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산다는 것은.
오늘은 숟가락을 내던졌다. 저번에는 텀블러, 그전에는 뭐였더라... 사용 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내둘러 있는 각종 식기도구, 청소도구, 옷 등등을 볼 때 천불이 나는 것 같다.
-나는 네 엄마가 아닌데. -
각종 식기도구, 청소도구, 옷 등등을 쓸어 담으며 생각한다. 나쁜 생각이지만 집에서 보고 배운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시댁을 방문했을 때, 그리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으므로 응당 그 시어머니에 그 아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포기하고 넘어가거나,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소소한 결점이 나를 화나게 한다. 내 화의 시발점은 남편이고 남편으로 수렴한다.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자비롭지만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엄격할 수 있다. 나의 이중 잣대가 나를 괴롭게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살 때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과 우울증이 겹쳐 한동안 힘들었다. 정신과에 가려했으나 새 환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찾고 찾아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도 나는 보일러의 온도를 조절할 수 없다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난방을 일정 온도로 설정해 놓고 세입자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도록 하는 아파트가 있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이 점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는데 실제로 아파트 온도는 항상 20도에서 22도로 일정한 편이었다. 상담사에게 난방문제 때문에 일에도 집중할 수 없다 했을 때 상담사는 무력한 사람들이 주로 주변을 컨트롤 하고자 한다고 나를 분석하였다.
오랜 독일 생활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다 느껴질 때쯤이었다. 병원도, 학교도, 관공서도 내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약속을 미리 잡아도 기다리는 일이 허다했다. 간신히 노력해야지 내 의지 비슷하게 되는구나 생각되었다.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독어권 국가들은 다 이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곳에서 완벽한 내부인도 완벽한 외부인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투명인간 같았다. 내가 유일하게 속한 곳은 남편과 우리가 사는 아파트였다.
상담사는 외국에서 온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하였다. 나는 도대체 그들은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어떻게 견디냐고 반문했다.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견딘다고 했던가. 잘 모르겠다.
주변을 보면 독일로 이민 온 사람들 중 독일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여행도 많이 하며 독일을 200%로 즐기고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들과 나를 비교하면 괴롭다. 내가 모자란 사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