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과 밀가루로 만든 후와 유바, 육식본능을 이기다.

187. 교토 히가시야마구 쇼닌초 한베에후(茶房 半兵衛)

by 초빼이

도대체 교요리(京料理)란 무엇인가?


교토의 요리, 즉 '교요리(京料理)'는 교토라는 도시의 오랜 역사와 자연의 풍요로움을 담은, 세련되고 전통이 녹아있는 음식과 그것을 즐기는 문화까지 포함하고 있다. 교토는 1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본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어 일본 각 지역의 음식문화와 상호교류하며 일본요리의 중심으로 발전해 왔던 것. '교요리'라는 개념이 단순히 사람에게 내는 음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먹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서로 소통해 만들어 낸, '음식을 먹는 방법이나 예법 그리고 접객 방식'까지 포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KakaoTalk_20250506_160441189_02.jpg 한베에후 매장(직접 촬영)

교요리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우선 교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다행히 2023년 교토부의 문화청에서는 교요리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교토의 역사 속에 형성된 일본요리의 5 체계(大饗料理, 本膳料理、 精進料理、 懐石料理、 お番菜)*를 종합하여, 육수를 기본으로 한 조리법에 따라 창작된 음식과 이를 담아 배식하고, 정성껏 대접하는 음식 문화를 의미한다. 본상요리, 정진요리, 가이세키 요리(本膳、 精進、 懐石料理)를 종합한 연석요리(宴席料理)의 형태다. 회석요리(会席料理)를 교토부의 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


* 일본요리의 5 체계

1. 大饗料理 (대향요리, 성찬요리, だいきょうりょうり) 일본 고대, 중세 귀족사회에서 행해진 최고 격식의 국가적 연회요리. '향(饗)'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을 초대해 크게 대접하는 의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단순한 식사가 아닌 정치, 외교, 의례가 결합된 행사 개념이 강해 조리법보다 의례, 형식, 절차 등을 우선시함. 이후 일본 상차림 문화의 기준이 됨.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떤 순서로 먹는가?"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국가 질서와 권력구조를 시각화한 장치로 사용되었는데 음식의 맛과 미보다는 음식이 상징하는 의미가 더욱 중요했던 요리다.


2. 本膳料理 (본선요리, ほんぜんりょうり) 일본의 전통 상차림 방식으로 무로마치 시대(14~16세기)에 발전해 사무라이 계급과 관혼상제 등에서 주로 사용된 의식(儀式) 요리. 밥, 국, 반찬을 상 단위로 질서 있게 올리는 일본의 정식 연회식. 혼젠요리의 핵심은 '배치의 규범성'과 '위계의 가시화'였다. 쇼군, 다이묘의 연회, 혼례, 축하 의식에서 정치적 질서와 신분체계를 식탁 위에 구현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화려함보다 규범, 격식, 재현성이 중요했기에 음식보다 음식의 배치와 숫자가 더 중요했다.


3. 精進料理 (정진요리, しょうじんりょうり) 6세기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일본으로 유입된 것으로 가마쿠라와 무로마치 시대에 사찰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요리. 오신채와 동물성 식자재를 배제하고 자연의 순환에 따른 계절에 맞는 식재료를 사용하는 요리로, 음식보다 음식을 먹는 목적을 먼저 생각하는 요리다. 요리는 수행의 연장이며 요리를 하는 행위 또한 모두 수행을 위한 행위로 간주하였다. 가이세키 요리가 추구하는 정신적 기원이 되었다.


4. 懐石料理(회석요리, かいせきりょうり) 본래는 차(茶)를 마시기 전, 속을 데우기 위한 수행자의 식사를 의미하였다. ‘懐石’라는 말은 '선승이 배고픔을 참기 위해 품에 돌을 넣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배부른 식사가 아니라 참선과 수양에 필요한 '집중을 위한 절제된 한 끼'를 의미한다. 무로마치 말기에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16세기)까지 '센노리큐(千利休)'가 일본의 다도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정립한 개념으로 차회(茶会)를 위한 음식을 의미한다. 가이세키 요리는 정진요리의 정신을 차용하여 손님을 대접하는 예술로 승화되는데 일본 요리 중 가장 철학적인 접객 방식이 된다. 에도 시대 이후 차실 밖으로 나오게 된 '회석요리(会席料理)가 나뉘게 됨.


5. お番菜(오반자이, おばんざい) 오반자이는 교토의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먹어 온 반찬 문화를 의미한다. 화려한 연회식이나 접객 요리가 아닌, 집밥의 축적된 지혜가 형상화된 것이다. 제철 채소와 소량 다품의 소접시, 조림이나 무침 볶음 등의 간결한 조리법 그리고 다시마 중심의 담백한 감칠맛을 내는 음식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에도시대 중, 후기에 그 모습을 갖췄는데 교토 특유의 생활 조건을 기반으로 탄생하였다. 비싼 재료를 쓰지 못하지만 재료를 끝까지 쓰고, 맛을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이 발달했다. 전통적으로 교토에서 나는 것과 교토에서 오래 먹어온, 교토의 일상에 깃든 음식을 의미한다.


** 쿄토부 문화청, "레이와 3년(2022년도) 음식문화 스토리 창출, 발신 시범사업" 조사보고서 중 일부 발췌. (2023년 발행. AI 번역기 사용 및 일본어 능력 이슈로 인해 일부 해석에 차이가 있거나 부정확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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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향요리(출처_구글재팬) / 2. 본선요리(출처_웹사이트 요리왕국) / 3. 정진요리(출처_웹사이트 savor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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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이세키요리(출처_구글재팬) / 5. 오반자이(출처_웹사이트 자란넷)

무언가 복잡하지만, 체계화된 일본의 음식과 요리체계를 볼 수 있는 듯하다.

교요리를 짧게 말하자면 "교토(京都)라는 도시가 1천 년 넘게 일본의 수도와 의례(종교)의 중심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축적한 '조리기술, 상차림, 그릇, 공간 연출, 식사법, 접객(오모테나시)'까지 포함하는 음식 문화"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교요리의 발전은 교토의 좋은 토양과 물로 키워낸 채소 등과 같은 양질의 식재료와 조리법에 홋카이도를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공급되는 식재료까지 녹여내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어 냈고, 귀족, 무사, 승려 계층의 의례와 다도 등의 '예법과 미의식'이 음식 문화와 결합, 교요리를 계절성과 격식, 접객까지 아우르는 '종합예술'의 수준에 이르게 했다.


그중 교요리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정진요리와 가이세키 요리 그리고 오반자이'라 할 수 있다. '대향요리에서 혼젠요리'에 이르는 권력(층)의 음식이 '정진요리'와 같은 사찰의 음식으로 철학을 품게 되었고 그 철학은 다시 '가이세키 요리'에서 미적 가치를 더해 아름다움을 갖추게 되었다. 거기에 교토 사람들의 매일의 일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오반자이'가 더해지며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는 대중성까지 품게 되었으니 여기에 더할 가치가 또 무엇이 있을까?


이런 이유 때문인지 교토 시내 곳곳을 돌아보면 교요리를 내는 음식점들을 꽤 자주 만날 수 있다.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교요리의 전통을 고수하고 지켜내고 있는 집들이다. 1년 365일 언제나 외부에서 찾은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교토는 이런 '교요리'를 내는 음식점을 통해 천년도시 교토의 전통과 문화를 널리 알린다. 한때는 귀족이나 왕족, 승려들만 접할 수 있었던 일부 계층의 요리를 이젠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교토를 찾는다면 반드시 한 번은 경험해야 할 필수코스다.



유바(湯葉)와 두부(豆腐), 그리고 후(麸). 비슷한 모습, 서로 다른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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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교유바 만드는 과정(출처_한베에후 웹사이트)

유바(湯葉)와 두부(豆腐) 그리고 후(麸)는 일본 음식의 5 체계 중 '정진요리와 가이세키 요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식재료다.


유바(湯葉)는 두유(豆乳)를 약불로 데울 때 표면에 생기는 얇은 막을 건져 올린 것이다. 두유의 재료인 대두 단백질과 식물성 지방이 농축되어 두부보다 풍미가 진하고(생유바) 미끈한 식감이 인상적인 식재료다. 일본 농림수산성의 전통식품 자료에는 '가마쿠라 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져 정진요리(精進料理)에 쓰였고 이후 무로마치 시대부터는 다도(차회, 가이세키) 문화를 거치며 상류층의 식문화로 정착한 후 에도시대 후기에는 조리에서 실리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교토의 유바가 유명한 것은 사찰과 귀족층의 다도에 대한 수요가 넘쳤다는 점과 두유와 유바의 제조에 유리한 질 좋은 수질을 갖췄고, 가이세키 정진요리가 발달했던 외식문화 구조가 서로 맞물린 결과였다.


교토의 두부(豆腐)는 정진요리의 기술이(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내는) 교토의 요리로 흡수되며 발달하였다. 일본의 두부의 제조법은 헤이안 시대에 중국에서 견당사가 가져왔다는 설과 가마쿠라 시대에 선종과 함께 전해졌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정진요리의 전통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음식이 '유도후(湯豆腐, 두부를 다시마 등의 국물에 삶은 요리)'다. 유도후는 난젠지(南禅寺) 사찰의 음식에서 시작하여 난젠지의 문 앞 다점에서 확산되었다고 전해진다. 육식을 금하는 사찰음식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두부가 서민들이 본격적으로 즐기는 음식이 된 것은 에도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1782년(덴메이 2년)에는 두부백진(豆腐百珍)이 출판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두부와 유바는 모두 콩을 원재료로 만든 요리로 육식을 금지하는 정진요리에서 기원하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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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후_출처_일본농림수산성_일본전통식도감.jpg 1. 교유바 / 2. 교도후(두부) / 3.교후 (출처_웹사이트_일본농림수산성_일본전통식도감)

그에 비해 '후(麩, 밀기울)'는 원재료부터 다르다. '후'는 기본적으로 밀의 단백질인 '글루텐'을 주재료로 만든 가공식품이다. 원형은 헤이안 시대에 당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본격적으로 요리에 이용된 것은 그것보다 조금 늦은 무로마치 시대부터다. 사원의 정진요리나 다회의 가이세키 요리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에도시대에 이르러 상품화가 이뤄졌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글루텐에 밀가루를 더해 모양을 만든 뒤 구워서 말린 것을 '야키후(焼き麩)'라 하고 찹쌀가루(もち粉)를 섞어 모양을 만든 후 삶거나 쪄낸 것을 '나마후(生麩)'라 한다. 원래 중국의 사원(사찰)에서는 '고기를 대체하는 식감'을 내는 식재료로 면근(麵筋, wheat gluten)**을 사용했는데(齊民要術, 제민요술(535년)) 일본에서도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특히 육식이 제한되었던 정진요리에서 단백질 섭취와 고기의 식감을 얻을 수 있는 재료가 필요했는데, '후'는 이에 최적화된 식재료였다. 차회(茶會) 전후의 가벼운 식사(가이세키)에서 담백한 맛과 절제와 여운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만한 것이 없었다. 여기에 교토의 맑은 국물(다시마 중심) 음식에서 국물의 맛을 머금거나 올리는 역할에도 '후(특히 야키후)'는 적절했으니, 교토의 요리에서 '후'가 중히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나마후(生麸)'는 찹쌀의 탄력과 계절을 나타내는데 적절했다. 글루텐에 찹쌀가루를 섞어 찌거나 삶으면 쫀득한 탄력이 생기고 은은한 단맛을 품게 된다. 이를 덴가쿠(된장요리. 백, 적, 유자 참깨 등)를 얹어 식감의 차이를 느끼거나 조림이나 무침에 사용하여 질감을 극대화시켰다. 단풍이나 벚꽃 등의 계절을 나타내는 상징적 모양을 만들어 가이세키 요리에서 계절의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글루텐에 밀가루를 섞어 구워 말리는 '야끼후(焼き麸)'는 밀가루의 특성으로 인해 스펀지처럼 국물을 흡수한다. 미소시루에 야끼후를 넣으면 다시의 맛을 품고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으며, 조림이나 나베에 넣으면 밀가루의 전분이 고기 대신 '국물의 깊이'를 만들어 냈다.***

현대의 교요리에서는 노포와 료테이(요정)는 전통적인 후의 다양한 사용법을 지키고 있으며, 차집이나 캐주얼한 정식집에서는 나마후 덴카쿠나 야키후 국물을 내는 수준으로 사용된다.


* 일본농림수산성, 일본전통음식도감, 곡류, 농림수산성 웹사이트, 일부 발췌

** 중국에서는 밀을 '면'이라 불렀는데, 강한 끈기와 쫄깃한 글루텐은 '면의 힘줄'이라는 의미로 '면근'이라

불렀다.(출처_한베에후 웹사이트)

*** 게이한 전철 웹사이트, '교토인의 추천'코너 제89회 '교토의 후(ふ), 일부 발췌



Since 1689, 한베에후(茶房 半兵衛). 한 끼의 식사로 뱃속의 벌레를 잠재운다.


올해(2025년)를 기준으로 1689년에 창업한 '한베에후(茶房 半兵衛)'는 336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본에서, 그중에서도 교토에서 336년의 역사는 그리 큰 자랑거리는 되지 않지만, 과장을 좀 보태면 "이제 음식 좀 제대로 하겠네" 정도의 말은 들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200년이 넘지 않으면 '노포'라는 말을 붙이기도 힘든, 천년 고도 '교토'만의 노포에 대한 높은 기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후'와 '유바'에 대해 지식도 없고 경험마저 없었던 초빼이는 교토에서의 마지막 식사처로 '한베에후'를 낙점하였다. 교토 취재를 시작하기 전 한국에서 일본의 예약 전문 사이트를 통해 미리 예약한 후 교토를 찾았다.(예약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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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역 뒤편의 호텔에서 나와 가모강을 따라 교토의 뒷골목을 걸었다. 오래된 주택부터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된 집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부러 작은 골목길을 택해 그 길들을 걸었다. 가장 좋아했던 '철학자의 길'을 일정상 들리지 못한 분풀이를 교토의 주택가 골목에다 쏟아냈다. 한적한 동네를 걷는 느낌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일본 특유의 주택들 사이로 나무와 꽃들도 눈에 띄었고, 2층 창가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며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하는 안도감도 느꼈다. 조금씩 지루해질 시간이면 하나씩 툭툭 튀어나오는 이쁜 밥집과 동네 술집에 다시 눈을 크게 뜨고 핸드폰 렌즈를 들이대기도 했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눈앞이 트이며 강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을 건너자마자 깔끔하게 새로 지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식으로 외관을 꾸민 카페였다. 커다란 유리를 가로지르며 붙어있는 창틀에서 일본의 전통문과 창문을 자연스레 떠 올렸다. '후후안'이라는 이름의 한베에후에서 만든 카페다. 이 카페를 끼고돌아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한베에후의 본채 건물이 나타난다. 카페 건물과 붙어있는 화강암으로 된 작은 서양식 건물 한 채와 일본의 전통가옥인 마치야(町屋, 상가와 주거를 결합한 주상복합 형태의 건물) 등, 총 3채의 건물이 서로 붙어있다. 매장 건물 하나에서 일본 전통식 가옥과 서양식 건물, 그리고 현대식 건물이 결합된 형태를 보는 것도 그리 흔한 기회는 아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와 근대, 그리고 현대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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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야후의 초대 대표는 황궁의 요리사였다. 교토 가모가와 변의 한적한 마을에 '후'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를 열었고, 9대째 대표 시절 인근 사찰의 부탁으로 '유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식 마치야(町屋) 건물로 들어가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서양식 건물의 2층으로 올랐다. 서양식 건물의 작은 방에는 오래된 고가구와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든 등(燈)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초빼이가 오늘 경험할 음식은 '무시야시나이(むし養い)'라는 점심 메뉴다. 교토의 오래된 방언으로 '배 속의 벌레를 달랜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배부르게 하는 식사가 아니라 몸과 미각을 정돈하는 중간식(点心, 점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데, 이 요리는 11대 대표가 만들어 낸 '후'와 '유바' 요리다. 점심 한 끼 메뉴에 정진요리와 가이세키 요리의 정수가 구현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에 조금의 긴장감도 있었다. 그래서 니혼슈를 주문했다. 조금은 편안한 마음에 음식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차림이 니혼슈와 함께 테이블에 올랐다. 우선 닫혀있는 오완의 덮개를 열었다. 맑은 국물이 후를 덮을 정도로만 담겨있었고, 그 위로 눈처럼 유바가 올랐다. 조금은 희미한 듯하지만 존재감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국물향이 슬며시 코로 들어왔다. 처음엔 호두조림이 아닐까 의심했던 '후 시구레니'는 비교적 단단한 후를 양념에 졸여 고기와 같은 식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음식이었다. 순간 '이게 뭐지?' 하며 굉장히 독특한 식감에 당황했었고, 품고 있는 감칠맛에 놀라기도 했다. '후와 오이 초무침'의 외형은 채소 샐러드에 닭가슴살을 곁들인 게 아닐까 할 정도였다. 덤덤한 후의 맛과 초무침 오이가 각각의 영역을 지키며 서로 협력하며 상쾌함을 돋보이게 했다. 입안을 깔끔하게 리셋하고 싶을 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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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시야시나이(むし養い) 메인세트 / 2. 나마후 덴가쿠(なま麸田楽) / 3. 후와 유바 오완(お麸とゆばのお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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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후 오이 초무침(お麸ときゅうりの酢の物) / 5. 후 시구레니(お麸のしぐれ煮) / 6. 니혼슈

메인 찬합은 다양한 음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잘 정리된, 일본의 도시락을 연상케 하는 외형과 음식의 존재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색상의 배열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이래야 일본, 아니 교토의 요리지'라는 만족감이 들기 시작했다. 흰쌀밥 한 덩이와 나마후 덴가쿠, 대나무 모양의 후, 리큐보, 단풍 모양(紅葉)의 후, 말차후가 들어 있었다. 음식 각각의 식감들이 모두 달라 재료가 무엇인지 물어보니 놀랍게도 모두 '후'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기술이 아니라 예술적인 수준에 이른 게 아닐까?'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나마후 덴카쿠의 일본식 된장들의 은은한 단맛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입에 넣었던 말차후 한 조각에서는 화과자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후(麸)'라는 음식이 가진 매력을 깊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메인세트의 음식을 모두 비우자 다음의 구성을 이루는 세트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나마후에 올린 미조레앙(生麸のみぞれ餡)이 하얀색 접시에 담겨 나왔다. 소시지 같은 나마후에 크림소스가 올려진 것이 아닐까 오해할 수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직원분의 설명을 들으니 분홍색 나마후는 벚꽃과 봄을 상징한다고 한다. 초빼이가 찾은 시기가 늦은 봄이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소스처럼 얹어진 미조레앙은 간 무(大根おろし)에 다시를 더해 농도를 조정한 것이라는데, 눈으로 보고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사실은 후와 유바 튀김 다음에 먹어 입안을 깔끔하게 만드는 음식인데 초빼이의 무지로 인해 순서가 바뀌었다.

나마후에 올린 미조레앙(生麸のみぞれ餡)
계절세공 나마후(細工生麸)와 나마후와 아게후의 미조레 조림(生麸と揚げ麸のみぞれ仕立て)

계절의 모습을 담았다는 '계절세공 나마후(さいく なまふ)'는 봄을 상징하는 벚꽃잎으로 접시에 담겼다. 가이세키 요리의 문법을 따라 철저하게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름을 절제한 듯했다. 그럼에도 바삭한 식감은 인상적이었다. 나마후와 아게후의 미조레 조림(生麸と揚げ麸のみぞれ仕立て)은 나마후와 아게후(기름에 튀긴 후) 위에 무즙을 얹고 다시 기반의 옅은 앙(술, 간장 등으로 조미해서 끓인 국물 또는 음식)을 부었다. 기름기 있는 후와 차가운 성질을 가진 무즙을 한데 묶어 놓음으로써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거기에 더불어 입과 몸의 온도를 낮추는 조율의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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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마후에 올린 미조레앙(生麸のみぞれ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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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절세공 나마후(細工生麸) / 3. 나마후와 아게후의 미조레 조림(生麸と揚げ麸のみぞれ仕立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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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마후 백미소국(なま麸の白味噌椀) / 5. 후만(麸まん)

나마후 백미소국(なま麸の白味噌椀)은 마치 예전 우리나라에서 많이 먹던 간식 콩국을 연상케 했다. 잘 간 콩국에 우뭇가사리를 넣고 숟가락으로 퍼 먹거나 그냥 마셨던 여름을 상징하던 그 음식. 백미소 국물이라기에는 간이 약했고 미소의 단맛이 조금 더 앞에서 입술을 맞았다. 떡과 같은 느낌의 나마후의 식감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차를 넣은 '후만(麸まん)'은 차 대신 나온 디저트의 역할이었다. 투명한 젤리의 식감이었는데 입속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정진요리와 가이세키요리 그리고 일본의 다도 문화가 이 접시 하나에서 접점을 찾았다고 한다.


일본의 음식 문화, 특히 정진요리와 가이세키 요리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해 음식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음식과 음식의 생김새, 조리법 그리고 음식을 담는 그릇까지 모두 치밀하게 고려하고 설계하는 일본음식의 체계에 대한 이해는 조금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베에후는 "우리는 식당이 아니라 후를 설명하는 집"이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내는 음식은 양이 많지 않고 강한 양념을 하지 않는다. 또한 눈에 띄는 장식이나 기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 배후에는 "후(麸)에 대해 이해를 시킨다"라는 이곳 대표의 의지가 들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한베에후'는 초빼이와 같이 그런 음식의 역할을 공부하고 이해하기에 적합한 곳이기도 했다.


모든 과정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 길까지 직원이 안내를 해 줬다. 각 방에 있는 고가구와 조명을 구경하게 해 줬고 한베에후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도시락 및 후와 유바를 만드는 기구 및 고문헌)으로 동선을 이어 나갔다. 음식을 모두 먹고 나가는 과정까지 그들은 '후(麸)'에 대해 고객이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굉장히 좋은 공부를 했다는 느낌과 원래 이해력이 떨어지는 초빼이의 특성상 다시 복습을 위해 교토와 이 집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이 함께 떠 올랐다. 근데 복습은 언제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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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에후 내부 박물관



[추가 팁]

1. 매장명 : 한베에후(茶房 半兵衛)

2. 주소 : 433 Shonincho, Higashiyama Ward, Kyoto

3. 영업시간 : 목~화 11:00~16:00 / 정기휴무 수요일

4. 주차장 : 없음. 인근 민영 주차장 사용

5. 참고

- 예산 : 1인당 4,000~5,000엔

- 81-050-5594-1638

- 예약처 : (타베로그)https://tabelog.com/kyoto/A2601/A260301/26001283/?cid=google_yoyaku

6. 이용 시 팁

- 반드시 사전예약을 해야 방문할 수 있다. 위의 타베로그 사이트에서 예약할 것.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예약하는 것이 좋다.

- 음식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경험이 가능하다. 경험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하시길.

- 사전에 후와 유바, 그리고 정진요리와 가이세키요리에 대한 공부를 조금해 두고 가면 음식에 대한 이해가

쉽다.

- 내부 박물관이 굉장히 잘 꾸며져 있다. 개인이 만든 박물관의 수준을 넘었다는 느낌.


https://maps.app.goo.gl/LwxDbPqQKsCwx5Y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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