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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다 Jan 28. 2021

쉽게쓰여진 유럽여행기. #5

#5. 프라하에 대해서

프라하


 연착에 연착을 거듭해 예정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도착한 프라하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부셨다. 날씨는 좋았지만 몸 자체는 야간열차로 인한 피곤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주로 이용하던 호스텔이 아닌 한인 민박을 예약했던 나의 혜안이 스스로 뿌듯했다. 짐을 풀고, 환대를 받고, 호스텔에선 절대 서비스하지 않았을 맞춤 관광루트가 표시된 지도도 세 장이나 받았다. 내게 필요한 지도는 당연히 로컬 맥주집이 연결되어 있는 맥주 별자리 지도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 ‘필스너 우르켈’의 생맥주가 기가 막힌 바가 표시되어 있는 이 지도는 그 존재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체코에 들어서면서부터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환전소에 들러 코루나로 환전을 했다. 같은 유럽연합 내 국가를 여행하면서 유로화를 쓸 수 없다는 것은 불편함이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그것이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은 폴란드, 체코, 크로아티아 등 동유럽 국가의 물가 수준이 저렴하게 유지되는 데 기여하는 바가 있으므로 여행자로서 크게 불만하지 않았다.(물론 반대의 예도 있다. 영국이라든지.. 스위스라든지..) 


 유럽의 도시들은 몰개성한 아파트 촌에서 평생 난민 생활을 하는 한국인의 눈에 항상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프라하는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여행하는 것을 매우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이 곳 만큼은 혼자가 아닌 연인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고 느꼈을 정도로. 어떤 여행지가 특별히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이 왜 내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이는 가와 비슷하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다고 해서 그 ‘왜’에 대한 해답을 명확히 찾을 수 없는 것처럼. 그건 그냥 그러하다. 

 

 낮보다 화려한 야경, 나의 주머니를 모두 털어 주고 싶은 카를교의 예술가들, 프라하 성과 세련된 근위병들, 구시가를 휘돌아 나가는 블타바 강, 심지어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들, 저렴한 물가, 코젤과 필스너 우르켈이라는 보리맛 거품음료의 절정, 공덕역 단골집 족발보다 맛있게 먹었던 체코식 족발 꼴레뇨, 너무 빨라 특별한 안내를 하지 않아도 손잡이를 잡을 수밖에 없는 에스컬레이터 속도, 프란츠 카프카의 냄새 등이 모두 합쳐져야만 그런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다.


 그런 프라하의 전경을 보고 싶다면, 다른 곳 보다 페트린 전망대를 추천한다. 엘리베이터와 푸니쿨라가 있지만, 걸어서도 갈 만한 잘 꾸며진 공원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단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입장료를 내고 입장한 수많은 곳들 중에서 유일하게 화장실 사용료를 이중으로 받는 곳이었다는 거, 그리고 여름에는 입장시간이 끝나도록 해가지지 않기 때문에 전망대에서 야경을 볼 수 없다는 것. (유럽의 여름은 밤 10시는 되어야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고, 반대로 겨울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해가 진다.) 또 멍청한 관광객들이 셀피를 찍다 발을 헛디딤으로 인해 관광명소가 아닌 자살명소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과도하게 둘러놓은 철책이 전망대의 풍경을 방해한다는 것. 그리하여 페트린 타워가 아닌 제레미 벤담과 미셸 푸코의 사랑스러운 2층 집 혹은 21세기 바랏두르 정도의 명칭이 어울릴 만 한 장소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없다. 프라하는 전경을 보기위한 뷰포인트들이 꽤 많이 존재하는 도시긴 하지만, 그래도 페트린 전망대가 가장 멀리까지 시내를 볼 수 있게 해주며, 360도 전 방향으로 프라하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술한 몇 가지 사소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꼭 들러볼만 하다. 


 한편, 이곳에는 독특한 투어문화가 존재하는데 ‘팁투어’라고 부른다. 어디든 프리 워킹 투어나 팁투어는 존재하지만, 프라하만큼 발달한 곳은 드물고, 아마 이것은 프라하의 팁투어를 운영중인 RuExp팀의 공헌이 지대할 것이다. 그들의 성공과 명성으로 인해 유럽 주요 도시에서 ‘팁투어’라 불리는 투어들이 생겨났지만 대부분은 여행사들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이곳의 팁투어가 가지는 가치나 오리지널리티를 담아내지 못한다. 

 팁투어는 말 그대로 팁을 주고 투어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 신청 없이 공지된 장소와 시간에 투어를 원하는 불특정 여행객과 가이드가 만나 투어를 진행하며, 투어비용은 투어가 끝난 뒤 본인의 만족도에 따라 지불할 수 있으며, 지불하지 않는 것 또한 개인 자유다. 

 내가 팁투어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그 자유분방함 덕분이었다. 나는 30명은 되는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죄다 목에 수신기를 걸고서는, 깃발을 든 채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갖춰 입은 전문 가이드를 줄줄이 따라다니는 광경을 보면 갑자기 가벼운 호흡곤란과 함께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지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팁투어는 육성으로 진행되므로 우선 그 우스꽝스러운 수신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내가 중간에 길을 세더라도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말하는 바스크 지방의 사복경찰 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가이드들도 코리안 히피거나, 가일 머리를 한 중년의 아저씨거나 아무튼지 간에 연금술사 단체의 수장 겸 가이드를 겸업중인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정말이지 내 마음에 딱 드는! 그렇다고 투어내용이 떨어지느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실제 프라하에 생업이 있고 시간이 맞을 때 공지를 올려 투어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므로, 순환근무 발령지를 프라하로 받은 여행사 가이드들 보다 훨씬 더 세세하고 미시적이며 투어 참가자를 위한 투어를 진행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어쩐지 내 내면에 기존 체제에 대한 아나키스트적 저항 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좌우지간 프라하에 대한 예찬을 마치기 전에 야경과 맥주에 대한 이야기는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필스너 우르켈’은 여전히 내 올타임 넘버원을 차지하고 있는 맥주다. 내가 처음 아메리카노라는 신문물을 접했을 때, 그건 의정부에 있는 어느 탐앤탐스였는데, 졸업 후 의정부로 발령난 고3 은사를 만나러 갔을 때였다. 나는 90년대생 주제에 어째선지 커피는 어른들만 마실 수 있는 음료다라는 구한말 커피가 가베차였던 시절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터라 20살이 되기 전까지 믹스커피조차 마셔보지 못한 촌놈이었다. 따라서 이제 너도 어른이니 이런 걸 마셔봐야 한다는 담임의 권유(그녀는 나와 여남은 나이차밖에 나지 않아 학교에 다닐 때부터 거의 친구나 다름이 없었다.)를 받은 후 ‘드디어!’라는 느낌으로 첫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한 모금 마신 뒤, 아메리카노가 설탕의 포화용액이 되어 더 이상 녹지 않고 쌓일 때까지 설탕을 들이부었지만 결국 다 마시지 못한 채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쓰냐? 그건 네 인생이 달아서 그래’라고 이야기하며, 박장대소했다. 필스너 우르켈이란 딱 그런 맥주다. 만약 필스너 우르켈이 단순히 쓰다면, 그건 네 인생이 너무 달아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맥주란 것은 기본적으로 발효식품이기에, 그것이 생산된 현지에서 마셔봐야만 그 정수를 알 수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라뒤레의 마카롱이 그것만을 위해 파리로 가는 여행자들을 납득시키는 것처럼 프라하의 필스너 우르켈도 그러하다. 

 

 할로겐 램프의 노란 불빛이 온 거리를 비추고, 카를교 다리위에서 시작해 골목 골목 전세계에서 날아온 예술가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그리하여 이 맥주의 배경으로 프라하의 야경을 두는 것은 이제 필스너 우르켈을 넥타르의 경지에 올리게 된다. 우리가 캄캄한 밤 하늘 아래 빛나는 도시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우리가 지난 30만 년 간 야행성 동물이 아니면서도 프로메테우스의 선물을 이용해 어둠에 대한 공포를 벗겨낸 유일한 생물종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 프라하의 야경은 꽉 막힌 올림픽대로의 퇴근길보다 아름다운가? 올림픽대로 위에서 맥주를 마시면 음주운전이 되지만, 프라하의 테라스에서는 마음대로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에게 사후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가 프라하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림으로 그렸더라면 살아생전 명예를 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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