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종이 밥 먹은 지가 25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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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울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다. 그에 비해 기술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는 천차만별이다. 검색창에 입력하면 나오는 단순한 정보도 AI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키오스크를 제대로 쓰지 못해 항상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2025)를 본 관객이라면 영화의 마지막, 공장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만수는 자동화된 기계들 사이를 걷다가 기계의 이동 경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경고음을 듣는다. 기계를 감시하러 간 사람이 오히려 경고를 받는 해당 장면의 아이러니는 만수의 잔혹한 살인 장면보다도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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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같으면서도 다른 두 실직자가 나온다. 만수와 범모, 두 남자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뜻하지 않게 직장을 잃은 한 가족의 가장이다. 제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남다른 둘은 실직 이후 알코올에 기댔다. 이들에게 제지 일로의 복귀가 아니라면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결국, 만수와 범모는 모두 인간성을 잃게 된다. 다만 그 방향이 전혀 달랐다.
우선, 범모는 실직으로 인해 현실 감각과 소통 능력을 상실한다. 아내인 아라가 햇살을 느껴보라고 권유해도 그는 아무런 행복감도 느끼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범모는 정년이 5-6년 남은 지금 이 시점에서 제지 일에 재취업해도 퇴직 후에는 다시 제지 일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떡할 거냐는 아라의 질문에도 그는 그저 “나는 이렇게 살게 돼 있어. 어쩔 수가 없어.”라고 반응한다. 퇴직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인데도 말이다.
만수 또한 범모와 같다. 그는 아내 미리에게 “나는 이렇게 살게 돼 있어. 어쩔 수가 없어.”라는 범모의 말을 따라한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인 만수는 잃어버린 자신의 제지 일을 향한 욕망이 더욱 강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들을 하나둘 제거해가는 방식을 택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탕진한다. 이처럼 영화는 제지 일이 아니면 안 되는 두 인물을 나란히 놓으며, 같은 상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엔딩에서는 재취업에 성공한 만수가 자동화된 공장에서 기계를 감시한다. 이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미장센 요소는 공간 구성과 사운드, 그리고 인물의 동선이다.
AI 소등 시스템이 도입된 공장은 철저히 기계 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푸르스름하고 어두운 조명이 가득하다. 만수가 귀마개를 착용하자 딸 리원이의 첼로 소리가 차단되고 기계의 날카로운 작동음만이 공간을 채운다. 더 나아가, 기계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만수가 오히려 기계의 이동 경로를 방해하는 존재가 되어 경고음을 듣는 장면은, 인간이 시스템의 주체가 아닌 부속품으로 전락했음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 사실 만수는 그 공장에서 없어도 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만수는 과거의 방식대로 종이를 롤로 두들겨본다. 이는 숙련된 감각을 기반으로 한 아날로그 노동의 잔재이지만, 자동화된 시스템 안에서는 아무런 효용을 갖지 못한다. 결국 이 장면은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이 '필요 없는 존재'로 밀려나는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고군분투하는 비극을 극대화한다.
만수의 마지막 살인 이후 5년이 지난 시점에서 형사들이 아라를 취조하는 장면은 흥미롭다. 이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미장센 요소는 디지털 기기와 반영(Reflection)을 활용한 시각적 구성이다. 과거 종이 메모장을 사용하던 형사들은 이제 아이패드를 통해 정보를 제시하고, 카메라는 패드의 화면 위에 비친 인물들의 얼굴을 좇는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얼굴은 거울, 샤워기 헤드, 세면대 등 반사 표면에 계속해서 비춰진다. 이러한 미장센을 영화의 주제와 연결지어 해석해보면, 인물들이 더 이상 자신의 감각으로 세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물과 기술을 통해 왜곡된 방식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미장센을 통해 인간 소외의 문제를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차가운 금속성 공간, 인간을 배제한 조명, 기계적 사운드, 그리고 반사 이미지는 모두 인물들이 처한 고립과 분열을 강조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범모에게는 아라가 권유한 카페 일이 있었고 만수는 분재 일에 뛰어났다. 둘 다 제지 일이 아닌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범모는 카페 일을 거부했고, 만수는 분재 솜씨를 시체를 유기하는 데에 활용했다. 기술의 변화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함께하기를 끝내 거부한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어쩔 수 없는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음은 때로 선택의 회피를 정당화하는 언어가 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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