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들고 있으면 망하는 거 아냐?

소곤소곤

by 서성민

식당에서 술을 마시는데 옆 테이블 대화가 우연히 들렸습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라 저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서더군요. 저 역시 요 며칠 달러를 팔아 환전해야 하나 싶었던 터라 더 귀에 들어왔습니다.

대화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이란이 위안화로 석유 결제를 받기 시작했대. 이제 달러 시대는 끝났어. 당장 달러 팔고 위안화 사야 해.”
"투자 천재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석유는 세계 경제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자원이고, 그 결제 통화가 바뀐다는 것은 직관적으로도 큰 변화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패트로달러 체제’는 단순히 석유를 달러로 결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석유를 팔아 번 달러가 다시 미국 금융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자산으로 쌓이는 순환 구조, 그 자체가 핵심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제’보다 ‘저장’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1. 결제는 ‘지갑’이고, 저장은 ‘통장’입니다.

돈에는 두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물건을 사는 결제 수단과, 번 돈을 모아두는 저장 수단이죠.
이란이 위안화로 석유 값을 받는 것은 거래 순간에 위안화라는 ‘지갑’을 쓰는 것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진짜 패권은 그렇게 번 돈을 어떤 ‘통장’에 넣어두느냐에서 결정됩니다.

2. 번 돈을 어디에 쌓아두고 싶을까요?

전 세계 산유국들은 석유를 팔아 번 돈을 가장 안전하고, 언제든 꺼내 쓰기 쉬운 미국 국채와 달러 자산에 쌓아두어 왔습니다.
반면 위안화는 아직 자본 이동과 운용 측면에서 제약이 많습니다.
‘쓰기 위한 통화’로는 가능성이 있어도, ‘맡겨둘 통화’로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3. 이란은 ‘선택’보다 ‘제한’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란은 미국 제재 때문에 달러를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택적으로 달러를 버린 것이 아니라, 달러를 쓰기 어려워 위안화나 우회 결제 방식을 쓰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곧바로 체제의 붕괴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체제 바깥에서 나타나는 예외적 흐름에 더 가깝습니다.

결국 지금은 결제 방식 일부가 달라진 것이지, 더 중요한 저장 구조 자체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산유국들은 그 자금을 미국 국채와 달러 자산에 축적해 왔고, 달러가 단순한 거래 통화를 넘어 글로벌 자본이 머무는 중심 통화로 기능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4. 그럼 언제 진짜 걱정해야 할까요?

사우디나 UAE 같은 핵심 산유국들이 석유 가격 자체를 위안화로 책정하고,
그 대금을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 자산으로 본격적으로 축적하기 시작할 때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때가 비로소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시점일 겁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달러 패권이 당장 무너지고 있는 단계라기보다,
아주 천천히 균열이 생기고 있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입니다.
그리고 구조는 대중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천천히 바뀝니다.

그래서 “달러를 들고 있으면 정말 망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제 답은 이렇습니다.

아직은, 그렇게 단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그냥_깽판치고_긁는 겁니다
#중국도_시큰둥_하다는데요
#아_옆에_가서_알려주고_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