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집에서 무엇을 하는가
개는 무료하다. 개는 대부분의 시간을 창 밖을 바라본다. 창 밖을 바라보다 눕는다.
개는 자기의 앞 발을 베고 잠이 든다.
그러다 개는 문득 잠에서 깨어 자리를 옮긴다. 베란다 앞에서 소파 위로. 소파 위에서 티브이 옆으로.
개는 가끔 나를 힐끔 거린다. 개는 내가 책상 앞에서 일어날 의사가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물을 마시러 갈 때, 내가 화장실을 갈 때조차도 개는 나를 곁눈질로 감시하고 있다.
개는 기똥차게 산책 나가는 낌새를 알아차린다. 내가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모자를 쓰면
개는 나갈 시간임을 알아챈다.
개는 일단 앞발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내 쪽으로 경쾌하게 다가온다.
신이 난 개는 시무룩한 개와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개는 리드미컬하게 반정도 점프하며 걷는다.
신이 난 개의 입은 벌어져있고 눈도 커져 있다. 개는 본인의 흥분을 감추지 않고 다가와 발을 동동 구른다.
내가 어떤 이유든 현관 앞에서 미적대면 개는 화가 난다. 화가 난 개는 짖는다.
나를 향해 짖고 앞 발로 나의 다리를 긁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개는 튀어 나간다. 하지만 개는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현관문 밖의 아파트 입구 문이 개의 외출을 가로막는다.
개는 아파트 문이 열리길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아파트 문도 박박 긁는다.
가끔 아파트 문이 열려 있을 때가 있는데 개는 바로 정원으로 뛰어간다. 정원에는 작은 정자가 하나 있는데
최근까지 그곳이 개의 최애 놀이터였다. 개는 정자나무 바닥에 코를 박고 두더지로 추정되는 동물의 냄새를 끊임없이 추적한다. 그러다 질리면 담장에 잘 세워져 있는 나무 패널 밑에서 두더지의 채취를 찾는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개는 나무 패널도 곧잘 부셔서 개가 탐문한 곳에는 나무 조각과 흙이 널브러져 있다.
개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1시간이 안 되는 시간을 치열하게 냄새를 맡으며 쥐 나 청설모나 여우나 새나 각종 작은 동물들의 체취를 쫓는다. 나의 개는 절대 허투루 이 시간을 쓰지 않기 때문에 항상 바쁘고 여유가 없다. 개의 부산함에 나의 존재는 묻혀, 개는 줄이 뒤에서 팽팽하게 당겨질 때만 나를 쳐다본다.
하루에 세 번. 약 2시간가량. 개의 외출이 허락된다.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몸 단장을 하거나 파리를 쫓으며 보낸다. 그나마 집에 파리나 벌이 들어오면 개는 생기를 띄며 작은 곤충을 열심히 쫓는다.
나는 개와 거의 24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나의 존재가 개의 시간의 질을 수직상승 시켜주지는 않는다.
나는 주인으로서 개에게 흥미로운 시간들을 선사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내 욕심으로 개를 이역만리타국으로 불렀나, 내가 아니었다면 제법 이쁘게 생긴 개는 마당이 있고 매일 고기도 챙겨 먹이는 전원주택 같은 곳으로 입양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미안함이 절로 든다.
요새 나는 나의 시간도 개의 시간의 밀도와 함께 흐르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 시간은 희석되어 그 시간의 단위당 무게는 하염없이 가볍다. 나의 세 시간은 열심히 사는 사람의 한시간과 같은 무게를 가질 수도 있다. 개의 시간이 한없이 가볍고 나른해질수록 개와 함께하는 나의 시간도 허공에 붕붕 날아오른다. 나의 시간은 미래에 대한 계획과 다짐과 목표들로 부풀어 올 갔다가 공중에 뜬 채 날아가 버린다. 내 다짐은 그 유통기한이 매우 짧아 길게 무언가 할 수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간헐적으로 다짐하고 꾸준히 포기한다.
임신을 전후해서 이러한 증상들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나는 다짐과 포기의 무한 루프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거 같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는 나는 계속 다짐할 거리들을 찾아 독어를 배우고 재택근무 알바를 구하고 운동을 가고 병원을 간다. 나는 독어를 잘하자는 다짐과 생활비라도 보태자라는 다짐과 건강하자는 다짐과 조만간 세상 밖에 나올 아이에게 해를 끼 지지 말자는 다짐을 계속하고 있다.
요새 시간이 내 편이 아니고 세상도 조금 내 편이 아닌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다짐하고 내 의지를 받아주십사 타진해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 사는 법을 나는 잘 모르겠다. 누구 말처럼 나는 엄마를 닮아 지독히 유연성이 없어서 삶의 샛길을 알지 못한다.
그나마 내가 다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되는 것이 있다면 나의 개를 굶기지 않는 것과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산책시키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반복적이고 무시할 수 없는 일들이 나를 그나마 규칙적으로 살게 하지 않나 싶다.
어느 오후 개의 하염없는 낮잠을 구경하며 나는 나의 하염없는 시간에 대해 뒤돌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