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서럽다
나는 임신 27주 차 임산부이다. 시험관 아기 시술로 임신을 하게 되어 임신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나 급작스러움을 없었다. 크게 변화된 점이라면 질분비물이 말도 못 하게 늘었고 임신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이 아랫배만 동그랗게 나왔으며 유두가 검게 커졌다. 배가 더 자주 고프다. 잘 때 다리에 근육 경련이 일어나며 골반이 아프다. 머리가 수시로 아프고 낮잠을 잘 수가 없다.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극명하게 나타났다.
개는 변화를 알 수 없다. 개는 산책을 하는 시간이 짧아진다던가 또는 느려진다던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으로 어렴풋이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까. 가끔씩 개가 내 곁에 앉아 머리를 배에 얹는 것으로 알 수 있을까. 아니면 너무나도 많이 나오는 질분비물 냄새로 알 수 있을까.
개는 아는지 모르는지 내색을 하지 않는다. 개는 개의 본분을 다할 뿐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느 날 밤산책 도중 나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개를 놓쳤다. 개는 산책줄이 느슨해지자마자 쏜살같이 질주했다. 개는 사냥개 치고는 느리지만 네발로 달리는 바람에 나보다는 빠르다. 다리와 손에 피가 흐르는 채로 절둑거리며 개를 쫓을 수 없었다. 나는 개의 이름을 혼신을 다해 부를 뿐이었다. 개는, 다행히, 가던 길을 멈추고 나에게 뛰어왔다. 개에게 임신한 주인을 보호해야 한다던가 하는 사명감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나는 개가 개다워서 안심이 된다. 개가 임신이라던가 보호의 개념을 알고 사람답게 행동한다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다. 개는 개 답되 사람과 개 사이의 선을 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개는 털이 많이 빠진다. 털갈이 철이 딱히 없다. 개의 얇디얇은 털은 천에 붙어 잘 떨어질 줄 모른다. 개는 본견의 치명적인 약점을 개의치 않고 소파 위나 침대 위에 스스럼없이 오른다. 거기서 개는 점입가경으로 본인의 털을 고르고 본인의 생식기 주변을 청소하다가 털을 뽑아내기 일쑤이다. 개와 함께 산다면 개의 털이 사방에서 발견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나는 개의 털을 기꺼이 치워가며 살 수 있지만 미래의 우리 아기는 아닐 것 같다. 아기는 물고 빨고 울고 버둥거리는 것 밖에 못할 텐데 주변에 개 털이 있다면 그 와중에 개털이 입에 들어가고 몸에 달라붙어 여간 성가실 거 같지 않다. 개는 따라서 아기와 자주 함께 있을 수 없다. 개는 자주 씻겨지고 자고 털이 빗어지고 집에서도 옷을 입는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개는 침대에서 우리와 함께 잘 수 없다. 개는 독립적이기를 요구받을 것이다.
개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채로 작은 인간과의 공생을 준비한다. 개는 점차 우리 삶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난다. 개는 오늘도 이유를 묻는다. 자신을 덜 만져주는 이유, 침대에서 함께 하지 않는 이유, 밤에 마루에서 자야 하는 이유 등등 자신의 귀여움으로 누리던 특혜를 조금씩 뺏기는 이유를 눈으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