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gecs - 10,000 gecs

앨범 리뷰

by halfseal

https://youtu.be/oXrbMDww9ss?si=Vcj2dtAUFl2VSiMM

로라 레스와 딜런 브레이디가 결성한 그룹 '100 gecs'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대한 보컬 로라 레스의 답변은 매번 달라진다. 100 gecs는 그냥 그런 그룹이다. 시카고 대학 기숙사 벽에 스프레이로 칠해진 100 gecs라는 문구에서 따 왔다는 설도 있고, 로라 레스가 온라인으로 게코(도마뱀) 한 마리를 주문했다 100마리가 오는 바람에 '100 geckos'에서 가져왔다는 설도 있으며,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 구인란에 있던 URL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터뷰가 너무 따분해서 가끔 일부러 바꿔서 얘기한다. (중략) 우리한테 딱 떨어지는 설명은 아예 의미가 없다." 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로라 레스는 말한다. 바꾸어 말하면, '100 gecs'는 스스로를 규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그룹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음악을 한다.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다양한 시도를 하였으나 그것이 도리어 '하이퍼팝'이라는 장르의 새 장을 여는 것으로 이어졌다. 5달러도 채 들지 않았을 것 같은 저예산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실험적인 전자음악을 하던 그들은 앨범 '1,000 gecs'를 통해 한 장르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으며 음악계의 떠오르는 블루칩이 됐다.



앨범 '1,000 gecs'로 스타덤에 오른 후 4년, 100 gecs는 의도치 않게 한 장르의 대표주자가 되어 만들어 내었던 틀을 부수며 1,000에서 10,000으로 진화한다. '10,000 gecs'는 하이퍼팝 특유의 극단적인 실험성이 돋보이면서도, 1000곡의 데모를 거쳐 모인 트랙들인만큼 각 트랙의 역할이 뚜렷하다. 첫 번째 트랙인 ‘Dumbest Girl Alive'에서는 100 gecs의 반절이자 보컬인 로라 레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디아스포라를 표출한다. 단순하게 삶을 즐기는 여성 화자가 말하기도 하지만("put emojis on my grave / 내 묘비명에 이모티콘을 넣어줘"), 트랜스젠더인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며("I did science on my face / 내 얼굴에 수술을 했지"), 스스로를 '프랑켄슈타인'으로 지칭하기도 한다("walk around like Frankenstein / 프랑켄슈타인처럼 걸어 다녀"). 'Dumbest Girl Alive'라는 제목처럼, 철없고 바보같은 스스로의 모습을 자조하고 조롱함과 동시에 인정하고 즐기기도 한다. 첫 곡이 로라 레스의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한편, 마지막 트랙인 'mememe'에서는 청자와 거리를 둔다. 코러스에서 반복되는 "You'll never really know anything about me(결국 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거야)"는, 전작 '1,000 gecs'에 비해 레스가 음성 변조를 걷어내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허물 없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결국 진짜 모습은 본인만이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가사가 레스와 브레이디의 깊은 내면을 그리지만은 않는다. 뮤직비디오에서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장난기와 광기는 'Frog on the Floor'와 'I Got My Tooth Removed'의 가사에서 돋보인다. 두 곡은 각각 제목 그대로 개구리와 치아를 뽑는 경험을 노래한다. 노래할 만한 거리가 아닌, 보잘 것 없는 경험들을 스카를 차용해 유쾌하게 불렀다. 스카적인 특색은 이 그룹이 꾸준히 추구해 온 색깔 중 하나다. 이번 앨범의 선공개곡인 'mememe'의 비트에서도, 전작인 '1,000 gecs'에서도('Stupid Horse') 스카의 특징들을 느낄 수 있다. 스카와 하드 록 등 본 앨범에 들어 있는 다양한 장르적 색채는 1990년대에 태어난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들었을 법한 사운드다. 레스와 브레이디는 스카 외에도 과거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을 음악들을 아낌없이 '100 gecs' 만의 스타일로 재생산한다. 앨범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Dumbest Girl Alive'와 'Billy Knows Jamie'는 2000년대 초 뉴메탈/얼터너티브 록의 공격성을 브레이디의 날카로운 프로듀싱으로 재해석한다. 림프 비즈킷(Limp Bizkit),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 블링크-182(Blink-182)가 연상되는 누 메탈, 하드 락 사운드 위에 뒤틀리고 가공된 드럼 비트와 신디사이저를 얹어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한다. 특히 '757'은 급변하는 글리치 사운드, 변조된 보컬과 빠른 템포로 가장 맥시멀한 하이퍼팝을 들려주면서도 힙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게 한다. 808과 일부 퍼커션 샘플은 트래비스 스캇의 'Sicko Mode'와 동일하다. 딜런 브레이디가 한창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했을 적 트래비스 스캇의 시대가 열렸던 영향을 받은 듯한 사운드다. 또한 'Hollywood Baby'는 Blink-182의 'All the Small Things'나 Green Day의 'Basket Case'처럼, 하드록이나 팝펑크의 청량함과 경쾌함을 담아 낸다. 스카를 통해 그들이 시도한 모든 장르들(일렉트로팝, 하이퍼팝, 누메탈 등)에서 가장 'aux friendly(드라이브 하면서 들을 수 있는)' 한 스타일을 선보인 것처럼, ‘10,000gecs’에는 팀 특유의 실험성 위에 누구나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유쾌함이 더해져 있다. 그들은 십대 시절 집안 차고에서 친구들과 직접 연주하며 놀았을 법한 장르들을 유쾌하게 해석하면서, 동시에 가장 미래에서 온 것 같은 음악을 한다.


https://youtu.be/YcGO8HGStqc?si=Fz_8lvwPAUwf2zqM


과거의 장르와 미래적인 사운드가 공존하면서 일으키는 변화는 보컬 믹싱에서 그 지향점이 드러난다. 전작 '1000 gecs'의 주요 특징이자 하이퍼팝 씬의 룰과도 같던 전체적으로 피치를 올린 보컬 녹음과 짧게 오토튠을 걸다가 빠지는 보컬 믹싱은 이번 앨범에서는 그 색채가 옅어졌다. 피치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대신 각 곡마다 오토튠과 디스토션, 스크리밍('Billy Knows Jamie'), 랩('757', 'Doritos & Fritos') 등 여러 스타일이 교차한다. 랩과 보컬에 모두 참여한 딜런 브레이디의 존재감도 전작에 비해 두드러진다. 사운드 디자인에서도 '1,000 gecs'는 초반에는 두 개의 신스를 같은 멜로디라인으로 깔아 보다 깔끔한 사운드를 가져가지만, '800db cloud'나 'xXxi…'의 브릿지 부분 등 특정 구간에서 신스를 뭉개버리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앨범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잔뜩 뒤틀린 기타나 드럼 사운드, 그리고 나이트코어와 같이 깔끔하게 피치를 올려 신비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반면에 '10,000gecs'에서는 피치를 조절하지 않은 날 것의 보컬을 그대로 사용한다. 'Doritos & Fritos'나 'Billy Knows Jamie'에서는 누메탈에서 들려줄 법한 스크리밍을 하기도 한다. 전작에 비해 더 날 것인 있는 그대로의 거침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가 엉겨 붙어있는 본작은 그들이 저장해 온 음악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최대한 구석구석 뻗어나가 만든 것 같은 추억 앨범이다. 독특하게도 비일관성은 그룹이 본래부터 추구하던 정체성에 한 발 다가간 것이다.


앞서 100 gecs라는 그룹은 이름에서조차 일관성이 없다고 했다. 이들의 예측 불가함은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에서도 드러난다. 대부분의 뮤직비디오는 로라와 딜런이 거실, 동네 마트, 주차장, 공원 등 일상적인 장소에서 기행을 펼치는 방식이다. 이상한 옷과 분장을 뒤집어쓰고 의미 모를 춤을 추거나 행동을 한다. 보일러룸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단 75달러밖에 하지 않는 컨트롤러와 맥북 한 대로 알리야(Aaliyah),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 케샤(Kesha)와 스매쉬 마우스 (Smash Mouth)심지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OST 등 지구 반대편에 있을 것 같은 소리를 자연스럽게 믹스한다. 갑자기 스타덤에 오른 아티스트지만, 누군가의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긴장은 디스코그래피는 물론 그들의 행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가장 편한 공간에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상한 장난을 치고, 개인 취향의 음악을 틀 뿐이다. 즐기는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들의 음악은 변덕스러움으로 가득하지만 음악을 갖고 노는 듯한 치밀한 비일관성이 아티스트들 본인은 물론 청자에게도 재미를 선사한다. 하이퍼팝에 기반을 두면서도 스카와 하드록 등 자신들이 제일 즐겨 들었던 장르들을 합쳐 버리면서 100 gecs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본 앨범을 통해 100 gecs 는 또 한번, 자신들도 모르게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10,000gecs'는 진정한 의미의 하이퍼팝이다. 그들은 새 앨범에서 다양한 장르를 실험함으로써 하이퍼팝의 범위를 상당부분 벗어나는 것을 통해 하이퍼 팝에 다시 ‘하이퍼’한 순간을 부여한다. 이미 하나의 장르로 고착화된 하이퍼팝으로부터 벗어난 또다른 '하이퍼' 음악의 시작인 것이다. 2023년에 나온 '10,000 gecs'는 그렇게 하이퍼팝을 끝내는 동시에 진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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