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건 삼겹살로는 부족한, 달콤 짭짜름한 돼지갈비만 표현할 수 있는 진심
돼지갈비는 초빼이에게 마치 첫사랑의 추억과 같은 음식이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마음속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자리 잡고 있는, 그러면서 문득 한 번씩 떠 오르면 애잔한 마음에 가슴이 살짝 아려오는 그런 존재이다. 사실 초빼이의 어릴 적 시절은 거의 채식으로 일관했었다. 해산물이 넘쳐나던 마산에 살았지만 비린 것들은 좋아하지 않았고, 육식을 좋아하는 가족들과 살았지만 육식도 그리 즐기지 않았었다. 그래서 식사를 할 때마다 굉장히 강한 압박을 받았던 기억도 유년의 기억엔 함께 남아 있기도 하다.
대학시절에는 삼겹살이 지금과 같은 가격대의 음식은 아니었다. 시골서 유학 온 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에도 큰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그런 음식. 용돈 올라온 날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땐, 고깃집도 부담 없이 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양념된 갈비는 삼겹살 류의 고기들보다 더 비싸게 받았던 기억도 있다. 다행히 90년대 한참 유행했던 '고기뷔페'는 술 좋아하는 친구들과 '날'잡고 찾아갔던 기억도 있다. 그런 곳에 가면 항상 초빼이는 삼겹살보다는 양념된 갈비를 선호했었다. 불판 지저분해진다는 친구들의 핀잔에만 잠시 귀를 닫으면 그날은 꽤 많은 갈비를 먹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입장료보다 술 값이 더 나온 경우도 있었으니 꽤 자주 즐겨 찾았던 듯하다.
사실 그때의 갈비는 지금 생각해 보면 갈비가 아니었다. 어느 부위인지 모를 '뼈'에 붙은 고기와 다른 부위의 고기를 함께 재워둔 그런 고기였던 것. 그래도 양념된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것에 굉장히 행복해했었다. 아쉬웠던 것은 바로 몇 년 뒤 불어닥친 '대패 삼겹살' 열풍에 고기뷔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랄까?
"돼지갈비는 돼지의 갈비로만 조리되지 않는다. 넙데데하게 펼칠 수 있는 돼지고기의 모든 부위가 돼지갈비로 구워진다"....(중략)..."쇠갈비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이 투영되어 이름만 그리 붙은 것이다"...(중략)..."사실은 돼지양념구이다"*라는 황교익 선생의 글이 떠 올랐다. 어쩌면 초빼이는 갈비를 선호했던 것이 아니라 간장과 설탕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가 불에 구워지고 졸여진 그 맛을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근로소득세를 내는 세상을 살면서도 돼지갈비에 대한 애정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무언가 축하할 일이 생기면 빠지지 않고 돼지갈비 집을 찾았다. 멀건 삼겹살은 반가움을 표현하고, 누군가를 축하하기에는 무언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고기 굽는 연기가 가득 찬 허름한 가게에서 뜨거운 숯불 위로 간장과 설탕이 버무려진 양념이 뚝뚝 떨어지며 올라오는, 양념 졸인 '그 돼지갈비' 냄새가 옷에 배어야만 제대로 된 자리를 가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전히 돼지갈비에 대한 애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삼겹살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돼갈' 2인분 정도는 추가할 요량으로 음식을 주문했고, 달콤 짭짜름한 돼지갈비를 입에 넣으면 쓰디쓴 소주를 더욱 가볍게 마실 수 있었으니 절대 거를 수 없다. 하지만 요즘은 캐러멜을 넣어 너무 달게 양념을 만드는 집이 대부분이라 맛있는 '돼갈'집을 만나는 게 쉽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을 처음으로 수원에서 가졌다. 그동안 서울이나 인천에서만 가졌던 모임이었는데 수원의 노포에 관심이 많았던 초빼이의 요청으로 올해는 수원에서 만나기로 한 것. 오랜만에 '돼갈'이나 먹을까라고 묻는 친구 녀석의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케이'를 불렀다. 평소 좋은 음식점을 자주 찾는 친구라 그 녀석의 선택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수원 인계동에 자리한 '마포 본가'였다.
현재의 매장 근처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2011년에 개업한 이곳은 불과 십 몇 년 만에 지역의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수원이라는 곳이 '수원갈비'의 본고장이자 '수원갈비=소갈비'로 통하는 곳이라 '좋은 돼지갈비 집'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예상 밖의 제안이었던 것. 어차피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 아니던가? 수인선 수원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인계동으로 향했다. 조금은 오래되고 허름한 주택가를 10여분 걸어 가게 앞 30미터 정도에 이르니 돼지갈비 양념을 졸인 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냄새에 본능적으로 '오늘 집엔 제대로 들어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 집 돼지갈비의 냄새는 그처럼 매력적이었다.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부터 올렸다. 언제나 그러하듯(?)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가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어지간하면 친구들을 만난 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겠지만 초빼이의 마음은 이미 돼지갈비 냄새에 빼앗겼기 때문에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20여 분을 기다린 후 혼자 입장. 자리를 안내받은 후 "일행분들 오시면 주문하겠냐?"라는 직원분의 말을 중간에 끊고, 돼지갈비 3인분과 술을 주문했다. 마음이 급해 말을 자르는 실례를 범했다. 그리곤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먹으면서 기다릴게요"라고 답변했다.
직원분이 첫 방문인지 물어보시더니 자세하게 갈비 굽는 법을 알려주신다.
"저희 집은 진짜 돼지갈비 부위를 사용해서 양념에 재워 며칠 동안 숙성시켜요. 그래서 다른 갈빗집에서는 고기를 익힌 뒤 먹기 좋게 자르지만 우리 집은 갈비가 질기지 않아 고기를 올리면서 잘라야 합니다."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어떻게 고기를 굽는지 세세하게 알려주셨다. 먹음직스러운 크기로 한 번에 잘라지는 갈빗살을 보니 신뢰가 더한다. 직원분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고기를 석쇠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는 동안, 허기를 이기지 못해 소맥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드셔보세요"라고 집게로 건네는 갈비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순간 '어?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절로 눈이 커졌다. 보통 돼지갈비는 불고기와 달리 두터운 살을 가지고 있어 불 위에 오랫동안 익힌다. 그래서 일반적인 돼지갈비는 수분이 빠지며 조금 탄탄한(딱딱한) 식감을 가지게 일반적인데, 이 집의 갈비는 육즙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식감도 정말 부드럽다. 마치 겉만 살짝 익힌 소고기 한 점 먹는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순간 놀라는 표정을 보았는지 직원분이 '다르죠?'라는 자신감에 찬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그분은 눈빛만으로도 말을 건네는 능력이 있었다.
고깃집 권력의 상징인 '가위와 집게'를 넘겨받아(친구들이 도착하지 않아 혼자 있었지만) 초빼이만의 돼지갈비를 굽기 시작했다. '먼저 자르고, 석쇠 위에 올려 10초에 한 번씩 굴려'주기 시작했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어색하다. 쌈 한번 싸 입에 넣느라, 빈 맥주잔에 소맥 한 잔 채우느라 집중하지 못했더니 고기가 타 버렸다. 그런데 조금 탄 고기의 맛과 식감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렇게 혼자만의 돼지갈비를 즐기고 있을 찰나, 친구 녀석이 도착했다. '가위와 집게'를 친구의 손으로 넘겼갔다. 호스트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
고기를 구워주는 친구의 손길은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자리에 앉은 친구는 고기 접시 위에서 고기를 자르더니 불에 올려 몇 번을 굴린다. 그러더니 다시 고기를 담아 온 접시에 고기를 내려 갈비 양념을 적신다. 얼마 전 오사카의 쿠시야키(串焼き) 집에서 본 것처럼 '수시로 양념을 묻혀 수분을 유지'시키는 것이 친구 녀석이 선보인 비장의 기술. 역시 음주 분야에서는 이 친구는 많이 '배운' 사람이다. 돼지갈비 굽는 방법의 정석을 친구 녀석에게서 배운다.
테이블 위로 소주잔을 내밀며 부딪히는 숫자만큼, 보지 못했던 지난 1년의 삶이 이리저리 오갔다. 나의 이야기가,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일에 관한 이야기가 두서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 짧은 간극을 돼지갈비의 달콤한 향과 맛이 쓰디쓴 소주와 함께 채워 나갔다.
곧 작년 요르단에 이어 올해는 모로코로 긴 여행을 떠난다는 화가 친구의 이야기에 부러움을 더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일본 여행을 떠나는 큰 딸 덕분에 등골이 빠질 것 같다는 친구 녀석에게 '능력 있는 좋은 아빠'라는 명예도 수여해 준다. 그 이야기 사이에서 초빼이는 돼지갈비를 쉴 새 없이 집어든다. "곧 책 나오면 다시 한번 더 보자"며 미리 봄 약속을 잡는다. 서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지만 돼지갈비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 돼지갈비 앞에서만 가능한 두서없음이다.
세 명이 앉아 7인분의 돼지갈비를 먹어 치웠다. 초빼이보다 먼저 들어온 팀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나갔고 주위의 테이블은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채워 나갔다. 테이블 한편으로 치워둔 소주와 맥주병을 더 놓을 자리가 없어질 무렵 그제야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라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돼갈'을 먹었다. 수원까지 먼 원정길이었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돼갈을 추천해 줬으니 내가 사겠다"는 핑계로 계산대로 향했다. 사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며 계속 먹기만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아마도 초빼이 혼자 4~5인분 정도는 먹어 치운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돼지갈비 집을 나와 민물 매운탕과 도리뱅뱅을 잘하는 집에 들러 술잔을 더 기울였고, 아재들의 필수코스인 '노래방'에 들려 맥주캔을 찌그러트리며 콘서트를 열었다. 몇 시간이 흘렀어도 1차에서 먹었던 돼지갈비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좋은 양념에 잘 구운 돼지갈비 한 점과 소주 한 잔으로 나 자신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이런 위로는 절대 뒤로 미루면 안 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줘야 한다. 어영부영하다 시간이 흐르면, 그런 위로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에 '뻘쭘한'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새겨 놓은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굳이 우리가 되풀이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 자리였지만 맛있는 돼지갈비와 한없는 수다로 위로받은 느낌이다. 다시 올해를 살아나갈 힘이 생겼다.
* 황교익, '미각의 제국', 도서출판 따비(서울), 76쪽
[메뉴추천]
1. 2명 이상 방문 시 : 돼지갈비(돼지양념구이) + 소주 + 후식냉면(물,비빔)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다. 주차장이 만석일 경우 인근 노상에 주차 가능. 이곳의 손님일 경우 근처
경수 유료주차장에 주차 가능
2. 월~금 12:00~22:00, 토,일 11:00~22:00 / 브레이크 15:00~17:00
3. 참고
- 직원분들이 알려주는 방법을 반드시 따르시길. 최상의 맛을 보장.
- 주중은 예약 가능하나 주말엔 예약을 받지 않는다. 참고하시길.
4. 여행 및 관광정보
- 인근노포 : 유치회관 본점, 해삼 수원, 새벽집, 가보정, 청화대, 초원식당, 이모네중앙닭발, 홍진사,
대포집, 로마경양식, 명성돼지갈비, 동흥식당, 대왕칼국수, 본수원갈비, 삼부자갈비 등
- 수원을 찾았다면 화성과 행궁을 찾아보는 것은 기본이다. 인계동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수원 관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수원화성과 행궁은 야간개장 시 찾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화성의 경우 9~10월
중 야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다. 축제와 함께 즐길 수 있다.
-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광교 호수공원도 추천한다. 가을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 행궁 근처는 꽤 오래된 노포들이 군데군데 있다. 또한 인근에 수원 통닭거리도 있어 식도락을 즐기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