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고베의 노포(老鋪) 커피(コーヒー)집들
[짧게 간추린 한국과 일본, 양국 커피(Coffee)의 역사]
커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 중 하나다.
한 통계*를 살펴보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은 60kg짜리 포대 기준 2,600포대에서 3,275포대로 매년 25% 이상 꾸준히 소비량이 늘었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은 2024년 기준 1인당 416잔/연(출처 : USDA 서울무역관 보고서)으로 매일 1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물론 6~12kg씩 소비하는 북유럽에 비하면 현저히 낮지만,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1~2위를 다툴 정도의 소비량이다.
(* 출처 : 커피 국내소비 추이(USDA FAS 기준))
이제는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커피의 시작과 기원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커피 역사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는 인물은 두 명이 있다.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으며, 소문난 커피 애호가로 알려진 '고종(이희(李㷩))'과 '손탁'이다. 손탁은 고종에게 커피를 알려준 '커피 스승'과 같은 사람. 하지만 실제로는 고종이 커피를 마시기 전, 이미 인천과 같은 개항장에서는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이 커피를 들여와 마셨고, 우리나라의 관료와 역관(통역관)들도 이 즈음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우리 역사상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 아니라는 것. 에둘러 표현하면 고종은 '최초의 커피 애호가'였고, 손탁은 '최초의 커피 바리스타'정도라 할까?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접한 이후, 덕수궁 정관헌에서 커피를 즐긴 것이 서양식 다과 문화의 시작점이 된 것은 확실하다. 이후 손탁은 1902년 서울 정동의 '손탁호텔'내에 다방을 운영하며 최초의 서양식 카페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일제 강점기 시절엔 정치, 문화, 상업이 이뤄지는 사교장으로 다방이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서양식 카페와 일본인들이 들여온 일본식 다방(카페)인 '끽다점(喫茶店)'이 늘었다. 40년대와 50년대에도 다방은 우리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계속 수행해 왔다.
물론 우리나라 커피 문화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수입품 판매금지(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 1963년 최종 개정, 1982년 폐지)에 의해 커피, 코코아, 음료, 담배 등의 수입품은 판매와 사용이 금지되었다. 자연스레 다방이 이 법의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 시절 젊은 세대에게도 잘 알려진 다방의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 문화가 발달하게 되기도 했다. 이런 문화는 8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90년대 서양식 카페와 프랜차이즈 카페의 발전과 더불어 '다방 문화'는 쇠퇴하게 된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보다 커피의 역사가 더 앞선다. 그리고 그 기록이 더 상세한 편이다. 소비 형태에 방점이 찍힌 우리나라의 커피 기록에 비해 일본의 커피에 대한 기록은 '새로운 문물'을 기록하는 관점에 가깝게 기술되어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동과 일반인들의 교양용 백과사전 시리즈로 생활 주변의 사물과 제도의 "처음(はじまり)"을 소개한 [통으로 알 수 있는 [사물]의 시작 백과사전](일본도서센터 2004) 1편에는 1689년 '어주인선(御朱印船, 근세 초기 해외 통상을 승인하는 '주인장(朱印狀)'을 가진 무역선)'의 '기행문(운항기록, 大淀三千風)'에 일본 최초의 커피가 소개되는데, 1797년에 기록한 '나가사키 견문록(長崎見聞録)' 부분에 커피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때는 커피라는 명칭이 아닌 '난반차(なんばんちゃ)'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처음 서양인을 접하던 시기 일본인들은 서양인들(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인)을 '난반(南蛮)'이라 불렀다. '남쪽에서 온 오랑캐'라는 뜻으로 남쪽인 규슈를 통해 일본에 들어온 서양인을 통칭하는 말. 그들이 마시는 차나 음료는 당연히 '난반차'가 되었다. 처음 커피가 소개된 시기 일본에는 '커피'를 구분하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서양의 차'로 인식했었고, '탄맛이 나고 매우 쓴 음료'였기에 일본의 오래된 의학서적에는 '약(藥)'으로 실리기도 했다.
난반차는 개항장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사실 처음에는 그리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일본의 음식들이 그러하듯 '메이지 유신(1868)'과 텐무천왕의 '육식금지령 해제(1875년)'에 힘입어 커피는 순식간에 일본인들의 입을 사로잡았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은 자신들(일본인)은 충분히 개화가 되었지만 서양인들에 비해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체격'이라 느꼈다. 왜소한 일본인들의 '체격을 개량'하기 위해 고기와 우유의 섭취를 적극 권장했다. 그러나 육식에 길들여지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우유에서 나는 '유제품의 비린내'를 견디지 못했는데, 이를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커피였다. 또 하나의 신세계였다. 우유는 너무나 써서 의서(醫書)에나 실리던 커피의 맛을 부드럽고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난반차'였던 커피는 일본인들의 실생활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역사가 일상이 되어버린, 커피 노포(老鋪)의 보고 고베(神戸)]
고베는 개항(1868년)과 더불어 서양 물산과 건축, 식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온 항구였다. 개항장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 체계적으로 조성된 외국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고베에는 커피가 보급되기 시작되었다. 항구에는 상인이 넘쳐났고 은행과 차이나타운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들의 아침은 '커피를 마시는 일상'이 채워 나갔다.
이 즈음 모토마치 상가점에 있는 차포(茶鋪) 호코도(放香堂)는 신문광고를 통해 '인도산 커피'를 소개했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점'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호코도 커피를 소개할 때 자세히 설명 예정) 거기에 고베항은 개항장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커피포트(Coffee Port)'로서 역할에 충실했다. 쇼와시대 초기부터 헤이세이 시대 초반까지 고베항은 생두(원두) 수입의 중심지였고, 최근까지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2013년 일본 전국 2위, 11만 2천 1백톤, 출처. 日本海事新聞. 2014.04.02).
1900년대 초반 커피항으로서 고베의 역할은 더욱 확대되었다. 1908년 일본의 첫 이민선 '가사토마루'호는 약 800명의 일본인을 싣고 고베항을 출발해 브라질 산투스에 도착한다. 당시 커피 농장의 인력이 부족했던 브라질은 적극적으로 일본인들을 노동자로 받아들였고 양국 간의 커피 교류가 처음으로 이뤄지며 일본과 브라질 간의 커피 네트워크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커피에 친화적이었던 고베는 커피 산업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커피 회사를 키워내기도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커피 브랜드 'UCC 커피'의 고향이 바로 고베다. '일본 커피의 아버지'라 불리며 '최초의 전일본 커피 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던 '우에시마 타다오'는 1933년 '우에시마 커피 주식회사(Ueshima Coffee Co., Ltd)를 설립했다. 1951년 도쿄에 지점을 개설하며 일본 전국으로 확장하였고, 1969년 오사카 엑스포에 '세계 최초의 캔커피 음료'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커피회사로 발돋움하였다. 일찍부터 눈을 뜬 커피에 대한 애정이, 고베라는 도시의 커피 인프라를 키웠고, 그 결과 세계적인 기업을 탄생시켰던 것. 현재도 UCC의 본사는 고베에 있다. 당연히 역사를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반영하여 'UCC 커피 박물관'도 고베에서 운영 중이다.(2026년 여름, 리뉴얼 오픈 준비 중이다)
최근 일본도 '킷사텐(喫茶店)'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히 노포 킷사텐은 대를 이어 운영할 인력을 찾지 못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레트로 킷사텐(レトロ 喫茶店)' 순례 열풍이 불고 있다.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쇼와시대 킷사텐'을 방문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또한 간사이 지방의 고베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고베의 중심가인 '모토마치'와 '신카이치' 일대의 오래된 노포 킷사텐이 인기 있는 곳이라 한다.
초빼이가 고베의 노포를 찾아다니며 방문했던 많은 카페들 중, 고베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곳의 노포 커피 전문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최고(最古)의 커피점 호코도 커피(放香堂加琲)]
고베의 호코도는 1830년 '히가시 겐베에'가 창업한 차포(茶鋪)다. 원래 교토 우지차를 에도일원(도쿄일원)에 도매하면서 노포의 업력을 시작했다. 이후 1858년(안세이 5년)에는 마쓰다이라가(松平家)에 차를 납품하는 '어용상인(御用商人)'이 되어 '호코도(放香堂)라는 상호를 받으며 현재까지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교토의 우지차를 판매하던 상점이었던 호코도 커피는 에도막부 말기, 우지차를 해외에 판매하기 위해 고베로 진출한다. 해외에 우지차를 수출한 후 빈 다호(茶壺, 차를 담는 단지)에 커피콩을 담아 고베항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커피를 수입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던 것. 메이지 7년(1874년) 고베시 모토마치가에 우지차의 소매점포 '호코도'를 열고 차를 판매했고, 메이지 11년(1878년) 일본 '최초의 커피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호코도가 최초의 커피를 판매한 곳이라는 증거는 1878년 요미우리신문에 게재한 광고(글의 윗부분 사진 첨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광고 카피로 '焦製飲料 : 弊店にて御飲用或は粉にて御求共に御自由(초제음료 : 당점에서 음용 또는 가루로 구함이 자유롭다)'라고 썼는데 이를 통해 '커피를 직접 마시거나 커피를 구입할 수 있는 판매점'인 것을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일본 내에서는 '일본 최초의 카페(커피 전문점)'로 정영경(鄭永慶, ていえいけい)이 도쿄 우에노(下谷西黒門町)에 세운 '가히차칸(可否茶館, 현재는 폐업, 1888년 4월 13일 창업)'을 들기도 한다. 원래 자신이 살던 집이 화재로 전소하자, 그 자리에 서양식 건물을 다시 짓고 카페로 문을 열었다. 이른 유학생활을 통해 서양에서의 카페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알았기에 그는 자신의 집을 '지식인들이 모이는 사교장'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비싼 커피값에 매출이 좋지 않아 3년 만에 폐업했다. 그 후 1967년(쇼와 42년) 정영경의 손자가 도쿄의 스기나미구 아사가야에 다시 같은 이름으로 킷사텐을 개업했으나, 이마저 2011년 재개발로 없어졌다. 아마도 이곳은 일본인들에게 '최초의 서양식 카페'로 인식되는 듯하다. 유럽의 카페처럼 문인과 예술가 정치가들이 모여 담론을 나누는 장소로서 일본 최초의 카페를 기념하는 의미로 보인다.
호코도 커피는 고베의 중심가 모토마치역 앞 모토마치 상점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 상점가는 과거 고베의 영광을 상징하는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 인근에는 고베의 오래된 킷사텐과 양과점 여럿이 자리 잡고 있을 만큼 오래된 거리이기도 하다.
호코도 커피의 바로 옆 골목엔 40여 년 역사를 가진 킷사텐 '포엠(Poem)'이 있고, 왼편으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베의 노포 양과자점 '후게츠도 고베본점(風月堂, 1896 창업)', '혼타카사고야(本高砂屋, 1877년 창업)'가 있으며 그 앞으로 덴마크 치즈케이크로 유명한 '칸논야 모토마치혼텐(観音屋 元町本店, 1975년)'이 자리하고 있다. 5~70여 년 업력을 가진 업체도 넘쳐나는데 '니시무라 커피'나 전국적 프랜차이즈 커피점 '코메다 커피', '에비안 커피(エビアンコーヒー)', '모토마치 산토스(元町サントス)', '자바(ジャヴァ)'같은 노포 킷사텐들이 즐비하다. 산노미아역 방향으로 조금 더 발걸음을 더하면 '일본 최초로 밸런타인데이를 도입'한 모로조프(モロゾフ 神戸本店, 1931년)까지 순식간에 닿는다. 개항장 고베의 양과자와 커피를 대표하는 노포들이 모두 하나의 거리에 모여 있는 것.
호코도 커피의 가장 대표적인 메뉴로 메이지 시대의 커피를 복원한 '맷돌로 그라인딩 한 린타로 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주문했다. 처음 호코도 커피가 문을 열었을 때는 커피 원두를 그라인딩 할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호코도에서는 일본식 '맷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맷돌은 돌의 차가운 성질 때문에 그라인딩 할 때 열이 발생하지 않아 원두의 향과 맛을 더욱 잘 보존할 수 있었다. 최근 '린타로 커피(コーヒー麟太郎)'라는 이름의 메이지 시대 커피를 복원하여 대표 상품으로 내고 있다. 이 당시 원두 로스팅도 하였던 것으로 추측되니 어쩌면 일본 최초의 로스터리 카페였을 수도 있다.
일본의 커피는 우리보다 진하다. 우리나라의 커피점들에서 내는 커피들보다 2배 이상의 농도를 가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커피를 좋아하는 초빼이조차 "쓰다"라는 느낌을 갖는 것을 보면 옛 일본인들이 처음 커피를 접하고 너무 쓴 탓에 의약서적에 커피를 올렸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커피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좋은 향과 맛을 즐길 뿐이라 '인도산 커피'의 특징은 잘 잡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치즈케이크는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케이크. 조금 낮은 온도에서 보관해 치즈의 향을 케이크 안에 담아 약간 딱딱한 느낌이 드는 그런 케이크이다.
호코도 커피는 이젠 법인에서 운영하는 형태가 되어 비교적 젊은 직원들이 서빙을 맡고 있다. 오래된 커피집(킷사텐)의 매력이라 생각하는 나이 든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따뜻한 접대는 받을 수 없지만, 아직도 호코도 커피의 본점은 많은 수의 어르신들이 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모임 장소로 사용한다. 우리 카페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킷사텐의 풍경이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려드리자면 호코도 커피의 간판(옛 자료와 현재의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커피'를 뜻하는 한자 '가배(珈琲)'의 '가(珈)'자가 아닌 더하다는 의미의 '가(加)'자로 쓰여 있다. 커피가 처음 일본으로 들어오던 시절 '가배'라는 단어가 아직 자리잡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또 하나의 일화는 고베 대지진 시, 지진 피해로 단전과 단수가 되자 자신들의 건물에 있는 저수조의 물을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고통을 함께 나눴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개업 초창기의 판화에는 '인도산 커피'라는 글자가 간판에 쓰여 있는데, 당시 일본과 최초로 무역을 시도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영국이 당시 '동인도 회사', 즉 영국령 인도에서 가지고 온 커피를 일본에 판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이 커피점은 현재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다.
[추가 팁]
1. 매장명 : 호코도 커피(放香堂加琲)
2. 주소 : Hyogo, Kobe, Chuo Ward, Motomachidori, 3 chome-10-6 放香堂ビル 1F
3. 영업시간 : 월~일 09:00~18:00 / 정기휴무 없음
4. 주차장 : 주차장은 없다.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 연락처 : +81-78-321-5454
6. 이용 시 팁
- 현금, 카드 모두 가능.
- 꽤 괜찮은 원두와 차도 판매한다. 다기도 판매하니 참고할 것
- 역사성을 찾는 분이라면, 필수코스.
https://maps.app.goo.gl/FcxSL3HP7B7iDDng6
[일본 최초의 회원제 킷사텐, 니시무라 커피(にしむら珈琲店 中山手本店)]
킷사텐은 가게 하나하나마다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곳이 많다. 재즈 음악으로 유명한 곳도 있고, 케이크가 유명한 곳도 있으며, 많은 문호들이 찾아 유명한 곳도 있다.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브랜딩화하여 킷사텐 자체로의 매력을 끊임없이 발산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각각의 킷사텐마다 그곳만을 찾는 고유의 단골들이 존재한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전쟁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도시가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도시에는 다양한 커피 취향을 선보이는 카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48년(쇼와 23년) 고베에서 테이블 3개의 작은 가게로 니시무라 카페(にしむら珈琲店)는 영업을 시작했다. 전쟁 후 일본에서는 '대용커피(콩커피, 우리나라에서도 박정희 정권의 수입품 판매금지 시기에 콩커피를 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또한 일본의 경험을 참조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가 흔했는데 이 집은 제대로 된 커피를 냈다. 워낙 커피가 좋았는지, 창업을 한 후 4년 만에 현재의 위치인 나카야마테(中山手)로 본점을 옮겼다. 니시무라 커피가 유명해진 것은 블렌딩 커피가 아닌 '블루 마운틴, 킬리만자로, 모카 등 '산지별 스트레이트(단일) 커피'를 메뉴로 올렸다는 것. 같은 맥락에서 카푸치노, 비엔나커피, 커피 젤리 등의 보급에도 힘을 썼다.
고베를 대표하는 카페로 급성장하던 니시무라 커피는 1974년(쇼와 49년) 또 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바로 일본 최초의 '회원제 킷사텐'을 시작한 것. 창업자의 자택 1층을 개조해 해외에서 들여온 가구를 배치하여 인테리어 하면서 다른 지점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마치 유럽풍의 클래식한 회원제 카페를 만들어 낸 것. 본래 니시무라 커피의 대표(가와세 기요코, 川瀬喜代子)는 연극을 좋아했는데, 그의 회원 명단에는 많은 무대 관계자와 미와 아키히로, 오타케 시노부 같은 연극 영화계의 유명 배우들, 고베 태생의 영화 평론가 요도가와 나가하루 등 각계의 명사나 저명인사가 많았다고 한다. 일반 고객들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1995년 한신대지진(고베 대지진) 이후 이곳은 일반에게도 개방되어 당시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선보이고 있다.
초빼이가 방문한 곳도 바로 이 나카야마테 본점(中山手本店)이다.
조금은 늦은 시각,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일본이 아닌 유럽의 카페에 온 느낌이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테이블 등의 가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마침 이곳을 찾은 날은 밤늦게까지 더운 날이었다. 조금은 예스러운 보우타이와 베스트를 갖춰 입은 젊은 직원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바로 내려놓은 조그마한 물잔과 뜨거운 시보리 하나. 더운 여름에도 시보리(しぼり)는 뜨거운 것이 좋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된 킷사텐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20여 년 전 멋모르고 찾았던 도쿄의 킷사텐에서 처음 경험했던 일들이 초빼이에게는 킷사텐의 기준이 된 듯하다.
일본 킷사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금 작은 사이즈의 잔이 정겹다. 커피잔도 그렇고 물잔마저 그러하다. 거기에 니시무라 커피점을 나타내는 엠블럼이 선명히 찍혀 있다. 본점의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빨간색 옛날식 커피 그라인더'가 니시무라 커피점의 상징이 되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과 술을 마신 후,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찾았기에 간단한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블루 마운틴 커피를 주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약간은 술기운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니시무라의 커피가 내 입에 맞았다. 고베에서는 적어도 커피를 마시지 못해 고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 거리를 가든, 어느 골목을 들어가든 커피집은 손에 닿을 거리에 있었고, 심지어 커피의 수준도 높았다. 인스턴트커피가 아닌 드립 커피를 기본으로 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커피의 맛과 향을 잘 살리기에 더욱 좋았다. 깔끔하고 제대로 된 블루마운틴을 밤 10시가 넘는 시각에 마실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다른 커피집보다 문을 닫는 시간이 늦다는 것은 정말 큰 장점이었다. 가끔은 커피 해장도 나쁘지 않다.
니시무라 커피는 잘 정리된 세련됨을 가졌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뭔가 클래식하면서도 한편으론 세련된 면도 찾을 수 있었다. 서로 이질적인 성격이 무작정 섞이지 않고 그 장점만 빛내고 있으니 흠잡을 데가 없었다. 잘 정리된 메뉴판부터 전체적인 매장의 분위기와 소품들 그리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마음에 들었다. 보통 신경을 잘 쓰지 않는 화장실까지도 기품이 있게 꾸몄다. 지역 명사들의 멤버십 클럽이 사용하던 장소라더니 그 수준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기분 좋은 노포에서의 마무리가 기억에 남는 집이다.
[추가 팁]
1. 매장명 : 니시무라커피 나카야마테 본점(にしむら珈琲店 中山手本店)
2. 주소 : 1 Chome-26-3 Nakayamatedori, Chuo Ward, Kobe, Hyogo
3. 영업시간 : 화~일 08:30~23:00 / 정기휴무 월요일
4. 주차장 : 주차장은 없다.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 연락처 : +81-78-221-1872
6. 이용 시 팁
- 현금, 카드 모두 가능.
- 내부의 클래식한 인테리어가 좋다.
https://maps.app.goo.gl/Myoj7FLT5UU5K2Bd9
[고베 최고(最高)의 브런치 카페, 프로인드리브 본점(フロインドリーブ 生田店)]
프로인드리브는 발음하기에 이름은 조금 어렵지만, 늦은 아침잠에서 깨어난 후 브런치를 즐기기에는 최고의 카페다. 위치는 산노미아역에서 조금 많이 떨어져 있는 편이지만 쾌적한 아침의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찾았다. 빌라와 주택이 혼재한 작은 골목 한편에서 오래된 교회의 모습을 찾았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다.
'프로인드리브'라는 이름은 창립자인 '하인리히 프로인트리브(Heinrich Freundlieb, 1884~1955)'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에서 따 왔다. 프로인트리브는 독일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 포로로 잡혀 일본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가지 않고 일본에 남아, 시키시마 제빵의 초대 기술사장으로 일하다, 1924년(다이쇼 13년) 고베에서 처음 가게를 열었다. 이 집이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정통 독일식 하드타입 빵(ドイツパン)을 소개한 선구자였기 때문. 자신의 일본인 아내와 프로인드리브를 창업한 이야기는 NHK의 아침 드라마 '카자미도리(風見鶏, 수탉 모양의 풍향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프로인드리브는 아주 오랫동안 많은 고초를 겪었다. 창업할 당시의 점포와 공장은 미군의 '고베 대공습'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고, 그 후 인근에 다시 공장과 가게를 열었지만 이것도 1995년 고베 대지진(한신 대지진) 당시 전파되어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 어려움에도 다시 재기를 위해 노력했고, 이미 오랫동안 이 집의 빵과 커피를 사랑해 온 고베 시민들도 많은 응원을 보냈다. 그래서 다시 자리를 잡은 곳이 현재의 자리. 당시 철거가 예정되어 있던 '구 고베 유니온 교회(旧神戸ユニオン教会)'를 매입하여 세 번째 보금자리로 만들었다. 이 교회 건물은 미국 건축가가 설계해 1929년 완공한 건물로 등록 유형문화재(登録有形文化財)로 지정된 건물이다. 고베 대지진 후 4년이 지난 1999년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매장으로 쓰이는 교회는 현재의 대표(3대째 사장 헤라(ヘラ)씨, 초대 사장의 손자)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했다는 것.
간략하게 정리한 프로인드리브의 역사이지만, 창업자의 삶부터 지금의 건물까지 어느 것 하나 스토리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게다가 사람이 가장 감동받는 이야기가 "계속되는 어려움과 고난을 뚫고 성공하는 영웅적인 스토리"이지 않은가? 프로인드리브의 이런 엄청난 스토리가 있었기에, 1977년(쇼와 52년) 일본 최고의 공영방송인 NHK에서도 드라마화하여 방영하였으며, 이 드라마를 바탕으로 바로 다음 해 연극(1978년)까지 만들어졌을 터.
1층으로 들어선 순간, 구수한 빵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일본어가 서툰 탓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으니 직원이 다가와 친절히 안내해 준다. 대충 알아들은 말로는 1층은 빵이나 케이크 등을 구입하는 곳이고 바로 먹으려면 2층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한 눈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탱했을 것 같은, 오래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향했다. 단초롭지만 강렬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계단 벽에 걸린 초대 창업자의 사진과 그림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며 마지막 계단의 코너를 도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발길을 들여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자료로만 보고 찾아온 집이기에,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어차피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러 온 것이니 적당한 세트 메뉴 중 하나를 고르려 했다. 초빼이가 주문한 것은 아침 메뉴 중 '모닝 플레이트'. 사실 호기심이 당기는 것은 두 번째 베이컨과 샐러드가 가득한 메뉴였지만 이미 솔드아웃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이 집이 좋은 빵으로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곳은 당일 사용할 빵을 오전에 구워내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추가로 빵을 만드는 것도 하지 않는다. 이는 창업 시부터 이어온 전통으로 독일식 빵은 자연 발효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반죽에서 굽는 과정까지 6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 그런 과정을 통해 탄력이 풍부하고 바삭한 식감의 빵을 만들어 낸다니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손님이 많거나 늦은 시간에 찾으면 주문할 수 없는 메뉴가 꽤 있다고 한다.
모닝 플레이트를 주문하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문을 받는 서버가 일일이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설명하고 자세히 기록해 주방으로 오더를 준다. 빵은 2종을 고를 수 있고, 버터와 올리브 오일 중 선택을 해야 하고, 잼은 4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계절 잼 중 하나인 레몬잼을 선택했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어 잼을 고를 때는 조금 날을 세워 물어보는 편이다. 그리고 아침이니 커피 한 잔. 호텔의 커피가 마음에 안 들어 손을 대지 않은지 이미 몇 년이라, 아침 시간의 커피는 필수적이었다. 솔직히 초빼이는 독일을 여행한 경험이 없어(유레일을 타고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독일빵이 어떤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식빵과 모닝빵을 선택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테이블을 보고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알아야 면장이라도 하지.
독일인들의 특성을 닮은 걸까? 빵은 겉면은 무척이나 딱딱하고 바삭거렸다. 호밀로 빚은 식빵은 평소 접하는 밀빵보다 더 딱딱했지만 향이 달랐다. '독일 음식이 맛있던 게 있었던가?'하고 의심하며 빵을 집었다. 껍질을 벗겨내듯 조심스레 버터를 스프레드에 올린 후 식빵에 바르고 그 위로 잼을 다시 올렸다. 연한 갈색의 빵 위로 펼쳐진 하얀색 버터와 그 위를 은은하게 덮은 레몬잼이 만들어 내는 콜라보가 이상적이다. 호밀의 구수한 향과 레몬향, 그리고 버터향의 조합이 굉장하다.
이 집에서는 빵 위에 무엇을 올리든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워낙 기본이 탄탄한 빵을 내기 때문이다. 메뉴판에도 쓰여있듯 빵에 대한 자신감과 버터와 잼에 대해서는 '고다와리(こだわり, 사소한 것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거나, 특정한 기준에 집착하는 태도를 의미)'라는 단어까지 써 가며 안내하니 신뢰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들이 원래 겸손하고 과장을 하지 않는 편이지 않은가?
한국의 그것과 달리 모닝빵도 꽤 딱딱한 편이었다. "세상에 모닝빵이 딱딱하다니!" 반으로 가르는 것조차 평소보다 두 배의 힘을 들일 정도였다. 하지만 숨겨진 속살은 예상외로 부드러웠다고 할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겉바속촉'은 이 정도쯤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반으로 갈라낸 모닝빵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를 사라다(마카로니 샐러드)로 덮은 후 다시 그 위에 작고 귀여운 서양식 오이피클과 방울토마토를 올리니 즉석에서 만든 '오픈 샌드위치'가 되었다. 아침 시간, 그것도 전날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음에도 속이 부대끼지 않는다.
기본 식재료의 퀄리티가 이미 음식 맛의 반 이상을 결정했다. 양식에 대해 문외한인 초빼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았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그런 브런치 카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정통 독일식 빵이라는 프리미엄도 있으니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커피도 적정한 수준을 갖추고 있고, 커피 외에 다른 음료를 추가로 주문하는 손님도 있었으니 음료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고객들도 여성분들이나 노부부, 그리고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
가족이나 연인끼리 고베를 여행 중이라면, 꼭 한번 시간을 내어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은 브런치 카페다.
남자분들은 해장을 위한 라멘이나 우동집을 가고 싶겠지만, 한 번쯤은 이런 경험도 해 보는 것이 앞으로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고언해 드린다.
[추가 팁]
1. 매장명 : 프로인드리브 본점(フロインドリーブ 生田店)
2. 주소 : 4 Chome-6-15 Ikutacho, Chuo Ward, Kobe, Hyogo
3. 영업시간 : 목~월 10:00~18:00 / 정기휴무 수요일
4. 주차장 : 전용 주차장 유. 매장 앞에 5~6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 연락처 : +81-78-231-6051
6. 이용 시 팁
- 이 집은 가급적 오픈런하시길 바란다. 시간이 늦을수록 주문 또는 구입할 수 있는 메뉴는 줄어든다.
- 햇살이 좋은 날 브런치하기 좋은 곳이다.
- 식사 후 1층 입구 반대편의 작은 정원을 한번 보는 것도 추천.
https://maps.app.goo.gl/YtD3YaZ3atFG5RD77
[참고. 킷사텐(喫茶店)이란?]
킷사텐(喫茶店)이란 일본의 커피문화를 대표하는 가게다.
킷사텐(喫茶店)의 '喫(끽)'은 '만끽하다'라는 뜻이며 '茶(다)'는 '먹는다'라는 뜻을 나타내며 '店'은 가게를 뜻한다. 카운터 쪽에 자리와 부스가 있고, 가게의 주인이 자리까지 음료와 요리를 서빙해 주는 것이 킷사텐의 전통이다. 그리고 유리잔에 담긴 물 한잔과 뜨거운 시보리도 빼놓을 수 없다. 드립커피부터 케이크 등의 디저트, 샌드위치, 스파게티 등의 식사까지 가능하다.
일본인들의 브라질 이민이 시작된 이후 1910년 경부터 브라질 정부는 자국에서 남는 생두를 일본에 무상으로 공급했다. 커피가 풍족해지면서 일본은 '커피의 천국'이 되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며 킷사텐이 전국적으로 유행하였으나 태평양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도 이 시기 즈음, 대안커피(콩커피)가 생겨났을 것으로 보인다. 60년대 다시 생두 수입의 자유화가 이뤄졌고, 70년대에 접어들며 일본의 커피는 르네상스와 같은 시기를 맞이했다. 일본에서 커피에 대한 연구와 공부가 깊어진 것도 이 시기 즈음이다.
* P.S 1. 이번 주 일요일부터 큐슈로 취재 출장을 떠납니다. 이로 인해 2주간 초빼이의 노포일기는 쉬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올해 내로 일본 취재를 마치려하니 지난 취재 출장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떠나게 되네요. 2주간의 휴재 여러분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