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는 주마등 속 의도된 미완결성
방탄소년단의 래퍼이자 작곡가 슈가는 방탄소년단의 미니 3집인 ‘화양연화 Pt.1’의 앨범 리뷰 영상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직접 앨범을 소개한다. 형광등 조명 아래서 낮은 화질로 찍은 영상에는 앨범 한 장과 슈가의 손뿐이다. 비행기에서 RM과 함께 작업한 기억, 막내 정국이 형들을 보고 작업에 욕심을 갖기 시작한 것에 대견함을 느낀 이야기. 슈가는 아직 그럴싸한 성공을 얻지는 못했지만, 성공을 위해 충분한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있음을 증명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5liS0Ah_W8
슈가는 ‘화양연화 Pt.1’의 첫 번째 화자가 된다. 그는 해질녘 한강에서 농구를 하며 느낀 감정을 비트 위에 실었다. “빨라지는 드리블 행복해지는 마음 / 이 순간은 영원할 듯하지만 / 해 지는 밤이 다시 찾아오면 / 좀먹는 현실…” 공 튀기는 소리 위에 함께 불안감과 답답함을 마구 토해 낸 32마디의 끝은 스스로를 향한 되물음으로 끝난다. “지금 행복한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읊조린다. “난 행복하다.” 종결되지 않은 음으로 ‘Intro: 화양연화’는 끝을 맞는다.
https://youtu.be/IW-ZUAUWgwo?si=wy5JATkj2iZGeftN
하지만 청춘의 모든 고민들은 곧바로 종결될 수 없다. ‘화양연화 Pt. 1’ 속의 방탄소년단은 청소년과 어른의 기로에 놓여, 닥쳐오는 현실에 반해 미성년에 남아 있는 자아가 혼재하는 답답한 상황과 아픔을 노래한다. 림을 바라보다 코트 위에서 주저앉던 슈가는 다음 트랙인 ‘I NEED U’ 뮤직비디오에서는 장소를 옮겨 싸구려 호텔의 방 안에 홀로 앉아 라이터의 불빛을 껐다 켰다를 반복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양 몸부림치다, 침대 위에 멍하니 눕기도 한다. 코트 위의 모습보다는 정적이고 가라앉은 모습이지만, 여전히 하릴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유는 청춘의 특권이기도 하지만, 그 기약 없음은 불안정함을 동반한다. 뮤직비디오 속 철로 위에서 위태롭게 걷는 일곱 멤버는 각각 힘겨운 하루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연기한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와 웃고 떠드는가 하면, 병을 앓아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도 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에 맞서 가족을 지켜야 하기도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감정을 떠안게 된 소년은 무섭게 가라앉아 버린다.
https://youtu.be/NMdTd9e-LEI?si=KLCF_j_HNFTeTKwQ
'I NEED U'의 서정적이고 멜랑콜리한 메인 신스 라인은 곡의 중심이 되어 분위기를 다양하게 환기시킨다. 초반을 장식하던 이 라인이 벌스에서 조용히 깔리다가 댄스 브레이크와 함께 다시 등장하며, 규칙적으로 깔린 숨소리는 방향 없이 달리는 청춘을 형상화한다. 트랩 비트 위에서 점점 커지는 퍼커션과 함께 감정이 증폭된다. 무대 위 방탄소년단은 이런 음악적 굴곡을 몸으로 구현한다. 뮤직비디오 속 청년들이 처한 어둡고 극단적인 현실과 달리, 세일러복과 짧은 반바지를 입은 멤버들은 '상처 입은 소년'의 관념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기한다. 멤버들은 페어 안무 없이 각자 측면이나 바닥을 응시하며 홀로 감정을 불태운다. 아이돌의 끼와 카리스마보다 하나의 정서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 퍼포먼스다.
'I NEED U'에서 "너 땜에 나 이렇게 망가져"로 시작하는 슈가와 제이홉의 거친 랩은 원망을 쏟아내고, 보컬 라인은 "미안해, 사랑해, 용서해"를 반복한다. 1절의 격정적 토로가 2절에서는 "나 무슨 짓을 해 봐도 어쩔 수가 없다고 / 또 혼잣말하네"라는 독백으로 가라앉는다. 원망과 그리움이 충돌하고 폭발하는, 청춘의 눈물나는 순간이다. 반면 또 다른 사랑 노래인 ‘잡아줘’는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을 솔직히 드러낸다. 곡은 바람 소리, 새벽에 벌레가 우는 소리로 시작한다. 늦은 새벽, 싱숭생숭한 마음에 술 한 잔을 하고 밖에 나와 신세를 한탄하는 배경을 만들어낸다(“술잔을 비우니 그리움이 차는구나 /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봉투까지도”). 하이햇 트릴의 등장과 함께 보컬이 더욱 선명해지며, 곡의 배경은 다시 감정의 세계로 진입한다. “오직 너 하나만 보여”, “너와 난 핸드폰 떨어지면 고장 날 걸 너도 알잖아.”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들은 보다 직관적이고 현실적이다. 방탄소년단은 ‘I NEED U’와 ‘잡아줘’에서 청춘의 복잡함과 어두움을 각기 다른 언어의 ‘사랑’ 으로 압축해 표현한다. 그리고 ‘잡아줘’는 ‘I NEED U’와 달리 상대방에게 매달린다기보다 설득한다. “Can you trust me(나를 믿을 수 있어/지)?”, (자신을 믿고 잡아달라고 한다.) 작고 연약한 모습이었던 소년이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었으면 좋겠다는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성장한다. 소년의 사랑이 차츰 어른들의 사랑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두 곡 사이에 드러나 있다.
앞서 청춘의 다양한 감정을 대변한 소년들은 다시 3년차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으로 돌아온다. 'Skit: Expectation!'에서 현실적인 멤버들의 불안, 기대, 걱정을 만나게 된다. "기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주저하는 멤버들 사이로 막내 정국이 "미성년자도 소득공제 돼요?"라고 해맑게 묻는다. 랩과 노래가 아닌 일상의 대화로 만나는 이들의 목소리는 현실 속의 청춘들인 일곱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쩔어'에서는 'Skit: Expectation!'에서 넘치는 기대를 가진 것은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 임을 보여준다. “이런 게 방탄 스타일, 거짓말 Wack*들과는 달라(*힙합에서 멋지지 않은 태도 혹은 가짜를 의미함)”. ‘Dark & Wild’가 마지막일지도 몰랐다는 불안감은, “방탄 스타일"이라는 아이덴티티와 자부심이 담긴 강렬한 챈트로 승화된다. 방탄소년단은 세련되고 그럴싸한 것들을 흉내 내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는 청춘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간지'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리코러스에 깔리는 "I don't give a F"는 누가 그들을 폄하해도 신경 쓰지 않고 “Hustle”만을 하겠다는 그들의 태도다.
https://youtu.be/BVwAVbKYYeM?si=EZy1jCVCtpnPar5N
“그리 넓어 보이던 새 집도 / 이제는 너무 좁아졌어.” 이제 방탄소년단은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새 집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게 된다. 불안감과 걱정을 안고도, 더 큰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각오가 서려 있다. “난생 처음 엄마의 뱃속에서 / 나의 첫 이사 날을 세곤 했어” 슈가는 ‘이사’에서 태어나고 서울로 상경하기까지의 모든 성장 과정을 짧은 벌스 안에 담아낸다. 앞선 앨범 리뷰 영상에서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새 앨범을 실자국이 보일 정도로 꾹꾹 누르고 포토 카드를 흘리기도 하는 서툰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지막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슈가는 음악에도 자신의 일대기를 꾹꾹 눌러 쓴다. 세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택한 이야기, 17평에 아홉 연습생이 엉겨 붙어 살던 경험들. “내 자존심은 보증금 / 다 건 채 하루를 살어 uh?” 음악,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그의 자부심인 것 같다. “울기도 웃기도 했지만 / 모두 꽤나 아름다웠어” RM은 집에 녹아든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며 작별을 고한다. “논현동 3층 / 고마웠어.”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다음 이사는 어디로일까. 방탄소년단은 이에 답하지 않고 물음표를 남긴 채 앨범을 마무리한다. ‘Outro: Love is not over’는 서정적인 멜로디 위에, 튠을 일부러 걸지 않은 듯 정제되지 않은 정국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이어 지민, 진, 뷔의 목소리는 서로 모멘텀을 실어주듯 겹겹이 쌓인다. 화음과 더블링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멜로디가 짧은 간격으로 계속 바뀌어, 음역대와 개성이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느끼게 한다. 기승전결이 있는 곡이라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쁘게 덩어리진 느낌이 있다. 여운을 남기는 아웃트로로 인해 청자들은 앨범을 다 들었다는 느낌보다는 음악이 귀에서 사라져버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앨범 전체의 정서를 본다면 이는 의도된 미완성 같다. 현실 속의 방탄소년단은 다시 몽환적인 청춘의 형상들이 되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찬란한 순간을 보여주다가 사라진 소년들이 위태로운 길 뒤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미지수지만, 어떤 색을 가지고 돌아와도, 진정성과 치열함으로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