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New Media 독재의 시대 - <맵핑히틀러>

역사를 현재로 맵핑한 연극 <맵핑히틀러>

by 지구로

해당 리뷰에는 연극 '맵핑히틀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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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OPSIS


2036년 대통령 취임식장. 대통령 당선자 한들호, 히틀러 말고 한들호.


스무살 무렵은 미대지망생 & 합격실패생. 지방대에 들어갔으나 이사장 비리로 학교 폐교됨. 어머니가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 함. 3년째 공시생임. 아파트 재활용수거장에서 자꾸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가 있어 카메라로 증거영상 찍고 유튜브 계정을 하나 파서 올림. 천명 정도 구독자가 생김.


그러다 연극배우 고보슬을 만남. 괴벨스 말고 고보슬. 고보슬과 함께 동네에 만연된 무개념 행동들을 찍어 유튜브에 올림. 그러자 유튜브 구독자 1만명에 도달함.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 최래민이 합류함. 룀 말고 래민. 전직 유도선수이자 현 배달라이더 정가람이 합류함. 괴링 말고 가람.


네명의 청년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 아래 도원결의를 하고 유튜브 채널로 본격적인 정치투쟁을 개시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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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켓과 청반바지를 입은 배우 세 명이 나란히 선다. 한 명은 대통령, 한 명은 국방부장관, 나머지 하나는… 음, 조금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아무튼 셋은 대한민국의 주축이다. 말 한마디한마디에 욕설이 난무하고, 취임식 두 시간 전 맞춰둔 알람조차 기억 못한다. 소꿉놀이처럼 보일 지경이다.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권력자와 사뭇 다른 그들의 행태에, 관객들은 하나둘 "어떻게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주축이 된 걸까?"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들호는 무대의 시공간을 자신의 고시생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정신없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짧은 암전 사이 순식간에 소품 배치가 바뀐다. '대', '댓', '글' 역 배우들의 춤사위에 정신이 팔릴 즈음 조명이 켜진다.



Intertextuality - 역사를 현재로 맵핑하다


'맵핑히틀러'의 서사는 상호텍스트성에 있다. 작품은 과거 인물을 오늘 무대 위에 덧입히는 '맵핑'을 통해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뮌헨 폭동, 히틀러의 『나의 투쟁』, 나치당 집권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충실하게, 그러나 새로운 언어로 번역해낸다. 히틀러-괴벨스-룀의 관계는 한들호와 그 주변 인물들에게 고스란히 맵핑되고, 그 대응이 꽤 직접적이어서 역사를 알고 보는 관객에게는 섬뜩한 인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작품이 단순한 알레고리를 넘어서는 이유는, 역사를 빌려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구조 자체를 해부하기 때문이다. 고시생 시절의 초라함에서 출발해 천만 유튜버를 거쳐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한들호의 여정은, 역사적 사실의 은유이자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정면 응시다.


한들호, 고보슬, 정가람은 구좋대원과 자신들 간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파시즘 정치를 시작한다. ‘유대인’의 유를 무로, 대를 소로 살짝만 바꾸어 ‘무소인’이라는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무소인의 생김새, 성격, 행태에 관해 설파하며 대중들에게 무소인을 혐오할 것을 종용한다.


'맵핑히틀러'가 히틀러를 따라하는 것만으로 끝났다면, 관객의 공감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작품이 유효한 이유는 '미디어 권력'이라는 현대적 번역 때문이다. 히틀러가 대중을 장악했던 당대의 미디어는 일방향이었다. 작품은 그 전략을 유튜브라는 플랫폼으로 치환한다. Legacy Media에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New Media로, 새로운 미디어 독재를 보여준 것이다.


유튜브는 자본주의와 가장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플랫폼이고, 그렇기에 강력한 권력을 가진다. 한들호의 천만 구독자는 곧 팬덤이 되고, 팬덤은 ‘공격개시당’의 비리를 덮어버리는 힘이 된다. 여기에 무소인이라는 ‘적’을 만들어 '우리'의 결속력을 높이는 파시즘의 고전적 문법이 더해져, 히틀러는 더 이상 먼 역사 속의 괴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출몰할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어떤 얼굴이 된다.



Simplicity, 그리고 Economy


연출은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맵핑히틀러'는 최소한의 소품과 의상만으로 고시생 시절부터 대통령 집무실까지, 짧은 암전 하나로 시공간을 넘나든다. 단순하게 준비된 소품들을 구도만 바꿔 재배치하는 것만으로 전혀 다른 공간이 만들어진다. 특히, 연회실과 감옥은 카트와 조명만으로 재치있게 표현된다. 이러한 단순함은 이 작품의 미학적 선택인 동시에, 장면 전환이 많은 구조를 지탱하는 경제적 전략이기도 하다.

image.png ⓒ 장수정

청재킷, 청반바지, 긴 양말로 통일된 의상은 특히 인상적이다. 권력을 손에 쥔 뒤에도 이들을 여전히 보잘것없는 청년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 탈권위적 선택은, 미디어 권력을 장악한 존재가 얼마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시각 언어로 증명한다.


특히, 한들호의 ‘구좋대원'들이 모니터 앞에서 작업하는 모습이 뒤편 스크린과 무대 바닥까지 가득 채워지는 장면의 시각적 충격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연출은 사실 관객이 한들호를 응원하는 가상의 군중으로 영상에 참여한 것이다. 관객이 극의 일부로 직접 들어오는 독특한 구조로, 관객들의 참여가 무대 위의 권력 형성에 작용하게 되는 재미있는 장치이다.


그러나 클라이맥스에서 한 가지 균열이 생긴다. 최래민이 산 위에서 밀려 떨어지는 장면이 뒤편 화면으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배우의 퇴장 동선까지 노출되며 극적 긴장감이 흩어졌다. 암전을 더 길게 가져가고 쿵 하는 소리만 남긴 채 배우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더라면, 훨씬 묵직한 여운을 남겼을 것이다.


image.png ⓒ 장수정

'맵핑히틀러'는 히틀러, 파시즘, 권력 남용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블랙코미디의 형식 안에 담아내 기성 정치와 기성 권력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웃음이라는 언어로 표현한다. 주인공 한들호는 기존 정치 세력에 환멸을 느끼며 권력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역시 결국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횡령이라는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이제는 팬덤이 되어버린 '구좋대원'들로 인해 죄는 죄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풍자의 칼날은 기성 권력만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다.


'맵핑히틀러'는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대표 이태린)의 《미래의 현대인에 대한 추상》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2026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서울씨어터 202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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