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의미들
나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종종 배설과 정제의 이중주로 다가온다. 먼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과 감정을 토해내듯 쏟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비로소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퇴고’의 시간이 찾아온다. 퇴고를 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는 게 아니다. 단어를 고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퇴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정제의 과정은 나의 생각을 정돈하고 내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바를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도와준다.
수잰 스캔런의 도서 『의미들』은 이 글쓰기의 과정을 치열하게, 그리고 파편적으로 수행하는 한 여성 작가의 고통스러운 기록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표현을 빌려 “나는 내 말을 글로 읽기 전까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고 고백하는 스캔런에게, 글쓰기는 기록이나 사후적 회고보다도 미처 감각하지 못했던 내면을 현실로 불러오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책이 논리적이고 친절한 독서를 허락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 파편적인 독백, 논리보다는 감정이 실린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논리의 흐름보다 감정의 결이 우선하는 문장들로, 이해보다 체험을 요구한다. 스캔런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살아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녀의 문장은 그 시절의 작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독자에게 묻고, 그 시절의 감각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만드는 강렬한 힘을 지닌다.
이야기는 삶의 모든 질서가 해체된 정신병원 입원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목소리가 닿지 않는 세계라는 뼈아픈 감각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완전히 상실되었던 언어적 주권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었던 글쓰기를 더듬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나 또한 글을 쓸 때면 하나씩 단어를 더듬어간다. 세상에 미처 꺼내지 못했거나 혹은 잃어버렸던 나만의 언어를 찾아가려고 애쓴다. 스캔런 역시 고통으로 인해 잃어버린 자신을, 가장 정교한 단어들을 매개로 복원해낸다.
따라서 그녀의 책은 기억의 재료를 언어로 재구성하는 작업과도 같다. 잃어버린 감정과 지워진 시간, 끝내 말해지지 못한 고통을 문장으로 길어 올려 세상에 내보인다. 이 기록을 통해 그녀는 과거 병원에서 의미를 박탈당했던 시간의 의미를 다시 세우고, 파편화된 자신의 과거를 언어의 힘으로 재정립한다.
스캔런은 이러한 자신의 글쓰기를 문학평론가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독서는 편집증적이거나 회복적"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며, 자신의 글쓰기를 회복적 독해로 정의한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심하게 결점이 있는 작품에서조차 긍정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회복적 독서와 같다. 무너진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편집증적 독해가 아니라, 고통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재구성하는 치유의 행위인 것이다.
그녀는 "나는 내가 작가가 된 것이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인 이 두 이야기를, 엄마의 죽음 이야기와 내 병원 생활 이야기를 쓰며 남은 평생을 보내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이자, "내 인생이라는 재료를 글로 정리하려는 시도였고, 나의 글쓰기는 결코 내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인식이었다.
『의미들』은 태어날 때부터 상실에 대한 예감을 짊어진 듯한, ‘만사를 재배열하는 외롭고 반항적인 족속’이 글쓰기를 통해 '나로 존재하는 건 이런 느낌이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생존 기록이다. 스캔런의 기록은 가장 깊은 고통의 순간에도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무너진 시간을 다시 세우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언어의 힘을 증언한다.
『의미들』을 읽는다는 것은, 삶의 붕괴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구원의 언어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 동행하는 경험 그 자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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