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너스: 죄인들’ 리뷰

영화 리뷰

by halfseal

영화 ‘씨너스: 죄인들’ 리뷰


*스포일러 포함



"들어가도 되나요?" 질문과 동시에 문 하나를 두고 누군가의 생사가 결정된다. 뱀파이어는 초대를 받아야만 먹잇감의 집에 들어가 사냥할 수 있다. 영화 '씨너스'에도 뱀파이어가 등장하지만, 본작 속 불청객은 뱀파이어뿐만이 아니다. ‘씨너스’는 1932년, 짐 크로우(남북 전쟁 이후, 1876년부터 1965년까지 미국의 남부 11개 주에서 제정한 공공장소에서의 흑백 인종 분리를 강제한 법안)가 지배하던 시절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인 흑인들의 이야기다.

image.png

그 어떤 문도 열어주지 않는 세상에서, 흑인들은 직접 집을 지음으로써 스스로를 환영해야만 했다. 스택과 스모크 형제는 시카고 갱단에서 돈을 벌어 미시시피 델타로 돌아온다. 소박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형제만 유독 세련된 모습이다. 형제는 도착과 동시에 밀주를 가득 실은 차에 사촌 동생 새미를 태우고 어딘가로 떠난다. 이들은 백인 남성에게 거금을 주고 옛 제재소의 부지를 구입한다. 형제는 새미에게 이곳에 ‘주크 조인트’를 세울 계획을 이야기한다. 당시 미국에는 남동부를 중심으로 수많은 주크 조인트가 존재했다. 주크 조인트는 흑인들이 모여 음악과 술을 즐길 수 있는 술집으로 흑인들 간 교류의 메카가 되어 주었다. 주로 시골 농장이나 철길 근처에 위치해 흑인 노동자들에게 쉴 공간을 제공했으며, 밀주와 잡화를 사고 파는 교역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주크 조인트는 흑인들의 끈끈한 연대의 상징이자, 블루스 음악의 탄생과 전파를 가능하게 한 존재다.


형제의 주크 조인트에서도 블루스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는 형제의 조카이자 프리처 보이(‘Preacher Boy’, 목사의 아들)인 새미의 손에서 나온다. 새미는 목사보다는 부두술사에 가까운 음악가다. 듣는 순간 바로 매료될 만큼의 음악적 쾌감을 주지만, 이를 넘어서 시공간을 초월한 문화의 통합을 가져온다. 영업 첫 날, 그의 노래에 맞춰 흑인뿐 아니라 수많은 인종들이 한데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주점은 순식간에 중국 변검의 화려한 가면과 90년대 힙합의 빅사이즈 티셔츠가 공존하는 환상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Blues wasn't forced on us like dat religion… Son we brought this with us from home… I’ts magic what we do… I’ts sacred and it's BIG!!(블루스는 저 종교처럼 우리에게 강요된 게 아니야… 아니야, 친구, 이건 우리가 고향에서부터 가져온 거야… 우리가 하는 건 마법 같고… 신성하며, 그리고 거대해!!)" 작중 작중 형제가 모셔 온 또 노장의 악사, 델타 슬림의 대사처럼 새미의 블루스는 마법처럼 강력하다. 실제로 당시 블루스 음악이 가진 별명 중 하나로는 'The Devil's Music(악마의 노래)'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이 음악을 즐겼던 주크 조인트 안의 사람들이 직접 붙인 이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1932년 미시시피의 흑인들은 어떤 악마의 속삭임을 노래했던 것일까. 과연 그들의 노래는 사탄의 메아리였을까.


https://youtu.be/S7jo5Cr6WUA?si=tjKVQmho1g2kNbIY

당시 미시시피 델타의 흑인들이 불렀던 블루스에는 과거의 아픔이 스며 있다.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가 델타 지역을 휩쓸었다. 좋은 땅은 백인들의 차지였기에 홍수에 취약한 곳에 살 수밖에 없었던 흑인들이 이재민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폐허를 재건해야 했던 사람들 역시 흑인들이었다. 블루스 아티스트 워시보드 샘(Washboard Sam)의 ‘Levee Camp Blues’(1941)에는 수해 지역에서 강제 노동한 흑인들의 고통이 드러나 있다. "Says, I worked in a levee camp / Just about a month ago / Says, I wired so many wagons / It made my po' hands so'("제방 공사장에서 일을 했소 / 이제 겨우 한 달 전 일이오 / 하지만 나는 수레를 너무나 많이 묶었고 / 그 때문에 이 가난한 내 두 손이 다 성했소")." 그 외에도 바베큐 밥(Barbecue Bob)의 ‘Mississippi Heavy Water Blues’(1927) 와 빅 빌 브룬지(Big Bill Broonzy)의 ‘Southern Flood Blues’(1937) 등 수많은 블루스와 가스펠 음악가들은 대홍수 당시의 집을 잃은 사람들, 강제 노동, 그리고 인종적 불평등의 비망록을 악보 위에 그려 냈다. 대홍수 이후에도 짐 크로우 법 아래 흑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차별과 고통은 흑인 음악에 그대로 기록되어 왔다. 따라서 그들의 음악은 악마의 노래보다는 악마에게 고통받는 자들의 호소에 가까워 보인다.


image.png Cape Girardeau riverfront during the Mississippi flood of 1927, The Britannica


'씨너스’의 배경은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지 5년 후인 1932년의 미시시피 델타다. 10월 15일, 인종 말살의 대홍수가 다시 한 번 스모크 형제의 주크조인트에서 재현된다. 형제가 갱단에서 밀주를 빼돌려 자금을 마련하면서까지 만들고자 했던 소수자들의 안식처는 도리어 죽음을 몰고 오는 부비 트랩이 되었다. 홍수가 흑인 거주지를 덮친 것이 예상 가능한 일이었듯, 뱀파이어의 파도가 하필 형제의 주크 조인트를 덮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처받은 자들의 약점을 가장 예리하게 꿰뚫는 포식자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동일한 고통을 겪어본 또 다른 상처받은 자일 것이다. 미시시피 델타에는 또 하나의 불청객이 있다. 붉은 눈에 날카로운 송곳니, 햇빛을 보면 불타는 피부를 가진 그의 이름은 아일랜드 출신의 뱀파이어인 레믹이다.


https://youtu.be/1FliOGUj_Rg?si=0k5fqX3Nvyv6f6y6

뱀파이어들은 어떻게든 허락을 받아야만 흡혈이 가능하다. 숙련된 뱀파이어는 때로는 협박을, 때로는 선량한 연기를 연마해야만 한다. 이러한 사냥 과정은 작중 레믹의 첫 등장에서 재연된다. 극 초반, 평범한 백인 인종주의자 부부의 집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부부의 앞에는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남자가 서 있다. 남자는 추크족(원주민)에게 쫒기고 있다며 숨겨 달라고 애원한다. 부부는 그를 경계하지만, 원주민에게 갖고 있는 거부감 때문인지 남자를 집으로 들인다. 그리고 고스란히 남자의 먹잇감이 된다.

레믹이 다음 타깃으로 정한 스모크 형제의 주크 조인트 문을 두드린 순간은 상징적이다. 1932년 미시시피에서 백인이 흑인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 초대를 구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뱀파이어에게 '초대'는 생존의 조건이기에 인종적 계급이 뒤바뀐 것이다. 본래 그는 새미를 목표로 주크 조인트로 향했으나, 새우를 잡으러 갔다가 고래를 잡은 것과 같이 집 안에는 흑인들이 떼지어 있었다. 레믹의 입장에서 흑인들은 끈끈한 공동체이기에 한 명을 유인하면 수십 명을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사냥감이었을 것이다. 밤이 깊어지고, 주크 조인트 안 식구들이 하나 둘 언데드로 변할수록 레믹은 더욱 노골적으로 흑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들의 유대를 이용한다.

레믹은 백인이지만 차별의 역사를 피에 새긴 아일랜드 인이다. 영국의 지배 당시 종교의 자유 없이 기독교를 강요당한 과거의 아픔은 작품 말미에 레믹이 보이는 행동에서 드러난다. 햇빛과 마늘이 천적이며 심장에 말뚝이 박혀야 죽는다는 등 클리셰를 대부분 따라가는 본작의 뱀파이어들이지만, 예외적으로 성호와 기도문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목사의 아들인 새미가 레믹을 향해 주기도문을 외치자, 레믹은 보란 듯 따라 읊으며 기도를 주술이라고 조롱한다. 그는 목사가 된 양 뱀파이어들을 향해 새미도 가족이 될 것을 선포하며 새미의 머리를 물에 세 번 담그는 기독교적 세례 의식을 치른다. 레믹은 마치 신이 된 것 양 행동한다. 신 행세를 하는 것은 종교를 향한 가장 큰 모욕이다. 마지막에 몰아치듯 쏟아내는 소수자로서의 울분은 레믹이 인종주의자 부부를 대할 때와 흑인들을 대할 때 다른 태도를 보인 이유를 짐작케 한다.

작 중 레믹의 희생자는 레드넥 부부와 주크 조인트 식구들, 두 집단이다. 레믹은 두 집단의 인종적 특성을 이용해 사냥에 성공한다. 전자에서는 타 인종(추크족)에 대한 불신을, 후자에서는 소수 민족의 끈끈한 유대감을 이용했다. 부부의 경우 흡혈 후 세뇌시켜 다음 사냥에 이용한 것과 상반되게도 주크 조인트 사람들에게는 동료로서 함께하자고 말한다. "I am your way out. This world already left you for dead. Won't let you build. Won't let you fellowship. We will do just that. Together. Forever.(나는 너의 유일한 탈출구야. 이 세상은 이미 너를 죽은 것으로 치부했단다. 네가 발전해 나가는 것도, 동료를 만드는 것도 허락하지 않지.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할 거야. 함께. 영원토록.)" 세상이 흑인들을 버렸다면,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제안이다. 핍박당한 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어 함께 소수자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https://youtu.be/b5NznUJSME8?si=rDR2_s-S2dkjh5A6

비록 아침 해에 타 죽으면서 끝이 났으나, 레믹은 주크 조인트의 인물 대부분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최후는 얼핏 스모크 형제에게 사기를 친 KKK당원과 비슷해 보이지만 KKK 당원 뒤에는 쓰러진 백인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면, 레믹은 같은 고통을 느끼며 절규하는 뱀파이어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주크 조인트에서 레믹은 환영받는 손님은 아니었지만 죽는 순간에는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었다.

마지막까지 기타를 놓지 못했던 새미는 결국 죄인(Sinner)이 되어 사탄의 음악인 블루스의 길을 걷는다. 시간이 흘러 노장의 음악가가 된 새미는 공연을 마치고 여유를 즐긴다. 그 앞에 스택과 그의 옛 연인인 백인 여성 메리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새미에게 뱀파이어가 되어 영생을 살게 해줄 것을 제안한다. 새미는 충분히 살았다며 제안을 거절하고, 메리와 스택은 그의 곁을 떠난다. 흑과 백이라는 넘을 수 없는 인종의 벽에 사랑하는 여자를 손수 다른 이에게 보내야 했던 스택은 당당히 메리의 손을 잡고 다정한 연인의 모습으로 퇴장한다.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스모크와 같은 이들의 희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블루스는 '악마의 음악'에서 '위대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시대는 분명히 변했다. 그러나 버디 가이가 분한 노년의 새미는 10월 15일이 인생 최고의 하루기도 했다는 아이러니를 말한다.

10월 15일의 낮은 형제에겐 꿈을 이루는 날이었으며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유로이 쾌락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의 탄생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새미에게는 따분한 교회에서 벗어나 음악적 재능을 마음껏 해방시키고, 이성을 내려두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도 한 끝내주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복은 신기루와 같이, 이후에 찾아올 슬픔의 기폭제가 된다. 스모크가 동지들의 원수를 갚는 것은 영화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고대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온전히 통쾌함을 느낄 수 없다. 백인들을 모두 해치운 뒤, 상처가 깊어져 죽기 직전인 스모크의 뇌리에는 주크 조인트의 개장을 준비하며 웃고 떠들던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미소가 하나둘씩 스친다. 그는 KKK들을 죽이고 복수에 성공하지만, 이는 훨씬 많은 수의 동지들을 잃은 후에야 이루어졌다. 모두의 최고의 하루는 그렇게 피의 악몽으로 마무리된다. 소수자들은 찰나의 행복조차 누릴 수 없으며, 그 순간조차 누군가의 방해로 인한 끔찍한 결말을 맺는다는 비극적인 사건의 말로는, 제아무리 원수를 갚았다고 해도 절대 짜릿한 복수로 갈무리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재즈 바에서 다시 만난 새미는 이제 더 이상 목화솜 밭의 검둥이가 아닌, 원로 뮤지션이다. 그러나 새미는 지금까지도 그날의 악몽이 꿈속에 찾아와 생생히 되풀이됨을 토로한다. 새미의 악몽이 끝나지 않음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차별과 배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법적 규제는 흐릿해졌어도 경제적, 사회적 격차는 여전히 뚜렷하다. 혐오 범죄는 꾸준히 보도되며, 인종 차별은 은밀하게 남아 편견이 되어 사회에 뿌리내렸다. 1932년으로부터 93년이 지난 현재, ‘씨너스’는 묻고 있다.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모든 '불청객'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누군가를 문밖에 세워두고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100 gecs - 10,000 ge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