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치는 강가에서

평생 잊지 못해

by 새아

8월의 중순에 들어 첫 번째로 북상한 태풍의 눈이 우리 셋의 머리 위에 있었다.


돌풍을 동반한 빗줄기는 N극의 자석이 되어 S극의 땅으로 세차게 쏟아졌다. 며칠간의 연속으로 최고 강우량을 경신하던 중, 오늘은 서슬 퍼런 우기의 기력이 소강상태에 이르러 그나마 잠시 가쁜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한강 물결이 장난 아니야.”


외출했다가 들어온 지연의 우비에서 밖에서 내리는 비와 동일한 성분의 물방울이 흐른다. 매일매일 우비를 말리고 개키는 반복에 질린 지연은 아예 우비전용 옷걸이를 문 현관에 마련해 놓았다.


이미 걸려 있던 물기 없는 두 개의 우비에 한 개가 추가되어, 세 가지 색의 3개의 우비가 위아래로 걸렸다. 지연이 축축하게 젖은 티셔츠를 벗어 세탁바구니로 던진다.


“그래도 지금은 좀 낫지 않아? 비도 꽤 약해졌잖아?”


나는 습도 100%로 물먹은 스펀지가 된 지연에게 수건을 건넨다.


“아냐. 새벽까지 쏟아졌으니까 지금이 고비야. 노인과 바다 찍어도 되겠어.”


“그거 보고 싶은데…….”


보기 드물게 민소매를 입고 앙상한 팔을 드러낸 모리가 고개 빼고 창밖을 너머를 보며 중얼거린다. 모리는 근래에 우울증이 심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세로콜을 물과 함께 삼켰다. 실제 약효와는 별개로, 그 행위 자체에 위안을 얻는 듯했다.


얼마 전부터 모리는 자신의 피부에 스스로 칼집을 내기 시작했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어느새 그 위에 또다시 손을 댔다. 외출이 잦진 않았지만 병원에 갈 때나 가끔 산책을 할 때면 나는 그에게 긴팔 긴바지를 챙겨주었다.


그는 덥다고 투덜댔다. 하지만 세균감염이 걱정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처투성이의 그의 몸을 공공연히 드러냄이 싫었다. 사람들이 찡그린 눈을 하고 수군수군된다면, 우리의 비밀이 탄로 나는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과 지연은 한 목소리로 입원을 종용하지만, 나는 도무지 그를 내 품에서 떨어뜨려놓을 수가 없다.


“너 바깥공기 안 쐰 지 꽤 됐지? 빗줄기 비교적 가늘어졌으니까 산책한다면 지금인데. 길거리도 한적하고.”


지연이 목에 수건을 건 채로 담배를 꺼내 문다. 밖에선 강풍에 휘말려 공중에서 소용돌이치는 거센 빗줄기 때문에 불도 못 붙이고 줄곧 참고 있었을 것이다.


“응. 강물 보고 싶어.”


모리가 오늘따라 유달리 적극적이다.


“안 돼. 너무 위험해. 모리도 어제 TV 같이 봤잖아. 계곡물에 떠내려가서 두 명이 목숨을 잃었대.”


나는 반대 입장을 펼친다. 위험한 곳엔 애초에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좋다.


“그냥 보기만 하는 건데 뭐.”


모리가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응. 빗발 약해진 기회를 봐서 나가야지. 집에만 있으면 육체에도 정신에도 해로워.”


지연은 웬일인지 모리 역성을 들었고 나는 모리를 꾀어내는 지연을 할 수 있는 한 힘껏 째려본다.


“아까는 지금이 고비라며? 정말 위험해서 안 돼.”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 모리를 내보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물길이 세다는 뜻이었지. 강물이 안나를 잡아가는 걸 두고 보지 만은 않을 테니까, 안심해.”


몸을 일으킨 지연이 다시 나갈 채비를 한다.


남색, 빨간색, 노란색의 우비를 입은 세 명이 파워레인저 용사들을 모방하며 빗살을 가른다. 살풍경한 거리에 몇몇 사람들이 우산을 꽉 움켜쥐고 바람을 가르며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낸다.


평범한 오후의 전경은 아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몸을 감춘 이런 날에 우리는 왜 굳이 큰길로 나가는 거지? 납득되지 않아서 장화 신은 발로 물웅덩이를 첨벙첨벙 밟는다. 주택단지를 벗어나 큰길로 나오자 변이를 거듭한 바이러스 세포처럼 기이한 모습으로 몇십 배 부풀어 오른 강물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나는 ‘여기, 이 선이 경계야.’ 하는 생각으로 인도에서 도로로 넘어가는 턱에서 발걸음을 세웠다. 그러나 옆에서 걷던 모리는 멈춰 선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강 가까이로 내리 걸어간다.


“모리, 거기 서.”


사방의 물들이 모리를 공격하는 듯 보였고, 그들은 내 목소리가 모리에게 닿지 못하도록 자기들끼리 더 세게 몸을 부딪쳐 큰 마찰음을 냈다. 기어코 강가까지 도달한 모리는 쭈그려 앉아 꿈틀대는 강물을 유심히 바라본다.


나는 재빨리 마음을 바꿔 척추 뼈 도드라지는 등을 새우모양으로 웅크리고 앉은 모리를 제지하기 위해 손을 뻗으며 나아간다. 별안간 모리는 자신과 가까워지는 나를 고개 돌려 바라본다.


그의 얼굴엔 무언가 재미있는 생물이라도 발견한 초등학생 같은 천진한 웃음이 걸쳐져 있다.


“모리야. 불안하니까 뒤로 좀 물러나.”


이제야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모리에게 강압적으로 명령 내리는 지연이 못 미덥다.


“그래. 위험하니까…….”


내가 입을 뗀 순간, 앞으로 휙 고꾸라진 모리는 나의 말을 뚝 자르며 강물에 휩쓸려 재빠르게 달아난다.


강물은 고래의 커다란 입속 같은 검은 구멍을 만들어 모리를 삼키더니, 이윽고 모리를 사탕처럼 녹여먹었다.


좀처럼 녹지 않아 내뱉어진 모리의 빨간 우비만이 널브러진 채로 물살을 따라 요동치다가, 저 멀리서 기다란 무언가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순간 집에 남겨둔 모리의 그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들을 이제 다 어쩐다.’


모리의 장례식에 갔다. 울음바다였다. 유골도 없이 이름만 묻히는 그이를 봤다. 나는 울지도 않고 몰래 빠져나왔다. 그이는 가족묘에 묻혔고,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죽는다 하여도 그의 옆에 묻힐 일은 없다. 그이의 그림은 아직 나에게 있다.



전광판의 프랑크푸르트행 탑승게이트 글자가 깜박이기 시작한다. 천천히 대기석에서 몸을 일으켜 서두르지 않고 이동하니 게이트 앞을 선점한 사람들로 이미 긴 줄이 늘어져있다. 장시간의 비행에 대비하여 스트레칭을 해보지만, 도착지에 착륙할 때의 컨디션은 별 수 없이 최악일 것이다.


독일로의 유학에서 행선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이곳에서 도망치고 봐야겠다는 안일한 결심은 필연적이었다. 수속을 마치고 네모 다란 공간으로 걸어 들어갈 뿐인데 벌써 하늘에 떠버린 느낌이 들었다.


지정된 좌석에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이륙을 기다리고 있다. 점점 속력을 올려 내달리는 기체 안에서, 잠은 오지 않지만 지루한 시간을 가능한 한 빨리 보내기 위해 눈을 감는다. 그러다 잠깐 잠이 들었었는지, 땡 하는 소리로 시작된 이륙안내 방송에 눈을 뜬다.


창을 통해 점점 멀어지는 지면이 보인다. 모리의 몸이 묻힌 땅과 모리가 죽어서 샅샅이 흩어져간 하늘 중에 어느 쪽이 모리와 더 가까울까? 그 정답이 무엇이든, 모리와 나간의 서먹해진 사이가 좁혀지길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하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휘황찬란한 빛줄기에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는다.


모리가 여기 있었다면 긴 갈색 속눈썹을 내리깔고 기분 상한 듯 눈살을 찌푸렸겠지.


한편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밉살스러운 공범자는 길쭉한 플라스틱 일회용 컵에 빨대를 꽂고 사과 주스에 공기를 불어넣고 마시길 반복하고 있다.


그는 내 옆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듯 볼키스를 시도한다. 쪽 소리 내며 떨어진 그의 물기 젖은 입술에서 싸구려 설탕의 난잡한 단 냄새가 풍겨온다.


“그거 맛있지도 않지?”


내가 지연에게 물었다.


“글쎄, 갈증해소용이지.”


지연은 잔뜩 신이 난 표정이다.


“갈증이 나?”


“응. 항상.”


“항상?”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