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ild Bride

영화 '프리실라(2023)' 후기

by halfseal

‘프리실라’에서 프리실라 프레슬리(이하 프리실라, 케일리 스페이니)와 관객들의 첫 만남은 구 서독의 한 다이너에서 시작된다. 당시 14세였던 여학생 프리실라는 콜라를 마시며 뚱한 표정으로 숙제를 하고 있다. 그런 그녀를 당시 같은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던 미국의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이하 엘비스, 제이콥 엘로디)와 같이 복무하는 지인이 유심히 지켜본다. 프리실라는 어느덧 나타난 남성이 자세한 소개와 맥락도 없이 바로 엘비스를 보게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머뭇거리다 말한다. “부모님께 여쭤볼게요.”

프리실라에게 실물로서 처음 다가온 엘비스는 격렬한 피아노 연주를 하며 관중을 휘어잡는 중에도 떨어지는 물컵을 단숨에 낚아챌 수 있는 남자로 그려진다. 공군인 아버지 아래에서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사춘기를 보내던 소녀에게 엘비스는 떨어지는 컵을 낚아채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불안으로부터 상황을 여유롭게 통제하는 완벽한 존재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엘비스는 프리실라와의 첫 만남에서 짧은 대화를 나눈 후 “말이 잘 통한다”라고 말한다. 이내 엘비스는 프리실라의 손을 잡고, 두 사람만 있는 공간에 데려간다. 그는 침대 옆에 아니타라는 여성의 립스틱 자국이 담긴 편지를 올려 두고도 알고 지내는 미국인 여자는 없다고 한다. 프리실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프리실라는 엘비스의 어린 연인이 된다.

슈퍼스타와 평범한 옆집 소녀라는 점 외에도, 엘비스와 프리실라의 사랑에는 크나큰 벽이 하나 더 있었다. 엘비스의 연인이 된 프리실라가 엘비스의 대저택 그레이스랜드에 지내게 됐을 때, 그녀는 미성년자였다. 이 사실은 관객이 ‘프리실라’의 모든 장면을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엘비스의 사후에도 많은 이들이 그의 어두운 면을 논할 때 등장하는 어린 신부에 대한 그루밍 논란은 초반에 프리실라의 부모님이 두 사람의 나이 차를 염려하는 것 외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의견이 소거된 채로 오로지 엘비스와 프리실라의 행동과 태도만이 나온다.


엘비스는 어린 프리실라에게 자신의 취향인 머리스타일과 옷차림을 강요했으며, 아무렇지 않게 약물을 권유하기도 하며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엘비스는 분명히 프리실라에게 강압적이고 불공평한 연인이자 배우자였다. 그러나 프리실라와 범퍼카를 타며 데이트를 즐기거나, 집에서 같이 영화를 보는 다정한 연인으로도 묘사된다. 몇몇 장면에서는 그들의 행복을 보다 미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엘비스가 프리실라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장면은 부드러운 영상미와 젊고 아름다운 두 배우가 등장하는 아름다운 장면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프리실라 플레슬리가 당시의 상황을 회고한 기록에 따르면 엘비스는 그녀에게 부적절한 옷을 입히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은 매일 밤마다 폴라로이드 필름을 사러 나가야만 했다고 한다. 프리실라는 매번 변장한 채로 방문하는 자신을 수상하게 여긴 직원들에게 핑계를 대야 했다고 말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누군가 제 필름을 훔쳐간 모양이에요…(You're not going to believe this, but someone stole my film)" ‘프리실라’는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연출된 연인들의 장면 전후에 거의 매번 엘비스가 프리실라를 소홀히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노는 장면 뒤에는 두 사람이 베개싸움을 하다가 엘비스가 프리실라를 구타하는 장면이 나온다. 엘비스가 그레이스랜드로 돌아온 뒤 그가 프리실라의 인사를 성의 없이 받은 후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가버리는 장면 직후에는 그들의 행복한 데이트를 보여준다. 프리실라에 대한 엘비스의 상반되는 태도를 대비시킴으로써 감독은 감정의 롤러코스를 타는 프리실라의 내면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관객은 엘비스라는 인물에 대해 호감을 느꼈다가도 한 순간 거리감을 느끼며 점점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 프리실라의 마음을 천천히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운 포장지로 싸인 선물 상자처럼, 포장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상상하는 것은 스크린 너머에 있는 이들에게 맡긴다.

영화 속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프레슬리로 각각 분한 제이콥 엘로디와 케일리 스페이니는 한 화면 안에 투샷을 잡기조차 어려울 만큼 신장 차이가 크다. 케일리 스페이니는 150 중반을 넘지 않는 반면 제이콥 엘로디는 2m에 육박한다. 실제 프리실라 프레슬리와 엘비스 프레슬리는 20cm 정도의 차이였지만 ‘프리실라’에서는 이를 더욱 과장시켜 프리실라의 어린 나이를 계속 상기시킨다. 프리실라를 둘러싼 엘비스의 지인들 역시 프리실라보다 신장과 체격이 비교적 큰 배우들로 채워져 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시종일관 이어지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때로는 한 컷에 잡히는 시각적인 연출을 통해, 때로는 이야기의 맥락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조망한다. 폭발적인 드라마 없이 한 사람의 감정선을 쭉 따라가기는 이 영화를 누군가는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리실라가 홀로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엘비스를, 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짓는 표정들을 차분히 관조하다 보면 이 영화에 깔린 전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성인과 미성년자에서 시작한 엘비스와 프리실라의 관계는 잘못된 것이었다. 60여년 전 슈퍼스타의 세기의 사랑으로 포장되었을지라도 그렇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곡은 돌리 파튼의 "I Will Always Love You"다. 이 곡은 실제로 1973년, 이혼 절차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엘비스가 프리실라에게 불러준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엘비스는 언제나 프리실라에 대한 사랑을 간직할 것이라는 의도로 이별을 고할 때 그녀에게 이 곡을 불러주었겠지만 ‘프리실라’를 보고 나면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엘비스가 정의하는 사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프리실라’ 초중반에 엘비스는 프리실라에게 강아지를 선물한다. 프리실라는 주로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며 널따란 그레이스랜드의 울타리 안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낸다. 프리실라는 엘비스에게 강아지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가끔 집에 오면 늘 자신을 반겨주는 존재이며 자신보다 어리고 작고, 미성숙한 행동을 보이거나 약해져도 곁을 떠나지 않으며 말이 별로 없고 대부분 자신의 말에 따르는. 개를 키우는 주인들이 소홀한 모습을 보여도 그들이 반려견을 사랑하지 않거나 가족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엘비스가 프리실라를 떠나보내는 순간까지도 논할 만큼 존재했을 프리실라에 대한 사랑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최선을 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https://youtu.be/lKsQR72HY0s?si=eYFIEpAati2ynAg​0

엘비스를 떠난 시점에서 프리실라의 나이는 26세였다. 현재 80세인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엘비스와 함께한 것은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중반까지의 짧은 시간이 전부다. 영화의 후반부는 엘비스를 떠나 LA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프리실라를 보여 주며 엘비스의 영향에서 벗어난 후 그녀의 삶을 짐작케 한다. 프리실라는 가라데를 배우고, 사교 파티에 가서 엘비스가 모를 새로운 친구들도 사귄다. 영화에서 거의 엘비스와만 대화를 나누고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프리실라는 단 몇 개의 씬만으로도 완전히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새로운 자아를 확립하고 깨어나기까지의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음을 암시하는 후반의 빠른 연출은 프리실라의 내적 성장이 그만큼 억눌려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의 발전을 제어했던 장치는,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이었으며 연인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프리실라에게 엘비스는, 집에서 독립한 이후로 다시 한번 깨부수고 나와야 했을 두 번째 알과 같다.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십대 소녀로 살던 그녀에게 엘비스의 세계는 거대하게 느껴졌겠지만 그 세계조차 그녀에게는 집이라는 울타리가 되었던 것이다. 전용기가 주차된 정원을 뒤로하고 끝을 모르고 치솟는 천장과 화려한 샹들리에가 중심에 꽂힌, 그레이스랜드라는 아름다운 감옥에서 6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프리실라는 알을 깨고 나오며 새가 되어 날아가게 된다. 영화는 한 가지 확실한 메세지를 보낸다. 프리실라의 이별은 결별 이상의 숭고한 결정이다.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프리실라가 되기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