 시기의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랍니다.
한나라 초기의 유학자들이 만든 책이죠.


※ 여기서 잠깐!
'유가儒家'와 '유교儒敎'는 크게 다르다.

▶ '유가'는 번문욕례繁文縟禮의 형식주의를 타파한 공자의 인본주의 사상이다.

▷ '유교'는 한나라 초기에 공자의 제자들이 유가 사상을 입맛대로 변형시키며 출발한 집단이다. 권력과 결탁하여 황제를 '하늘의 아들(天子)'로 떠받들며, 공자 이전보다 더 심한 형식주의의 길을 걸었다.

▷ 그들은 공자를 교주로 받들었지만 실질적인 교주는 황제였다. 가톨릭 조직에 비유한다면 황제는 교황, 조정은 바티칸, 신하들은 신부였다. 그러자 지배계급의 남자들은 신이 나서, 어허! 임금님이 천자이듯, 지아비는 하늘이거늘! 집안에서 ‘작은 황제’로 군림하려 했다. 이른바 '가부장제'의 탄생이다. 인본주의를 외친 공자의 유가 사상이 엉뚱하게 '지배계급의 남성'을 위한 '유교'로 전락한 것이다.


근데, 쌤~ '칠거지악'이 정확하게 무슨 뜻이예여?


여기서 '거去'는 '내쫓는다'는 뜻.
부인이 아래의 일곱 가지 '악행'을 저지르면,
남편이 일방적으로 부인을 내쫓아도 된다는 주장이랍니다.

① 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
②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
③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것
④ 질투하는 것
⑤ 나병이나 간질 등의 병을 앓는 것
⑥ 잔소리가 심한 것
⑦ 훔치는 것


아휴... 알고 있었지만 다시 들으니 또 화가 나네요.

아니, 이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녜요!

남편이 내키기만 하면 핑계를 대고 얼마든지 아내를 내쫓을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워워~~
혜인 쌤~ 그렇긴 한데요~
지나친 흥분은 몸에 해롭답니다~ ^^

'칠거지악'이나 '일부종사'처럼 지배계급 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려는 시도는...
비록 2,000년 전 한나라 때 등장하긴 했지만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별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으니까...
흥분을 하더라도 그때 가서 하시면 어떨까요? ㅋㅋㅋ

예컨대 위진남북조 시대에 들어섰을 때에도 지배계급의 여성이 여러 남성과 섹스를 즐긴 사례는 비일비재했죠. '면수 面首'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산음공주 유초옥劉楚玉의 이야기, 기억하시죠?
<08. 백마 타고 온 초인> 참고.

이혼과 재가再嫁도 보편적인 일이었답니다. 여성이 몇 번씩 결혼해도 사회적으로 그다지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았어요. 다시 말해서, 섹스의 경험이 있는 여성과 없는 여성을 구별하지도 않았고, 일부종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차별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랍니다.


우와, 전혀 생각 밖이네여?

오히려 요새 우리나라보다도 더 개방적인 것 아녀여?


정말 그렇네요~

우리나라도 고려 시대까지는 괜찮았다는데...

조선 시대부터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요?







여성 지배계급과 불교 배척운동



하하~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당나라에 들어와 드디어 여성 황제 무측천이 등장했죠. 아까 혜린 쌤이... 무측천이 정치는 잘 했지만 잔인하고 음란한 면도 있지 않았느냐, 그런 질문을 했죠? 그 얘기를 해볼까요?


여성 지배계급의 등장


( 1 ) 무측천의 잔인함/음란함에 대한 평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게... 무측천 역시 지배계급에 속한 여성이라는 거예요.
그것도 황제라는 최상위 지배계급이었죠.

옛날 계급사회에서는 피지배계급에 속한 사람의 목숨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었답니다.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잔인했던 거죠. 그게 그들 지배계급의 문화였답니다.

특히 건국 초기에는 거의 모든 왕조가 황제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적들을 잔인하게 숙청했죠. 당나라의 태종 이세민과 현종 이융기도 잔인하게 혈육들을 죽이고 황제가 되었지만, 백성을 위해 훌륭한 정치를 펼쳤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는 역사가들은 거의 없답니다.

그런데 무측천은 어땠죠? 지배계급에게는 잔인했지만 피지배계급을 위해서는 훌륭한 정치를 했잖아요? 그런데도 역사가들은 그녀의 잔인성만을 부각시켜 비난했어요. 형평성에 맞지 않는 거죠.

만약 무측천이 냉엄하게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십중팔구 정적들에 의해서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 거예요. 그런 면을 고려하면... 그녀의 잔인함은 그 당시 시대적인 한계 아니었을까요?

'음란함' 역시 지배계급의 또 다른 보편적 문화현상이었죠. 다만 지배계급 내의 남성 우위였던 음란함이 무측천 때는 완전히 여성 우위로 변화했기 때문에 그 음란함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 아닐까요?

결국 지배계급 내의 여성에게서 '성적 자기 결정권'을 박탈하려는 지배계급 남성들의 시도는, 무측천의 시대를 만나면서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야기~

어때요, 혜린 쌤~ 동의 하시나요?


넹~

헤헤~ 제가 언젠 쌤 말에 동의 안한 적 있나여?

그냥 궁금하다는 이야기였져. 지금은 다 이해했어여~ ㅋㅋ


혜린 쌤의 두 번째 질문도 설명해주셔야죠.

무측천의 아들 중종은 왜 아내의 음란한 행위를 목도하면서도 실실 웃어넘겼나요?

모녀가 공모해서 남편이며 친아빠를 독살한 사실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 것도 지배계급의 보편적 문화 현상인가요?


하하, 그럴 리가요. ^^;;;
그래서 중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못난 임금으로 손꼽힌답니다.

무측천은 자기 아들 중종을 황제에 앉히고 나서 왜 금방 내쫓았을까요? 아들의 위인됨이 황제라는 지위를 도저히 감당할 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걸 철저히 깨달았기 때문 아닐까요? 만약 중종의 됨됨이가 조금 더 쓰임직했다면, 저는 무측천이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여성이 예쁘고 귀엽더라도... 무측천처럼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해야 되겠구나~ 그런 교훈을 새삼 가슴에 새기게 되네요. 흠흠.


호호호~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가이더 님~ 혜린 쌤이 잘못한 게 있어도 야단도 안 치고... 중종처럼 허허허 웃어 넘기시죠? ㅋㅋㅋ


오머머~ 저 보기엔 혜인 쌤을 더 예뻐하시는 것 같은 데여?

지난 번에 밤 늦게까지 안 돌아오셨을 때도 엄청 걱정하시다가...

첨 보는 남정네랑 같이 왔는데도 야단은커녕 상금이라며 맛난 음식만 잔뜩 사주시고... ㅋㅋㅋ


어허~ 워워~~ 스톱, 스톱!
얘기가 어째 산으로 올라가시나? ^^;;
자, 이제 혜인 쌤의 궁금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요?





( 2 ) 무측천의 권력 장악이 사회에 미친 영향


한나라 때 '칠거지악'과 '일부종사' 패러다임은 오랜 세월 동안 그다지 커다란 영향을 주지는 못했어요. 더구나 여성 황제 무측천의 등장으로, 지배계급 내의 여성에게서 '성적 자기 결정권'을 박탈하려는 지배계급 남성들의 시도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답니다.

그 의미를 두 가지로 정리해볼까요?

① 당나라 때의 '성 개방' 풍조는 역사 흐름의 발전 과정 상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② 특히 여성의 성 주도권 장악은 역사 발전의 중대한 모멘트가 되었다.


어머머~ 정말요? 여성의 주도권 장악이 역사 발전의 모멘트였다구요?

오머머~ 정말여? 그럼 그거 저도 한 번 장악해보구 싶네여~ ㅋㅋㅋ


여성 황제의 등장은 지배계급 내의 구도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답니다.

인류 역사에 지배계급이 출현한 이후로 최고 권력자는 늘 남성의 몫이었죠.
여성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른 것은 무측천이 최초였습니다.

무측천은 자신의 권력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지배계급을 원했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과거제도를 시행해서 인재를 발탁했답니다.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단숨에 거의 최상위층의 지배계급에 편입될 수 있었던 거죠.
그 이전에는 전혀 불가능했던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거예요.

그렇게 지배계급 내의 구조가 바뀌는 것을 보고... 피지배계급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 세상이 뒤바뀔 수도 있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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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오랜 세월동안 피지배계층은 가축이나 다름없었답니다. 개나 돼지처럼 때리면 맞고, 전쟁터에 무조건 끌려 나가 비참하게 죽어가야만 했죠. 그러면서도 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도 못했답니다. 이미 공고하게 형성된 사회구조 속에서 지배계급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습관화된 것이죠.

그러나 이 시대에 이르러 지배계급의 구조가 바뀌는 것을 보고
피지배계급인 일반 백성들도 점차 “왜?”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답니다.

"왜 사회는 이렇게 불평등한 거지?"
"왜 나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건데?"
"이런 더러운 세상... 혹시 바꿀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점점 '자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겁니다.
고대가 끝나고 중세 시대가 시작된 신호탄이었죠.
여성의 권력 장악은 이런 식으로 역사를 전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답니다.






불교 배척 운동


무측천은 또 불교를 적극 장려하여 백성들의 정신적인 의지처로 삼게 해주었죠.
당나라 백성, 나아가 동아시아 사람들은 그때부터 '서방정토/극락/천당'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답니다.

특히 고통에 마비된 채 아무런 희망도 없이 질곡의 삶을 살아가야 했던 피지배계급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일심일념으로 외치기만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다는 불교의 '복음'을 듣고 춤을 추며 환호했죠.

우리나라 에밀레종에 새겨진 '비천飛天'의 모습!
그게 바로 그 복음을 듣고 환호하며 춤을 추는 민중의 모습을 이미지화한 거랍니다.

밟으면 꿈틀대지도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지렁이 같은 삶에... 희망의 불빛이 켜진 거라고나 할까요?
'섹스'와 함께 '불교' 역시 피지배계급이 '자아'에 눈을 뜨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죠.


(좌) 돈황석굴의 비천 飛天. (우) 신라 성덕대왕 신종神鐘(에밀레종)에 새겨진 비천. 이들은 왜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일까? 극락 정토인 천당이 있고, 관세음보살만 믿으면 그 천당에 갈 수 있다는 정토종의 복음을 접하고 환호작약하는 모습이다. 당나라 백성들의 마음에 그 희망의 씨를 심어준 존재가 바로 무측천이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답니다.

당나라 조정은 스님들에게 부역과 세금을 면해주는 특혜를 주었는데요, 안록산의 난이 끝나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사람들이 너도 나도 산속에 들어가 스님이 되어버린 거죠. 그러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나라 경제는 완전히 파탄이 나고, 당나라는 멸망의 길을 향해 달려갔답니다.

그러자 중당 시대에 한유韓愈(768~824)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나서서 불교 배척 운동을 펼쳤어요.

서방세계 이민족의 종교인 불교를 배척하자~~!!!
'우리 중국'에도 정신적 의지처로 삼을 수 있는 게 있다~~!
공자 맹자의 '유가儒家의 정신'을 회복하여 민족 정기를 되살리자~~!

이를 테면 '우리 것'이 아닌 불교를 배척하고 '우리 것'인 유가의 정신을 되살려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우리 것 되살리기 운동'이었죠.

흔히 중국 사람들은 '중국교中國敎'를 믿는 '중국교도'라는 말이 있죠?
그게 바로 한유의 불교 배척 운동에서 시작된 거랍니다.

아 참, 이때 왜 한유가 '유가의 정신'을 회복하자고 했느냐 하면... 그 당시 '유학儒學'은 종묘에서 제사 지낼 때의 절차나 따지며, 최고 권력과 결탁한 '지배계급의 남성'을 위한 집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죠. 이 얘기, 아까 했나?

암튼... 이해가 되셨죠? ^^


그때의 '유학'이라는 게 요새 우리나라 '유교'랑 비슷한 것 같네요.

저의 시댁에서도 제사를 지내는데, 가서 이것 저것 법도에 맞게 준비해야 하는데...

일년에 몇 번을 가야 하는지... 아... 정말 생각만 해도 너무 우울해져요. ㅠㅠ


'유학儒學'의 본질은 그런 허례허식의 형식에 있는 게 아니다!
유가의 정신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것!
그것으로 불교 대신 정신적 의지처로 삼자!

한유는 이렇게 주장하며 전국시대의 이름 없던 맹자孟子의 존재를 크게 부각시켰답니다.
맹자의 책이 훗날 주자朱子에게 픽업되어 '사서四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한유 덕분이죠.






통제의 시작과 타락한 사회



송명 이학


한유는 왜 그렇게 맹자를 좋아했대여?

글구... 공자나 맹자나 비슷하지 않나여?


음... 공자와 맹자의 사상은 비슷하면서도 강조한 측면이 조금 달랐답니다.
공자는 학문의 현실적 실용성을 보다 중시했구요,
맹자는 '인仁, 의義, 도道, 덕德' 등 인간 내면세계의 요소에 보다 관심을 가졌는데...
바로 그 점이 한유가 요구했던 시대 정신과 맞아 떨어진 거죠.

아무튼 한유의 불교 배척 운동은
'유학儒學'의 흐름을 '형식'에서 '내면 탐구'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인간의 내면세계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유학(新儒學)'을 '이학理學' 또는 '성리학'이라고도 하는데요, 남송 시대에 주희朱熹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정립되었답니다. 이어서 명나라 때 더욱 발전했기 때문에 후세에서는 흔히 '송명 이학'이라고 하죠.


아... 왠지 설명만 들어도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 같네여~

하~~ 하품 나오네여~

갑자기 재미 하나도 없어지고 졸려여~



그렇죠?
하하, 사실은 설명하는 나도 재미 없답니다. ^^;;
조금 빨리 넘어가 볼까요?

아무튼 무측천을 맹렬히 비난했던 역사학자들은
대부분 '새로운 유학'이 일어나고 있었던 바로 그 송나라 때 사람이라는 사실~!

이학자理學者들은 새롭게 정립한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봤답니다.
즉, 과거와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도덕과 윤리가 탄생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 영향을 받은 역사학자들도 새로운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 무측천을 매도하고 비난한 거죠.
심지어 팩트마저 지레 잘못 판단해서 결과적으로 역사를 조작하는 상황을 빚은 거구요.


아... 후세 역사학자들이 무측천을 왜 그렇게 악녀 취급을 했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가네여~

그럼 우리가 무측천을 음란하다고 여기는 것도 그들의 도덕과 윤리 영향을 받은 탓이겠네요?


빙고!
그렇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도덕'과 '윤리'도 상당 부분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자, 이쯤해서 다시 한번 정리해볼까요?
'도덕'과 '윤리'는 누가 만든다구요? 기득권, 즉 지배계급이 만듭니다.
물론 지배계급인 자신들은 '도덕'과 '윤리'의 적용 대상이 아니죠.

윤석열 검찰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실 거예요.
조선일보 장자연 사건이나 법무차관 김학의 사건을 생각해보세요.
도덕? 윤리? 그딴 건 개돼지, 니네들이나 지키라구! 그랬잖아요~ 너무 화가 나지 않나요?

그래서 도덕과 윤리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계속 바뀝니다.
또 서로 다른 자연 및 인문환경에 속한 서로 다른 문화집단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는 거구요.

우리는 흔히 완전히 다른 문화집단의 도덕과 윤리를 접할 때, '문화 충격 culture shock'을 받게 된답니다.
하지만 그때, 어떤 문화집단의 가치관이 더 옳은 것인지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다양한 문화집단을 찾아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해 볼 필요가 생기는 거예요.
특히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지닌 문화집단을 찾아가보는 게 좋습니다.

예컨대...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지녔던 무측천 시대의 고대문화, 또는 오늘날 전세계의 주류문화인 서구물질문명과 정반대의 가치관을 지닌 티베트문화를 깊이 들여다보라 권하고 싶네요.

세상을 보다 멀리 보다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은 그런 과정에서 키워지는 것 아닐까요?
'자아'는 그렇게 찾아나가는 거라고 하더군요. 문화인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죠.


혜인 생각 :

가이더 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른다.
무측천, 티베트, 성性, 불교, 문화인류학, 글쓰기...
자아를 찾아 떠나는 나의 여정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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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섹스 통제


명나라 이야기를 안할 수 없습니다.
나라 이름은 '밝을 명明', 그러나 역사상 가장 인권을 탄압했던 그야말로 '암흑의 시기'였죠.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어요.

①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열등감 :
주원장은 원래 거지였는데요, 그 열등감 때문에 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후,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답니다. 스승과 아내를 포함하여 약 2만 명을 죽였다네요.

그후로도 주원장은 신하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았답니다. 모든 정치는 베일 속에서 환관을 통한 비대면으로 이루어졌구요, 수많은 비밀경찰을 풀어서 그 모든 것을 감시했답니다. 역사상 가장 지독한 암흑과 공포의 시대가 열린 거죠. ㅠㅜ


② 피지배계급 통제 :
당나라 때... 피지배계급은 무측천의 영향으로 조금씩 '자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했죠? 근데 그건 그만큼 피지배계급을 통제하기가 힘들어졌다는 뜻도 되는 거죠. 지배계급은 그만큼 무측천이 더 미웠겠죠?

그런데 때마침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이학이 등장하자, 얼씨구나 이를 무기로 피지배계급을 통제하기 시작한 거죠. 무엇을 통제했을까요? 섹스! 가장 강력한 도구, 섹스였죠. 강아지를 주인의 뜻대로 길들이기 위해 중성화수술을 하듯이 말이죠.


헉... 우리집 강아지 해피도 얼마 전에 중성화수술 했는뎅...

그러고 보니 저 편하자고 해피한텐 물어보지도 않고 수술한 거네여...

해피도 짝짓기도 하고 싶고 새끼도 키우고 싶었을 텐뎅... 흑... ㅜㅠ


세상에...

가르쳐 준 스승님도, 조강지처도 다 죽이고, 그리고 또 2만 명이나 더 죽였다니...

내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는 놈들은 다 죽이겠다? 완전 호러 영화네요. ㅠㅜ



그래서 명나라는 무려 일천사백 년 전에 잠시 등장했다가 거의 무덤 속에 들어가 있던 '칠거지악' & '일부종사' 패러다임을 다시 꺼집어냈답니다. 지배계급에 속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완전히 박탈한 거죠.

과거와는 달리... 그 시도는 이번엔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었답니다.
왜냐구요? 아, 글쎄... 지독한 암흑과 공포의 시대였다니까요?

그러자 그 여파로 심각한 부작용이 터지기 시작했답니다.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 1 ) 인권의 탄압


'칠거지악'과 '일부종사' 패러다임이 부활하자 '순결/정조/절개'에 대한 미신이 생겨났죠.
원래 그런 단어들은 정신적 영역의 추상명사 아니겠어요?
그런데 명나라 때부터는 '여인의 처녀성'을 뜻하는 육체적 영역의 개념으로 전락하고 말았답니다.

이른바 '열녀烈女'가 뭐죠?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딱 한 명의 남자하고만 섹스를 하겠다는 여자.
그런 '매운 여성(烈女)'을 두고 하는 말이죠. 얼핏 들으면 바람직한 말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래의 사례라면 어떨까요?

▷ 남편이 일찍 죽어도 평생 재가하지 않는 여자.
▶ 혼전에 정혼남이 죽어서 '처녀'의 몸인데도 그 집에 시집을 가서 평생 수절하는 여자.
▷ 강제로 '순결'을 잃으면 자결하여 수치를 씻는 여자.

뒤로 갈수록 점점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나요?
물론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할 수도 있겠죠. 그것도 슬픈 이야기겠지만...
만약 강제로 강요 당한다면? 그건 심각한 인권 유린 아니겠어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부턴 명나라의 '도덕'과 '윤리'를 그대로 수입해서 사용했으니까요.
두 분은 혹시 '화냥년'이란 말을 들어봤나요?


아, 무슨 드라마에서 들은 것 같은데... 남자 밝히는 여자한테 하는 욕 아녜여?

병자호란 때 청나라 여진족에게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을 두고 욕한 거죠?


두 분 다 정확하게 알고 계시네요.
'화냥'은 '고향으로 돌아오다'라는 뜻의 한자 단어 '환향還鄕'에서 나온 말이래요.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조선 여성들을 비난한 말이죠.

몸이 더럽혀졌으면 자결을 할 일이지, 왜 살아서 돌아왔느냐는 이야기.
나라가 힘이 없어서 지켜주지 못했으니 지배계급이 석고대죄를 해도 부족할 판인데,
도리어 '남자를 밝히는 여자'로 뒤집어 씌우고 핍박을 하다니, 정말 기막힌 일이죠.


에혀... 그 여성들 생각하니깐... 정말 너무 불쌍해여~ ㅠㅠ

그럼 조선이 '성'에 대해 폐쇄적이 된 게 '송명 이학'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건가요?


그렇습니다.
신라나 고려는 '불교'를 나라의 기틀로 삼았지만, 조선은 '유교'를 국교國敎로 삼았거든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 당시 명나라에서 들여온 '유교'가 바로 '신유학'이었죠.
암흑시기 명나라 때의 그 지독한 '도덕'과 '윤리'를 그대로 우리의 것으로 삼았던 거랍니다.

게다가 퇴계나 율곡과 같이 위대한 학자가 나와 '새로운 유학'을 '성리학'으로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본토인 중국보다도 더 수준 높은 연구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학문적으로는 큰 성취였지만, 그 영향으로 탄생한 '도덕/윤리'와 실제 '현실'과의 간극은... 심각한 인권 유린으로 이어졌던 거죠.


어휴... 조선 시대 여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여... ㅜㅜ

근데 그 시대의 '도덕/윤리'가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 2 ) 경직된 사회


지배계급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 당한 일은...
그녀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답니다.

지배계급 남성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비록 여전히 처첩을 거느릴 수 있기는 했지만, 무측천 이전 시대처럼 그렇게 '음란함'을 마음껏 즐기기는 쉽지 않았죠. 겉으로는 '성'에 초연한 '도덕 군자'처럼 위선적 행동을 해야 했답니다.

피지배계급도 마찬가지였어요. 예전에는 칠거지악이나 일부종사는 피지배계급 여성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워낙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이다 보니 그녀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족쇄가 채워진 거죠. 그리고 덩달아 피지배계급 남성들에게도 족쇄가 채워진 거구요.

'성'을 입에 올리면 안 되는 사회. 그런 경직된 사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 그런 말이 공연히 나왔을까요?
'성'이 지하로 들어간 경직된 사회는 도리어 타락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답니다.


아, 그래서 지난 번에 무측천 시대가 오히려 더 건강한 사회일 수 있다고 하신 거군요?

전 예전에 방에서 쌤 인터넷강의를 듣고 있는데... '성'이니 '섹스'니 이런 단어가 나와서 괜히 민망했걸랑여? 근데 그때 갑자기 엄마가 방에 들어오셔서 깜짝 놀라 컴퓨터화면을 확~ 꺼버렸지 모예여~ ㅋㅋㅋ


어머머~ 그래서요? 엄마가 뭐라고 안 그러셨어요?

헤헤헤~ 첨엔 놀라시더니, 나중엔 쌤 인강을 같이 들으면서 너무 좋아하셨어여~ 심지어는... 진작 이런 이야길 들었어야 하는데... 하시면서, 눈매까지 촉촉해지시더라니깐여?




타락한 사회


저도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네요.
예전에 학생들 여름방학 숙제로 중국 4대 기서奇書 중의 하나를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줬었죠.


'기서'? '기서'가 모예여?


'기서奇書'는 '기이한 책'이라는 뜻.
중국 4대 기서奇書는 명나라 때 나온《삼국지》《수호지》《서유기》《금병매》인데요,
한 남학생이 그중 《금병매》를 읽고서 독후감을 썼는데, 뭐라고 했느냐~
쌤~ 전 쭝국넘들이 이렇게 드러운 넘들인지 몰랐어여. 중문과 괜히 왔어여~ 그러잖아요, 글쎄...


호호호~~ 귀여워라.

크크크~~ 저두 읽구 싶어지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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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은 형이상학 명제로 인간의 정신세계만 지나치게 강조하며 인간 본능의 당위성을 간과했죠. 그 결과 새로운 '도덕'과 '윤리'가 탄생했고, 명나라와 조선은 그 '도덕 윤리'로 자아가 싹트기 시작한 피지배계급을 통제하며 나라를 다스린 거랍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지하로 들어간 '성'... 어두운 곳에서 온갖 추악하고 음란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했죠.

《금병매》는 그 명나라의 어두운 사회상을 숨김없이 폭로한 소설이랍니다. 소설에서 밝히고 있는 시간 무대는 북송 시대 휘종 연간이지만... 사실은 명나라 때의 사회상을 그린 거죠.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그 반동은 더욱 크게 튀어오르게 마련. 그 당시 무수한 금서禁書의 탄생이 그 증거 중의 하나일 거예요.


조선에도 《금병매》같은 금서가 출현했나요?


음... 글쎄요? 그건 저두 잘 모르겠네요~ ^^;;

《정감록》처럼 역성易姓 혁명을 예고한 도참 서적이나, 조선 말의 천주교 서적이 금서였던 건 알겠는데... 조선에도 《금병매》처럼 야한 책이 출현해서 금서로 정해졌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한 것 같군요.

이런 책은 천상 선비들이 써야 하는데...
아마 조선 선비들이 명나라 사대부보다 더 점잖았나 보죠? ^^;;


그만큼 우리 선비 님들께서 더 위선적이었다는 얘기 아닐까요? ^^;;

가이더 님이 한 번 써보시면 어떠세요?

여성 심리도 잘 이해하시는 것 같고... 무엇보다 진솔하시잖아여~ ㅋㅋ


제 생각엔 혜인 쌤이 더 잘 쓰실 것 같은 데여?

여자가 여자 마음 더 잘 알지 않겠어여? 더구나 등단까지 하신 정식 작가시잖아여~

혜인 쌤이 빨간 책 쓰시면 정말 대박칠 것 같아여~ ^^


네에? 쿨럭... 갑자기 왠 기침이... ^^;;

가이더님, 평소부터 정말 궁금한 게 있어요.


명나라나 조선이나, 똑같은 '도덕과 윤리'로 '여성과 섹스'를 통제했는데...

오늘날 중국이랑 우리나라는 왜 여성의 사회적 파워가 다를까요? 국민성 차이일까요?





현대 한국과 중국의 여성들



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여성의 지위'와 '섹스'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인식은 중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변화해왔죠. 중국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고, 역사 발전의 자연스러운 원리에 의해 시대적으로 동일하게 작용된 부분도 있었겠죠?


한국 여성과 민주주의


하지만 오늘날에는 상당히 다르답니다.

현대 한국 사회는 조선 시대에 형성된 폐쇄적 분위기가 아직도 상당 부분 그대로 이어지면서, 젊은 여성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성 문화'와 충돌하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쵸?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요?

'여성의 지위'와 '성의 개방' 문제는 단순한 '여성 문제' & '섹스'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이 논제는 곧 바로 '인권'과 연결되고, 따라서 정치 제도 및 정치 수준과 직결되는 문제랍니다.

'대한민국'은 분명히 '민주주의'를 채택했는데, 아직도 '사회 지도층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무리들은 여전히 파시즘에 젖어있는 '왕당파 지배계급'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민주 정권이 몇 번 들어서면서... 과거보다 여성의 지위도 조금씩 높아지고 사회적 활동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하죠?

그와 동시에... 해결해야 할 새로운 숙제들도 많습니다.
예컨대 문재인 정권 때 등장한 '미투 운동'의 부작용 같은 것.

여성의 목소리를 존중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영향으로 한참 혈기 왕성한 20대 남성들이 욕망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자, 비뚤어진 심리로 극우 성향을 보이는 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화를 이뤄내어 꼭 해결해줘야 할 새로운 숙제 같군요.


와... '섹스' 문제가 '민주주의'와 연결되다니... 꿈에도 생각 못했어여~

와... 저는 20대 남성들의 극우 성향과 연결해서 생각한다는 게 너무 놀라워요...



공산당과 중국 여성


중국은 어떤 상황일까요?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여성 파워가 훨씬 막강하답니다. 예를 들어, 2024년 중국 5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34%나 된다고 하네요. (바이두 AI) 같은 해 한국 5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7.3%인 것에 비해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이고 있죠. (구글 AI)

이런 현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전통적 가치관을 완전히 부정해버린 공산당의 등장과 문화대혁명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1966년부터 마오저뚱이 죽을 때까지 약 10년 정도 지속되었던 문화대혁명은, 다른 모든 측면에서는 아주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적어도 여성의 지위 향상 면에 있어서는 엄청난 공헌을 했죠.

비록 생산성과 효율성은 크게 떨어졌지만...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직업을 배분해 준 덕택에, 여성들도 거의 대부분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게 된 거죠. 이렇게 모든 여성이 일거에 가정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자, 엄청난 인식의 혁명이 일어났답니다. 그게 양성 평등의 초석이 된 거죠.

음... 두 분은 여성이 직장생활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엇보다 부모님한테서 독립하는 게 제일 큰 의미가 있져~ 결혼 자금도 조금씩 모으고여~

아무래도 남편 수입만 가지고는 어려우니까...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게 제일 크지 않을까요?


1980~1990년대 중국 여성들에게 직장 생활이란 또다른 의미가 있었답니다.

첫째, 부엌에서의 해방. 직장 생활이 바쁘니까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가정이 아침식사를 사서 먹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여성도 점심식사를 직장에서 해결했죠. 저녁도 직장 관계로 외식할 경우가 많았구요. 일주일에 집에서 저녁식사를 해먹는 경우가 서너 번이나 될까요? 그것도 남편과 반반씩 하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둘째, 육아에서의 해방. 직장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보육원 또는 유치원에 맡기지 않을 수 없겠죠? 비록 시설과 환경은 열악했지만... 그래도 국가가 육아와 교육을 책임져 주었답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독립하여 국가가 지정해준 기숙사에서 단체 생활을 했죠.


우와~ 너무 부러워요.

전 답사여행에 참가하느라고 겨우 며칠 부엌에서 해방 되었는데도 이렇게 좋은데...

근데 아이들을 계속 기숙사에 넣어놓고 지내는 건... 쫌 불안할 것 같네요.


저두 너무 부러워여~

결혼해서 아기 낳으면 물론 귀엽긴 하지만... 교육 시킬 생각하니 엄두가 안나여~

결혼하고 싶지 않아여~ 결혼해도 애 낳기가 무서울 것 같아여~



하하~ 그렇다고 너무 부러워할 일은 아니랍니다. 그 당시 인민의 만족도가 높았다면 중국 공산당이 왜 자본주의 노선을 걸었겠어요~ 분배를 하려면 일단 성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어요? 모두가 공평하게 못산다면 모든 사람들의 불만을 살 테니까요.

아무튼,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셋째, 혼외 정사의 기회가 많아졌답니다. 직장에서 남성 동료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죠. 요새 우리도 그렇다면서요? 오피스 와이프니 어쩌니...

1990년에 제가 대한민국 교수 대표단의 일원으로 처음 중국 대륙을 왔을 때 얘긴데요, 북경에서 우리 단체가 탄 버스 운전 기사랑 친해져서 2, 3일 간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누었거든요?



▷ 그 친구 : 울리 쭝국 쌀람, 집에 가면 배우자 한 명, 직장 가면 애인 한 명 씩 있다해~

▶ 소오생 : 헉~ 그럼 너두 있냐?


▷ 그 친구 : 아 그럼! 나도 쭝국 쌀람이다해~ 땅연히 있다해~

▶ 소오생 : 그럼 니 마누라도 중국 사람이니까 있겠네?

▷ 그 친구 : 그러켔찌?


▶ 소오생 : 오~~ 쿨하네? 애인이랑은 어디서 만나? 호텔? 돈 많이 들겠다?

▷ 그 친구 : 여자랑 여관 갈라면 결혼증명서 있어야 한다해~ 그래서 낮에 집에 가서 재미본다해~


▶ 소오생 : 집에서? 그러다가 마누라가 자기 애인이랑 거시기 하는데 부딪치면 어떡해?

▷ 그 친구 : 그럴 리 없다해~ 남자 집에 가는 게 불문율이다해~




호호호~ 너무 웃겨여~ 중국 말로 대화하신 거죠?

그 당시 중국 사회가 정말 그랬어요? 어쩐지... 웃프네요. ㅠㅜ



1993년에 지아핑와(賈平凹)라는 작가가 쓴 《폐허의 도시(廢都)》라는 소설이 있는 데요,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서안이라는 도시를 무대로 벌어지는 당시 중국 사회의 모습을 아주아주 리얼하게 그려냈답니다. 엄청나게 적나라한 섹스 묘사와 풍자로 결국 판금되었다가 2008년이 되어서야 풀렸죠. 현대판 《금병매》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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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노선을 걸으면서 중국 사회의 성 풍조는 점차 우리나라와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돈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그와는 별개로... 중국 사회의 여성 파워는 점점 더 막강해지고 있답니다. 10여 년 간의 혹독한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뀐 거죠. 일반적으로 말해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청렴하고 근면하다는 건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어요. 현대 중국이 초 고속 경제성장으로 미국과 맞먹는 국력을 갖추게 된 바탕에는 여성 파워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랍니다.


어휴... 우리 사회도 이런 건 정말 배워야 할 것 같아여~

우리나라는 남혐 여혐, 남녀 간의 대립이 너무 심한 것 같아여~

젊은 남자애들이 초식남인 줄로만 알았는데... 언뜻언뜻 일베 행동을 보일 때는 정말 무서워여~


후유... 전 저 자신부터 깨우치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곳에 와서 무측천을 만나며, 성性과 섹스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좀 민망할 때가 많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들 삶의 모든 것과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었네요.



그렇죠?
'성性'은 인간 삶의 가장 원초적인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서구 이원론에서는 '성性'을 'sex'와 'gender'로 구별하여 이야기하는데...
서구 페미니스트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든 것이 투쟁과 대립 논리라서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그에 반해, 동아시아 일원론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죠.
동아시아의 '성性'은 사랑이며 조화입니다.
잠시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의 일부를 퍼와서 보여드릴게요?



'성性’이라는 한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 忄+ 生 ]이다.

왼쪽 ‘심방변(忄)'은 '마음 심心'이다. [ 忄= 心 ] '성性’은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글자라는 뜻.

오른쪽은 '날 생生'이다. 태어난다, 움직인다는 뜻.

즉 '성性’은 [ 心 + 生 ]의 합성어다. 풀이하자면 '마음이 태어난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


여기서 나온 '성性’의 본의(本義; 원래의 뜻)는 이렇다.

① 인간의 본성

② 사물의 성질

③ 성격, 성정, 품성

④ 생명

⑤ 신체

⑥ 자태


남녀 간의 '성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한참 후세에 파생된 인신의引伸義다. 그 '남녀 간 행위'로서의 ‘성’ 역시 ‘마음을 얻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육체 행위로 '승화/발전'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거의 대부분이 '아닌 경우'다.)


'성性’과 '짝짓기'는 마음과 육체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동아시아의 따스한 결합 패러다임이다. 누구의 마음을 얻자는 것일까? '상대방'이다. '성'이란 결국 '상대방'과 '나'의 '조화調和, harmony, balance'인 것다. 동아시아의 전통 패러다임은 그것을 ‘음양陰陽의 조화’라고 불렀다.



<15. 슬퍼도 마음을 다치지는 말아라>에서




오순도순... 도란도란...

우리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끝없이 이어졌다.

뇌세포가 깨어나는 아름다운 밤, 싱그러운 밤, 향기로운 밤이었다.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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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자아를 찾아 나선 한국 여성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이제 곧 서안의 함양 국제공항을 이륙하겠습니다...




승무원의 또렷한 한국어 발음.

지난 보름 동안의 시간이 꿈만 같다.

조용히 눈을 감고 회상해본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결혼으로 중도에 대학원을 포기한 지도 어언 20 년...

공부에 대한 향수로 A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소오생 교수님에게 '황하문명답사'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학부 학생들의 하계 현지답사수업에 참여하게 되었지.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그 느낌...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리고 일천사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무조武照, 그녀를 만났다.

고대 동방의 여성 문화를 만나며 작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싱그러운 숲의 청년, 쉬에화이이를 만나며 작은 설렘도 느껴봤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동아시아 사회에서 '성性’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배웠다.

아니,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고등교육을 받은 줄 알았는데, 이제 겨우 '자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같다.


나 자신을 찾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 입장에서,

앞으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실천해야 할 것인가.

'성性’으로부터 비롯된 한국 사회의 문제점, 그 키워드들을 하나씩 머리에 떠올려보았다.





▷ 남녀 간의 갈등과 대립 (남혐/ 여혐) ⇒ 성 소수자의 증가

▶ 성 추행/성 폭력


▷ 지하로 들어간 성 산업

▶ 20대 남성의 극우화


▷ 여성의 사회 진출

▶ 직장 내 양성 평등 문제 (남녀 월급의 차이)


▷ 고등 교육 여성의 경력 단절 (경단녀)

▶ 결혼 기피, 낮은 출생율 ⇒ 출산과 육아, 교육의 국가 지원


▷ 시댁 식구와의 갈등, 부부 갈등

▶ 별거, 이혼 ⇒ 섹스리스 사회 (경직된 사회)


▷ 주부 공허함 ⇒ 자녀 교육에 대한 지나친 간섭 ⇒ 헬리콥터 맘

▶ 주부 공허함 ⇒ 부동산 투기


▷ 주부 우울증 ⇒ 자살률의 증가

▶ 성적 자기 결정권 (불륜, 간통)


등등등...




생각해보니 끝이 없다.

'성性’의 문제는 여성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논제였다.


이런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한국이라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깨어있는 여인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일인지, 내가 과연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인지, 늘 고민이 되었다.


21세기의 내가 이러하니... 고대 지배계급 사회의 한계 속에서 무측천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겠는가. 이제는 그녀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고등교육을 받고, 나름 글을 쓴다고 나선 입장에서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부웅~~~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누군가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부드러운 입맞춤... 그러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누구지?



나는 어려서부터 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왔다.

여자로 태어난 업보랑께~!

할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등짝을 때리며 말씀하셨지.


하지만...

섹스는 몸뚱이를 가진 우리 가여운 중생들에게 허락된 인생 최고의 즐거움 아닌가.

남성이 그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려면, 여성 또한 제대로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이더 님 말씀대로 그 행위 자체가 어느 일방의 비뚤어진 쾌락이 아닌...

여성과 남성, 음양의 아름다운 '조화調和, harmony'일 테니까 말이다.


그 음양의 조화가 싱그럽게 잘 이루어진다면,

여기에서 파생된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문제들도 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혼한 지 20년.

항상 아무개의 아내, 아무개의 엄마로 내 모든 것을 바치면서 살아왔다.

때로는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오늘날, 과연 바람직한 여성상은 무엇일까?

남성 위주의 한국 사회는 오만 원 짜리 고액권에 신사임당을 새겨넣었다.

무슨 의미일까? 아무튼 나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나는,

소혜인은...

나 자신을 찾고 싶다. 나만의 즐거움도 찾고 싶다.


나의 능력을 확인해보고 싶다. 세상을 좀 더 많이 알고 싶다.

나의 가족 외에... 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이바지하고 싶다.





비행기가 서안 상공에서 동쪽을 향해 선회하고 있다.

창밖으로 무측천의 건릉이 보였다. 창공에서 보니 더욱 장쾌한 모습이다.

나도 우물 밖으로 나와... 그녀처럼 세상을 멀리 바라보며, 보다 크고 넓은 스케일의 삶을 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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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다.

다음 여행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 끝 >





※ 애당초 정기적인 발행을 염두에 두고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4일 간격으로 글을 올리던 것이 점차 5일, 7일... 미뤄지더니만... 이번에는 무려 11일 만에 발행하고 말았네요. 박사 논문 쓰는 것보다 더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부끄러운 글을 혹시 기다려주신 일부 독자님께 한없이 사죄드리며, 그동안 성원해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매거진 [중국 여성의 성性과 사랑]의 제2탄은... 충분히 공부하고 나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전에는 부정기적으로 조금 쓰기 편한 글들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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