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여행 오리엔테이션 (5): 룽다와 다르쪽
※ 매거진 《차마고도 사이버여행》은 글의 가독성과 흥미를 위해 픽션 요소를 가미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중국 여성의 성과 사랑》에서도 등장했던 가상의 인물, 소혜인이라는 여성 화자가 평소 티베트 땅을 간절히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티베트 답사에 참가하여 활약한다는 가정 하에서 서술하겠습니다. 글벗 여러분의 많은 질책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소오생 가이더의 미션)
아래의 사진 4장을 함께 보면서 5분 이상 명상해 볼 것.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2007. 1. 27. 영빈대에서 바라본 메이리설산. 왼쪽 끝 봉우리가 미엔츠무, 오른쪽 끝이 카와거버.(6,740m)
(상) 티베트 민속화. 출처: 바이두 (하) 한국 색동저고리. 출처: 구글
(혜인의 명상)
'타르쵸'라고 했던가. 오색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멀리서 온 색인데 왜 이리 가까울까. 가본 적 없는 풍경인데 왜 이리 반가울까.
오색은 바람을 타고 길게 늘어져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거문고의 현絃이 되었다.
천 년의 바람 소리, 만 번의 기도 소리를 들은 거문고의 현이 몸을 떨고 있었다.
내 안의 떨림이 울려 나왔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색이 소리로 바뀌고 소리가 색으로 바뀐다.
태초에는 색이 소리였고 소리가 색이었다는 듯이.
붉은색은 한 번 숨을 들이마실 때의 뜨거움.
노란색은 등 뒤를 쓰다듬는 햇살의 어루만짐.
초록색은 고원을 떠도는 상큼한 사랑의 밀어.
하얀색은 잃어버린 시간을 안아주는 고요함.
그리고... 바람에 젖은 색깔 하나가 내 시선 위에 가만히 멈추었다. 파랑... 내가 어릴 적 처음 배운 하늘의 이름. 하늘은 파란색, 이 세상은 바람소리, 저 바람은 나에게 불어오는 것. 가르쳐준 이 없어도 그렇게 배웠다.
파랑이 나부낄 때마다 내 안의 오래된 무늬가 흔들렸다. 어린 시절 겨울 툇마루 끝에서 두 팔 벌리고 뱅글뱅글 돌던 내 웃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때 입었던 색동저고리의 소맷자락이 바람의 결을 타고 슬며시 내게로 되돌아와 펄럭였다.
티베트의 단청일까? 경복궁 어느 천장의 모서리에 숨어있던 그 문양도 말없이 말을 걸어온다. 대들보 위에 앉아 있던 색깔들도 기억을 더듬는다. 한반도와 티베트가 갑자기 손을 맞잡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하나의 우주에서 갈라져 나온 것처럼...
색이란 망각의 기억까지 이어주는 길인 것일까.
멀리서 온 색이 내 안의 오래된 색과 맞닿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간절하게 티베트고원을 그리워했던 이유. 어쩌면 풍경이 아니라 기억의 고향이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Zoom 온라인 강의실 ]
(소오생) 두 손 모아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하시겠습니다.
당신에게 상서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평안이~
(소오생) 먼저 지리 공부를 좀 할까요? 조금은 낯설고 생소하겠지만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여행을 다니다간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겠죠? 기본적인 지리 공부는 꼭 익혀두셔야 한답니다. 생소한 티베트의 지명, 억지로 외우려고 하지는 마셔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사랑으로 대하고 익히시면 어느새 친해지리라 믿습니다.
무릇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게 마련이죠.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춘수 시인이 노래했듯... 우리가 이 땅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면 티베트고원도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되어줄 것입니다. 아셨죠?
고원의 명칭
옛날에 티베트 사람들은 자기네 땅/나라를 '뵈[böd]'라고 불렀답니다. 여기서 [d]는 묵음. 그런데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은 이곳을 '튀뵈[Tüpüt]' 또는 '투뵈[Tupüt]'라고 불렀죠. 그 발음이 13세기 이후 유럽에 들어가 '티베트/티벳(Tibet)'이라는 발음이 탄생한 거죠. 한편 중국은... 옛날에는 '토번, 투판[吐蕃, Tǔfān]'으로 음역했고, 오늘날에는 '씨(→)짱(↘)[西藏, Xīzàng]'이라고 의역해서 부른답니다.
(혜인의 정리)
▶ 뵈[böd] : 티베트의 전통 명칭
▷ 튀벳[Tüpüt] : 북방 유목민족들이 부른 명칭
▶ 티베트/티벳[Tibet] : 유럽인들이 부른 명칭 ⇒ 현재의 국제 표기
▷ 토번, 투판[吐蕃, Tǔfān] : 고대 중국인(당나라)들이 부른 명칭(음역)
▶ 씨(→)짱(↘)[西藏, Xīzàng ] : 현대 중국인들이 부르는 명칭(의역)
티베트의 행정구역
중국에는 북경 상해 천진天津 중경重慶 등 4개의 직할시와 22개의 성(省, Province). 음... 대만臺灣을 포함하면 23개의 성省이 되겠군요. 그리고 5개의 소수민족 자치구自治區와 홍콩 마카오 등 2개의 특별행정구가 있답니다. 그중에서 티베트는 어떤 행정구역에 속해 있을까요?
(다 같이) 자치구요!
(소오생) 우와!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 다들 척척박사시네요. 그렇습니다. 티베트족은 현재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까, 소속 행정구역은 당연히 5개 소수민족 자치구 중의 하나인 '티베트자치구'겠죠.
그런데 현대 중국에서는 티베트를 '씨(→)짱(↘)'으로 부른다고 했죠? 그러니까 행정구역의 중국 명칭은 [ 씨(→)짱(↘) 즈쯔(↘)취(→) Xī zàng zìzhìqū ]라고 한다는 것. 그리고 '티베트'를 한 글자로 줄여서 표현할 때는 '장藏'이라고 하고, '티베트족'은 '장족藏族'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아두셔요? ^.~
다 같이 저를 따라서 큰소리로 발음해 보실까요? 열 번 시작~! ^^
(혜인의 정리)
▶ 티베트자치구(국제 표기) = 西藏自治區(현대중국 표기)
[ Xī zàng zìzhìqū, 씨(→)짱(↘) 즈쯔(↘)취(→)] (현대중국어 발음)
▷ 티베트족 = 장족藏族 = [짱(↘)주(↗)] (현대중국어 발음)
여기서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상식 한 가지!
티베트고원과 티베트자치구의 개념과 범위는 크게 다르답니다!
먼저 아래의 입체지형도를 보실까요?
티베트고원이 생각 외로 굉장히 넓죠?
중국 전체 면적의 약 1/4, 한반도 전체 면적의 11배나 된답니다.
그런데 티베트고원은 아래의 지도처럼 다시 여러 개의 행정 구역에 분산되어 있어요.
① 티베트자치구 전역
② 청해성의 약 95%
③ 감숙성의 약 10%
④ 사천성의 약 45%
⑤ 운남성의 약 10%
티베트고원은 이렇게 다섯 개의 행정구역에 분산되어 있답니다.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찢어졌을까요?
그 경계에 무슨 큰 산맥이 있거나 커다란 강이라도 흐르는 걸까요?
NO!
아뇨, 지리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알아본 것처럼 ① 티베트자치구와 ② 청해성 사이의 당굴라(Dang-gula, 唐古拉, Tanggula) 산맥 외에는 딱히 경계선으로 삼을 만한 산맥이나 강은 없답니다. 그러니까 지형 지세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냥 지도상에서 아무렇게나 선을 그어버린 거죠.
(이혜린) 아니 누가요?
(소혜인) 아니 왜요?
(소오생) 언제부터? 19세기 청나라 말부터였습니다. 누가? 청나라 조정이 처음 시도했고, 그다음엔 장제스(蔣介石)의 중화민국이 현실과는 상관없이 자기들 맘대로 지도에 선을 그었고, 또 그다음엔 마오저뚱(毛澤東)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 점령을 통해 그 지도 상의 분할을 현실로 만든 거죠.
왜 그랬을까요?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는 변방의 강력한 유목민족 국가를 제일 두려워했답니다. 특히 몽골과 티베트는 동맹 관계였던 동시에 단일 국가로 방치하기에는 너무나 위협적인 존재였죠. 그래서 내부적으로 그들의 영토를 멋대로 분할한 다음, 자신의 행정력이 미치는 곳부터 점차 수중에 넣자는 계획을 세웠답니다. 그 후 청나라는 망했지만... 이 계획은 3단계에 걸쳐 오늘날 결국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죠.
(혜인의 정리)
▶ 티베트자치구 ≠ 티베트고원
▷ 티베트의 분할
① 계획 단계 (청나라, 19세기말)
② 지도상의 분할 (중화민국, 1912년 ~1949년)
③ 무력 점령 ⇒ '행정구역 분할' 현실화 (중화인민공화국, 1950년)
몽골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복잡한데 그 얘길 하자면 한없이 길어지므로 여기선 일단 통과하겠습니다. ^^;;
(김민호) 행정구역을 분할하면 위협적인 존재가 안 되나요?
(소오생) 하나로 통일되어 있을 때보다는 훨씬 덜 위협적이겠죠. 우리나라 주변 국가들도 한반도의 통일을 두려워한다잖아요? 그래서 1950년 중공군의 티베트 침공 시에, 달라이라마 14세가 외교 국방 등을 포기할 테니 티베트를 분할하지 말고 하나의 전통 종교문화 공동체로 남게 해달라고 제안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단칼에 거절해 버렸답니다. 단일 티베트가 그만큼 두려웠던 거겠죠.
이때 티베트는 UN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한국전쟁의 발발로 동시에 두 곳을 다 지원할 수가 없었던 UN은 전략적으로 한국을 선택했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UN군의 참전으로 나라를 지킬 수가 있었지만, 티베트는 750만 인구 중에 500만 명이 사망하는 참극을 겪으며 중국에 통합되었으니까... 어찌 보면 우리나라는 티베트에 정말 큰 빚을 진 게 아닐까 싶네요... ㅠㅠ
(이혜린) 네에? 750만 명 중에 500만 명이 죽었다구여? 세 명 중에 두 명이 죽었다는 얘기네여?
(소혜인) 6.25 한국전쟁과 같은 시기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UN이 우리를 돕는 바람에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당한 거였어요? 어쩜...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네여... 갑자기 너무 미안해져요... ㅠㅜ
(소오생)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지금은 먼저 아래의 지도를 보실까요?
옛날에 티베트 사람들은 자기네 땅/나라를 뭐라고 불렀다? 그렇습니다. '뵈[böd]'라고 불렀다고 했죠?
그런데 설역 '뵈'는 너무 넓어서 전통적으로 다시 세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불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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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짱(Ü-Tsang; 衛藏) : 오늘날의 티베트자치구
① 티베트 최대 도시, 라싸(拉薩) 지역
②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쩨(日喀則) 지역
(2) 암도(Amdo; 安多) : 오늘날의 청해성 땅의 95%, 감숙성의 10%.
(3) 캄(Kham; 康) : 오늘날의 사천성 45%, 운남성 서북부 등에 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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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고 있어야 할 명칭이니까,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해 보면서 큰소리로 열 번씩 암송해 볼까요?
위짱, 암도, 캄... 위짱 암도 캄... 위짱 암도 캄... 위치를 확인하며 소리 내셔야 합니다?
어때요, 좀 입에 익으셨나요?
머리로 외우려고 하지 마셔요. 까먹어도 상관없답니다.
관심을 가지고 자꾸만 만나게 되면 저절로 기억이 될 테니깐요. 오케이? ^.~
캄 - 가장 티베트다운 곳
그중에서도 특히 캄(Kham; 康) 지역에 주목해 주세요.
우리가 앞으로 답사여행을 떠나게 될 바로 그 지역이니까요.
캄은 '관문/ 변방/ 경계'라는 뜻. 실제로 중국 중원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워서 티베트고원의 관문 역할을 맡고 있죠. 특히 지질학적으로 티베트판과 아시아판이 충돌하는 곳이라서 툭하면 지진이 일어나는 아주 위험한 곳이죠. 2008년에 수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천대지진이 발생한 곳도 바로 이 지역이랍니다.
(이희원) 아니 근데 왜 꼭 그 위험한 데로 답사를 가려고 한단 말이오?
(소오생) 하하, 쫌 무서우시죠? 몇 가지 이유가 있답니다.
첫째, 교통이 대단히 불편해요. 전 세계적으로도 외부에서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운, 아주 험준한 지형이랍니다. 왜냐하면 아래의 그림처럼... 평균고도 4,000m의 높은 고원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4~5개의 큰 강이 있어서 차를 타고 지나가려면 계속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다리가 수백 km에 하나밖에 없어서 강 건너 눈에 빤히 보이는 곳까지 가려해도 1,000km 이상을 돌아가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캄 지역의 지형 개관도
(이희원)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그런 위험한 데를 가냐고? 청개구리 놀부 심보도 아니고...
(소오생) 하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셔야 한답니다. ^^;; 교통이 그렇게 불편하다는 말은... 그만큼 티베트의 정체성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통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캄 지역은 티베트 수도인 라싸보다 더 티베트다운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의 심장인 라싸는 청장철도의 개통 등으로 이미 상당 부분 티베트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거든요.
두 번째는... 티베트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인 다양성과 포용성을 이 지역에서 아주 잘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여기는 고원에 올라서면 매우 춥고, 굽이굽이 고갯길로 강가에 내려가면 상당히 더워져서 심지어 아열대 기후까지 보이는 곳도 있거든요? 이렇게 기후가 다르니 위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티베트 사람들이 나와 타인의 삶이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도 이런 지형지세와 기후 탓이 큰 것 같아요. 어때요? 이만하면 답사할 가치가 있겠죠?
(이혜린) 티베트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 다양성과 포용성이었어여? 결혼도 그렇고 장례 치르는 것도 그렇고, 굉장히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 같던데...
(김민호) 티베트 불교의 가장 큰 특성이 '친절'이라더니, 그럼 그것도 포용성 문화와 관련이 있겠네요?
(소오생)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티베트에는 아주 다양한 결혼문화와 장례문화가 혼재해 있답니다. 예컨대 결혼 문화만 해도... 일부일처, 일부다처, 일처다부, 또는 아예 결혼을 안 하고 자유롭게 이성과 만나는 주혼走婚 등이 있지만 타인의 가정이 어떤 식으로 살든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는답니다.
(소혜인) 우와, 그건 정말 좋은 것 같네여. 우리나라는 타인의 삶에 너무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아여. 툭하면 불륜 운운하면서 입방아를 찧어대는 거, 너무 꼴불견예여. 어머, 그렇다고 제가 불륜을 두둔하는 게 아닌 건 아시져? ^^;;
(이혜린) 호호, 혜인 쌤~ 넘 잼있으셔여~ 아니 누가 뭐래여?
(이희원) 으흐흐~ 수상하구먼? 하하, 농담요 농담! ^^
(소오생) 그런데 그들의 문화를 곰곰 들여다보면... 과연 무엇이 미개하고 야만적이며 무엇이 선진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근본 시각 자체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거기에 티베트 답사의 가치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메이리설산의 카와거버(6,740m)와 란창강(메콩강 상류) 계곡. 표고 차가 무려 4,000m다. 좌측과 우상 사진을 찍은 곳과 우하의 장소는 주거 문화가 완전히 다르다. 티베트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캄, 캄빠, 샹그리라
(소오생) 재미 삼아 캄 지역의 특징을 하나 더 알려드리자면... 티베트말에는 '~빠(pa)'라는 남성 접미사가 있답니다. 명사 뒤에 붙어서... ‘~사람’, ‘~출신’, ‘~에 속한 이’라는 뜻이 되죠. 예컨대 '위짱빠', '라싸빠', '암도빠', '캄빠' 이런 식으로요.
그중에서도 '캄빠', 즉 '캄 지역 사람'들이 아주 유명하답니다. 말을 잘 타고 신체가 건장하고 매우 용맹해서 중국인들이 굉장히 두려워했다네요. 캄 지역이 암도나 티베트자치구보다 면적이 훨씬 작은데도 사천성과 운남성, 감숙성 등 여러 곳으로 분산시킨 건 그만큼 캄빠가 두려웠다는 반증이라는 학설도 있을 정도죠.
(소혜인) 우와, 완전 상남자 마초남이네여?
(이혜린) 호호, 그래두 난 울 쌤처럼 뇌섹남이 더 좋더라. ㅋㅋㅋ
(소오생) 흠, 으흠... 자, 자, 지방 방송 그만 끄고... ^^;;
2001. 12. 17일에 중국 정부가 샹그리라(香格里拉)로 개명한 운남성 게탕쫑. 중국명 中甸(쭝/디엔)
(소오생) 마지막으로 캄 지역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곳이 많답니다. 서구인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여기고 그리워했을 정도랍니다.
1930년대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로크(J. Rock)라는 탐험가 겸 식물학자가 《National Geography》에 이 지역의 사진 및 답사보고서를 연재한 것이 그런 환상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죠.
그 결과 '샹그리라(Shangli―La; 香格里拉)'라는 가상의 유토피아가 탄생하기도 하였구요. 어때요, 이래도 가기가 싫으신가요?
(이희원)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샹그리라? 아 그럼 가야지, 가야 하고 말고. 허허허.
(이혜린) 와, 샹그리라... 좋아여 좋아여!
(소혜인) 와, 샹그리라가 여기 있어여? 정말 가고 싶어여!
(소오생) 아, 아~ 조용, 조용! 흥분하지 마시고... ^^;; 그 얘긴 나중에 다시 하고, 지금은 김민호 선생이 티베트의 '다르쪽'에 대해서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캄 지역을 탐험하고 있는 존 로크(중앙). 1929년 《National Geography》
(김민호의 발표)
대한민국의 상징은 태극기입니다. 그렇겠죠? 티베트에도 국기가 있습니다. 1947년에 제정한 '설산사자기雪山獅子旗'이죠. 아래의 사진처럼...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고, 눈 덮인 산 위에서 사자가 법륜法輪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보성 대원사 티베트박물관에 있는 설산사자기.
하지만 설산사자기를 알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1947년 3월에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범아주대회泛亞洲大會를 기점으로 불과 2, 3년 동안 국제무대에서 사용되었을 뿐이니까요. 그 대신 다르쪽은 티베트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만나고 티베트고원이라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으니까, 그야말로 티베트의 상징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메이리설산 카와거버 봉우리(6,740m)의 하얀 설산을 배경으로 알록달록 오방색으로 펼쳐진 다르쪽의 향연.
다르쪽과 룽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르쪽을 흔히 '타르초'라고 부르는데요, 실제 티베트 발음은 '다르쪽(dar-chok)'에 훨씬 가깝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외국어 표기법에 영향을 받아서 대부분 불교 서적에서 그렇게 표기한 것 같은데, 우리는 답사를 전제로 하는 만큼 원음에 익숙해지자는 의미에서 앞으로 '다르쪽'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르쪽은 티베트의 산길 특히 고갯마루, 마을 입구나 사원, 성소聖所 등의 장소에... 기다란 줄에 걸어놓은 오색 기도 깃발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오색의 다르쪽이 보이면... "아, 이제부터는 티베트고원이구나!" 바로 알 수 있게 되는 거지요. 또 그래서 티베트고원에는 다르쪽이 안 보이는 곳이 없다는 얘기.
(소혜인) 근데... 그 다르쪽이라는 거, 혹시 룽다 아녜여? 다큐멘터리를 보면 타르쵸라는 말도 나오지만 룽다라고도 하던데... 대체 타르쵸... 아니 다르쪽이라고 했지. 다르쪽과 룽다, 어느 쪽 호칭이 맞아여?
(김민호)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르쪽'과 '룽다'를 혼동합니다. 하지만 다르쪽과 룽다는 비슷하지만 분명 서로 다른 개념이랍니다. 명쾌하게 도표로 정리해 드릴까요?
룽다는 원래 '풍마風馬', '바람의 말'이라는 뜻. 티베트사람들은 '바람의 말'이... 망자의 영혼을 하늘로 운반하고, 삿된 기운을 쫓아내는 벽사辟邪의 역할을 담당하며, 복을 비는 사람에게 행운과 소망을 들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룽다는 '풍마 - 바람의 말'이란 뜻이지만, 또는 그 풍마를 그린 종이 한 장, 또는 천 한 쪼가리를 의미하기도 하죠. 근데 이건 개인의 복을 바라는 기복祈福 신앙이니깐 고대 샤머니즘의 잔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주로 개인적인 기도처나 말안장 또는 자동차 운전석과 같은 사적인 장소에 붙여놓습니다.
그러다가 훗날 불교의 정신과 결합해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종교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이 다르쪽이랍니다.
다르쪽은 기다란 줄에 여러 장의 룽다를 매달아 놓은 것도 있고, 경문만 쓰인 것도 있답니다. 중국어 번역으로는 '경문이 쓰인 기도 깃발'이라는 의미로 經幡[jīng fān, 징(→)판(→)]이라고 하죠. 이제 룽다와 다르쪽의 차이를 분명히 아시겠죠?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
(다 같이) 물개 박수~~~
(좌) 룽다 (우) 룽다를 이어서 만든 다르쪽. 하지만 다르쪽에는 룽다는 없고 경문만 쓰인 깃발도 많다.
(이혜린) 근데여, 다르쪽은 왜 우리나라 색동저고리 색깔이랑 똑같아여?
(소오생) 제가 좀 설명할까요? 놀랍게도 다르쪽은 우리나라 색동저고리처럼 오방색으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그뿐만이 아녜요. 정말 놀랍게도 티베트와 우리나라 문화는 상당히 유사한 면이 꽤 있습니다. 특히 '색채의 우주관'이 완전히 똑같아서 굉장히 놀랍습니다.
(이희원) 근데 오방색은 또 뭔 뜻이오? 박근혜가 좋아했단 말은 들었소만...
(소오생) 아 그럼 오방색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설명을 드릴까요? 오방색이란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우주의 구성과 운행원리로 믿었던 오행五行 사상을 색깔, colour와 접목한 이론이에요. 아래의 표를 보실까요?
이렇게 색을 우주의 구성 및 방향과 연계한 것이 오방색이랍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주의 칼라 지도'라고나 할까요?
(좌) 티베트 전통 의복. (우) 오방색으로 그린 만다라. 뵌뽀교의 칼라 우주 지도다. 텐진 남닥,《본교(苯敎)의 만다라》 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 2000.
근데 중국이나 일본, 몽골 등등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민족에는 '오방색 이론'은 있었지만 실생활에서 사용하지는 않았거든요? 오직 한반도와 티베트 사람들만 오방색을 실생활에서 널리 사용했답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색동저고리, 무당의 의복, 단청, 제례, 민속, 오색 나물과 같은 음식에 이르기까지 주로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오방색을 사용했구요, 티베트는 룽다/타르쵸의 오색 깃발이나 라마승들의 의복 또는 만다라 등 주로 종교/의례 중심으로 오방색 체계를 발전시켰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우리나라와 티베트 사람들만 이렇게 우주의 법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생활화한 걸까요?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김민호) 저도 발표를 위해 조사하면서 그 점이 내내 궁금했어요. 티베트와 한반도는 거리상으로 정말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거죠? 그냥 단순한 우연인가요?
한반도와 티베트의 샤먼 제례에 사용되고 있는 오방색
(소오생) 음... 사실은 저도 너무 궁금하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잘 연구해서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 그런데 오방색뿐만이 아녜요. 먼저 제가 예전에 티베트의 어느 사원에서 찍은 사진을 한번 보시겠어요?
(소오생) 티베트 사원은 낮에도 실내가 상당히 어둡답니다. 창문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입구에 두꺼운 장막을 쳐놓은 데다가, 전기가 없어서 야크 버터 등잔불 몇 개만 켜놓기 때문이죠.
근데 어떤 시골 사원의 2층 방에 들어갔더니... 어둠 속에 탈이 잔뜩 걸려 있는 게 희미하게 보이길래,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고 대충 감을 잡아서 찍었는데요, 나중에 보니까 사진 (좌)에 라마 스님 얼굴이 같이 찍혀서 깜짝 놀랐지 뭐예요?
(이혜린) 오머머~ 저게 얼굴이었어여?
(소혜인) 호호호~ 전 가면인 줄 알았어여~
(다 같이) 하하하하
(소오생) 아무튼 그때부터 티베트의 탈춤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죠. 전공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가면극은 중국의 나희儺戱, 일본,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세의 카니발 등등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데요, 거의 대부분 축제와 유희의 성격이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하회탈춤과 봉산탈춤, 그리고 촴(cham)이라고 부르는 티베트의 가면극은 두 가지 면에서 굉장히 독창적인 공통점이 있답니다.
첫째는 탈이 영적인 존재가 임재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가면극은 배우가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공연의 형태에 그치지만, 한반도의 탈춤과 티베트의 촴은 탈을 쓰는 순간 무당이 접신을 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의례(ritual) 형태를 띤다는 것이죠.
둘째는 사회 풍자와 영적 치유의 기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탈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계층의 위선을 폭로하고 풍자해서 그들에게 억눌린 계층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서도, 마지막엔 공동체의 해원解冤과 치유로 귀결된다는 특징이 있죠.
티베트의 촴은 보다 종교적입니다. 귀신과 악귀 또는 그 어떤 장애물(Obstacle)을 춤으로 정화하는 가운데, 선신善神이 악신을 제압하고 우주적 질서를 회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죠. 이 역시 사회적인 비판과 저항, 종교를 통한 영적 치유라는 이중 구조를 지닌다는 점에서 우리의 탈춤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런 페르소나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는 가면극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티베트밖에 없다는 게 학계의 중론 같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죠?
(이혜린) 그람 혹시 우리 탈춤이 티베트 촴에 영향을 준 건 아닐까여?
(소오생) 오~ 굿굿, 좋은 질문! ^^ 그런데... 우리 문화가 티베트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구요~ 반대로 티베트문화가 우리한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을 수도 있지요.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토를 자랑했던 몽골 제국, 다들 아시죠? 그때 몽골은 티베트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놀랍게도 스승의 나라로 받들어 모셨답니다.
몽골군이 티베트를 침공하자 파스빠(Phags-pa)라는 고승이 쿠빌라이 칸(원 세조)을 찾아가 티베트불교 교리로 그를 설득했는데요, 이에 감동한 쿠빌라이 칸은 티베트불교를 국교로 삼고 그를 국사國師로 삼았답니다.
파스빠는 쿠빌라이의 요청으로 티베트 문자에 기반한 몽골 문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죠. 그로부터 티베트는 몽골의 정신적 스승 국가가 되었고 몽골은 티베트의 국방과 외교를 책임져주는... 아주 특수한 국가 관계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려 말기에 몽골의 부마국駙馬國이 되어 '간접 통치'를 받았잖아요? 그때 몽골을 통해 티베트문화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한 거죠. 혹시 여러분... '고수레'라는 말, 아시나요?
(소혜인) 고수레? 저 알아요. 아, 갑자기 할머니 생각나요. 산소 가면 식사 전에 언제나 먹을 걸 조금 떼어 땅에 뿌리면서 큰소리로... 고수레~ 고수레~ 하셨거든요. 지금도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ㅠㅜ
(이혜린) 고수레? 전 처음 들어여. 왜 먹을 걸 땅에 버려여? 그러다가 개미나 벌이 몰려들면 어뜩해여?
(이희원) 하하하~ 혜린쌤은 차도녀라서 잘 모르시누먼. 옛날엔 다 그랬지. 야외에서 음식 먹을 땐 귀신한테 먼저 먹였다오. 고수레~ 소리치면 배고픈 귀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먹곤 했었지. 하하하~~
(소오생) 하하 그런데 티베트에서도 우리랑 똑같이 gho-sur~~! 외치면서 산과 들의 정령에게 음식을 먼저 바친답니다. 발음도 똑같이 고수레, 뜻도 우리랑 똑같아요. 똑같이 샤머니즘의 흔적이 남은 거죠.
(다 같이) 네에? 정말요? 고수레가 티베트말이라구여?
(소오생) 그렇습니다. 그게 과연 혀 끝의 우연일까요? 고수레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왔을까요? 어쩌면 고려 말기에 몽골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방색이나 탈춤 같은 샤머니즘의 흔적은 고려말보다는 훨씬 더 오랜 전승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보다는 아주 오래전 북유라시아 초원 일대에서 유목 생활을 했던... 스키타이 – 알타이 – 흉노 – 돌궐로 이어지는 북방 기마 민족 계열의 고대 샤머니즘이 한반도와 티베트에서 가장 완전한 형태로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
(김민호) 왜 하필이면 한반도와 티베트죠?
(소오생)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 혹시 기억하시나요? 티베트와 한반도는 지형으로 볼 때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고 했죠?
공통점은 뭐다? 산악이 많다! 그게 공통점입니다. 산이 많은 곳에서는 산을 죽어있는 무생물로 보지 않고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깁니다. 샤먼(shaman)은 바로 그 산의 신령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를 말하죠.
차이점은 뭐다? 한반도는 통발형이어서 뭐든지 쉽게 들어오되 빠져나갈 곳은 없는 막다른 곳. 그래서 좁은 땅덩어리 안에 유교 불교 도교 등등이 유입된 후 아직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거죠. 이 한반도에 가장 먼저 유입되어 가장 오래 남아있는 것이 바로 샤머니즘인 거죠.
티베트는 또 어떻다? 티베트는 들어가기도 어렵고 빠져나가기도 어려운 밀폐형이라고 했죠? 티베트에 들어간 것은 딱 두 가지, 샤머니즘과 불교뿐이랍니다. 물론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도 없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한 상태라 전체적으로는 무의미한 수치이죠.
산과 샤머니즘과 불교. 오늘날까지 그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동네는 지구 상에서 딱 두 군데, 티베트고원과 한반도 뿐인 거죠. 그게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핵심 키워드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좌) 한반도의 산악. 사진 출처: 국립공원관리공단 (우) 캄 지역의 산악. 출처: 《中國國家地理》2004.7.
시베리아 – 티베트 – 몽골 – 만주 – 한반도로 이어지는 고대 북방 샤머니즘은 하늘 · 산 · 바람 · 정령 · 영혼 숭배를 중심으로 비슷한 우주관을 지니고 있었다네요. 그것을 각자 소중한 불씨처럼 전승해 내려온 티베트고원과 한반도는... 비록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화 구조가 닮을 수밖에 없는 거죠.
결론적으로 티베트 뵌뽀와 한국 무속은 북방 샤머니즘의 공통 원형(原型, Archetype)이... 오방색이라는 색채 우주론과 가면무(탈춤), 주술 언어(고스레) 등을 통해 전승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까 직접 영향을 주고받았다기보다는 같은 계통의 문화적 조상을 공유한다고 보는 게 보다 타당할 것 같다는 이야기! 오케이?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모임에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두 손 모아 인사하고 끝내겠습니다.
당신에게 상서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평안이~
(혜인 생각)
인터넷수업이 끝났다.
줌 화면 너머로 이희원 회장님, 민호쌤, 혜린쌤, 그리고 소오생 가이더님의 모습이 차례차례 사라졌다.
문득 저마다의 방 안에 앉아 있는 우리의 얼굴이 하나의 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얼굴들이 변검을 하듯 번갈아 다른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부모와 자식, 사랑과 증오, 연인과 친구, 천사와 악마... 짧디 짧은 삶 속에서 순식간에 수많은 페르소나를 번갈아 쓰고 산다.
페르소나를 벗고 싶다. 내 진짜 얼굴이 보고 싶다. 촴과 탈춤은 '영적 존재가 찾아오는 통로'라지? 이번 차마고도 답사가 내 영혼을 찾아내는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번갈아 쓰고 있었던 수많은 페르소나에서 벗어나서 나의 진짜 얼굴을 찾고 싶다.
2007. 1. 26. 메이리설산 카와거버 아래 명영明永 빙하 전망대에서
'고수레'... 오늘 내 마음을 가장 오래 붙잡은 말이다. "고수레~ 고수레~" 할머니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어릴 적 산소에 갈 때마다 밥 한 숟갈, 고기 한 점을 뚝 떼어내어 뿌리시던 그 동작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풍경이 겹쳐진다. 어느 티베트 할머니가 gho-sur~ 외치면서 산과 들의 정령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장면과 그대로 오버랩되고 있다. 한반도와 티베트... 멀리 떨어진 이 두 땅이 서로 말을 나누는 듯.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저릿해온다.
샤먼이 산신령과 대화하듯, 우리도 평생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존재와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 이름을 '하늘'이라고, 누군가는 '조상님'이라고 부른다. '우주의 법칙'이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냥 '운명'이라고 부른다. 그 이름들은 어쩌면 우리 안의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는 서로 다른 방법일지도 모른다.
동쪽의 푸른 기억, 서쪽의 하얀 기억, 남쪽의 붉은 기억, 북쪽의 검은 기억, 가운데를 지키는 누런 기억...
오방색은 그 기억을 찾아가는 좌표이자 나침반이 아닐까.
티베트의 다르쪽도, 우리의 색동저고리도, 무당의 옷과 제례의 천 조각들도, 각자 마음속 우주를 잃지 않으려고 달아 놓은 작은 나침반이 아닐까.
가장 티베트다운 곳. 캄의 그 어떤 고갯마루... 다르쪽이 촘촘히 걸린 산길 어딘가에 서서 묵묵히 그 기억의 고향을 지켜온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인사하고 싶다. 고수레~ 고수레~ 감사의 마음을 한 줌 떼어 바치고 싶다. 따시뗄레~ 당신에게 상서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평안이...
2007. 1. 25.
< 계속>
(가이더의 미션)
아래 그림은 중국이 자랑하는 중국 10대 명화 중의 하나인 <보련도步輦圖>입니다. 당나라 때 화가 염립본閻立本의 그림이지요. 당 태종이 튀베(吐藩; 티베트)제국의 임금 송짼감뽀의 사신인 뤼뚱짠을 접견하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우측의 연을 타고 있는 인물이 당 태종이구요, 맨 왼쪽부터 통역관, 두 번째가 뤼뚱짠, 세 번째 인물은 접견 행사를 진행하는 당나라 측의 전례관典禮官입니다. 위풍이 당당해 보이는 당태종은 거만한 표정인데 비해, 왜소한 체구의 뤼뚱짠은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이군요.
이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지금 뤼뚱짠은 청혼을 하러 왔답니다. 당태종의 딸을 튀베 임금인 쏭짼깜뽀에게 시집 보내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리하여 당태종은 문성공주를 티베트로 시집 보냅니다. 이때부터 최초의 차마고도라고 할 수 있는 당번고도(당나라와 토번을 잇는 길. 唐藩古道)가 열리게 되고, 중국과 티베트는 교류를 시작하게 됩니다. 중국은 이 사건을 근거로 티베트는 이때부터 중국에 속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서남공정'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많은 문제가 있답니다. 어떤 문제일까요?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검색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생각나면 생각하고, 아니면 생각하지 않으면 됩니다. 재밌는 미션이죠? ^^
# 오방색, 색동저고리
# 티베트자치구 ≠ 티베트고원
# 위짱, 암도, 캄
# 캄, 가장 티베트다운 곳
# 캄빠, 샹그리라
# 타르쵸, 다르쪽, 룽다
# 오방색의 비밀
# 촴, 탈춤, 페르소나
# 고수레
# 북방 샤머니즘의 원형
# 산, 샤머니즘, 불교 - 한반도와 티베트의 공통점
# 기억의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