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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Feb 15. 2024

15. 슬퍼도 마음을 다치지는 말아라

동아시아 창세기 일장 일절에 숨은 정신

※ 이 글은 <동아시아의 창세기 일장 일절>의 후속 편입니다.



전편에서의 문제 제기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창세기 1장 1절이다. 2천여 년 동안 서구인의 생각 패러다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구절이다.


(2) 꾸욱~ 꾸욱~ 물수리새 강가에서 우는구나. 하늘하늘 예쁜 여인, 총각들이 좋아한다.   

關關雎鳩, 在河之州窈窕淑女, 君子好逑


『시경詩經 · 관저關雎』의 첫 구절이다. 『시경』은 동아시아 정치와 역사 문화를 이끌어 온 유가儒家의 맨 첫 번째 경전이고, 「관저」는 그중에서도 맨 처음 나오는 노래다. 그러므로 바로 이 구절이 동아시아의 창세기 1장 1절이라고 할 수 있다.


(3) 유가儒家의 모든 경전은 공자가 편찬했다. 그의 세심한 안배가 들어간 편찬 작업에는 그 어떤 창조 행위보다 더 심원한 '미언대의 微言大義'가 담겨있다. 공자가 『시경 · 관저』를 동아시아의 창세기 1장 1절로 삼은 것도 당연히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 미언대의는 대체 무엇일까?


(4)『시경 · 관저』는 분명히 남녀상열지사, 남녀 간의 사랑의 노래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성性의 파트너'를 찾는 짝짓기의 노래다. 그런데 점잖으신 사대부 양반들은 그 의견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임금님이 왕비와 혼인하는 노래라는 둥, 임금님이 현명한 신하를 그리워하는 노래라는 둥, 여러 가지 고상하신 의견들을 제시했다.


(5) 여러 작가님, 그리고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 유가 사상은 동아시아 역사를 이끌어온 현실참여파 지성인들의 패러다임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동아시아의 핵심 사상이 농축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게 무엇일까?



먼저 기본 상식 몇 가지.



(1)『시경』의 시대와 성격: 지금부터 3,000~2,500년 전 무렵의 노래책이다.


(2)『시경』의 구성: 3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풍風>, <아雅>, <송頌>

<풍>: 황하 일대의 민간 유행가 모음집. 민간 풍속을 알기 위해 왕명으로 채집했다.(채시 采詩)

② <아>: 왕실의 사냥이나 연회용 노래. 주로 지식인들이 만들어서 바쳤다. (헌시 獻詩)

③ <송>: 왕실의 제사용 노래. 지식인들이 만들어서 바쳤다. (헌시 獻詩)


※ 돌발 퀴즈:  <풍>, <아>, <송> 중에서 예술적 수준이 가장 높은 챕터는 무엇일까?

답은 10초 후에! 읽다 보면 알게 된다.


(3) 『시경』의 분량: 사마천의 『사기 史記』를 보면 원래 3,000수首가 있었는데 공자가 편찬할 때 9/10인 2,700수를 삭제하고 300수만 엄선했다고 한다. (산시설 刪詩說) 현재 305수가 전해진다.  [ 주 1 ]


(4) 지식인들이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만든 딸랑딸랑~ 아부하는 노래가 예술적 수준이 높을 까닭이 없다. 『시경』의 예술적 가치는 전적으로 <풍>에 있다. <국풍 國風>이라고도 한다. 이름 모를 민초들이 지은 노래가 동아시아 문학의 시작인 것이다. 「관저」도 당연히 민간 유행가다.  [ 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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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1 ] 소오생은 그 옛날에 3,000수의 유행가가 존재했다고 믿지 않는다. 멜로디의 창조는 문화적 수준이 상당히 높을 때나 가능하다. 그보다 훨씬 후대인 당송시대에도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웠다. 삼천 년 전 문화 수준에 그렇게 많은 멜로디가 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사마천 말이라도 믿기 힘들다. 하지만 공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노래만을 추려서 편집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500~600 수는 되었을 듯.


[ 주 2 ] 전두환 시절 <국풍 81>이라는 이름의 관제 민속 축제를 벌인 적이 있었다. 나라를 군홧발로 짓밟은 놈들이 어디서 이름은 들어가지고... 공자를 모독한 행위다.



성性이란 무엇인가



『시경 · 관저』는 ‘성性의 파트너'를 찾는 짝짓기의 노래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性'이라고 하면 오해를 많이 하시는 같다. 여학생들은 내가 '성性'에 대해 강의하겠다고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 아니, 다들 왜 그러시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 건가요!


우리는 흔히 ‘성’을 ‘육체적 행위’로만 인식한다. 우리말 '짝짓기'도 마찬가지. 그러나 나는 훨씬 더 포괄적으로 인식한다. ‘성’은 영어의 ‘sex’나 ‘gender’와는 사뭇 다르다. ‘sex’는 마음이 무시된 육체적 측면만이 부각되고, ‘gender’는 남/녀의 대결 구도가 부각된 차가운 서구식 분리 패러다임의 단어다. 가슴이 아프다. 왜 우리 동아시아인들의 머릿속을 서구식 분리의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궁금하신 분은 <인문학 엑소더스 (상)> 참고.


‘성性’은 한자다. 순수 우리말 '짝짓기'도 마찬가지. 당연히 우리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으로 풀이해야 한다.

‘성性’이란 한자는 회의會意 문자다. (형성形聲 문자이기도 하다)

'회의 문자'란 A의 뜻을 가진 문자와 B의 뜻을 가진 문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라는 뜻.


'성性’이라는 한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 忄+ 生 ]이다.

왼쪽 ‘심방변(忄)'은 '마음 심心'이다. [ 忄= 心 ] '성性’은 ‘마음의 영역’에 속하는 글자라는 뜻.

오른쪽은 '날 생生'이다. 태어난다, 움직인다는 뜻.

즉 '성性’은 [ 心 + 生 ]의 합성어다. 풀이하자면 '마음이 태어난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


여기서 나온 '성性’의 본의(本義; 원래의 뜻)는 이렇다.

① 인간의 본성

② 사물의 성질

③ 성격, 성정, 품성

④ 생명

⑤ 신체

⑥ 자태


남녀 간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한참 후세에 파생된 인신의引伸義다. 그 '남녀 간 행위'로서의 ‘성’ 역시 ‘마음을 얻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육체 행위로 '승화/발전'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거의 대부분이 '아닌 경우'다.) '성性’과 '짝짓기'는 마음과 육체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동아시아의 따스한 결합 패러다임이다.




그런데 누구의 마음을 얻자는 것일까? '상대방'이다. '성'이란 결국 '상대방'과 '나'의 '조화調和, harmony, balance'인 것다. 동아시아의 전통 패러다임은 그것을 음양陰陽의 조화라고 불렀. [ 주 3 ]


삼라만상 천지간의 모든 것은 그 어느 하나 음양의 조화가 아닌 것이 없다. 물수리새가 짝을 찾는 것도, 떠꺼머리총각이 어여쁜 아가씨의 자태에 헤벌쭉 정신이 나가는 것도, 임금님이 현숙한 왕비를 맞고자 하는 것도, 군신君臣 간의 나라사랑 백성사랑의 마음도, 브런치 작가들이 독자들의 라이킷을 원하는 마음도, 결국은 모두모두 음양의 조화다. 음양의 조화는 유가사상의 핵심인 것이다.


공자가 '문학'인 『시경』을 첫 번째 경전으로 삼은 이유: 그의 목표는 아름다운 세상, 즉 대동사회의 건설이었다. 그러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능을 지닌 '문학'을 맨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가 『시경』중에서도 「관저」를 제일 앞에 배치한 이유: '남녀 간의 사랑'이 제일 대표적인 음양의 조화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가장 가깝기 때문에, 피교육자의 학습 의욕을 고취하는 데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 주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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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3 ] '음양 陰陽'이라는 단어는 재밌다. 첫째, 단어의 구성이 '음 陰'이 먼저고 '양 陽'이 나중이다. 그만큼 동아시아의 전통 패러다임은 원래 '여성성'을 훨씬 존중했다는 이야기다. 둘째, 삼라만상은 모두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여자'라고 해서 오로지 '음 陰'으로만 뭉쳐진 존재는 아니다. '여자'에게도 '음'과 '양'이 공존하고, '남자'도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여성에게도 일정 정도의 남성성이 존재하고, 남성에게도 여성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음양 이론에 의하면 동성연애란 것도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 주 4 ] 굳이 직업을 따지자면, 공자는 '사상가'라기보다는 '문학 선생님'에 가까웠다. 물론 서구 literature의 개념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전통 '문학'의 개념으로 판단한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 '작가'는 아니었다.



슬프더라도 마음을 다치지는 말아라



기왕 말이 나왔으니 『시경』에서 가장 에로틱한 사랑의 노래를 딱 2수만 읽어보고 지나가자. 공자의 심의 기준에 살아남은 유행가들이다. 해설은 각주로 처리하겠다. 어떤 부분이 얼마나 에로틱한 지, 스스로 상상해 보는 여백의 즐거움을 맛보시라.

 



들판에는 우거진 풀, 풀잎마다 이슬방울.

아리따운 저 아가씨, 함초롱 큰 눈동자.

어쩌다가 만난 사랑, 나의 마음 사로잡네!


들판에는 우거진 풀, 풀잎 이슬 방울방울.

아리따운 저 아가씨, 그 눈동자 함초롱해.

어쩌다가 만난 사랑, 그 님과 함께 숨네. [ 주 5 ]  


野有蔓草, 零露漙兮。有美一人, 淸揚婉兮。邂逅相遇, 適我願兮!

野有蔓草, 零露瀼瀼。有美一人, 宛如淸揚。邂逅相遇, 與子偕臧!  

『 정풍 鄭風 · 들판에 우거진 풀 野有蔓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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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5 ] 왜 숨을까? 어디로 숨을까? 답은 제목에.


공자는 60대의 노인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16세의 소녀 어머니 안징재顔徵在의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 '야합'이라는 단어는 원래 이 시에서처럼 '들판의 사랑'이라는 뜻.

유가 사상은 인간의 본능을 진솔하게 인정한다. 단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마찬가지다. '조화'는 양극을 피하는 '중용 中庸' 사상과 하나로 만난다.




들판에 죽은 사슴, 하얀 풀에 덮여있네.        

싱숭생숭 봄아가씨, 저 총각이 유혹하네.

숲 쪽에는 나뭇짐이, 들판에는 죽은 사슴.  [ 주 6 ]     

하얀 풀에 덮여있네. 백옥 같은 저 아가씨.

살짜기 살짜기, 가만히 가만히... 

“허리띠의 구슬일랑 건드리지 마세요. 삽살개가 짖으면 곤란하니까.”


野有死麕, 白茅包之。有女懷春, 吉士誘之。

林有樸樕, 野有死鹿。白茅純束, 有女如玉。

舒而脫脫兮, “無感我帨兮, 無使尨也吠!”

『소남召南 ․ 들판에 죽은 사슴 野有死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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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6 ] '사슴'은 '사랑의 예물'로 추정된다. 총각이 자신의 힘으로 고생 끝에 나무한 것과 사냥한 사슴으로 봄아가씨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장면이다. 결혼식장에서 부모님 돈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예물로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순박하고 아름답고 싱그럽지 않으신가.




『논어論語 · 팔일八佾』에 보면 『시경』의 정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즐거워하되 음란함으로 흐르지 않고,

슬퍼하더라도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樂而不淫(낙이불음), 哀而不傷(애이불상)


 ‘음양陰陽의 조화調和’가 무엇인지, 그 '짝짓기의 마음'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옛날 강의실에서의 일이다. 즐거워하되 음란함으로 흐르지 않는다. 해석을 해주었더니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쌤, 음란하다는 게 모예여? 설명해 주기가 애매한지라 학생들에게 의견을 구했더니만 어느 여학생이 말했다. 상대방을 존중해주지 않는 마음 아닐까요? 어떤 '행동' 자체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이야기였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존중해 준다면 어떤 행위도 '음란함'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키포인트는 '존중'이었다. 


와우! 감탄이 나왔다. 역시 학생이 바로 곧 스승이다. 다른 학생들도 박수를 치며 공감해 주었다. 그 후로도 쭈욱 마찬가지. 후배 학생들에게 '음란함'의 의미를 그렇게 설명해 주면 모두들 공감한다. 문학을 제대로 배우면 따로 성교육이 필요 없다던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그게 어찌 남녀 간의 행위에서 뿐이랴. 이 세상 모든 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치 아닐까?


슬퍼하더라도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더 좋아하는 말은 이 구절이다. 예전에 믿었던 선배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너무 괴로워서 일주일도 넘게 잠을 제대로 못 잤다. 혹시 내 잘못은 아닌가, 그래도 화내지 말고 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친한 목사님과 상담을 했다. 화를 낼 때는 내라. 예수님도 화를 내셨다. 성전에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몰아내신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공자님의 이 구절이 머리를 스쳤다. 슬퍼할 때는 슬퍼하라. 그 대신 마음이 상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있으면 안 된다. 해야 일은 하면서 화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라! 그런 뜻이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어찌 남녀 간의 일에 국한되랴. 삼라만상 모든 '음양의 조화 調和 harmony, balance' 이야기 아니겠는가.



공자님 만나러 갔니?



『시경 · 관저』의 노래 가사만 따스한 결합 패러다임이 아니다.

가사에 내재되어 있는 소리 역시 친근하고 따스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의 소리는 거룩하고 장엄하다. 숭고하고 웅장한 남성적 ‘양강陽剛’의 소리다. 이런 소리는 대체로 크고 빠르고 높고 변화가 심하여 위압감을 준다. 베토벤의 교향곡 No.5 <운명>을 들을 때처럼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느낀다. 납작 엎드려 복종하는 마음가짐이 된다. 다정한 친구나 연인은 아니다. 친근하게 다가설 수는 없다.      


“꾸욱꾸욱 물수리 새, 강가에서 우는구나. 關關雎鳩, 在河之州.”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유가의 경전은 물새 우는 소리로 시작한다. 어떤 물새? 독수리나 송골매가 아니라, 저구雎鳩, 흔히 볼 수 있는 물새다. 그 작은 물새가 지지배배 눈웃음을 치며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음유陰柔’의 소리다. 이런 소리는 친근하고 따스하며 변화가 일정하여 예측이 가능하다. 이런 소리는 졸립다. 그만큼 마음이 편해져서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를 하시는데 고개를 끄떡거리며 심하게 졸은 적이 있었다. 예배가 끝났는데 목사님이 은근 핀잔을 주신다. 집사님, 요새 논문 쓰시느라 힘드시죠? 아 예, 오늘 설교 말씀이 너무 은혜롭던데요? 천연덕스럽게 설교 내용을 술술 말하니 목사님, 꿀 먹은 벙어리다. 아니, 분명 졸던 것 같은데 다 듣고 있었네? 그런 표정이시다. 그럴 리가! 목사님의 설교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가!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더러 공자님 만나러 갔다고 하는 게 다 이유가 있었다. 공자가 이 노래를 모든 경전의 시작으로 삼은 이유, 멜로디가 친근하고 따스하기 때문이다. 악보도 없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공자는 이런 음유의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했다. 학술적인 증거가 있느냐고? 당연하다. 근데 지금 그것까지 말씀드리자면 독자 여러분이 졸 것 같으니까 다음 기회로 미루자. 나는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들을 절대 깨우지 않는다. 단, 코만 골지 않으면. 내 목소리가 얼마나 은혜로우면 이렇게 단잠을 잘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다.


아무튼 이런 변화가 일정하고 따스한 성격의 멜로디는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조단조단 타이르는 어머니의 목소리 같다. 그래서 상대방 마음 문을 열고 차분하게 설득하고 교화시키기에 유리하다. 동아시아 궁중 음악의 전아典雅한 멜로디도 모두 그러한『시경 · 관저』의 정신을 이어 받은 것이다.


옛날 우리 학교 중문과 학생들은 중국연수를 갈 때마다 중국인 선생님들 앞에서 단체로 『시경 · 관저』를 노래로 불렀다. “꽌관/쥐지우, 자이/허/즈/쩌우~~!!” 90학번의 주O언 학우가 재학 중에 작곡한 부드럽고 아름다운 멜로디다. 중국을 이끌어나가는 리더 그룹이라면 우리가 왜 그 노래를 부르는지 모두 다 짐작한다.


“십삼경주소는 읽고 오신 건가요?”

“하하, 물론이지요. 우리 함께 조화와 협력과 상생의 시대를 열어나가시죠.”


마오저뚱의 질문에 『시경 · 관저』의 노래로 답변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 주 7 ]

환호 소리!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더불어 만들어가는 조화와 협력과 상생의 정신!

동아시아 전통의 대표적 패러다임, 짝짓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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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7 ] 마오저뚱의 질문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동아시아의 창세기 일장 일절> 참고.


<끝>


다음 이야기의 주제는 '평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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