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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다 Aug 10. 2020

쉽게 쓰여진 유럽여행기. #1

#1. 프랑크푸르트에 대해서

프랑크푸르트


 비행기는 현지 시간으로 오전 7시가 안 된 새벽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나의 예약된 숙소는 중앙역 근처 홍등가의 한가운데 존재하고 있어, 아침부터 술과 약에 절어있는 부랑자들이 나를 붙잡으며 소리치는 것을 뚫고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내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담배임이 틀림없었기에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를 자동응답기처럼 재생하며 그들을 뿌리쳤다. 어쨌든 내가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믿지 않았겠지만.


 도착한 숙소는 전형적인 유럽의 호스텔이었기 때문에, 아침 시간의 로비는 조식을 먹는 여행객과 체크아웃을 하려는 자들이 한 데 어우러져 아비규환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지금 당장 거리에 누워 지나가는 동양인에게 ‘어이, 담배 한 대만 주쇼!’ 라고 외쳐도 위화감을 찾을 수 없을 만한 행색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오로지 내가 원했던 단 한가지, 따뜻한 샤워를 영영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예감에 전율했고, 리셉션에서 돌아온 답변 역시 그러했다. 아침 8시임에도 불구하고 1년 내내 야근을 하는 만년 대리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리셉션 직원은, 미안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너무 바쁘니 조식이라도 먹으면서 한 시간 후에 자신에게 다시 얘기해 달라고 했다. 절망과 혼돈이 어깨동무 하고 동창회를 여는 이곳에서 의지할 사람은 그 직원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그의 말에 순응하며 30시간 넘게 열려본 적 없는 짐짝들을 모두 끌고 전쟁중인 로비 한 구석에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럽 호스텔 무료 조식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폐타이어로 만든 고무식빵을 씹으며 사색에 잠겼다. 유럽인들은 정말 매일 아침 이런 재활용 플라스틱 같은 탄수화물 덩어리를 먹는 것일까? 이곳에는 공용으로 퍼먹는 잼이 담긴 유리병은 항상 끈적하게 유지해서 뚜껑을 열기 위해 병을 집은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자치법령이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같은 생각을 주로 했다.


 리셉션 직원의 몰골은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더 이상 초췌해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겨우 한 시간 전에 본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시 돌아온 답변도 오후 4시까지 체크인을 할 수 없으니 시내 구경이라도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반올림해서 거의 이틀이나 씻지 못했으므로, 샤워만이라도 할 수 없겠냐는 나의 질문은 묵살 되었다. 이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왜 한 시간 동안이나 폐타이어를 씹게 하며 희망고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그 폐타이어를 씹는 내내 “컴퓨터가 안 되는데 어떡하죠?”, “전원은 껐다 다시 켜보셨나요?" 같은 영국 유머를 구사하는 재미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잉글랜드인에게 시달렸다는 것도 참작해 주지 않았다. 망할 독일인 원리원칙 주의자들.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주섬주섬 모자를 찾아 뒤집어 쓴 뒤 여전히 담배를 달라고 달려드는 부랑자들 사이로 내몰렸다. 예정되어 있었던 친구와의 약속도 하릴없이 미룰 수밖에 없었다.


 오후 4시가 되려면 무려 7시간이나(아인슈타인의 통찰력처럼, 시간은 상대적이어서, 짚신벌레에겐 영원과도 같다.) 남았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서 구시가 쪽으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는 꽤 큰 도시지만 관광객으로서 볼만한 것들은 모두 구시청사가 있는 뢰머 광장을 중심으로 근처에 모여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뢰머는 로마인이라는 뜻인데, 고대 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이름만 듣고서 고대 로마유적이나 원형경기장 등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기엔 너무 작은 곳이다. 그렇다 쳐도 유럽금융의 중심 도시답게(프랑크푸르트에는 ECB-유럽중앙은행-의 본부와 독일중앙은행 본점이 있다.) 유럽에서 보기 힘든 고층 빌딩이 줄줄이 서있는 프랑크푸르트의 한가운데 그런 빌딩들과 비교하면 레고로 만든 벽돌집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담한 옛 독일식 건축물들이 남아있는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여행객에게는 순식간에 시간을 역행한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뢰머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관광안내소에서 시내지도를 구입했다. 기념품 가게의 지도도 아니고, 공식 인포메이션에서 돈을 내고 지도를 사야하는 프랑크푸르트 관광안내소의 방식을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가 없다. 그들에게 관광객은 일부러 돈을 쓰러 오는 대상이 아닌가. 시내지도 정도는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관광객들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쓰게 할 뿐만 아니라, 상도덕에도 맞지 않나 싶다. 비싸진 않지만 돈을 지불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던 대상에 대해서는 단돈 500원도 불합리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 심리이니까. 한국인들이 유럽의 유료 화장실에 지불하는 50센트를 소매치기 당한 카메라 보다 아깝게 느끼는 것처럼.


 태국식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을 대충 때운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뢰머 광장을 빠져나오면 금방 강을 하나 발견 할 수 있는데, 서울의 한강 같은 마인 강이다. 강을 건너 구시가 쪽을 바라보자 좌측 편에는 마천루들이 하늘로 쭉 뻗어있고, 우측으로는 뢰머 광장과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보였다. 길쭉하게 뻗은 대나무 숲과 시간이 멈춘 야생화 군락을 한 번에 보는 것 같은 풍경이 제법 괜찮았다. 아마 종로 금융가에 서서 경복궁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기분이 이렇겠지. 강변에는 산책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해질녘이 기대되는 풍경이었다. 그들은 산책을 마치고 샤워를 할 수 있겠지. 나는 아니겠지만. 젠장. 그렇게 한 시간정도 이런 배경에서 여유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부러워하자 대충 호스텔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왜 항상 좋지 않은 일은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호스텔로 돌아가자 분위기는 부랑자들이 널려있던 아침의 로비보다 더욱 험악해 보였다. 미국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리셉션을 향해 두 장의 영수증을 흔들어 대며 아주 부드럽게 번역하자면 “젠장, 나는 망할 바보가 아니야!” 정도의 의미가 될 만한 말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법치국가에서 온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폴리스! 폴리스를 찾아댔다. 그런 상황에서 리셉션에다 따뜻한 샤워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알다시피 미국이란 나라는 총기소유가 합법화 되어있기에 수가 틀리면 이 남자가 자기 집에서 중간을 파낸 성경책 사이에 헤로인과 함께 숨겨온 권총을 뒷주머니에서 꺼내 내게 들이댈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결국 나는 리셉션에서 경찰을 부르고, 그 남자가 진정 될 때까지 다시 한 시간이라는 시간을 로비의 구석(누가 총기를 난사하더라도 곧장 숨을 수 있는 소파 뒤) 에서 멍하니 보낼 수밖에 없었다.


 9시간이나 걸려 방에 들어서자 어떤 서양인이 속옷만 입은 채로 누워서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도대체 그들이 체크아웃과 체크인 사이의 6시간동안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방은 이미 어질러져 있었다. 정말, 이럴 거면 왜 따뜻한 샤워를 허락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다시금 나라는 짚신벌레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결국 나는 제한된 사고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멀쩡한 남성 샤워실을 놔두고 여성용 샤워 실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바라보는 다른 여행객들의 시선을 통해 그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샤워를 통해 서서히 회복한 나의 사고력은 약속한 친구를 만났을 때는 보통의 수준으로 돌아와 있었다. 서울에 가면 서울 친구를 만나야 하고, 부산에 가면 부산 친구를 만나야 하는 것처럼 독일에 갔으면 독일인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것은 진리다.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음은 기본이거니와, 돈 안들이고도 최고의 가이드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있으니까. 오전에 대충 둘러본 대성당과 성 폴 교회, 니콜라이 교회도 자세히 둘러 볼 수 있었다. 언급한 세 기독교 건축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니콜라이 교회였다. 카이저 돔이라고 불리는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처럼 화려한 유럽 성당에 비하면 작고 아담하지만, 그 소박함에서 나오는 운치가 특별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늦은 저녁에도 입장료 없이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들어가서 기도를 할 수 있다. 내부 장식도 별다른 것이 없었다. 마 가톨릭에서 파문당한 후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한 루터 역시 이 곳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구교의 타락에 반발해 만들어진 신교의 원래 모습과 딱 어울리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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