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여행 오리엔테이션 (6) : 문성공주와 일월산
※ 매거진 《차마고도 사이버여행》은 글의 가독성과 흥미를 위해 픽션 요소를 가미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중국 여성의 성과 사랑》에서도 등장했던 가상의 인물, 소혜인이라는 여성 화자가 평소 티베트 땅을 간절히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티베트 답사에 참가하여 활약한다는 가정 하에서 서술하겠습니다. 글벗 여러분의 많은 질책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가이더의 미션)
아래의 이미지들을 보면서 5분 이상 생각해 볼 것.
[ 1 ]
아래 그림은 중국 10대 명화 중의 하나라는 <보련도步輦圖>입니다. 당나라 때 화가 염립본閻立本의 그림이지요. 당 태종이 튀베(吐藩; 티베트)제국의 임금 송짼감뽀의 사신인 가르똥짠(중국명: 뤼뚱짠祿東贊, 녹동찬)을 접견하는 모습입니다.
우측의 연을 타고 있는 인물은 당 태종. 맨 왼쪽은 통역관, 좌측 두 번째가 가르똥짠, 좌측 세 번째 인물은 접견 행사를 진행하는 당나라 측의 전례관典禮官입니다. 위풍당당해 보이는 당태종은 거만한 표정인데 비해, 왜소한 체구의 가르똥짠은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이군요.
지금 가르똥짠은 튀베 임금인 쏭짼깜뽀를 대신하여 당 태종에게 청혼을 하러 왔다네요.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도 간절히(?) 부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당태종은 황실 종친의 딸을 자기 수양딸로 삼아 문성공주라 하고 티베트로 시집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 그림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어떤 문제일까요? 굳이 검색하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생각나면 생각하고 아니면 안 하면 됩니다. 참 쉽고 재밌는 미션이죠? ^^
[ 2 ]
(사진 상) 여기는 일월산日月山(해발 4,877m)을 넘어가는 고갯마루(해발 3,520m). 이 고갯마루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일망무제의 대초원이 끝없이 펼쳐집니다.(사진 하) 한반도나 중국대륙 중원 땅의 풍광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여기서부터 티베트고원이 시작되는 거죠.
서기 641년 정월. 16살의 문성공주는 티베트로 시집을 가다가, 이곳 고갯마루에 서서 마지막으로 고향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이때 그녀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잠시 눈을 감고 그 마음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혜인의 사색)
사진 속 일월산 고갯마루.
저 끝없는 대 초원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니 말을 잃게 된다.
눈이 내리면 발자국 하나 없는 설원이 하늘 너머 무심히 드러누워 있을 듯하다.
고원의 공기는 얇고,
정월正月의 바람은 맵다.
한 그루의 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 사는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하염없이 열흘 보름을 걸어가도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방의 지평선에는 밥 짓는 연기의 흔적조차 없다.
시간과 공간이 멈춰버린 이 낯선 풍광 앞에 서 있던 열여섯 살의 문성공주. 그녀는 이렇게 광활하고 삭막하고 고요한 세상을 본 적이 있었을까. 아니,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라도 해 본 적이 있었을까.
장안의 겨울은 차가웠지만 담장과 기와와 사람의 숨결이 있었다. 거리마다 웃음소리, 골목마다 음식 냄새. 정월 대보름이면 연등놀이로 밤에도 세상은 휘영청 밝았고, 겨울 어둠이 장막을 내려도 곳곳마다 뚝딱뚝딱~ 다듬이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그게 그녀가 알던 세계였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어머니, 무서워요.
여기가 어디예요? 제가 왜 여기 있죠?
제가 왜 공주란 말이에요? 제가 왜 황제 폐하의 수양딸이 된 거죠?
어머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너무 추워요. 꿈이라면 어서 깨어나게 해 주세요...
수양아버지라던 당 태종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지도 모른다. 한 번도 '아버지'였던 적이 없는 사람.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그의 얼굴이 마음속에 떠오르자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그의 결정 하나로 자신의 인생이 서쪽으로 접혀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 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니,
모든 인연은 머무르지 않는 법.
생각에 머무름을 두지 말아라...
눈물이 구슬 되어 흘러내린다. 믿고 의지할 곳은 오로지 부처님뿐. 아직은 이해할 수도 없는 말, 그저 늘 입에 담아두었던 구절들을 나지막하게 외우고 또 외운다.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일심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연호하던 그 어느 순간, 그녀의 마음이 문득 차분해진다. 아, 여기까지가 내가 알던 세계였구나... 이제는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구나... 조용히 고향 땅 어머니를 향해 마음속으로 절을 올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일망무제의 서쪽 설역 고원을 향해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그날 일월산의 바람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차가웠으리라.
문성공주는 그 바람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처음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티베트 라싸!
그 먼 길을 걸으며, 그녀는 얼마나 많은 별을 세었을까.
얼마나 많은 눈보라 속에서, "이게 내 운명이야..." 혼잣말로 속삭였을까.
그녀의 여정은 결혼이 아니라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길이었으리라.
나는 화면 속 사진을 덮으며 잠시 눈을 감는다.
일월산의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친다. 나는 문성공주가 되어 설역의 고원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모든 여행은 결국 나의 내면으로 떠나는 순례임을 새삼 깨달으면서...
(좌) AI 생성 <문성공주 진장도進藏圖> (우) 위쑤玉樹 절벽의 <공주 배불도拜佛圖>. 문성공주로 추정한다.
[ Zoom 온라인 강의실 ]
(소오생) 두 손 모아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하시겠습니다.
당신에게 상서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평안이~
일월산 고갯마루에 서 있는 문성공주 동상
(소오생) 정말 정말 오래간만이죠?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 학교 밖 연구실을 옮기게 되었는데... 집주인이 전세금을 빼주지 않아서 법원을 드나드느라 골치가 좀 아팠답니다. ㅠㅜ
이번 이야기의 초점은 문성공주입니다. 그러나 한 송이 국화꽃의 참된 매력을 감상하려면 간밤에 천둥 치던 사연을 이해해야 하듯이, 그녀를 제대로 만나려면 먼저 일월산이라는 공간과 7세기 중반에 격변하던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이라는 시간 무대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한꺼번에 다 말하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죠? 그래서 오늘은 먼저 일월산 일대의 공간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민호 선생이 발표해 주실까요?
(김민호의 발표)
네, 발표하겠습니다. 아래의 지도를 보시죠. 직사각형의 하얀 점선이 바로 일월산 일대의 공간 무대입니다. 어딘지 다 찾으셨죠? 알파벳 A, B, C... 와 숫자 ① ② ③... 은 각각 어디일지, 그 지명에 대해서도 짐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 일월산 ● 청해호 (A)섬서성 (B)감숙성 (C)청해성 (D)신강위구르자치구 (E)사천성
①장안(서안, 섬서성의 수도) ②난주(감숙성의 수도) ③돈황 ④서녕(청해성의 수도) ⑤라싸
(김민호의 발표)
(B)감숙성은 참 특이하게 생겼죠? 이 '성(省; Province)'은 왜 이렇게 장화처럼 길쭉하게 생겼을까요? 음... 먼저 뜬금없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저는 아직 젊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멈춰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소오생 가이더 님에게 들었는데요, ②난주에서 ③돈황까지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실제로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된다네요.
열차의 왼쪽 차창으로는 민둥산인 기련산맥, 오른쪽에는 황무지 고비사막! 시속 100km로 열 시간이 넘게 달려도 좌우에 똑같은 풍광이 계속 이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어느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신기합니다. 그쵸?
(상) 기련산맥. 난주에서 열차를 타고 가면 왼쪽에 1,000km가 넘도록 이런 풍광이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 오른쪽으로는 황량한 고비사막이 끝없이 펼쳐지다가 20여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다른 풍광이 나타난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 가욕관이다. (96.6.7.) 돈황까지 이어지는 이 길을 하서주랑이라고 한다.
(이혜린) 우와, 그럼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같겠네여? 저도 그런 느낌, 가져 보고 싶어여~
(소혜인) 총알이 공중에 멈춰 서고 세계가 정지된 채 카메라만 움직이던 그 장면 말이죠?
(이희원) 아, 그런 느낌... 아직들 모르시남? 님과 함께 뜨밤 함 보내보슈. 금방 알게 될 테니. 으흐흐...
(다 같이) 하하하. 크크크. 호호호.
(이혜린) 호호호, 음... 근데 그 반대 아녜여? 전 아쉬워서 되려 더 빨리 갈 것 같은뎅... ^^;;
(소오생) 하하하, 극과 극은 상통한다고, 아주 빨리 가면 오히려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답니당~
(소혜인) 와~ 정말 그렇겠어요~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 안이라서 멈춘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이희원) 크~ 뜨밤 안에 인생의 철리가 있구나! 그니깐 민호 쌤, 혜린 쌤도 어여 시집 장가들 가쇼 그려.
(다 같이) 하하하. 호호호.
1990년대 중국 잉워(硬臥, hard bed) 열차 여행. 팔천 리 길 구름과 달을 벗하며 칙칙폭폭 며칠이고 하염없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맑고 고운 중국 시와 수필을 읽는 재미가 참으로 삼삼했다.
(김민호의 발표)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민둥산과 사막 사이, 기차가 달리는 선로를 중심으로 폭 20~60km 남짓한 한 줄기의 가느다란 녹색 띠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무가 있다는 것은 바로 물이 있다는 뜻이겠죠? 1,000km 넘게 이어지는 지하 수로, 카레즈(Karez, 坎儿井) 덕분입니다.
카레즈는 천산과 기련산의 만년설을 끌어와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에 뚫어놓은 관개 수로를 말한다.
상황이 그러하니... 승려도 상인도 군대도, 중원에서 서역으로 가려면 누구나 반드시 이 녹색 지역을 지나야만 했던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길을 '황하 서쪽의 통로'라는 뜻으로 '하서주랑河西走廊'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던 것이 19세기말에 일본 학자들이 '복도'라는 뜻의 '회랑回廊'으로 바꿔 부르면서, 오늘날까지 한국에서는 하서회랑이라고 합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대자연의 통로'가 '인공 건축물의 복도' 정도로 축소된 셈이지요. 우리는 앞으로 '하서주랑'이라는 원래 명칭을 사용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기다란 통로를 하나의 행정 단위로 묶어버린 결과, 감숙성은 지금처럼 장화 모양의 기묘한 형태가 된 것입니다. 이해가 되셨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
하서주랑 위치도
(김민호의 발표)
다시 한번 지도를 보실까요?
(B)감숙성과 (C)청해성의 넓이를 확인해 보세요. 검색해 보니까 감숙성은 42.6만㎢, 청해성은 72.2만㎢. 합치면 한반도 전체 면적의 다섯 배나 되네요! 와, 굉장히 넓죠?
그런데 이렇게 넓은 이 두 '성省'의 수도인 ②난주와 ④서녕이 너무 바싹 붙어있는 것 같지 않나요? 불과 160km 거리라니까, 완행열차로 가도 두세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근데 이 두 도시는 왜 이렇게 각자 자기들 성의 동쪽 끝에 치우쳐서 '하얀 직사각형 공간'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가 이 두 성 중에서 가장 넓은 오아시스(綠州)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감숙성과 청해성은 대부분 사막이나 고산, 혹은 산소가 희박한 황량한 고원이에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거의 없는 거죠. 그나마 대도시가 형성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곳은 이 일대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국 이 두 성의 수도가 지나칠 정도로 가까운 것은... 행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환경의 여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겠어요? 사람들이 다 이 지역으로 몰려들겠죠? 가장 큰 도시는 난주蘭州. 오늘날 중국 국토 면적의 정 중앙에 위치한 난주는, 인구 350만의 황하 상류 최대 도시입니다. 역대로 주변의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하서주랑의 기점/종점인 이곳으로 모여든 결과죠.
난주는 이렇게 중원의 한족漢族과 이슬람 세력인 회족回族, 그리고 북방 유목 민족과 고원의 유목 민족이 서로 맞닿은 채 밀고 당기는 역사의 접경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상) 난주 시내를 가로지르는 황하. (하) 난주는 '라면(拉麵, 라/미엔)'이란 단어가 최초로 탄생한 곳이다. '(즉석에서 손으로) 뽑아낸 면'이라는 뜻. 청결을 중시하는 이슬람의 대표 음식이다. 빠르고 든든한 먹거리를 요구했던 실크로드 상인들에게는 손으로 늘려 즉시 조리하는 라면이 최적이었다. 사진 출처: 바이두.
※ 혜인의 정리 :
① 하서주랑河西走廊 : 기련산과 고비사막 사이의 길고 좁은 그린벨트 지역. 하서회랑(일본 명칭)
② 카레즈(Karez, 坎儿井) : 만년설수를 활용한 지하 관개 수로. 하서주랑 및 서역에 깔려있다.
③ <난주 ⇔ 서녕 ⇔ 일월산 ⇔ 청해호> 일대 : 감숙성 & 청해성 최대의 오아시스 지역.
④ 난주 : 실크로드 최대 도시. 하서주랑의 기점/종점. 실크로드와 당번고도의 갈림길. 오늘날 중국 국토의 정 중앙에 위치. 다양한 인종과 민족 거주.
난주 공항. 30kg 배낭을 메고 다녔다. 2005. 9. 10.
※ 혜인의 중국 지명 표기 정리
▷ 돈황 [敦煌, Dūnhuáng, 뚠(→)황(↗)]
▶ 감숙성 [甘肅省, Gānsùshěng, 깐(→)쑤(↘)성(↓)]
▷ 난주 [蘭州, Lánzhōu, 란(↗)쩌우(→)]
▶ 청해호 [靑海湖, Qīnghǎihú, 칭(→)하이(↓)후(↗)]
▷ 서녕 [西寧, Xīníng, 씨(→)닝(↗)
(김민호의 발표)
서녕西寧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서녕은 해발 2,260m의 고원 도시예요. 티베트고원의 문턱인 일월산(해발 4,877m) 자락에 있죠. 하지만 고도가 아주 완만하게 올라가서 서녕을 처음 찾는 여행객들은 여기가 한라산보다 더 높은 곳이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답니다. 고산병 증세도 해발 3,000m에서나 나타나니까요. 참고로 이 일대의 고도는 아래 도표와 같습니다.
서녕도 난주처럼 여러 민족이 각축을 벌이던 곳이었습니다. 4~6세기 무렵에는 선비족鮮卑族 계통의 북방 유목 민족이 세운 토욕혼吐峪渾이라는 나라가 일월산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요, 7세기 중엽부터는 티베트 세력이 이곳에 진출하여 오랫동안 이 땅을 지배했죠.
그리고 13~14세기 이 땅의 외형적 주인은 전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에 가이더님이 몽골은 티베트를 스승의 나라로 받들었다고 얘기해 주셨죠? 그러므로 이 무렵에도 이 땅의 실질적인 주인은 여전히 티베트였습니다.
명나라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건국 이후(1368), 자신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질서를 세우겠다는 야욕으로 자기들 멋대로 변방 지역에 중국식 행정구역을 설정했답니다. '서녕西寧'이라는 지명은 이때 지은 거예요. '서쪽 국경의 안녕'을 빈다는 의미. 하지만 이때도 실제 주인은 마찬가지로 티베트였죠.
그렇다면 티베트 사람들은 이곳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뽄라캉(Pön-lhakhang), '지방 권력의 사원'이라고 불렀답니다. 하지만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오늘날엔 과거 티베트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아마 요새 티베트 청년들은 대부분 이 지명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좌) 서녕 중심광장. 2005. 8. 20. (우) 2025년의 서녕. 출처: 바이두. 청해성 전체 인구의 45%인 250만 명이 서녕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뽄라캉'이라는 단어는 티베트를 이해하는 핵심 Key- word 중의 하나이므로, 꼭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언제부터 이런 이름으로 불렸는지... 그 중요성을 별로 주목한 학자들이 없는 것 같아서... 저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알아보았습니다. ^^;;
티베트는 7세기 중엽 쏭짼깜뽀 당시에 이 지역에 진출해서 '서녕'을 군사 전초 기지로 삼았었죠. 그러다가 8~9세기가 되자 여기를 교두보로 삼아 하서주랑과 서역 및 중앙아시아까지 점령하여 대 제국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그때쯤엔 '서녕'은 당연히 이미 수도인 라싸에 못지않은 '뽄(지방 권력)'을 지니게 되었겠죠?
그러다가 1379년이 되자 이 지역에 강력한 '라캉(lhakhang, 사원)'이 건립되었답니다. 오늘날 탑이사塔尔寺, 중국어 발음으로는 타(↗)얼(↓)쓰(↘)[Tǎ'ěrsì]라고 부르는 사원이죠. 드디어 '뽄(지방 권력)'과 '라캉(사원)이 만난 겁니다.
티베트의 가장 큰 특징인... 정치와 종교의 만남, 즉 제정祭政 일치 제도는 바로 이곳 서녕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거죠.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뽄라캉'이라는 지명은 아마 이때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이 절은 대체 어떤 사연을 지닌 사원일까요? 저는 물러가고, 여기서부터는 티베트 사원을 연구하는 혜린 쌤이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 같이) 와, 수고하셨어요~~ 짝짝짝~~ (물개박수)
탑이사(타얼쓰/쿤데링). 해발 2,700m이지만 모르고 가면 평지로 착각한다. 뛰어다니지 말 것. 출처: 바이두.
(혜인 생각)
지도를 보고 있으면 모든 것이 단순해 보인다.
경계는 선 하나로 정리되고, 도시는 점 하나로 환원된다.
그런데 저 선과 점 사이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걸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혜린의 발표)
호호, 안냐세여? 시간이 많이 지나서 졸립고 지루하시져? 전 간단하게 발표할게여. 글구... 오늘 제 발표는 넘 잼있어서 아마 졸다가도 눈이 번쩍 뜨일 거예여, 크크크.
탑이사塔尔寺, 타(↗)얼(↓)쓰(↘)의 티베트 명칭은 쿤데링(Kun-bde gling)이랍니당~ '모두에게 복과 평안이 깃든 곳'이라는 뜻이래여. 현지 티베트 발음으로는 '쿰붐 데링'에 가까워서, '쿰붐(Kumbum)'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네요. 하지만 요새는 옛날 티베트 명칭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니깐, 우리도 할 수 없이 탑이사, '타(↗)얼(↓)쓰(↘)'라고 부를 수밖에 없겠네요. ㅠㅠ
탑이사는 위대한 종교 개혁자인 쫑카바(쯔옹카바, Tsongkhapa, 宗喀巴)를 기념하기 위해, 1379년에 그의 탄생지에 건립한 청해성 최대의 티베트불교 사원이에요. 현존 6개 티베트불교 종파 중에서 최대 종파인 겔룩파(格鲁派)의 창시자이기도 하죠.
겔룩파는 스님들이 노란 모자를 써서 황교黃敎라고도 한답니당~ 여러분, 달라이라마 아시져? 다들 그분 사진 한 장쯤은 보신 적 있져? 근데 그분이 머리에 노란 모자 쓰신 거, 기억 나시남여? 왜 노란 모자를 쓰셨을까여? 그쵸 그쵸! 바로 겔룩파의 수장首長이시기 때문이져.
(좌) 노란 모자를 쓴 쫑카바의 탕카(佛畵) 앞에 앉은 14세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 성하. (우) 목조 감실에 모신 쫑카바 조상. 전남 보성 대원사 티벳박물관 소장.
다시 말하자면... 역대 달라이라마들은 모두 쫑카바(1357~1419)의 제자라는 사실! 근데 달라이라마는 죽으면 몸을 바꿔 다시 환생한다니깐... 정말 그렇다면 오늘날 달라이라마 14세는 쫑카바가 열세 번 죽었다가 다시 환생한 몸이라는 이야기~ 어때여? 놀랍고 재밌고 신기하져?
(이희원) 글쎄... 신기하긴 한데, 구라 같기도 하고... 재미는 그닥... 뭐 그걸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시나?
(이혜린의 발표)
에이 잼있으면서 괜히 그러셔~ ^^;; 암튼 쫑카바(1357–1419)는 티베트불교의 어떤 면을 어떻게 개혁했을까여? 결론만 말하자면... '은밀함'을 '자격'으로 개혁했답니당~ 헤헤~ 뭔 말인지 더 궁금하시죠? ^^
음... 티베트불교에는 인도에서 전해진 밀교密敎의 전통이 있어여. '은밀할 밀', '가르칠 교'. 은밀하게 가르친다는 거져. 욕망과 분노, 두려움 등등의 강렬한 에너지를 깨달음의 방편으로 삼는 아주 특별한 수행 체계래여.
그런데 그런 내용을 아직 배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게 가르쳐주면 자칫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심각한 부작용에 빠질 수 있어서... 특별히 계율을 잘 수행하고 학문과 인격을 갖춘 수제자에게만 은밀하게 전하는 가르침을 '밀교'라고 한답니다.
아니 근데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은밀하게 거시기할까여?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에너지는... 호호홍~ 바로 성이랍니당~ 뭐니 뭐니 해도... 섹스가 인간의 가장 강렬한 에너지잖아여~ 그쵸? 호호홋.
티베트불교에는 '성 에너지'를 은밀하게 가르치는 탕카와 조상이 많다. 대원사 티벳박물관 소장.
현자賢者에게는 커다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방편이자, 공空과 자비의 상징이 되어줄 수 있는 긍정 에너지이지만...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주화입마! 완전 멘붕, 윤붕으로 이어지게 되죠. 그래서 결국 11~14세기에 티베트불교는 성적 방종과 도덕적 해이, 권력형 타락 현상이 만연하였다네여.
(이희원) 윤붕? 그런 말도 있소?
(이혜린) 윤리의 붕괴라고... 제가 만든 말이예여. 헤헤.
(다 같이) 하하하. 호호호.
(이혜린의 발표)
아무튼 그래서 당시 티베트불교는 '은밀하게' 아니 거의 '공공연하게' 타락해 간 거져. 그러던 중 서녕 황중湟中 출신의 쫑카바가 나타나서 새로운 주장을 펼쳤어여. 밀교의 핵심은 '은밀함'이 아니라 '자격'에 있다~, 계율을 잘 수행하고 학문과 인격을 갖춘 수제자만이 배울 '자격'이 있는 거다~, 그렇게 강조한 거져.
그 후 쫑카바의 이런 주장에 공감하고 추종하는 무리들이 점점 늘어났대여~ 티베트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가 만들어진 거져~ 제자들은 스승의 출생지에 탑이사를 세우고... 교학과 수행의 결합, 즉 이론에 버금가는 철저한 실천으로 신도들의 신뢰와 권위를 얻으면서 타락해 가던 티베트불교의 면모를 일신했대여~
그러니깐 쫑카바는 이를 테면 그리스도교의 마틴 루터라고 할 수 있겠져? 뽄라캉(서녕)의 탑이사는 종교개혁의 성지였던 거구요.
그 후 몇몇 제자들은 라싸에 간덴과 드레풍 사원 등을 세우며 교세를 확장해 나가다가, 17세기에 제5세 달라이라마인 아왕 로샹 갸초(1617~1682, Ngawang Lobsang Gyatso)가 몽골의 지원을 받아 고원 전체의 권력을 장악하고 라싸에 뽀딸라(포탈라) 궁전을 건립하면서, 티베트의 제정일치 제도를 완성하게 된 거랍니당~
(이희원) 음, 질문 있소. 그래서 우리 혜린 쌤은 '밀교'를 배운 게요?
(이혜린) 오머 오머~ 회장님~ 그런 거 물어보시면 성희롱이에여~ 호호
(다 같이) 하하하. 호호호.
(이혜린) 제 발표는 이상이고여, 다음은 일월산과 청해호에 대해서 가이더님께서 이야기해주시겠슴당~ ^^
(소오생) 아, 이건 제 예전 여행 기록을 나눠드릴 테니 각자 자유롭게 휴식하면서 읽어보는 걸로 대체하죠. 잠시 쉬겠습니다~ ^^;;
※ 혜인의 정리 :
① 서녕 : 일월산 자락에 위치.
* 4~6세기, 토욕혼吐峪渾 점령.
* 7세기, 쏭짼깜뽀 군사 전초 기지
* 8~9세기, 토번 대제국의 주요 교두보. 지방 권력으로 등장.
* 14세기, 명나라, 이 지역을 서녕西寧이라고 이름 짓다.
* 14세기, 탑이사(타얼스, 쿤데링 사원) 건축. 쫑카바와 겔룩파의 종교개혁 근거지.
* 14세기 이후, 서녕의 티베트 지명: 뽄라캉(지방 권력의 사원). 제정일치 시작.
② 쫑카바의 종교개혁 : 성적 방종으로 흐르던 밀교 교육에 엄격한 자격 부여.
③ 겔룩파(格鲁派): 황교黃敎. 창시자, 쫑카바. 종파의 수장: 달라이라마.
④ 제5대 달라이라마 아왕 로샹 갸초: 뽀딸라궁(포탈라궁) 건축. 제정일치 제도의 완성.
탑이사(타얼쓰/쿤데링). 굉장히 넓다. 사원이라기보다 커다란 마을이다. 출처: 바이두.
(소오생의 일월산 여행 일지)
1996년 6월 4일.
일월산과 청해호를 처음 만났다.
엄청난 감동이 가슴속에 하나 가득 밀물처럼 밀려왔다.
일월산과 청해호, 그리고 그 주변의 지명들을 다시 한번 익혀보셔요. ^^
아침. 서녕역 옆의 철도빈관鐵道賓館 호텔(?)에서 제공하는 1박 2일 투어에 참가했다. 목적지는 청해호 서쪽 끝에 위치한 조도鳥島. 철새들의 천국이란다. 교통편은 5인승 푸조 픽업 차량. 관광객은 나를 포함해서 4명, 운전기사와 가이드까지 모두 6명이다. 4명 관광객에 굳이 '가이드'까지 태워 차량의 정원을 초과하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그래도 공간은 전혀 비좁지 않았지만...
서녕역. 철도빈관은 사진 우측에 있었다. 훗날 다시 찾아가 보니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96. 6. 6.
맑고 푸른 봄날이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하늘은 높았고 세상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연도의 풍경은 낯설었지만, 몸도 마음도 달력도 시간도 아직은 내가 알고 있던 세계 속에 있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어느 야트막한 고갯마루에서 차가 멈추었다.
"여기는 일월산 고갯마루예요. 쉬었다 가겠습니다. 옛날 문성공주가 쏭짼깜뽀에게 시집갈 때 지나갔던 길이죠. 해발 3,520m의 고원이니까 화장실 급하다고 절대 뛰지 마세요."
일월산 고갯마루. 중앙 왼쪽에 보이는 두 개의 정자 사이로 길이 지나간다. 2005. 8. 20.
응? 여기가 해발 3,500? 백두산 꼭대기보다 더 높다고? 언제 이렇게 높은 곳으로 올라왔다지? 고개라기엔 너무 완만했고 오르막이라기엔 너무 평평했다. 대관령 고갯길처럼 굽이굽이 숨차게 오르지도 않았고, 속리산 말티고개처럼 온몸을 좌우로 흔들어대는 회전도 없었다. 그저 땅이 슬쩍 들어 올려진 느낌?
어린 시절부터 늘 높은 곳을 올라가 보고 싶었다. 히말라야에는 8,000m가 넘는 고봉이 수두룩하다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백두산 2,744m라니. 그것도 남한에서는 겨우 한라산 1,950m라는 게 은근히 자존심 상했다. 그런데... 3,500에 올라왔다고? 그 숫자 하나 만으로도 묘한 흥분과 감격에 사로잡혔다.
늘 일망무제의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고 싶었다.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이 오로지 하나의 직선만이 끝없이 누워있는 스펙터클한 광경을 보고 싶었다. 기차로 김제평야를 지날 때나 배를 타고 제주도를 향할 때면 언제나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폈다. 짧은 한 순간만이라도 끝없는 일직선을 보고 싶었지만 늘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 참고 :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는 지평선을 볼 수 없다. 사방에 섬 하나 없이 거칠 것 없는 수평선은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다. 소오생은 2003년 1월 울릉도 성인봉 정상에서 360도 일망무제의 수평선을 목격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평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었다. 참고: 매거진 [ 울릉도, 방랑의 추억 ]
나는 왜 그리도 높은 곳을 올라가 보고 싶었던 걸까?
왜 그렇게 일망무제의 수평선 지평선이 보고 싶었을까?
소오생의 청년 시절은 군사 독재정권 시절이었다. 해외여행은 당연히 금지. 밤 12시만 되면 어디서나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원조회에 걸려 유학도 가지 못할 뻔했다. 읽고 싶은 책, 듣고 싶은 노래에는 왜 그리 금서 금지곡이 많았는지. 심지어 '중공' 지도만 가지고 있어도 국가보안법 위반인 시절이었다.
우물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보다 높은 곳에서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1981년,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유학을 갔다. 드디어 탈출했구나...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1990년 여름, 교수 신분이 되어 적성 국가인 '중공'을 방문해서 만리장성에 올랐다. 내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감개무량했다.
그리고 1996년 6월 4일 오전 11시.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일월산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서쪽을 바라보니... 한 번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스케일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덩리쥔의 노래 한 소절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청해성의 대초원, 한눈에 볼 수가 없구나.
히말라야 봉우리, 하늘 끝까지 이어졌도다.
靑海的草原, 一眼看不完; 喜瑪拉雅山, 峰峰相連到天邊。
<중화민국 찬가(中華民國頌)>의 첫 소절.
20여 년 전 막연히 뇌리에 스쳤던 그 환영이 20여 년 후 현실 속 광경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1996. 6. 4.
중국어과에 진학하여 처음 들은 중국 노래였다. 처음 배운 중국어로 그 가사를 듣는 순간,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끝없이 펼쳐진 녹색의 대초원. 그 지평선 하늘 끝 언저리 아스라한 곳에 만년설을 머리에 얹은 설산들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환영이 되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20여 년 후, 그때 얼핏 뇌리에 스쳤던 그 장면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된다고 했던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 지금 그 가사를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이어지는 가사는 이렇다.
"성인 현자들께서 이곳에 나라를 세우셨으니/ 모진 비바람 속에 오천 년을 우뚝 섰도다. 중화민국, 중화민국~ 모든 시련 이겨내리! 황하와 장강의 물결이 마르지 않는 한/ 중화민국, 중화민국~ 천년만년 영원하리!"
아니, 청해성의 대초원과 히말라야는 원래 티베트땅 아닌가. 그런데 '성인 현자'들이 '이곳'에 나라를 세워서 오천 년을 이어왔다니, <티베트 찬가>라면 모르겠으되 어떻게 <중화민국 찬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모르면 속는다. 어리석어진다.
정자가 하나 있었다. 일월산 고갯마루의 정자. 정자 안쪽 벽에 말을 탄 여인의 그림이 있었다.
문성공주. 지금은 그 이름을 정확히 부를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갔다.
그림은 보았으나 의미는 보지 못했다. 그날의 나는 아직 이전의 세계에 속해 있었으니까.
일월산 고갯마루의 정자. 문성공주가 이곳에서 엄마가 보고파 거울을 꺼내보다가 떨어뜨려 두 조각이 났단다. 한 조각은 해가 되었고, 또 하나는 달이 되었단다. 그래서 이름이 일월산이 되었단다. 1996. 6. 4.
고개를 넘자 갑자기 아스팔트 길이 환하게 열렸다. 왕복 2차선,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 고속도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거칠 것 없이 뻗은 길이었다. 오가는 차 한 대도, 사람 한 명도 없었다. 따스한 적막 속에 100km로 질주하는 푸조 픽업 차량의 부드러운 엔진 소리만 들려왔다.
새로운 세계의 풍광들이 보인다. 신록의 대초원 여기저기 하얀 점으로 흩뿌려진 수만 마리의 양 떼. 지평선에 아스라이 걸쳐진 바옌카라 설산의 연봉...
왠지 눈물이 흐를 것 같아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어라, 언제 나타난 거지? 짙푸른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청해호였다.
바람이 불자 파도가 일어났다. 해안선에 밀려와 부서지는 물결. 이게 정말 호수인가. 여기가 정녕 백두산 정상보다 500m나 더 높은 곳이란 말인가.
(상) '청해호'는 티베트 지명인 '응온뽀 초(sngon po mtsho, 푸른 바다)'를 직역한 말이다. '초'는 '바다'라는 뜻. 그러나 티베트에는 우리가 말하는 '바다'란 없다. '커다란 호수'를 '바다(초)'라고 한다. 사실 청해호는 염수호다. 바다나 마찬가지다. 사진 출처: 바이두. (하) 2005. 8. 29.
전면을 보았다. 하늘엔 파란 옥색의 세룰리안블루, 왼편에는 비취 바람 스쳐 가는 초록 고원의 지평선, 오른편에는 영혼까지 스며드는 코발트블루의 수평선... 그 사이를 가르며 다크 그레이의 아스팔트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했고 경이롭다는 말은 너무 얌전했다.
그날의 청해호는 내가 알던 세계의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는 풍광이었다.
(상) AI 생성 이미지. (하) 청해호. 해발 3,260m. 둘레는 약 360km. 면적은 약 4,400㎢로 경기도의 절반 넓이다. 사막으로 이루어진 사도沙島와 철새 서식지인 조도鳥島가 있다. 실제 섬은 아니다.
밤 10시. 조도에 도착.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도 풍경지역 앞에 위치한 자그마한 티베트 마을에 도착한 것. 그러나 '티베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허름한 숙소 환경에만 신경이 쓰이고, 마을을 둘러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몸은 다른 세계에 한 발을 걸쳐놓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이전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밤 11시. 이제야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왜 이렇게 낮이 길지? 중국 전역이 똑같이 북경 시간을 표준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한참만에 떠올렸다.
1996년 6월 5일. 영하 5도.
아침에 눈을 뜨자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밖에 나가자 살을 에는 북풍에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얇은 봄 옷차림에 여름 샌들을 신은 맨발의 청춘(?)이었으니 안 추운 게 이상하다. 배낭을 서녕 철도빈관에 맡겨두고 왔으니 방법이 없다. 며칠 전에는 분명 차디 찬 냉수로 샤워를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조도 풍경 지역 입구.
호수 쪽으로 허수룩한 철조망이 쳐있다. 입구 옆에 곧 쓰러질 것 같은 매표소엔 아무도 없다. 삭풍이 몰아치는 벌판엔 덩그마니 우리 일행뿐. 30분이 지나서야 티베트 할아버지 한 양반이 와서 입장권을 판다. 그런데... 가이드 아가씨와 언성이 높아진다. 무슨 사연이지?
알고 보니 기사와 가이드도 똑같이 입장권을 사야 한다는 것. 입장권은 30 위앤. 당시 한국 돈 3,000원.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당시 중국인 교수 월급이 600~700 위앤 정도이니 그들로서는 큰돈이다. 당연히 기사와 가이드는 자기들 돈으로 입장권 사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그렇다고 차를 놓고 우리끼리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란다.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다가 돌연 가이드 아가씨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여러분 중에 운전면허증 있는 분 안 계세요? 여러분끼리 운전하고 다녀오셔요!"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면허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니...
다들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으으윽...
운전석에 앉았다. 어라? 클러치가 어디 갔지? 프랑스제 푸조 504 픽업 차량은 변속 레버를 발로 조작하는 게 아니라, 핸들 옆에 달려서 손으로 밀고 당기는 차였다. 이런 차는 한 번도 몰아본 적이 없다. 본 적조차 없다.
5분 동안 기사에게 즉석 교육을 받았다. 레버를 밀고 당기는 법, 클러치를 떼는 타이밍... 설명은 끝났고, 선택지는 없었다. 세 명의 승객을 태우고 황무지로 나갔다.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짧은 거리였지만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조도를 찍고 돌아오는 내내 숨을 참고 운전했다.
※ 주의: 중국에선 운전해 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조심하시라! 작은 사고 하나만 나도 몽땅 그대 책임이다.
(좌상) 철새들의 천국, 조도. 조류 독감 때문에 자주 폐쇄된다. 사진 출처: 바이두. (우상/좌하) 갑자기 몰아친 혹한에 새들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우하) 바위 위에 일부만 보인다. 96. 6. 5.
돌아오는 길.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날까지 싱그러웠던 푸른 초원 위에 눈보라가 휘날린다. 봄에서 겨울로, 여름에서 한겨울로... 시간이 뒤죽박죽, 다른 세계로 뛰어들어간 느낌이다.
눈 덮인 초원 위에서 원주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 눈과 이 바람, 이 넓이와 이 높이는 그들에겐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세계일 테니까. 설산 바옌카라 연봉은 여전히 그 자리이고 푸른 초원은 하얀 눈 이불 아래 여전히 숨을 쉬고 있을 테니까.
다시 돌아온 일월산 고갯마루.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일월산은 한갓 '지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라는 사실을. 여기까지가 내가 알던 세계였고, 저기부터는 전혀 다른 시공의 세계였다. 문성공주가 그러했듯 소오생 역시 이 일월산을 통해 과거의 세계와 이별하고 있었다. 새로운 삶과 죽음의 패러다임, 티베트를 만나고 있었다.
(소오생) 다 읽으셨죠?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이혜린) 쌤, 쌤! 염립본이 그렸다는 <보련도> 미션은 내주기만 하시공... 그 얘기는 안 하실 거야여? 대체 그림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거예여? 궁금하자나여~~!
(소오생) 하하, 그럼 그 얘기도 오늘 마저 할까요?
(이희원) 어허~ 됐소이다. 오늘은 일월산 얘기만 한다며?
(소오생) 하하, 그럼 그 미션은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다음 모임에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두 손 모아 인사하고 끝내겠습니다.
당신에게 상서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평안이~
(혜인 생각)
온라인 수업이 끝났다.
화면이 꺼졌지만,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서녕, 청해호, 일월산, 조도...
종이에 펜으로 써보았다. 작은 동그라미도 그려 보았다.
아직은 이름뿐인 장소들. 그러나 낯설지 않다.
누군가 그곳에 멈춰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멈춘 열차 속에서 그가 내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함박눈 쏟아지는 고갯마루에서 그가 내게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떠날 것 같다.
날짜도 계절도 없는 그 어느 날, 그곳에서 만날 것 같다.
지금 나는 어쩌면 과거의 세계와 이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다른 세계의 문턱에 이미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밤새 라싸의 바람이 불었다.
<계속>
(상) 청해호에서 바라본 사도. 출처: 바이두. (하) 소오생이 인솔했던 문화체험단 학생들. 2005. 7. 5.
(상) 난주/서녕 일대를 가게 되면 꼭 세계문화유산인 병령사를 들러보시길 추천한다. 무엇보다 달나라에 온듯한 유가협의 풍광이 너무도 이색적이다. 출처: 바이두. (하) 폭우 속의 병령사 & 인솔했던 학생들. 2005. 7. 1.
티베트 사람들은 황하를 '마튜'라고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라는 뜻. 황토고원을 지나기 전, 티베트고원의 황하 상류는 이렇게 맑고 깨끗하다. 출처: 《중국국가지리》
(좌) 유가협. 마튜가 황토고원을 지나온 탁한 물과 만나는 장면. 출처: 《중국국가지리》(우) 유가협. 마튜가 황하로 변신하는 순간. 폭우 속에서 병령사로 가는 모터보트에서 찍은 장면이다. 2005. 7. 1.
<차마고도 사이버여행>의 이어지는 글은 이사를 마치고 난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약 두세 달 후? 그 동안에는 짧고 편한 글들을 먼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서울로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집주인과의 갈등도 조금 버겁네요. 이사 가려고 마음 먹으니 거실에 전기도 나가고, 책상 아래 바닥은 난방이 안 되어 냉골~, 베란다에선 문짝이 안 맞아서 찬 바람이 쓩쓩~~ 저 닮아서 집도 여기저기 고장이군요, 쩝. 법원은 또 왜 그리 문턱이 높은지, 행정이 아직도 70년대 동사무소 수준! 숱하게 찾아가게 만드니... 사법 개혁, 이래저래 정말 꼭 이뤄내야겠더군요.
눈치 채셨나요? 네, 지금 그동안 글 올리지 못한 변명을 하고 있는 중이예요. ㅠㅜ 그래도 맨 처음 법원에 다녀온 날은 너무 힘들었는데, 예닐곱 번 다니다 보니 지금은 이력이 난 건지 그럭저럭 체력이 버틸 만 합니다. 모두가 염려해주신 여러 글벗님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
# 하서주랑(하서회랑), 카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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