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이 터지면, 2008년이 반복될까?

서브프라임과 AI 버블, 닮은 듯 다른 두 개의 풍선

by 서성민

2008년 가을, 세계는 거의 동시에 멈췄습니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한 날, 뉴욕의 한 트레이더는 모니터 앞에서 그냥 굳어버렸다고 합니다. 숫자가 너무 빠르게 내려가서, 뇌가 현실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 해,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수조 달러 규모의 자산가치가 증발했다는 추정이 나옵니다. 일자리가 사라졌고, 집이 사라졌고, 어떤 사람들에겐 미래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이미 웬만한 국가 GDP를 넘어섰고, 적자 스타트업이 수조 원의 밸류에이션을 받습니다. "AI가 모든 걸 바꿀 것"이라는 문장은 이제 투자 설명서의 클리셰가 됐습니다. 이게 진짜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또 다른 풍선을 열심히 불고 있는 걸까요.


버블에는 반복되는 문법이 있습니다.


먼저, 실질 가치를 측정하기 어려운 자산이 등장합니다. 서브프라임 때는 부동산이었습니다. "집값은 절대 안 내린다"는 신화가 있었고, 실제로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AI 시대에는 기술 기업입니다. 수익이 없어도, 제품이 불완전해도 "언젠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내러티브가 숫자를 대신합니다.


그 다음엔 유동성이 몰립니다. 저금리 환경에서 갈 곳을 잃은 돈은 수익률이 보이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닷컴으로, 부동산으로, 그리고 지금은 AI로. 마지막으로 가장 위험한 단계가 찾아옵니다. 초기 투자자의 수익이 "이건 진짜다"는 증거가 되고, 그 수익이 다시 자금을 끌어들입니다. 풍선이 스스로 커지는 구조입니다. 이 단계에서 모두가 말합니다.


"This time is different."


역사상 가장 비싼 네 단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AI 버블은 2008년과 구조가 다릅니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그토록 파괴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히 집값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부실한 주택담보대출은 CDO라는 복잡한 금융 상품으로 포장됐고, 리스크는 잘게 쪼개져 "안전한 자산"처럼 유통됐습니다. 쓰레기가 우량 자산인 척 금융 시스템 전체의 혈관 속으로 스며든 것입니다. 그래서 집값이 떨어지자 은행들이 서로를 믿지 못했고, 단기 자금 시장이 얼어붙었으며, 신용 위기가 실물 경제 전체를 끌고 내려갔습니다.


지금의 AI 투자 열풍은 다릅니다. 주요 투자자는 VC, 사모펀드, 기관 투자자들입니다. 대부분은 처음부터 이게 고위험 자산이라는 걸 알고 들어갑니다. 서브프라임처럼 "안전한 자산"으로 위장되어 은행 시스템 깊숙이 침투한 구조는 아닙니다. 손실의 귀착지가 비교적 명확한 구조라는 점에서, 출발점이 다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008년과 같은 구조는 아니더라도, 금융 시스템과 연결되는 통로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수 집중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S&P500은 소수의 대형 기술 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같은 기업들이 지수를 떠받치고 있다는 말은, 개인의 연금과 ETF와 퇴직금이 의도치 않게 AI에 베팅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버블이 꺼진다면 그 충격은 특정 투자자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한 자산 가격 하락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숨겨진 손실입니다. 비상장 시장의 가격은 공개시장처럼 매일 검증되지 않습니다. VC 포트폴리오에 담긴 유니콘 기업들의 가치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지금 장부에 적힌 숫자는 현금화가 아닌 가정된 가치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가치가 현실과 괴리될 경우 그 조정은 서서히가 아니라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여기에 CapEx 의존 구조라는 변수가 더해집니다. 빅테크들은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GPU, 데이터센터, 전력, 네트워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공급망이 형성됐는데, 이 구조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이 투자가 결국 수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가정이 흔들린다면 투자는 급격히 줄어들고, 그 충격은 주식시장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 전력, 건설, 장비 산업까지 실물 경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의 AI 인프라 투자는 순수한 자기자본만이 아니라 프로젝트 파이낸싱, 리스, 구조화 금융 등 다양한 방식과 결합되는 추세입니다. 아직은 시스템 전체를 위협할 수준이 아니더라도, 레버리지가 조금씩 이 생태계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어느 장면이 더 가까울까요. 2008년이 아니라 2000년, 닷컴 버블입니다.


당시 나스닥은 고점 대비 약 78% 하락했고, 수많은 기업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버블이 꺼진 뒤에도 인터넷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살아남은 기업들이 세상을 바꿨습니다. AI도 비슷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술의 방향은 유효해 보입니다. 다만 속도와 가격이 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은 조금 바뀌어야 합니다. "AI 버블이 터지면 2008년처럼 될까?"가 아니라, "이건 시스템 붕괴인가, 아니면 자산 가격의 재조정인가?"가 더 정확한 질문입니다.


현재 구조는 2008년형 신용위기보다는 2000년형 기술주 조정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기술이 지수, 자본지출, 실물 인프라까지 더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정이 온다면, 2000년보다 더 넓게 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합니다.


풍선이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 풍선을 얼마나 쥐고 있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풍선이 터져도 내 삶이 무너지지 않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지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종 운율을 맞춥니다. 지금 들리는 멜로디가 어느 시절과 닮아 있는지, 한 번쯤은 조용히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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