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음식 문화의 새로운 한 축. 교토라멘 신푸쿠사이칸

186. 교토시 히가시시오코지초 신푸쿠사이칸 혼텐(新福菜館 本店)

by 초빼이

[2013년의 교토, 교토에서의 첫 식사]


초빼이가 처음 교토를 찾았던 것은 2013년 초가을 무렵이었다.

마음과 몸이 아주 힘들었던 시기, 함께 살아주시는 분과 함께 시간을 내 잠시 교토로 쉴 자리를 찾아 떠났다. 오후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 국제공항에 내려 교토로 향하는 특급열차를 탔다. 당시의 기분처럼 비는 처량하게 내리고 있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교토의 밤이 진중하게 낯선 이방인 부부를 맞았다. 교토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지쳐 해져버린 나의 마음과 허기는 점점 더 신경을 날카롭게 벼렸다. 잠시간 허기를 달래고자 찾았던 이코노미석의 기내식은 날카로워진 신경을 더욱 자극했다. 교토역은 새로운 역사의 공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무언가 어수선한 느낌도 들었고, 천년 고도(古都) 교토의 이미지에는 조금 어색한 현대적인 모습이 낯설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역사(驛舍)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관광객들의 소음과 혼잡함도 교토역의 낯섦에 한 손 보탰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체크인을 하기 전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싶었다.

요즘처럼 해외여행의 필수품인 구글맵을 사용하지 못했던 시기라, 한국에서 프린트해 간 지도를 참조하며 첫 식사처로 예정했던 '신푸쿠사이칸 혼텐(新福菜館 本店)'으로 향했다. 지금은 오후 8시에 영업을 종료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22시까지 영업을 했었다. 신푸쿠사이칸의 문을 열자마자 고개를 들며 초빼이 내외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들만의 숨겨진 아지트를 들킨 느낌이었을까? 낯선 이방인을 향한 경계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구석자리에 앉아 주문했다. 충격적인 비주얼의 '교토식 쇼유라멘'과 산더미처럼 쌓아주던 검은색 '야키메시'(당시는 일본어를 전혀 할지 몰라 '하프 사이즈' 주문도 못했고 외국어 메뉴도 없었다.)는 아직도 기억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교토에서의 첫 식사는 나쁘지 않았다. 여행과 출장으로 일본을 자주 찾았던 시기라 일본 음식의 짠맛과 양에 꽤 익숙했던 터라 큰 부담은 없었다. 여느 일본 식당의 음식처럼 꽤 양이 많았고, 꽤 짰다. 그 당시 신푸쿠사이칸 혼텐을 첫 식사처로 정했던 이유는 교토의 관문인 '교토역'에서 가장 가까웠던 노포였고, 라멘이라는 음식이 비교적 자리를 잡지 못했던 교토에 있는 '모든 라멘집의 기준'이 되는 집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꽤 알려진 음식 관련 블로거였던 초빼이는 12년 전에도 이 집에 관한 글을 남겼었다. 그때의 글에도 일본의 유서 깊은 노포에 대한 부러움이 잔뜩 묻어 있었던 것을 보니, 지금 '초빼이의 노포일기'의 저자가 된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의 흐름에 그대로 따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푸쿠사이칸 혼텐(新福菜館 本店)_2013년(직접 촬영)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이 가게를 보면서, 특히 일본에서 많이 느끼는 바이지만......

우리에게는 왜 이런 가게가 찾아보기 힘들까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오랜 시간을 쌓아 온 기술은 일정 시간이 흐르고 나면 기술을 넘어 예술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하다..... 는 류의 생각들, 아쉬움들.....

특히 예전 동경에서 120여 년 된 소바집을 방문했을 때, 맥주를 시켰더니 나왔던 60여 년 된 일본식 된장(맛만 보라고 검지 손톱만큼만 주더라)의 각별했던 맛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며..... 한숨만 늘더라.*


(* 2013년 초빼이 작성글 일부. 지금은 다듬어지지 않은 그때의 글이 더욱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난킨소바(南京そば) > 지나소바(支那そば) > 쥬카소바(中華そば) > 라멘(ラーメン)으로 이어지는 일본 라멘의 역사와 현재]


라멘은 중국식 밀가루 국수(중화면)가 일본으로 들어와 '일본의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음식이다. 초빼이는 일본인들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 중 외부의 문물을 받아들여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로 재창조해 내는 점을 높이 사는데, 거기에 딱 들어맞는 것이 바로 이 라멘이라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야끼니쿠도,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전수받은 카스텔라도, 영국에서 들여온(인도가 아니다) 카레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온 스시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걸었다.


라멘은 메이지 시대 후반에서 19세기말 경 일본의 개항시기에 처음 소개되었다. 요코하마나 고베, 나가사키 등의 개항장으로 들어온 청국인들이 자신들의 조계지(차이나타운)에서 만들어 팔던 중국식 면요리가 널리 퍼지게 되면서 천천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요코하마 차이나타운(당시명 난킨마치, 南京町)'에 거주하던 광둥과 상하이 지역 이민자들이 돼지고기와 중국식 육수에 소금과 간장을 넣은 면요리를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라멘의 원형이 되었다. 이 시기 중국식 면요리를 일본인들은 '난킨소바(南京そば)'라 불렀다. '난킨(南京)은 당시 일본에서 '중국, 중국풍'을 일컫는 말로 요즘의 우리 문화나 드라마에 'K-'를 붙여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 일본인들에게는 '중국에서 넘어온 소바'라는 의미였던 것.


(중국식 라미엔 만드는 법_검색 : 구글재팬_세이이치요시다, 맛있고 경제적인 중국요리를 준비하는 법, 1928)

메이지 시대 중반 이후부터 중국식 면요리 ‘난킨소바‘를 대신하여 '지나소바(支那そば)'라는 다른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지나(支那, 시나)는 제국주의자들의 정치적인 의도가 기저에 녹아있는 호칭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 중일전쟁 등과 함께 중국인들을 멸시하거나 피지배 계급으로 보는 시선이 숨어있었다. 그래서 지나소바는 태평양 전쟁 전부터 전후 초기(1945~1950년)까지 사용되며 '중국 면요리=서민과 노동자의 음식=하류층의 음식'이라는 뉘앙스까지 품게 되었다. 다만, 요즘도 가끔 이런 호칭을 쓰는 곳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비하의 의미보다, '쇼와초 중기의 쇼유라멘'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수단으로만 쓰인다고 한다. 참고로 지나(시나)는 현재 중국을 지칭하는 'China'의 어원이다.


주카소바(中華そば)는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중화인민 공화국 수립' 등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며 '지나'라는 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지나료리(支那料理)는 주카료리(中華料理)로, 지나소바(支那そば)는 주카소바(中華そば)가 되었다. 한낱 정치적 지형과 국가 간의 관계 변화가 음식의 이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카(中華)는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의 '중화'라는 말에서 따 왔다. 아직도 쥬카소바(中華そば)라는 말을 쓰는 곳들은 '라멘'이라는 말이 정착되기 이전부터 영업해 온 노포를 의미하거나 '옛 도쿄식 쇼유라멘이나 닭 또는 돼지 육수와 간장 타레'를 사용하는 라멘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다.


'라멘'이라는 말은 중국어 '라미엔(拉麺, 손으로 늘려 빼는 국수)에서 유래했지만 실제 일본 라멘의 면은 손으로 뽑는 방식은 아니다. 이름만 차용했지 면을 만드는 방식은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음식을 지칭하는 요리명으로 ‘라멘‘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였다.

1. 니신_치킨라멘 / 2. 스페이스 치킨라멘 (출처 : 니신식품 웹사이트)

1945년 태평양 전쟁의 패전 이후, 일본은 최악의 흉작(쌀)과 전쟁 피해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게 된다. 미 점령군은 이때 값싼 밀가루(미국 원조품)를 일본에 공급했고, 빵과 밀국수 소비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동북아 주요 3국(한국, 일본, 대만)에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이때부터 라멘은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한 끼가 되었다. 더불어 중국과 만주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중국에서 경험했던 식문화를 바탕으로 라멘과 교자(餃子) 야타이(포장마차) 영업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호구지책이었던 셈. 더불어 1950년 경 밀가루 관리와 노점 규제가 완화되면서 합법적인 라멘가게(매장 및 야타이(노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불을 붙인 것은 1958년 닛신식품이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 '치킨라멘(チキンラーメン)'을 출시하면 서다. 이때부터 ‘라멘‘이라는 명칭이 전국 공통으로 사용되었고, 패스트푸드 라멘도 라멘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71년에는 같은 회사에서 컵 용기에 넣은 '컵누들(컵라면)'이 나오면서 언제 어디서나 라멘을 먹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현재와 같은 수제 라멘의 전성기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되었다. 일본 각지의 라멘이 ‘삿포로 라멘, 후쿠오카 라멘, 도쿄 라멘‘과 같은 지역 브랜드를 내세우기 시작하였고, 1994년 요코하마에 라멘 박물관이 문을 열며 라멘은 ‘B급 구르메‘의 대표 음식으로 지역성을 띄고, 서민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일본의 우주 진출 시대를 맞아 우주식으로 사용될 라멘도 개발되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세계 최초의 미슐랭 원스타 매장으로 도쿄의 한 라멘집이 선정되며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세계적인 음식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서민의 음식이 아닌 고급 요리로서의 발전 가능성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1. 지나소바(支那そば) 사례 / 2. 쥬카소바(中華そば) 사례 (사진출처 : 구글재팬)



[2025년, 12년 후 교토에서의 첫 식사]


교토를 마지막으로 찾았던 2013년에서 12년이 지난 2025년, 다시 교토를 찾았다. 이번은 교토의 노포를 조사하고 취재하기 위해 혼자 찾았다. 신칸센을 내려 교토역 뒤편의 호텔(12년 전 마눌님과 함께 묵었던 그 호텔)에 짐을 맡기고 처음 찾은 식당도 신푸쿠사이칸 혼텐이었다. 그러고 보니 초빼이의 교토에서의 첫 끼는 항상 이곳이었다. 지난 12년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교토역 인근을 보며, 걱정과 근심이 뒤섞인 마음으로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도 많이 변했을까? 음식도 많이 달라졌을까?' 하는 걱정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미리 알아본 바에 의하면 12년 전까지는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던 옆집(혼케 다이아치 아사히 본점(本家 第一旭 本店))이 최근 관광객들에게 더 주목을 받고 있었고,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더 많이 찾고 있는 듯 보였다.


옆집의 입장을 기다리는 웨이팅 줄을 지나 신푸쿠사이칸 혼텐 앞에 늘어선 줄에 합류했다. 힐끗 뒤를 돌아보는 오지상(おじ, 아저씨)과 눈을 마주쳤다. '진정한 교토의 라멘을 아는 사람이라면', '근본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집이지'라는 ‘아재들의 공통된 확신‘이 순간의 눈빛 교환을 통해 오갔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면면도 옆집과는 조금 달랐다. 옆집이 외국인과 젊은 연령대의 사람들의 비중이 높았다면, 신푸쿠사이칸의 대기줄은 아저씨들과 조금은 연배가 있는 분들의 비중이 높았다. 12년 전 이 집을 찾았던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그대로 늙어 오지상이 된 것이다.


라멘은 일본을 대표하는 다른 음식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다. 그만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기에 경쟁이 극심하고, 시장 진입의 장벽이 낮다. 그래서 잠시만 관심을 끊어도 많은 변화가 있다. 가게들의 성쇄가 원래 이렇다. '변방 늙은이의 말(塞翁之馬)'처럼 좋은 시절이 있으면 나빠지기도 하고, 바닥을 치는 시기가 있으면 다시 하늘 높이 오르는 시간도 있는 법이다. 그 변화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꾸준히 노력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잠시 방심하고 마음을 놓으면 금세 새로운 경쟁자에게 역전을 당한다. 12년 전엔 그리 유명하지도 않았던(‘혼케 다이아치 아사히 본점‘도 꽤 오래된 노포이자 유명한 라멘 노포다. 상대적인 비교에서 그렇다는 의미이니 오해하지 말 것) 옆집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유명한 가게가 된 것은 그들이 순간의 현실에 실망하지 않고 무언가 개선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견디면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돌아온다. 게다가 같은 업종의 훌륭한 경쟁자이자 성공을 누려온 노포가 바로 옆에 있으니 매일매일 동기부여는 확실하지 않은가?

1. 2013년_신푸쿠사이칸 혼텐 / 2. 2025년_신푸쿠사이칸혼텐 (직접촬영)
1. 신푸쿠사이칸 혼텐 1대 사장_서영제씨 사진 / 2. 1960년 신푸쿠사이칸 혼텐 사진 / 3. 1997년 매장 내부사진 (사진 출처 :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 웹사이트)

신푸쿠사이칸 혼텐(新福菜館 本店)은 '교토 라멘(京都ラーメン)' 또는 '교토 주카소바(京都中華そば)'의 전통이 시작된 노포다. 쇼와 13년인 1938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출신의 '서영제(徐永俤)'씨가 교토역 앞에 주카소바 야타이(屋台, 포장마차)를 열며 긴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일본에 주카소바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교토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카소바'가 뭔지 몰랐던지 교토 사람들의 외면으로 하루에 5그릇을 팔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금세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며 4년 후인 1942년에는 현재의 자리에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점점 교토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고, 가장 전성기에는 하루에 2천 명이 넘는 손님을 받기도 했으니 그 인기는 과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좁아터진 매장에 종업원 수가 12~13명에 이르렀다니 전후 폐허가 된 일본의 사정을 보면 엄청난 성과를 만들었다.


당시의 메뉴는 음식의 양에 따라 '보통(並)과 소 그리고 고기 토핑이 없는 라멘'의 세 가지로 지금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야끼메시(ヤキメシ)'는 1965년 후반, 2대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마사루(山内勝氏)'씨가 개발했다. 재미있는 것은 2대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씨는 이 집의 단골손님으로 라멘을 먹으러 다니다가 창업자의 딸인 하츠코(初子)씨와 결혼하여 1971년부터 대(代)를 이었던 것. 다음 생에는 초빼이도 단골 식당의 따님들을 유심히 보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신푸쿠사이칸 혼텐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레 교토 라멘의 기준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교토에 생긴 많은 라멘집들이 자신들의 방식을 따르고 카피해도 그에 대해 제지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노포가 된 많은 교토의 라멘집들이 신푸쿠사이칸 혼텐의 라멘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했다. 하지만 그 기원을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반드시 '신푸쿠사이칸 혼텐'이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다.


예전에 비해 조금은 현대식으로 바뀐 매장의 분위기가 낯설지 않았다. 기본은 지키는 선에서 변화를 추구했다. ‘안정’이라는 가치를 우선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맛에 대한 걱정은 가게 앞에서 기다리던 30여 분의 시간 동안 수월하게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앉은 곳은 주방 앞의 카운터 자리. 고개를 돌려보니 12년 전 마눌님과 앉았던 구석 자리도 아직 여전하다. 새로운 테이블과 의자로 교체해 조금 더 깨끗해지고 뭔가 세련된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그 자리를 잊을 수는 없었다. 12년 전 그때와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보통 사이즈의 주카소바와 야키메시 작은 사이즈 하나, 그리고 기린 이치방 맥주 한 병. 예전에 없던 김치도 메뉴에 넣은 걸 보니 메뉴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듯하다.

초여름이었지만 너무 더웠던 날씨 덕분에 맥주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이 집의 주카소바는 조금 짠 편이라 짠맛을 중화시켜 줄 보리 음료(?)는 필수이기도 했다. 야키메시가 먼저 나왔다. 작은 접시에 소담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이 집의 야키메시를 다시 먹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12년이다.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 10년을 넘기고 무려 두 해가 더 지났다. 그럼에도 음식은 변함이 없다. 12년 전과 같은 색과 같은 향을 내뿜고 있다. 게다가 바로 눈앞의 주방에서 밥을 볶으며 웍질 하는 것을 보았기에 더 감회가 깊었다.


우리나라의 중국집에서도 테이블에 앉아 주방에서 들려오는 '웍' 소리를 듣는 걸 무척 좋아한다. 거기에 출력이 높은 가스버너를 사용하는 곳이라면 '쉬익~'하고 내뱉는 고압가스 소리가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누군가에겐 굉장한 소음이겠지만, 초빼이에겐 최고의 '백색소음(?)'이다. 방금 했던 나의 주문이 주방의 작은 창으로 전달되고 누구인지 모를 어떤 이의 손이 주문서를 가지고 들어가면 이윽고 버너에 불을 붙이는 소리와 손목 스냅을 쓰며 웍질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주문이 주방에 잘 전달되었다는 ‘안심’이자, 곧 내 눈앞으로 몽글몽글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따끈한 음식 한 접시가 놓일 것이라는 ‘확신’이다. 오래된 성당에서 들려오는 경건한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가 이와 같을게다. 아직 음식을 보지도 못했지만 그 웍 소리만으로 이미 음식의 맛을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


12년 전에는 너무나 지친 마음으로 그 소리를 즐기지 못했지만 이번 방문에 유별나게 큰 이 집의 웍소리를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주방 바로 앞의 카운터 석이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야키메시 주문이 서너 개 모이면 어김없이 담당직원은 웍에 불을 올리고 웍질을 시작한다. 마치 메트로놈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웍질에도 박자와 리듬이 있다. 그 박자를 느끼면서 맥주 한 모금을 몸 안으로 집어넣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내 몸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의식과 같다. 일종의 제례이다. 신을 부르기 위해 오래전부터 경건하게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무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마음은 고요해졌고 심장박동은 조금씩 느려진다. 경건한 마음으로 음식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

오늘날의 식당에서 단순히, 주인장이 내주는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재미가 없다. 식당을 직접 찾아 그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훔쳐보는 과정이 음식을 맛보는 행위와 함께 결합되어야 진정한 미식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식당의 일상 모습과 요리가 나오는 과정, 종업원들의 서빙하는 모습, 주방의 요리 장면 등을 직접 보고 체험하고 맛보는, 복합적인 감각이 결합된 체험이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런 면에서 이 집과 같은 오픈형 주방의 식당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솔직히 말해 이후의 기억은 없다.

야키메시는 너무나 고소했고, 주카소바는 여전히 강력한 쇼유라멘 특유의 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실 초빼이는 12년 전의 그 맛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론적으로도 사람의 기억력과 미각은 오래전에 느꼈던 맛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음식을 먹고 있을 당시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한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일시적 기억상실이다. 고개를 숙여보니 어느새 음식이 모두 비워져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과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듯하다. 맛있는 음식을 만나면 가끔 겪는 일이다.


교토의 음식은 오반자이나 정진음식, 그리고 가이세키와 같은 '고급스러운 와쇼쿠(和食)'의 이미지가 강하다. 뭔가 대단한 코스가 존재하는 요리(가이세키)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음식(정진요리 등)이 아니면 교토의 음식이 아니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패망 이후 사람들의 일상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맺고 그들의 삶을 현재까지 지속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런 거창한 요리들이 아니라 신푸쿠사이칸의 주카소바나 마츠바 혼텐의 니신소바 같은 음식들이다. 그래서 이 집의 라멘은 교토 서민의 식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아이콘과 같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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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일본 현지에서도 '교토 음식 문화의 한 축'으로 교토의 라멘을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의 교요리에 대한 정의에 대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고급진 상류계층의 음식만으로 채워졌던 교요리의 카테고리에 서민의 삶과 함께 했던 음식들을 같은 높이에서 보고자 하는 듯 하다. 신푸쿠사이칸의 주카소바에 다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느낌이다. 교토도 사람 사는 곳이었으니 모두가 승려고 모두가 귀족이나 황족은 아니었을 터. 이젠 평범한 삶을 살았던 서민들의 음식도 교토를 대표하는 교요리의 카테고리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토의 라멘'이 아니라 '교토의 요리'로.


[추가 팁]

1. 매장명 : 신푸쿠사이칸 혼텐(いづう)

2. 주소 : 569 Higashishiokojicho, Shimogyo Ward, Kyoto

3. 영업시간 : 목~화 09:00~20:00 / 정기휴무 수요일

4. 주차장 :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 연락처 : +81-75-371-7648

6. 이용 시 팁

- 현금, 카드 결제.

-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라멘집. 혹자는 현재 일본에서 영업 중인 라멘집 중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도 부른다.

- 교토라멘이라는 장르를 만든 집이니, 교토역 근처에 있다면 한번 들러볼만하다.


https://maps.app.goo.gl/g8jbgjWwsLqtfvao9?g_st=i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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