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머지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다 - '레드북'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요

by 지구로


SYNOPSIS


"난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


신사의 나라 영국,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약혼자에게 첫 경험을 고백했다가 파혼 당하고 도시로 건너온 여인, '안나'.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첫사랑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굳세게 살아간다.


어느 날, 그런 그녀 앞에 신사 중의 신사 '브라운'이 찾아오고 안나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브라운의 수상한 응원에 힘입어 여성들만의 고품격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에 들어가 자신의 추억을 소설로 쓰게 된다.


하지만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 안나의 소설이 담긴 잡지 '레드북'은 거센 사회적 비난과 위험에 부딪히게 되는데…



[레드북]이 2년 만에 돌아왔다!


보수적인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런던,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이었던 시대의 편견을 딛고 숙녀보단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안나’의 여정을 이 창작 뮤지컬은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자신의 욕망을, 자신을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안나의 성장과 그런 안나를 통해 신사 말고는 아는 게 없던 브라운이 서서히 변화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2년 전에 봤던 [레드북]은 가벼운 분위기에 가볍지 않은 내용을 발랄하게 그려낸, 곱씹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었다. 역시 다시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뮤지컬인 건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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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의 서사는 너무나 다른 두 인물의 상호 작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된 현실을 글을 쓰며 버티고, 마침내 사회를 바꾸는 진취적인 여성 안나, 그리고 책으로 사랑을 배운 고지식한 변호사 브라운. 이들은 너무나도 다르다. 브라운은 안나를 분명 사랑하지만, 안나를, 안나의 정체성 그 자체인 안나의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서 안나에게 미친 사람인 척 안나의 글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감옥에서 나가자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랑의 본질은 변화에 있다. 원래 그러지 않았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게 바로 사랑인 것이다. 이내, 브라운은 안나에게 말한다. “내게 더 많은 얘기를 들려줘요.”라고 말이다. 사랑으로 인해 변화한 사람인 브라운이 외도를 일삼는 남편에 대한 사랑이 바뀐 아내를 변호하는 넘버가 바로 ‘사랑은 마치’이다. 노래의 초반, 브라운은 사랑은 오늘의 날씨처럼 변하는 거라는 안나의 말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데에 그치지만, 노래를 하며 점점 그 진실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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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마치, 바로 여러분처럼.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자상하죠.”


그는 ‘사랑의 본질은 변화에 있다’는 쟁점을 중심으로 변호를 마무리한다. 브라운의 진실됨이 통한 것일까, 사회를 상징하는 판사들의 인식 또한 변화한다. 안나의 말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다. 그렇게 이 둘은 편견을 넘어선 이해와 존중의 가치를 사회에 강력하게 퍼뜨린다.



이 작은 펜으로, 우리는 우리를 위로해


[레드북]의 특별한 점은 모든 앙상블이 한번씩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신의 얘기를 들려달라고’ 말하는 극의 주제와 잘 연결된 구조이다. 첫 넘버 '난 뭐지'에서 앙상블들은 자신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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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그리고 여러분~ 우린 여러분, 다른 말로 나머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가난하고 볼품 없는, 하루종일 일만 하는, 나머지.”


이 나머지들이 낡아빠진 관습과 바보같은 규범으로부터 탈출하는 공간이 바로 ‘로렐라이 언덕’이다.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이 작은 펜으로 커다란 성을 지어.”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은 작은 펜을 사용하여 시대가 금기시하는 욕망과 상상을 글로 표현한다. 오만과 편견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직접 쓰기 시작한 여인, 허구한 날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죽이는 소설을 쓰는 여인, 짝사랑 중인 여자를 상대로 야한 소설을 쓰는 여인 등, 이들의 상상은 시대가 허락하지 않는 영역이다. 로렐라이 언덕이 아니었다면, 글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이러한 특별한 상상을 하지도, 직접 표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낡아빠진 관습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작은 펜’이란, 커다란 성을 지어 특별한 길을 찾는 현실의 탈출구로 기능한다. 그들은 언젠가 문학이 될 조각들을 지으며 그들 자신을 종이 위에 담는다. 그렇게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로렐라이 언덕을 찾아올 ‘나머지들’을 위로한다.



조롱을 끌어안는 용기로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외쳐라


세상이 야한 소설을 쓰는 자신을 거부하고 지우려고 들자, 안나는 그에 대항하며 노래한다. 이 외침이 담긴 넘버가 바로 ‘나는 야한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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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을 끌어안고 비난에 입을 맞춰.”

“나를 슬프게 하는 모든 것들과 밤새도록 사랑을 나눠.”


이는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세상의 비난까지 포용하여 자신만의 길을 걷겠다는 강력한 선언으로 작용한다.


[레드북]은 꾸준히 나머지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는데, 특히 마지막 넘버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요.’에서는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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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정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질 때까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어요.”

“당신의 얘기를 들려줘요.”


첫 넘버에서 ‘나머지’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안나의 “난 뭐지?”라는 물음으로, 그리고 마지막 넘버에서는 관객으로 표상되는 ‘여러분’의 이야기로. 이 극은 안나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억압당하는 모든 ‘나머지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인 것이다. [레드북]은 정말이지, 이 세상 모든 나머지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안달난 뮤지컬이다. 이에 응답하여, 나도 작은 펜을 함께 들어본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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